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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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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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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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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06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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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4)

DUMMY

후가 리버를 데리고 간 곳은 어느 동굴이었다.

후는 동굴 안으로 몇 발자국 들어간 뒤 메고 있던 리버를 바닥에 내던졌다.

몸이 뒤틀리는 강렬한 충격 같은 것은 없었다.

리버가 내동댕이 쳐진 곳은 건초 더미 위였다.

건초를 얼마나 쌓아뒀는지 푹신할 지경이었다.

후는 리버를 내팽개치고서 그대로 동굴 밖으로 나가버렸다.

후들의 아지트에 도착하자마자 격렬한 전투를 예상했던 리버는 약간 맥이 빠졌다.

리버는 그런 행동이 자신감의 발로일 거라 짐작했다.

어차피 주변에는 후가 가득할 테니 동굴을 벗어난다고 해서 도망칠 수는 없을 것이다.

리버는 그쯤에서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행동에 나섰다.

후의 목적이야 어쨌든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었다.


리버가 있던 동굴 입구 근처에는 달빛이 깔려 있었다.

리버는 달빛에 의지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좌우 폭은 거의 8큐빗은 될 것 같았다.

얼마나 깊은지 달빛이 들어오는 입구 외엔 완전한 암흑이었다.

대강 주변을 파악한 뒤 리버는 품 속을 뒤졌다.

리버가 입고 있는 치렁치렁한 로브는 그 안에 많은 것을 감출 수 있게 해주었다.

가령 단검이나 횃불, 부시와 부싯돌 그리고 부싯깃 같은 것들이 그랬다.

리버는 홰에 불을 붙이고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 많이 이동할 필요는 없었다.

몇 발자국도 채 걷지 않아서 리버는 루나를 발견했다.

루나는 양쪽 발을 반대편 허벅지 위에 얹은 이상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루나!"


루나는 리버를 바라보았다.

리버는 혹시 루나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루나는 더없이 침착한 모습이었다.

루나는 가만히 자리에 앉은 채 묘한 시선으로 리버를 위아래로 훑기 시작했다.

그러고선 흥미롭다는 투로 말했다.


"썩 보기 좋은 취미는 아니군. 그보다 꽤나 잘 어울린다는 점이 왠지 괘씸한데."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구하러 왔어! 후들이 다시 오기 전에 빨리 도망치자고!"


루나가 꼬여 있던 다리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긴장감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느릿한 움직임이었다.

리버는 가급적 서둘러야 한다고 말하려다 이내 말문이 막혀버렸다.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루나는 현재 완전히 헐벗고 있었다.

리버는 멍하니 루나의 몸을 바라보았다.

물론 리버의 시선에는 그 나이 또래의 남성이 흔히 가질만한 호기심이 포함되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리버는 그 자리에 있던 것이 자신이 아니었더라도 관찰의 시선을 보낼 수 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루나의 뽀얗게 부푼 가슴과 잘록한 허리 주변에는 알 수 없는 문양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 문양들은 배를 통해 허벅지 윗부분까지 쭉 이어져 있었다.


"언제까지 감상하고 있을 셈이지?"


루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리버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어, 미안. 일부러 보려던 건 아니고..."


리버는 황급히 반대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얼른 로브를 벗어 단검과 함께 루나에게 건넸다.

잠시 후에야 리버는 루나를 똑바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자신의 하체를 이리저리 둘러보던 루나가 불쑥 로브의 밑단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멀쩡한 옷은 왜 잘라내는 거야?"


"불편하니까."


곰곰이 생각해본 리버는 확실히 그 편이 합리적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지금부터 벌어질 상황은 아마 다분히 폭력적일 확률이 높다.

그런 폭력적인 상황이 벌어진다면 자신보다는 루나가 활발히 움직이는 편이 아무래도 낫다.

그때 재단을 끝마친 루나가 말했다.


"적절한 순간에 잘 왔어. 슬슬 여기 있던 것도 지겨워지던 참이었으니까."


마치 밤길에 잠시 산책 나온 사람처럼 태연한 태도였다.

