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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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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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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1.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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얻은 것과 잃은 것 (6)

DUMMY

테오도르와 멀락은 묘한 시선으로 길버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테오도르는, 대학교수가 반에서 가장 뛰어난 제자의 답변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눈빛이었다.

멀락은 마치 어린아이가 장난감이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지 궁금할 때나 보일 법한 시선으로 길버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또 동시에 두 추기경은 고이 모아둔 수집품을 남에게 자랑하는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길버트는 살짝 발을 늦추고서 한숨지었다.

사실 추기경들의 의도야 뻔했다.

대답이 뻔한 질문을 굳이 던지는 것은 효율성의 문제다.

복잡하고 긴 얘기를 혼자 일방적으로 떠드는 일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다.

길버트도 그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스콜라리움의 교육도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대학의 수업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질문과 대답을 섞으면 훨씬 이해하기 쉬워지기는 한다.

다만 길버트는 두 추기경이 자신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질문하고 있지는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쯤에서 길버트는 뒤를 돌아다 보았다.

리버와 토비는 해맑게, 그리고 루나는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주의 깊게 얘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길버트는 다시 앞으로 몸을 틀었다.

계단 몇 개를 더 내려간 뒤에, 길버트는 세 사람을 위해 잠시 바보가 되는 것쯤은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

길버트는 대답했다.


"신을 믿는 것과 성물의 내력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꼭 필요한 얘기니 제게 질문하셨겠지요. 질문에 대답하자면 글쎄요. 추기경님의 질문이 '어떤 초월적 존재의 실재 여부'에 관해 묻는 것이라면 저는 믿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불가지론적 입장이라고 해야겠군요. 무패의 기사 베테거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우주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반상 위에 놓여진 수는 각각 신만이 정확한 뜻을 알 수 있다고 했지요.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합니다. 우리들은 알고 있는 것만 알 수 있습니다.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 수를 놓았는지, 혹은 그 수가 반상 위의 모든 돌에 정확히 얼만큼의 영향을 어떻게 행사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은 완전하고, 선하고, 만능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완전함이 무엇인지, 선한 것이 무엇인지, 만능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실제로 그런 속성을 가진 사람이 없으니까 알 수가 없지요. 따라서 우리는 완전하고, 선하고, 만능인 것을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신의 존재를 믿지 않습니다. 정확히는 알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두 추기경이 놀란 얼굴로 바라보는 와중에 길버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가쁜 먼지들이 말하는 사이에 입속으로 들어와 목이 금방 까끌해졌다.

침을 몇 번이나 삼킨 뒤에 길버트는 마저 대답했다.


"하지만 추기경께서 종교 체계 자체나, 혹은 근본적인 이치에 대한 믿음을 말하시는 거라면 저는 믿는다고 하겠습니다. 믿는 이유로는 앞선 것과 완전히 똑같은 예시를 들 수 있겠군요. 물론 해석은 전혀 다르게 이루어져야 할 겁니다.

그러니까, 가령 완전하고, 선하고, 만능인 어떤 '것'이 처음부터 아예 없었다면 우리는 그 개념을 영원히 알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그런 개념들을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습니다. 개념들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겠지만, 일단 추상적인 단어나마 이름을 붙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 일들은 오히려 최초의 본이 있다는 방증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저는 신을 믿는다고 하겠습니다."


길버트의 말이 끝났다.

긴 대답의 중간 부분부터 두 추기경은 이채롭고 빛나는 것을 바라보는 눈빛을 길버트에게 보내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않고서 허겁지겁 대답했다.


"정말 놀랍습니다! 방금 길버트님이 말씀하신 것은 저희 스콜라리움에서도 졸업이 가까운 자들이나 알 만한 내용입니다. 예, 길버트님의 말씀처럼 믿음은 두 가지로 나뉘지요. 실재론이 한 가지이고,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비교하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아는 자들이라고 해도 절대 길버트님처럼 명쾌하게 얘기할 순 없습니다. 자신이 아는 것과, 자신이 아는 것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영역이니까요. 그런데 길버트님은 두 가지 다 거의 완벽하게 해내고 계시는군요. 저희 수도원에 있는 철없는 수도사들에게 들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놀랍다는 말 밖에 나오질 않습니다. 길버트님이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야 알고 있었지만... 혹시 신학에도 관심이 있으셨습니까?"


"예전에 관련된 교양 서적 몇 권을 읽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결국 이 질문이 왜 필요했던 겁니까?"


"아, 죄송합니다. 얘기가 빙빙 돌아버렸군요. 물론 이유 없이 여쭌 것은 아닙니다."


