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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성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 들개의 머리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필성필성필
작품등록일 :
2020.01.29 23:32
최근연재일 :
2021.11.18 02:42
연재수 :
427 회
조회수 :
219,771
추천수 :
5,508
글자수 :
4,187,164

작성
21.11.02 21:59
조회
154
추천
8
글자
21쪽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DUMMY

사방에서 거대한 깃발들이 그득그득 자리한 대군영의 아래, 이미 그 거대한 군영의 문을 통과하는 이들의 외침은 하나같이 급작스럽고 다급한 것들뿐이었다.


“남동쪽 언릉 인근의 후면 접전! 적 추산 약 이천!”


“서쪽 영수 인근 약 일천 오백 북상 중!”


영음현을 중심으로 북상하기 시작한 근 육만에 달하는 병력으로 말미암아 근방에는 이미 십만에 달하는 황건군이 북상한다는 이야기가 퍼졌고 그렇게 주변의 민심이 흔들리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를 대응하는 관군들의 대처 또한 노골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다그닥- 다그닥-


“좌중랑장의 명이시다! 천인장들은 당장에 중랑장들의 부름에 따라 집결하라! 휘하 백인장들 또한 당장 출진 준비를 마쳐라!”


황보숭의 진두지휘 아래, 갈래갈래 갈대와 억새풀 등이 자리한 너른 들판과 시내의 지류를 타고 조심스레 그 병력을 숨겨가며 접근하는 이들의 은밀스러운 기동은 이미 수 차례의 교정된 보고 속에 그 움직임이 파악되고 있었고, 그 속에서 각개격파의 준비를 마친 이들이 군영의 정문을 열어젖히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빠져나가고 있었다.


“문을 열어라!”


쿠구구궁-


“기도위와 그 예하 아장 한승, 각 일천의 기병과 함께 출병!”


두두두두-


“이럇, 하아!”


순식간에 돌풍을 일으키는 거대한 군마들의 향연과 더불어 그 선두에 자리한 번쩍이는 붉은 갑주와 그에 비견될 번뜩이는 박도를 품은 그들의 진군에 그 주변에 자리한 관군들을 환호했고, 그렇게 오늘의 하루 또한 같은 모습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흐음, 군기가 제법이군.”


“급히 마련된 병력이나 하나 그래도 훈련 치레는 하던 이들이 수 차례 실전을 겪었다. 거기다 내 수하도 있을뿐더러 저들을 이끄는 이 또한 보통은 아니지.”


그리고 이러한 이들의 출진을 지켜보던 이들 중엔 또 다른 대기발령을 받은 저와 손견도 있었다.


물론, 말이 대기발령이지 이리 한 차례 소규모 전초전을 벌이면 별반 움직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에 저는 이 심심한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풀고자 했다.


그리고 이걸로 벌써 이레째, 이제는 손견 또한 꽤 익숙해진 모양새였다.


“해서, 오늘도 할 셈인가?”


“허면,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고?”


“넘어가고 자시고 어디 한 번을 나를 이겨보던가 아니면 놀랄만한 모습을 보여주던가 그래야 내가 뭐라도 흥미를 느낄 것 아닌가?”


“하, 그래 너 잘났다. 하지만.....”


부웅-


“내가 반드시 오늘 네놈 간담 하나만큼은 서늘하게 만든다!”


따악-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제가 빈틈을 노려 내지른 일격 또한 여지없이 손견에게 막혔다.


“아래가 비어, 그렇다고 허리를 내주지도 말고!”


퍼억-


“크윽!”


“어째, 아직도 모르겠단 말이지. 내가 왜 네놈에게 그리 지게 되었는지.”


“크흐윽......”


“서른 합, 오늘은 딱 그 정도만 해야겠다.”


그렇게 자세를 바로잡은 손견은 이내 제 앞에 조금은 느린 속도로 훈련용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어디 쉬우랴?