리버는 그것이 애써 침착한 척하는 태도인지, 혹은 자신감이 가득한 태도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리버는 옷을 벗느라 잠시 바닥에 놔두었던 횃불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허리를 숙이는 과정에서 리버는 무심코 동굴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장 기겁했다.


"뭐...야 저것들은?"


리버는 무의식중에 몇 발자국 뒷걸음질 쳤다.

여태 루나에게 온통 신경이 쏠려 있던 탓에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동굴 안 쪽에서 수십 개의 붉은 눈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리버는 폭포 앞에서 보았던 후의 붉은 눈을 떠올렸다.

아직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는 섬뜩한 눈이었다.

리버는 고개를 돌려 루나를 한번 쳐다보았다.

루나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시선을 보냈지만 루나는 말이 없었다.

리버는 다시 동굴 안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붉은 눈은 자신을 응시할 뿐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았다.

리버는 그것들이 당장 자신들을 해칠 생각은 없다고 조심스레 추측했다.

공격해올 생각이었다면 동굴에 들어왔을 때 진작 공격했어야 했다.

저 정도로 많은 수라면 아마 이렇다 할 반항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버는 몇 발자국 앞으로 걸어가서 횃불을 디밀었다.

이윽고 그것들의 몸이 횃불 아래 드러났다.

처음에 리버는 그것들이 후라고 생각했지만 그것들의 모습은 일반적인 후와는 전혀 달랐다.

굳이 따지자면 후는 인간과 닮은 요괴다.

시력이 아주 나쁜 자가 밤중에 언뜻 후를 봤을 때, 인간이라고 착각할 만큼 후는 인간과 닮아있다.

그 말은 반대로 멀쩡한 인간이라면 후가 요괴라는 걸 알아보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정반대였다.

굳이 표현하자면 그것들은 후와 닮은 인간이었다.

시력이 좋은 자가 낮에 봤더라도 아마 다른 표현을 떠올릴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문득 어떤 불길한 상상이 리버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마지막으로 먹었던 도마뱀이 위장 속에서 다시 살아나 제멋대로 꿈틀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리버는 속이 뒤집힐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때 리버의 곁으로 루나가 다가왔다.

루나는 물끄러미 어둠 속을 응시하다가, 이내 리버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횃불을 꺼. 동굴 밖은 달빛이 충분히 밝으니까 필요 없어."


"대체 저것들은 뭐야...? 루나 너는 알고 있어?"


루나는 무심한 말투로 답했다.


"새삼스러운 질문이군.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내가 알고 있다니 대체 뭘?"


루나는 이번에는 곧바로 대답해주지 않았다.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이 잠시 이어지다가 이윽고 루나가 입을 열었다.


"저건 잡혀왔던 마을의 여자들이야."


리버는 구토했다.



*



길버트와 토비는 동굴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에 있었다.

두 사람은 크고 무성한 수풀 뒤에 숨은 채 동굴 주변의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저 동굴이 확실합니까 토비군?"


"그래 저 안에서 리버의 냄새와 루나의 냄새가 난다. 그리고..."


토비는 연신 코를 벌름거리다가 이어 말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도 여럿 나는군. 음, 모르겠다. 후와 아주 비슷하지만 뭔가 다른 냄새야. 아무튼 고약한 냄새이긴 해. 코가 삐뚤어질 지경이군."


실제로 토비는 꽤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길버트가 위로의 말을 건네려 했을 때 동굴 안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리버와 루나였다.

리버는 축 늘어진 채 비틀거리는 것 같았고, 그런 리버를 루나가 곁부축하고 있었다.

토비가 곧장 의문을 드러냈다.


"왜 리버가 부축을 받고 있는 거냐. 부축 받아야 할 쪽은 루나일 텐데."


"글쎄요, 그보다 어째서 리버군이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지 의문입니다. 저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위험할 텐데요."


길버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굴 주위로 후들이 몰려들었다.

후들은 느긋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포효한다거나 두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려는 행위는 일절 없었다.

언제든 두 사람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고, 실제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기는 했다.

후들의 수는 여섯 마리였다.

