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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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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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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낯선 것 (9)

DUMMY

말콤은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을 동시에 느끼며 고기 스튜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지러움을 느낀 이유는 명확했다.

며칠 동안 이어진 숲에서의 강행군과, 누군가 쫓아올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말콤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다음으로 울렁거림을 느끼고 있는 이유도 명확한 것 같았다.

말콤은 스튜를 바라보았다. 모닥불 위에서 바글바글 끓고 있는 고기 스튜에선 정말이지 기묘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말콤은 생전 처음 맡아보는 그 냄새에 위장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콤이 바라보고 있던 것은 고기 스튜라고 부르기엔 애매했다.

스튜의 주재료는 분명 감자였고, 그 다음으로 많이 들어간 것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각종 채소들이었다.

종합하자면 스튜에 들어간 고기라곤 표면에 둥둥 떠 다니고 있는, 구색을 맞추기 위함이 분명한 육포 몇 개가 전부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콤은 그 요리를 고기 스튜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말콤은 모닥불 위에서 끓고 있는 냄비에서 시선을 위로 들어 올렸다.

재가 날리는 모닥불 건너편에는 스튜를 만든 장본인이 무심한 얼굴로 스튜를 휘젓고 있었다.

그 성실한 요리사는 방금 전 자신의 요리를 분명 고기 스튜라고 소개했다.

말콤은 요리사이자, 동시에 꽤나 훌륭한 자질을 가진 자신의 부관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말콤은 요리사가 명명한 요리명에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요리사는 여전히 신중한 얼굴로 국자를 휘휘 저어대고 있었다.

말콤이 혹시 스튜가 아니라 죽을 끓이는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 마침내 요리사가 고개를 들었다.

장시간 모닥불 앞에 앉아 있었던 탓에 요리사의 얼굴 곳곳에는 까만 재가 묻어 있었고, 피부는 벌겋게 변해 있었다.

요리사는 확신하지 못하겠다는 투로 말했다.


"완성 됐습니다. 맛은 보장할 수 없지만 맛있게 드십쇼. 그보다 얼른 먹어야 할 겁니다. 어두워지기 전에 자야 하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 마르코는 자신의 몫과 말콤의 몫을 각자의 그릇에 옮겨 담았다.

말콤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그릇 속에 옮겨진 스튜를 한참이나 빤히 관찰했다. 그러다가 부관이 사나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어쩔 수 없이 말콤은 찝찝한 기분으로 그릇을 입가에 가져다 댔다.


잠시 후 말콤은 예상보다 스튜의 맛이 나쁘지 않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말콤은 어쩌면 훌륭한 부관과, 훌륭한 요리사 사이에는 꽤나 많은 연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굳이 따지자면 부관과 요리사는 각각 순서에 맞게, 꼼꼼하게, 타인을 위해 일한다는 점이 꼭 닮아 있기는 했다.

말콤이 속으로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맞은 편에서 말콤을 관찰하던 마르코가 질문을 던졌다.


"어떻습니까. 먹을 만 합니까?"


"둘이 먹다가 하나는 죽을 맛이로군."


말콤의 빈정거림에 마르코가 당장 뾰로통한 얼굴로 바뀌었다.


"제가 요리사는 아니잖습니까. 제 요리가 정 불만이라면 직접 만들어 드십쇼."


"농담이야 마르코. 이건 상당히 맛있는 스튜야. 속으론 놀라고 있어. 그렇고 말고. 그러니까 첫날밤에 바람맞은 새신부 같은 그런 새침한 표정은 넣어두도록 해. 속이 더 울렁거리니까."


그 대화를 끝으로 두 사람은 식사에 몰두했다.

빵은 스프와 함께 끓여야 할 만큼 단단했다. 빵과 이빨의 경도를 시험하는 위기에 놓였지만 두 사람은 어찌저찌 빵까지 전부 먹어 치웠다.

식사 후에는 그릇을 씻고, 다시 배낭에 넣고 모닥불 근처를 뒷처리했다.

주변을 완전히 치운 뒤에 두 사람은 미리 지어 놨던 움막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참고로 이 경우 기어 들어갔다는 표현은 지극히 사실적인 표현이다. 움막은 그 정도로 낮고 작았다.


도무지 내키지는 않았지만 움막 안에서 두 사람은 거의 꼭 붙은 채로 누워야 했다.

움막이 너무 작았던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날씨가 너무 쌀쌀했다.

급히 도망쳐 온 탓에 그들은 침낭을 챙기지 못했다. 바람은 초막의 벽을 비웃듯 사이로 파고들고 있었다.

몸이 으슬으슬 떨려와서 두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북부인들의 지혜를 빌리기로 했다.


한참을 부스럭거린 끝에 두 사람은 서로 온기를 나누면서도, 서로를 경멸하지는 않을 만한 적당한 거리를 찾아냈다.

말콤은 자신의 우수한 부관이 평소 청결한 편이라는 사실에 감사했고, 마르코는 자신의 상관이 평소 너절하게 다닌다는 사실에 욕설을 내뱉었다.

움막 내부의 냄새로 한참을 투닥거리던 두 사람은 마침내 모두 편한 자세로 드러누웠다.

갑자기 마르코가 누운 채로 말콤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그러고선 어떤 상황에서 꺼내더라도 답변자를 지극히 곤란하게 만드는 질문을 꺼냈다.


"저, 마스터. 저희들은 이제 어떡하죠?"


적당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던 말콤은 대답 대신 신음을 흘렸다.

잠시 후 말콤은 마르코 쪽으로 돌아 누우려 했다.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 보는 것은 당연한 예의일 것이다.

하지만 말콤은 고민 끝에 이번 만큼은 그 당연한 예의를 잠시 잊어버리기로 했다.