그의 딴에 느리다는 그 속도 또한 제게는 거진 극한에 가까운 반사신경을 요하고 있었다.


딱딱따악-


“가슴 들고! 어깨는 왜 안 쓰는 것이야!”


휘이잉-


“후우.....!”


“피했다고 만족할 것이 아니라 그다음을 수를 봐야지. 눈이 아니 보여도 감각으로 느껴서 붙잡아야지, 안 그러면 이렇게 죽는다!”


푸욱-


“끄흐으윽!”


그렇게 서른 합은커녕 거진 스무 합도 다 채우기 이전에 저는 그의 목검에 복부를 찔린 채, 그대로 고꾸라졌다.


내장이 뒤틀리는 격통이 이러할까?


그래도 대련이자 수련이며 가르침이라고 조금 살살할 줄 알았던 손견은 도리어 이를 핑계로 그간에 제게 쌓인 스트레스를 저를 향해 시원하게 풀고 있었다.


“후우, 이거 기분 좋구만. 난 또 체면이 있을 줄 알았던 네놈이 이러한 부탁을 왜 하나 싶었는데 이리 내게 즐거움을 주기 위함일 줄은 몰랐어.”


“끄흑, 이 미친놈아. 대련도 어디 정도껏 해야지. 이러다 내 내장 다 터지겠다.”


“흐하하하! 그러기에 벼슬자리도 드높이 있는 놈이 제 체면 다 버리고 내게 이를 요구하지 말았어야지. 남들은 말이야, 없는 실력도 포장에서 어떻게든 있는 척, 대단한 척을 하기 바쁜 와중인데 저 홀로 그리 정직해야 쓰나?”


“그러다가......, 후우. 전장에서 칼 맞고 뒈지지.”


“아, 그건 맞는 말이지. 암, 자세는 되어 있어! 그래도, 내 딴에 제자라고 누굴 가르쳐본 것도 없건만 이리 첫 제자가 그 결심이 굳게 서려 있으니 이는 칭찬을 아니 할 수 없지. 거기다, 하필 그 제자가 이 나라의 큰 동량이 되실 부자사가 되시니 어찌 영광스럽지 않을까?”


“누가? 제자? 아니, 내가?”


“허면? 이리 고강한 무예를 지닌 이가 제게 배움을 청한 것을 받아들이고 그 연을 맺었으니 내가 스승이 아니고 또 뭔가?”


“이게 진짜!”


살다 살다 손견에게 이리 놀림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아니, 조조가 황충을 달라며 이런저런 핑계로 아장이니 또 무예 사범이니 하기에 저도 괜스레 신경이 쓰여 다급히 제 실력을 향상시켜 줄 이가 없나 해서 이를 찾다 손견에게 부탁한 것을, 이제는 아예 이걸로 자신이 위에 있다는 저만의 만족을 즐기고 있지 않은가?


“어허, 어찌 제자가 이리 스승에게 무례한가?”


“어허? 이 정신 나간 놈이 진짜 이제는 아예 대놓고 나를 놀리네?”


“놀리기는, 이는 즐거움이자 기쁨이지. 나를 도와주는 대가로 해달라는 요구사항이 뭔가 했는데, 도리어 내 가장 자신 있는 분야임과 동시에 그간 조당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건 이와의 친분도 돈독히 다질 수 있으니 이 어찌 좋지 않겠느냔 말이야.”


제 어깨에 목검을 걸친 채 바닥에 험한 꼴로 쓰러져있는 저를 내려다보는 손견의 입가에는 연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이 자식, 분명 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개 같은 새끼.”


파악-


부우웅-


“어허! 엄한 곳에 모래를 뿌리면 쓰나.”


“에라이, 제기랄. 내가 이제 하후연의 기분이 뭔질 알겠다.”