하지만 숲 속에서 하나 둘씩 걸어 나오고 있는 놈들이 있어서, 지금 보이는 것 만으로 전체적인 수를 가늠하긴 어려울 것 같았다.

사태를 관망하던 길버트가 다급해진 투로 속삭였다.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토비군. 저는 한 놈을 상대하기도 버거울 것 같습니다.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지만 당신 혼자서 저것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류의 질문에 토비의 입에서 나올 대답은 평소라면 당연하다거나, 손 쉬운 일이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토비 역시 질문을 받자마자 재깍 그렇게 대답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하지만 자존심이나 만용을 부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토비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후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신장은 자신보다 작았지만 다부지고 억센 몸을 봐서는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토비가 자신감 없는 투로 대답했다.


"...너댓 놈 정도라면 혼자서 어떻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보다 수가 늘어나면... 글쎄, 장담할 수 없겠는데."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정확히는 오래 고민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두 사람을 둘러싼 후들 중 가장 덩치 큰 한 녀석이 루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섰다.

그 장면을 확인하자마자 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어서 토비의 허벅지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갈 것처럼 부풀었다.

길버트는 황급히 토비를 제지했다.


"잠시만 기다려 보십쇼!"


"지금 나가지 않으면 늦는다. 저 놈들의 팔을 봐라, 저걸 한 번 휘두르기만 하면 두 사람은 그대로 으스러질 거야."


"하지만 지금 우리가 등장한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저들에게 당장 공격할 기미는 없어 보이니 조금만 더 지켜 보는 편이 좋습니다."


토비는 얕은 신음 소리를 내며 처음처럼 수풀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다행히 길버트의 말대로 후들은 두 사람을 공격하지 않았다.

루나 앞에 선 후는 팔을 쭉 뻗어 동굴 안쪽을 가리켰을 뿐이다.

순순히 안으로 다시 들어가라는 손짓인 것 같았다.

길버트는 고개를 돌려 토비를 바라보았다.


"다시 놈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기회가 생길지도 모릅니다. 경계가 허술해지면 토비군 당신이 두 사람을 업고 도망치는 것으로 합시다. 저들을 한꺼번에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입니다. 그러니 최대한 싸움은 피해야 합니다."


"음. 지당한 의견이야 길버트. 하지만 루나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예?"


길버트는 얼른 다시 동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느샌가 루나는 리버를 바닥에 눕혀 놓은 듯했다.

단검을 움켜쥔 루나가 물끄러미 후들을 둘러보고 있었다.

후 몇몇은 루나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 상태가 한참 동안이나 지속됐다.

어느 쪽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저런 식으로 후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척 하면서 얌전히 기다리다 보면,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 일인데..."


순간 토비의 귀가 쫑긋거렸다.


"알겠다. 영창이야! 루나는 지금 영창을 외고 있다."


"무슨 소립니까 토비. 루나양이 마법을 쓸 줄 알았습니까?"


"마법인지 요술인지 그건 모르겠다. 루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잘 말하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일단 가만히 있어 봐라. 길 너는 모르겠지만, 루나가 저런 식으로 중얼거린 이후에는 말도 안되는 일이 곧잘 일어나곤 하니까."


길버트는 미심쩍은 느낌을 받으면서도 일단 상황을 주시했다.

동굴 앞의 상황은 여전했다.

마치 검을 잘 다루는 자들이 서로의 움직임을 살피듯이 루나와 후들은 서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어느 순간 루나의 이마가 빛났다. 멀리서도 볼 수 있을 만큼 강렬한 붉은 빛이었다.

길버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뜬 순간 상황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두 사람을 둘러 싸고 있던 후들이 원형을 그린 채로 전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장면이어서 길버트는 잠시 멍하니 그 장면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때 토비가 자리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멍하니 있던 길버트는 조금 후에야 토비를 따라 움직였다.

후들이 쓰러진 이유야 어찌 됐든 지금이 절호의 기회임은 분명했다.

토비처럼 비탈길을 풀쩍풀쩍 뛰어 내려가는 재주는 없었던 길버트는 한발 늦게 동굴 앞에 도달했다.

토비는 한 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녀석들의 생김새를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었다.