아무튼 콧김이 서로의 얼굴께에 닿는 것은, 자신이나 상대방 양쪽 모두의 정신 건강에 썩 좋지 않을 것 같았다.

말콤은 부관의 얼굴을 쳐다보는 대신, 초막의 지붕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달빛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어렵고 난처한 질문이로군. 글쎄다, 이 참에 산에 틀어 박혀 농사나 짓고 사는 것도 괜찮겠지. 저번에 얘기했던 귀농의 꿈이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지도 모르겠군. 기를 작물은 뭐가 좋을지 생각해두고 있도록 해. 밀과 보리나 구황작물은 키우기 쉽지만 단가가 싼 편이고, 과일은 단가가 비싼 대신 단가가 높은 편이지. 음음."


"이런 상황에서 농담은 관두십쇼. 게다가 어차피 농사를 지을 수도 없잖습니까. 지금 저희는... 빌어먹을, 남부의 배신자가 돼버렸습니다.

자드는 온 대륙을 뒤져 저희를 찾아낼 겁니다. 아니, 굳이 자드가 저희를 찾지 않더라도 산이건 바다건 저희들이 정착할 수 있는 곳은 이제 대륙에는 없습니다. 남부 어느 곳이든 시민들이 배신자인 저희를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요."


"마르코. 내가 보기에 너는 상황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군. 그건 안 좋은 버릇이야. 빠른 시일 내에 고치도록 해라."


마르코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쳤다.


"지금 저희는 대륙의 모든 인간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도 하루 아침에 말입니다! 이 상황에서 대체 어떤 긍정적 요소를 찾아내란 말입니까?"


마르코의 역정에 말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마르코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야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점이지. 살아있다는 것은 지극히 긍정적인 요소야. 그래, 무덤에 누워 있는 놈들이 더없이 부러워 할 만한 요소지. 그렇잖아?"


마르코는 어처구니 없다는 얼굴로 상관을 바라보다가, 종내에는 묵묵히 비난의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다시 천장으로 고개를 돌린 말콤은 뺨 옆에서 느껴지는 부하의 뜨거운 시선에 한번 씩 웃어준 뒤 말했다.


"사실 네 말대로 상황은 좋지 않아. 그래 인정하지.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최악에 가까워."


말콤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나중에 가서는 한탄하는 투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 메구 같은 자식이 이 멋진 사업에 대해 저자세로 나왔을 때 진작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렇지 않아 마르코?"


"저와 잘못을 분담하려 하지마십쇼. 자드와 협상한 후 사업을 받아들인 건 순전히 마스터의 결정이었잖습니까. 저는 그때 유피의 술집에 있었단 말입니다. 아무튼 마스터가 공작의 사업 제의를 받아들이지만 않았어도 사태는 이렇게 흘러가지 않았을 겁니다."


"전부 내 잘못이라고 하고 싶은 모양이군. 음, 조금 섭섭한 걸. 하지만 마르코, 모험 없이는 개척도 없는 법이야. 길드는 개척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지. 마르코 너도 몇 년 전부터 우리 길드의 재정이 영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겠지?"


마르코는 인정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한다는 투로 말했다.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통일된 대륙은 평화롭고, 저희는 평화로울 때 가장 돈벌이가 되지 않는 특수한 직업군에 속해있으니까요."


"제법이군. 아무튼 그런 연유로 나는 제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 당장 목이 말라 죽을 사람은, 한 병의 물이 얼마나 비싸건 일단 사고 보는 법이지.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중에 네가 네 밑에 수백 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날에는 분명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지금 상황을 보자면 그런 날이 올 가능성은 지극히 희박해 보이는데요."


마르코는 대꾸하기 어려운 사실만 늘어놓음으로써 계속해서 상관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식의 화법은 실제로 말콤에게 꽤나 주효하게 먹혀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간 시간이 지난 후에 말콤은 부하의 질책을 피하기 위해 대화의 흐름을 완전히 딴 방향으로 돌렸다.


"그나저나 이것 참 어지러운 상황이군. 오늘 이 더러운 산맥 가장자리를 이동하면서 하루 종일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그렇지 않아? 분명 연초 사업을 벌인 건 자드와 북부의 대주교 파스토르야. 하지만 그렇다면 자드는 어째서 지금 북부를 향해 칼을 들이대고 있는 거지?"


"혹시 중간에 일이 틀어지기라도 한 것 아닐까요? 상인들 사이에선 자주 벌어지는 일이잖습니까. 시세가 변동될 때마다 계약이 깨어지고, 계약했던 상인들끼리는 불구대천지의 원수가 되는 일 말입니다. 자드와 파스토르가 연초의 가격을 정하는 일에 실패한 걸지도 모르죠."


말콤은 천장을 바라보며 가만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상인들 사이에서야 그런 일이 흔하지만 이 경우엔 아니야. 둘 사이에 불화가 조금 있었다 쳐도 전쟁을 일으킨다는 건 말이 안돼.

현재 행정을 대체할 수단이 없어서 귀족 계급을 인정하곤 있지만, 그럼에도 대륙의 모든 곳은 황제령이야. 같은 땅이란 말이지. 결국 북부는 남부의 땅을 경작하는 농노쯤으로 봐야 해.

그리고 여기서 농노는, 물론 상무적 관계지만 아무래도 귀족의 재산이라고 봐야겠지. 그러니까 농노가 투정을 조금 부린다고 해서 뭉개버리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야. 진중한 자리에서 멋대로 재채기를 했다고 해서 자신의 코를 혼내는 멍청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지."


"음, 잠깐만 마르코. 아무래도 이 복잡한 상황을 온전히 정리하자면 한 가지 방법 밖에 없을 것 같은데."


말콤이 다음에 할 말을 예상한 마르코는 인상을 잔뜩 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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