일찍이 급작스레 끼어든 황충 덕에 잠시 저 홀로 내던져질 당시의 하후연은, 애마냥 뽀로통한 표정으로 마치 실력이 아니 되어 떨어져 나온 것 같은 그 상황에 제 앞에 자리한 돌멩이를 던지며 한 차례 짜증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허나 막상 그 짜증이 서린 돌멩이 또한 우연치 않게 칼부림을 벌이던 그들 사이에서 튕겨 나오니 마치 제 작은 투정조차 받아주지 않은 이 세상에 대한 서러움을 드러낸 것인데 어째 이것이 작금에 제게도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나 놀라운 것은 제가 돌멩이 하나도 아닌 모래를 집어 던진 것을 손견은 가벼이 그저 제 손아귀에 자리한 목검을 휘둘러 이를 걷어냈다는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이걸 어찌 이겼지?”


“말은 바로 해야지 않겠나? 허니 ‘그나저나 내가 저리 뛰어난 무장을 어찌 쓰러트렸을까? 역시 이는 운이 좋았음이야, 하늘이 도우셨음이야!’ 하는 것이 좋겠어.”


그래, 인정한다.


아니 이쯤 되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이레가 넘는 시간을 진심으로 덤벼도 어디 제대로 손견을 놀라게 한 적이 없었다.


어디 이뿐인가? 당시 전장에서의 상황을 듣고 나니 저는 더더욱 할 말이 없어졌다.


‘무려 한 차례도, 두 차례도 아니고 세 차례의 전투를 치룬 셈이지. 그 와중에도 그러한 체력과 무용을 내보였고.’


일찍이 장백을 격파해 그 목을 베고 그도 모자라 양중녕과의 난전 속에 그의 목을 베었다.


그러한 두 차례의 혈전 모두 장대비와 물안개 속에서 벌어졌고 그 전장에 살아 도망친 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잠시 체력을 회복했다고 하여 뛰어든 것이 바로 저와 복사의 전장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도 그는 직접 제 힘으로 전장을 뚫으며 저를 밀어내고 그를 쫓아 끝내 그의 목을 베어낼 뻔했다.


만일, 제가 그 상황에 도끼를 던지지 않았더라면 도리어 그 와중에도 체력이 남아 물에 뛰어든 복사를 수영으로 따라잡았던 그는 실로 모든 것을 가졌을 것이다.


이게 어디 사람이긴 하던가?


“네놈은 대체 뭐냐? 그 체력에, 그 무용에 어디 세상 다 가지려고 세상 밖에 모습을 드러낸 거냐?”


그렇게 짜증이 일던 저는 돌연 제 속내를 가감 없이 드러내며 그냥 그 자리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버렸다.


아니, 사람의 유전자든 그 차이든 뭐든 어느 정도 적당해야지 상대적 박탈감이 덜하지 이건 뭐 거의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은가?


“그건 내가 할 소리지, 대체 네놈은 뭣 한다고 세상 밖에 다 기어 나왔더냐? 승냥이 같은 게, 맹수 하나 되지 못하는 게 말이다.”


허나 막상 이를 듣고 있던 손견은 이전과는 다른 진중한 눈빛으로 저를 향한 진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물론, 그 진심은 매우 짧았지만.


“뭐?”


“아니다. 그보다도, 그리 누워있어도 되느냐?”


“아니 될 연유는 뭐고?”


“네놈도 보지 않았더냐? 도성에서 나온 사절, 분명 환관이었다.”


“........”


그러던 차에, 돌연 손견이 제 진심 대신 꺼내놓은 것은 작금의 대군영의 한가운데에 자리한 사신의 행렬이었다.


생각해보니 저리 황건이 날뛰는 와중에도 돌이킬 수 없는 일정은 일정대로 진행이 되는 상황이었음에, 그것도 하필이면 환관을 앞세운 이들이 도착한 것이다.


‘그래서, 하모의 아버지가 내게 그런 말을 한 게지. 하지만 하필이면 나온 놈이......’