테오도르는 방금 전 길버트와 마찬가지로 뒤 쪽의 세 사람을 흘끗 돌아봤다가 말을 이었다.


"음. 처음으로 돌아가 볼까요? 저는 성물이 길버트님을 불렀다고 말했고, 거기에 대해 길버트님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냐고 물으셨습니다.

해답은 간단합니다. 사실 길버트님이 말씀하신 내용 중에 해답이 있습니다. 길버트님의 말처럼 우리는 신의 실재는 믿지 못하더라도 개념으로써의 신은 믿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개념이 세상 모든 것을 만들어냅니다.

예컨대 아이가 태어나는 일, 한 줌 도토리가 몇 아름드리나 되는 떡갈나무가 되는 일, 웃는 일과 우는 일, 불타는 것과 얼어붙은 것, 늙어가는 것, 흐르는 강, 떨어지는 비, 서로 증오하고, 서로 사랑하는 일 등 정말 모든 것들을 말입니다.

그러니까 길버트님에게 일어난 일도 그런 일 중 하나입니다. 저희들은 길버트님에게 일어난 현상을 이끌림이라고 명명해 부르고 있습니다. 예, 세상에는 반드시 맺어질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있고, 그것을 이끌어주는 분이 바로 신이십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조금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이 이끌림이라는 단어는 운명이라거나 예정조화라고 해도 무방합니다만... 아무래도 결이 좀 다르긴 합니다. 운명과 예정조화는 일방적이지만 이끌림은 상호작용이니까요."


테오도르의 설명이 있고나서, 길버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푹 숙인 채 한참 동안 말없이 걸었다.

앞을 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간 탓에 길버트는 수북이 쌓인 먼지에 발이 미끄러졌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던 아찔한 순간, 토비가 덥썩 길버트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바닥이 미끄러우니 조심하라고."


"...감사합니다."


그 후에도 뭔가 골똘히 생각하던 길버트는 다시 몇 번이나 뒤따라오는 세 사람을 돌아보았다.

길버트는 돌아볼 때마다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리버를 위해 결국 다시 입을 열었다.


"납득하긴 어렵지만 대강 이해했습니다. 이유 없이 불안해질 때마다 갑자기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혹은 분명 처음 본 인물과, 또 풍경임에도 왠지 모르게 낯이 익은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요. 그것이 신의 뜻인지, 알 수 없는 힘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확실히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힘이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으니까요. 아마 그 힘은 언어로 나타내기엔 너무 불확실한 것이라 입에 담을 수는 없는 것들이겠지요. 추기경님의 말씀은 성물이 특정한 사람을 불러들이고, 또 특정한 사람이 성물에 이끌리는 일도 이런 힘의 일종이라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도 정확하십니다. 예컨대 우리는 그것이 어떤 일이든 선택을 할 때에는 꼭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했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선택 이전에 과연 무엇이 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돌멩이 두 개를 놓고 한 쪽을 선택하는 일은 쉽고 또 간단합니다. 한 쪽 돌멩이를 집어 들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어째서 한 쪽 돌멩이를 선택했는지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한쪽 돌멩이를 집어 든 사람은 '모양이 예쁘다'거나 '표면이 반질하다'거나 '색이 아름답다'는 이유를 들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건 선택의 진정한 이유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왜 아름다운 모양과, 색과, 부드러운 표면을 선호하는지 다시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과정은 끝없이 반복될 테고, 마지막까지 가면 결국 '모종의 힘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는 결론 밖에 도출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모종의 힘' 정도로 불리는 것을 저희들은 보통 신이라 부르곤 합니다."


그 후에 길버트가 다시 뭐라고 말했고, 테오도르가 연신 맞장구치며 설명을 이었다.

두 남자는 여러 감탄문과, 의문문과, 평서문을 섞어가며 복잡한 설명을 주고 받고 있었다.

그때 리버와 토비가 불쑥 두 남자가 걷고 있는 무리의 선두 부분까지 걸어 나왔다.

토비는 콧잔등을 씰룩이며, 그때까지 대화에 통 등장하지 않았던 명령문을 과감하게 선보였다.


"이놈들아, 너희들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 신이니 모종의 힘이니 하는 것들은 다 집어치우고, 그래서 도대체 성물이 뭔지를 설명하란 말이다. 아니, 그 전에 이런 조건을 붙여야겠다. 최대한 알기 쉽게 설명해."


테오도르는 수도원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더불어 추기경이 된 뒤론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던 직설적인 화법에 감탄하며 대답했다.