길버트는 후들을 쭉 둘러보다가 이내 루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혹시 이건 루나양이 벌인 일입니까?"


"그래. 내가 했어."


루나는 무덤덤했다. 평소와 완전히 똑같은 분위기였다.

길버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질문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겁니까. 고위 마법사라고 해도 그 짧은 시간 안에 이런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방법을 설명할 순 없어. 단지 할 수 있었으니까 했을 뿐이야."


비록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길버트는 자신이 어느 정도는 루나에 대해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길버트는 루나의 발언이 겸손함에서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었다.

따라서 방금 했던 말도 언제나처럼 담백한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


"...알겠습니다. 할 수 있어서 한 것이군요."


더 묻고 싶었지만 당장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길버트는 숏소드를 뽑아 들고서 가장 가까이 있던 후에게 다가갔다.

길버트가 그대로 후의 뒷덜미에 검을 꽂아 넣으려던 순간 루나가 말했다.


"여기서 죽일 셈이라면 그만 두는 게 좋아."


"어째서 그렇습니까. 이렇게 저항하지 못하는 틈에 제거하는 것이 좋을 텐데요."


"그들은 잠시 잠들어 있을 뿐이야. 그리고 그 녀석들은 전부 이어져 있어. 하나를 건드리면 그 순간 전부 일어나게 될 거야."


길버트는 주변에 쓰러진 후들을 한번 둘러본 뒤에 결국 다시 검을 집어 넣었다.

루나의 말이 사실이라면 일어난 후들을 그 자리에서 감당하기란 무리였다.

길버트는 떨떠름한 기분을 받으며 말했다.


"루나양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테니 믿겠습니다. 그럼 이 녀석들이 깨어나기 전에 어서 도망칩시다. 토비 당신이 리버군을 좀 업어 주십쇼."


이미 토비는 그럴 요량인 듯했다.

토비는 누워 있는 리버를 일으켜 세운 뒤 요령 좋게 업었다.

그때 잠자코 있던 리버가 몸부림치며 토비의 등에서 내려왔다.


"혼자 걸을 수 있어요."


등에서 내려온 리버는 왠지 모를 슬픔 섞인 눈으로 길버트를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동굴 안 쪽에...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도 데려가 줘요."


길버트는 반색하며 물었다.


"설마 잡혀온 마을 처녀들이 살아있는 겁니까?"


리버는 대답 대신 생기 없는 얼굴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길버트와 토비는 망설일 것 없이 동굴 안으로 들어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동굴의 가장 깊은 곳에서 그것들을 발견했다.


그것들은 얼핏 보기에 중증의 나병 환자들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분홍빛을 띠고 있는 살덩어리들이 이곳저곳 보기 흉하게 안쪽부터 부풀어올라 있었다.

전신에는 검은 털이 조금씩 돋아나고 있었고, 반대로 머리카락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코는 뭉개졌고 입은 앞으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두 사람은 자리에 못 박힌 채 한참 동안 그것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길버트가 안 쪽으로 발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그것들에게 횃불을 가까이 들이댔다.

횃불을 마주하자 붉은 눈에서 두려운 기색이 새어나왔다.

길버트의 등 뒤에서 토비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냄새의 원인은 이 녀석들이었군. 젠장 맞을... 이것들이 마을의 여자들이란 말이냐?"


토비는 대번에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길버트가 뭔가 대답하려던 순간 그것들 중 하나가 길버트 앞으로 걸어왔다.

보다 정확하게는 기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한 걸음걸이였다.

그녀는 다른 개체보다는 그나마 더 인간다운 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다른 개체들보다 더 심한 불쾌감과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불쑥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인간."


인간의 언어였다.

길버트는 놀라움을 감추지 않고 대답했다.


"말을... 할 수 있습니까?"


"기억. 쇠퇴. 단편. 언어. 기관."


길버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불쑥 팔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선 길버트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공격성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기에 길버트는 그냥 그녀가 하고 싶은 대로 놔 두었다.

그녀는 길버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제서야 길버트는 자신이 울고 있었다는 것과, 그녀가 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눈물을 닦고 있었다.

길버트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며 질문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 루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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