“쯧.”


“왜 그러느냐?”


“아니다.”


그렇게 돌연 진중에서 맞이하게 된 얼굴을 떠올린 저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제게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준비하려는 것이야?”


“무슨 준비?”


“자칫 재수 없으면 그 잘나신 환관 나리도 못 볼 터이니 이리 의관을 정제하고, 만날 때를 기다리는 것 아니겠더냐?”


“뭐야? 아닌 체를 했지만 역시 붙잡을 동아줄이 필요한가 보지?”


“말 돌리지 마라, 도성에서 보낸 사절이 환관인데 허면 네놈을 찾지 날 찾겠더냐?”


그렇게 한 차례 장난기 어린 실랑이가 오갈 차례였다.


- 부자사! 부자사!


저 멀찍이서 그 숨을 헐떡이며 이쪽을 향해 뛰어오는 병사가 있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리 급해?”


“부자사! 허억! 아이고, 숨통이야. 좌중랑장께서 찾으십니다!”


“봐라, 역시 네놈을 찾지 않더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필 작금에 저를 찾는 이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거기다, 제 옆에 자리한 손견이 저리 기세등등한 꼴을 보이니 그것도 더 보기가 싫었다.


“됐네요, 이 사람아. 그보다도 내일도 이 시간에 나와라.”


“아무렴요, 알겠습니다. 드높은 권력의 중추에 계시고 황권의 비호를 받고 계시니, 이 못난 스승이 어찌 그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게 진짜!”


“하하하하! 허면 나는 이만 가봐야겠다. 이거야, 원. 누구처럼 좋은 대접과 부름을 받지 못하니 차라리 우중랑장께 일군이라도 빌려 전장을 휘저어야겠구나.”


그렇게 끝까지 저를 놀린 손견이 호방한 웃음을 보이며 사라졌다.


그리고 저 또한 흙이 묻은 수련 복을 걸친 채 손님을 응접할 수 없으니, 다시금 갑주를 걸치고 병사의 안내를 따라 진중의 한가운데 자리한 황보숭의 막사를 향해 그 걸음을 옮겼다.


스윽-


“이런, 실로 오래간만입니다.”


그렇게 약간의 긴장이 서린 채, 진중에 들어서자마자 저를 반겨주는 것은 역시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더 탄탄한 체구를 자랑하는 건석의 반가운 미소였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황문감.”


허나 막상 그러한 그의 인사와 더불어 저는 조금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크흠, 형주를 구원한 청류의 영웅이 의외로 황문의 인사와도 연이 있으신 모양이오?”


제 주변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눈초리.


어째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막사 안에 자리한 이들 중 청류파 관리 몇몇이 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이쪽을 향한 적의와 거부감을 거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해서 저도 참 운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황문감!”


그리고 그 와중에 그런 그들로부터 저를 감싸준 것은 다름이 아닌 건석이었다.


아니, 어쩌면 저를 감싸준 것이 아니라 제 앞에 자리한 저들에게 더한 굴욕을 주기 위함이었겠지만.


“저 떨거지들, 전쟁하나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국운이 흔들리는 이 와중에도 어떻게든 자기네 세력의 공을 세우겠다고 이리 전장에 끼어든 방해꾼들이에요. 그 일례로, 부자사도 알고 있겠지만 작금의 좌중랑장 휘하에 자리한 저 별부사마 장 자병 또한 군사 하나 제대로 움직일 줄 모르는 이가 전장에 나왔다 우르르 패퇴하여 결국, 애먼 기도위의 비호를 받으며 그의 지도나 받아 남은 공훈을 주워 먹지 않았습니까?”


“이, 이놈이! 말이 너무 심하지 않더냐!”


특히나 그러한 건석의 제물로 지정 당한 장초는 이미 그 얼굴이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붉게 달아오른 모양새였다.