"토비님, 가장 쉽게 설명하자면 성물이란 신이 되기 위한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 성물을 흡수하면 신이 될 수 있는 거냐?"


토비는 한쪽 눈썹을 잔뜩 치켜뜨며 리버와 길버트를 관찰했다.

잠시 후 토비가 의심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 녀석들이 세상 만물을 멋대로 조종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진 않는군. 정확히는 작은 바위 하나도 들지 못할 것 같아 보인다. 그럼 둘 중에 선배 흡수자인 네가 말해 봐라 리버. 너 신이냐?"


"쓸데없는 얘기 좀 그만해요 토비."


리버가 곧바로 토비의 질문을 일축했다. 토비 역시 진지하게 던진 질문은 아니어서 씩 웃고 말았다.

테오도르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분하게 설명했다.


"아닙니다 토비님. 하나의 성물을 흡수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간단하게 생각해봐도 신께선 유일무이하신데 성물은 다섯 개잖습니까."


"그럼 다섯 개를 다 흡수하면 신이 되는 거냐?"


"그 경우엔 그럴지도 모릅니다."


테오도르가 농담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 길버트는 잠시 후에야 그것이 진담이라는 점을 알아차렸다.

길버트는 얼른 테오도르의 곁으로 이동했다.

테오도르가 이어 말했다.


"기록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신이 되고자 했습니다."


"고대인은 인간이잖습니까. 인간이, 신이 되려 했다는 말입니까?"


"예, 그 부분은 아마 확실할 겁니다. 서신에도 적어 놓았지만 고대인의 유적은 비단 여기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는 유적이 있는 북부의 머리에 사람을 배치해 놓았습니다. 그들은 공식적으로는 '원활하고 허심탄회한 종교적 토론을 위한 남북 교류단'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만..."


"세작(細作)이군요."


"예 사실 세작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공식적인 세작 외에도 저희는 따로 몇몇 세작들을 북부의 머리에 심어 놓았습니다. 공식적인 세작들은 공식적이라는 이유로 아주 깊은 곳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하니까요.

아무튼 저희들은 그 세작들이 보내온 정보를 몇 번이나 비교분석했고, 또 몇 번이나 교차조사했습니다. 그러니 그 정보는 확실합니다. 고대인들은 신이 되려 했거나, 적어도 인간을 초월하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 다섯 개의 성물입니다. 지하로 내려가 보시면 알겠지만, 벽화 역시 그렇게 밖에 해석할 수 없습니다."


그때 갑자기 리버가 질문했다.


"으음. 테오도르 추기경님? 얘기를 쭉 듣다가 갑자기 궁금한 점이 하나 생겼는데요."


테오도르는 잠깐 뒤돌아 보았다.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 남자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다시 시선을 앞쪽으로 돌렸다.

그제서야 자신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관심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테오도르가 멋쩍은 듯 헛기침하며 말했다.


"여러분께선 언제든, 어떤 것이든 편하게 물어보셔도 됩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설명 드리겠습니다. 그것이 제 역할이니까요."


그 말에도 리버는 주저하다가, 이내 계단을 몇십 개나 더 내려간 후에야 질문했다.


"아까 얘기할 때 말이에요. 길버트씨가 흡수한 성물은 머리에 해당한다고 하셨었죠?"


"예 그렇습니다. 길버트님의 성물은 지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성물입니다."


"그럼 저는요? 제가 흡수한 것은 어떤 성물인가요?"


"과연, 그게 궁금하신 거였군요. 우선 설명하기에 앞서 다섯 개의 성물은 각각 인간의 손과 발, 얼굴과 머리, 심장을 나타냅니다. 그중 리버님이 흡수한 것은 얼굴에 해당하는 성물입니다. 아, 참고로 여기서 얼굴은 다시 감정의 교류나 소통을 상징합니다."


리버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지막에 가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음. 추기경님의 설명에 따르자면 말이에요. 그 말은 그러니까... 제가 감정의 교류나 소통을 대륙의 누구보다 갈구하고 있었다는 뜻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습니다."


테오도르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토비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는 표정으로 리버를 바라보았다.

마지막으로 리버는 왠지 모를 착잡한 얼굴로 고뇌에 빠져버렸다.

길버트는 의아함을 느끼며 리버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뚱하게 있습니까 리버군?"


"으으음...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심경이 복잡한데요. 제가 감정의 교류나 소통을 대륙 누구보다 갈구하고 있었다는 점이요. 추기경님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 당연히 아닐 테니 그건 사실일 거에요. 하지만 뭐랄까, 제가 다른 누구보다 그 두 가지를 바라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전 그렇게까지 외롭지 않은데요."


"리버군, 원래 사람이란 세상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파악하기가 가장 어려운 법입니다.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욕망일수록 더욱 그렇지요.

가장 알기 쉬운 예로 수잠이 있습니다. 그렇게 현명하고 우수한 학자가 실은 바보나 멍청이가 되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대륙의 어느 누가 예측이나 했겠습니까. 수잠 본인도 말년에 가서야 겨우 자신의 그 바람을 알아챘습니다. 자기객관화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리버군, 그러니 낙담할 것 없습니다."


"하지만 길버트씨는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알고 있었잖아요?"


"학구열이라는 것은 여러 욕망 중에서도 가장 알기 쉬운 형태라 그렇습니다. 가령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복잡한 책이 재밌게 느껴진다거나, 연회장보다 학자들과의 토론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식입니다. 하지만 리버군의 경우엔 눈치채기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더군다나 소통과 교류는 일상에서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잖습니까. 북부인들이 얼음에 특별한 감상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으으음... 그럴지도 모르지만..."


리버가 쉽게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을 때, 길버트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덧붙였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어쩌면 리버군이 상인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지 모르겠군요. 상인은 어느 직업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또 소통하는 직업이잖습니까. 조금 전 추기경께선 어떤 선택이든 항상 그 뒷면에는 보이지 않는 이유가 있다고 했습니다. 분명 리버군의 선택에도 이유가 있었을 것 같군요."


리버의 걸음이 차츰 느려졌다.

그대로 뒤로 물러난 리버는 어느새 뒤로 빠져있던 토비 옆으로 돌아갔다.

길버트는 내면을 여행하는 리버에게 응원을 한번 보내준 뒤, 다시 테오도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런데 추기경님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저도 전혀 다른 부분이 궁금해지는군요."


"마음껏 물어 보셔도 됩니다. 저희가 아는 부분이라면 설명을 꺼릴 이유가 없고, 또 모르는 부분이라면 어차피 설명을 못할 테니까요."


시원시원한 태도였다. 길버트는 망설임 없이 물어보기로 했다.


"여태 추기경께서 얘기하신 정보들은 저희들이 이 지하 밑에 내려가면 전부 알 수 있는 것들입니까? 얼핏 듣기로 이곳 지하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을 뿐이라고 들었습니다만..."


"이번에도 예리한 질문을 하시는군요. 정보의 출처가 궁금하신 것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길버트님의 말대로 이 바닥에 있는 것은 벽화들 뿐입니다. 물론 저희들은 오래전부터 그 벽화들을 해석해왔습니다. 하지만 추측하신 것처럼 그렇게 얻은 정보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벽화에서 얻은 것은 주로 고대인들의 생활양식, 그 시대의 기이한 식물과 동물들의 모습, 고대의 마법 체계, 당시의 자연이나 가옥 같은 것들입니다.

물론 그것들도 귀중한 사료이긴 하지만, 역시 저희들이 알고 싶은 것은 성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가끔 그림으로 사료를 남겨 놓은 고대인들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림이란 문자보다 훨씬 더 모호한 전달 체계잖습니까. 아무래도 정보 전달에 있어서 그림은 너무 한정적입니다. 예, 제가 받곤 하는 꿈의 계시처럼 말입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추기경님들께선 대체 어떤 경위로 성물에 대해 그런 정보들을 얻게 되신 겁니까?"


테오도르는 대답하기 전에 잠시 멀락과 눈빛을 교환했다.

꼭 사춘기 소녀가 오늘 밤 친구네 집에서 자고 와도 되냐고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리고 멀락은 어느새 훌쩍 커버린 딸을 대하는 아버지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길버트가 두 추기경에게 그런 감상평을 내리고 있었을 때, 문득 테오도르가 결심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든 일을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 종교전쟁에 대해 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부족한 설명으로 여러분께 괜한 의심을 사는 일은 절대 피하고 싶습니다. 게다가 실제로 저희 계획의 시발점은 그 전쟁 직후였으니까요."


"종교전쟁 말입니까?"


"예. 종교전쟁입니다. 참으로 많은 것을 얻었고, 또 많은 것을 잃었던 큰 사건입니다. 그 복잡한 손익을 수치로 어림잡아 계산할 수야 있겠지만, 저는 그 전쟁에서 도저히 수치화 할 수 없는 중요한 정보 하나를 얻었습니다."


"...무슨 정보입니까?"


"저와 몇몇 사람들은 그 전쟁에서 대륙의 비밀을 엿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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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얻은 것과 잃은 것 (5) 24.01.21 7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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