허나 그러함에도 그를 향한 건석의 농락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헌데도 우스운 것은 그러한 기도위 또한 환관 집안의 출신이라는 것이지요. 어찌 된 것이 나랏일을 하는 관료가 정작 환관과 핏줄보다도 못한 모양입니다.”


“뭐, 뭐라! 이놈이 정녕!”


이미 흥분을 감추지 못한 장초는 그 자리에서 건석을 때릴 듯이 그의 앞으로 나서려 했다.


허나 막상 그러한 그를 막은 것은 그와 같은 청류의 이들이었다.


행여나 저러다 권력의 눈 밖에 나게 되면 큰일을 치르게 되는 것이니, 이러한 자리에서 자신들의 선진을 잃게 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 와중에도 제 눈을 번뜩이며 도리어 저를 때렸으면 하는 눈길로 소름 돋는 표정을 지어 보인 건석은 이내, 제 안면에 그 두툼한 손을 올리며 두 귀를 가리고 제 얼굴을 틀어 정확히 장초를 비롯한 청류의 이들을 마주 보도록 만들었다.


“화, 황문감!”


“자, 내 말을 들으세요. 그리고 저길 잘 보세요.”


순간, 그 위압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손길에 움찔한 저였으나 그 와중에 자연스레 저를 이끈 그는, 이내 얼굴을 쥔 손을 내려 제 어깨를 주무르며 제 귓전에 대고 모두에게 들릴 듯 말 듯 한 작은 속삭임으로, 그들에 대한 힐난과 동시에 이곳에 자리한 모두를 향한 정치적 공작이 더해진 분열을 동시에 만들어내고 있었다.


“저러한 자가 부자사를 힐난했어요. 저러한 이들이 부자사를 향한 적의를 드러냅니다. 부자사가 어떠한 사람이에요? 그대는 청류의 신진이며 그 어떠한 조당의 도움도 없이 고작 수백의 병력을 가지고 청류의 또 다른 명사인 서구와 함께 수만이 넘는 황건적을 토벌하여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안정시키며 조당에 여유를 또 희망을 가져다준 사람이에요. 이 나라의 충신인 그대는 이리 청류의 이름을 드높였어요. 한데, 같은 청류라는 이들이 지난날 어쩌다 나와 마주하여 안면이 생긴 것에 트집을 잡고 이를 빌미 삼아 그러한 공훈을 세운 부자사를 질투합니다. 황문의 때가 묻었다고, 권력에 기생한다고 어떻게든 부자사를 음해하고 모해하며 무너트리려고 해요. 그것도 부자사와 저와의 안면이 확인된 바로 이 순간에. 실로 무섭지 않나요?”


“그만, 그 입을 다물지 못하겠느냐!”


“저것 봐요. 저리 잔혹해요, 저리 나를 물어뜯으려는 듯이 그 관계가 밝혀지자마자 옳다구나 하고 부자사를 물고 늘어진 것이 바로 부자사가 막사 안에 들어온 조금 전이었어요. 저러한 이들이 권력을 쥐고 있어요. 그도 모자라 이제는 그 너머의 것들마저 노리려고 해요. 어떻게든 그 살점을 뜯어먹으려고 해요. 전쟁도 모르는 것들이 전쟁터에 나와 장수들이, 군관들이 가져가야 할 자리를 대신 차지한 채, 이제는 그 공훈마저도 탐을 내며 제 더러운 침을 뚝뚝 흘리고 있어요. 마치 승냥이 떼와 같지요? 능력도 없는 것들이 자리를 쥐고, 결국 애먼 병사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어요. 전장은 악화되고 전선은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그 와중에 조당의, 권력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으니 애먼 장수들만 피해를 보는 거에요. 이게 어디 저들이 지향하는 올바름인가요?”


“이, 이 뚫린 입이라고 어딜 함부로 말하느냐! 거기다, 이는 권력을 쥐고 세상을 농락한 네놈들을 말함이 아니냐!”


마치 뱀의 혀가 속삭이는 것 같은 그 언사에 이미 수많은 이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에 노골적인 반발과 더불어 억울함을 토로하는 청류의 이들은 흥분한 채 난리를 피우는 모양새였으나 그 반대로 갑주를 걸치고 칼을 찬 채, 자리하고 있는 이들은 지금까지의 기억을 떠올리며 딱히 전쟁의 와중에 도움은커녕 짐덩이와 같았던 이들의 행보와 지난날 손견에 대한 힐난을 드러내며 무장들을 싸잡아 욕보였던 기억 등, 제 과거의 좋지 않았던 부분을 떠올리며 그에 대한 불편함을 되새기는 중이었다.


“권력을 쥐고 세상을 농락했다라? 생각해보니 여기 그 피해자가 또 있어요. 부자사, 부자사 또한 그리 피해를 보지 않았나요? 본래에는 여기 계신 좌중랑장처럼 중랑장에 자리에 오르게 되실 그대가, 그것도 황상께서 얼추 그 뜻마저 내보이셨던 그대가 정작 저 청류의 이들의 반발로 말미암아 군부가 자리한 외조가 아닌 내조로 내몰려 허울뿐인 어사와 다를 바 없는 감찰직으로 내려온 것은 바로 저들의 압박 때문이 아니었나요?”


그 와중에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건석이 그곳에서 폭탄을 터트렸다.


“.......!”


이에, 그 막사 안에 자리하고 있던 거진 모두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제가 받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뭐, 뭐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최근 들어 청류의 이들이 대거 집권했다더니, 설마......”


웅성웅성-


특히나 세간에 알려지지 않을 권력의 중추에 자리한 이들의 비사는, 그저 지방을 전전하던 이들에게 있어 거진 알고 싶어도 알 수 없었던 기득권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일면을, 어쩌면 하늘을 엿본 것과도 같았다.


그렇기에 이들은 이러한 이야기에 더더욱 열광하며 과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고, 졸지에 이는 막사 안에 자리한 문관과 무관들을 서로 갈라놓게 되는, 특히나 청류와 청류가 아닌 이들을 갈라놓게 만드는 거대한 벽을 만들어낸 것과도 같았다.


“황문감!”


“소리치지 마세요. 자꾸만 저 홀로 아파하며 참아내며 삭이면서까지 이를 감내하려 하지 마세요. 내가 오죽하면, 오죽 답답하면 이러겠습니까? 황궁이고, 조당에 자리한 이들이고 바라는 바는 하나에요, 최대한 빠른 전란의 종식. 한데 그 와중에 출신이 어떻고, 성분이 어떻고 이곳마저 정치판을 만들어내려는 저들이 굳어진 시각이 그대를 힘들게 하고 있으니, 내 참다 참다 더는 이를 참을 수 없어 이를 밝혔습니다! 예, 왜요?”


“하지만, 그래도 이는......!”


그렇기에 졸지에 원치 않는 혼란 속에 놓인 저는, 작금의 저를 이용해 궁과 조당의 바깥에 새로운 판도와 입지를 마련하려는 건석의 노림수를 깨닫고는 이 이상을 허락지 않기 위해 그를 붙잡고 이를 멈추려 했다.


“이러지 마세요, 그대는 도리어 빼앗긴 사람입니다. 그대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에요. 한데 그런 그대가 왜 이러고 삽니까? 왜 이리 굴욕을 자처하며 수그리고 억눌리며 살아야 하는 것이에요? 내가 어디 뭐 거짓을 말했습니까? 하늘에 맹세하지요. 작금의 내가 뱉은 이 말이 거짓이라면 나는 지금 천벌을 받을 겁니다. 벼락을 맞을 것이에요.”


허나 막상 그러한 제 절실함을 자신을 위한 열연으로 알았는지 찰나에 제게 한쪽 눈을 껌뻑이며 잘해보자는 듯 신호를 보낸 그는, 이내 하늘까지 들먹이며 절정에 달할 열연을 내보이고 있었다.


타앙-


“........!”


“좌, 좌중랑장!”


허나 그 와중에 그러한 건석의 바램을 더는 용납하지 않는 이가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그리 한 사람의 뜻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고, 제 지휘봉으로 걸상을 때린 황보숭으로 말미암아 격정에 휩싸인 모두가 그 찰나의 혼란 속에서 하나둘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손님께서는 말이 많으시군, 애초에 볼일은 군영을 둘러볼 수 있도록 사람을 붙여달라는 것이 아니었소?”


“정확히는 작금의 토벌군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그 안에 별다른 문제 사항은 없는지 이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차 심문이 필요한 대상을 마련하기 위함이라 말씀드렸을 텐데요?”


“그 말이 그 말이지. 한데, 너무 잡설이 많소.”


“그건 실로 송구하게 되었습니다. 허나 의로운 자가 짓밟히는 것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서 말이지요.”


“끄, 끝까지 저자가.....!”


타앙-


“별부사마는 그 입을 닫으라.”


“좌중랑장!”


“생각이 있으면 그 농간 속에 허우적거리며 도리어 이를 돕는 것이 누구인지 돌이켜보도록. 또한, 전선의 변화를 살펴야 하니 이만 오늘의 자리는 파하겠다.”


그렇게 황보숭의 축객령과 더불어 잊혀지지 않을 충격적인 사실을 품은 이들이 그렇게 하나둘 막사를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허나 모든 이들이 자리를 비운 그 속에서도 여전히 발을 떼지 않은 건석은 가벼운 원망과 장난기가 뒤섞인 얼굴로 제 마지막을 장식할 절정을 끊어낸 그에게 직접적인 불만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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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 5장 32화 – 되찾은 황건의 봄(2) 21.11.08 155 6 22쪽
424 5장 31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2) 21.11.06 159 7 30쪽
» 5장 30화 – 정쟁이 전장에 낳은 파국(1) 21.11.02 155 8 21쪽
422 5장 29화 – 되찾은 황건의 봄(1) 21.10.29 165 5 18쪽
421 5장 28화 – 견원지간(犬猿之間) 21.10.26 172 5 25쪽
420 5장 27화 – 걱정 속의 격동(2) 21.10.25 161 7 25쪽
419 5장 26화 – 걱정 속의 격동(1) 21.10.23 174 6 21쪽
418 5장 25화 – 스승과 제자(2) 21.10.21 157 7 27쪽
417 5장 24화 – 스승과 제자(1) +2 21.10.20 211 7 30쪽
416 5장 23화 – 죽은 이와의 재회, 산 자와의 이별 21.09.29 210 6 17쪽
415 5장 22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2) 21.09.25 178 6 20쪽
414 5장 21화 – 사람 위에 자리, 자리 위의 사람(1) 21.09.16 184 8 20쪽
413 5장 20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3) 21.09.10 174 7 18쪽
412 5장 19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2) 21.09.06 157 7 24쪽
411 5장 18화 – 하늘의 농간, 그 속에 발버둥 치는 짐승(1) 21.09.02 159 7 20쪽
410 5장 17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3) 21.09.02 152 8 22쪽
409 5장 16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2) 21.09.02 142 7 23쪽
408 5장 15화 – 하늘과 이 땅에 자리한 모든 짐승을 위하여(1) 21.08.26 175 7 20쪽
407 5장 14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2) 21.08.26 168 7 23쪽
406 5장 13화 – 후한의 명장과 개혁을 꿈꾸는 야심가(1) 21.08.26 159 7 19쪽
405 5장 12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을 넘어선 변수 21.08.23 173 7 21쪽
404 5장 11화 – 물수리와 뱀, 그들이 마주한 전장 21.08.23 181 6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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