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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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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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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낯선 것 (5)

DUMMY

토비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곳이 후덥지근하다고 느끼고 있던 사람들은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했다.

멀락이 맨 먼저 출구 쪽으로 움직였고 사람들은 멀락을 따라 움직였다.

복도를 통해 다시 공동으로 나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대화를 나누는 사이 복도의 길이가 짧아지는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니다.

단순한 속도의 문제였다. 처음 문을 통해 복도로 들어왔을 때, 멀락은 리버 일행을 배려해 다소 천천히 안쪽으로 이동했다.

두 추기경이야 늘상 봐왔던 벽화지만, 멀락은 리버 일행에겐 충분히 관찰할 시간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일부러 속도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벗어나는 시점에서는 더 이상 그런 배려가 필요 없었고, 그들은 들어갈 때보다 훨씬 빠르게 공동으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넓은 공동으로 빠져나온 뒤에는 암묵적으로 각자 정비의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것 같았다.

토비는 기지개를 켜며 숨을 크게 들이마시기를 반복했고, 리버는 그 옆에서 토비의 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 주었다.

두 추기경은 잠시 자기들끼리 모여서 뭔가 쑥덕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길버트는 무심코 루나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루나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 돌문이었다.

두 번째 돌문의 높이는 루나의 두 배는 될 것 같았고, 무게로 따지자면 루나가 몇십 명은 필요할 것 같았다.

길버트는 루나의 옆으로 다가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사람들 역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테오도르가 육중한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저희들도 이곳에 내려올 때마다 시도해보았지만 그 마법진은 항상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마법진에도 수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고대인들이 이곳을 만든 것은 적어도 몇 천 년 전일 테니까요."


친절한 설명이었지만 루나는 거의 듣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테오도르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을 때 루나가 천천히 마법진 위로 손을 올렸다.

루나의 행동에 리버와 토비 그리고 길버트가 기대 섞인 눈빛을 보냈다.

세 남자는 거의 동시에 그간 루나가 보여주었던 마법 같은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세 남자는 혹시 이번에도 자신들이 그런 일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 남자의 기대와 달리 이번에는 어떤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리버는 혹시 루나의 얼굴에 민망함이 떠오르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게 흘깃거렸다.

루나는 리버의 시선에 개의치 않고서 무표정한 얼굴로 마법진을 쓰다듬고 있었다. 다음 순간, 루나는 불쑥 리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건 네 문이야."


리버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켰다. 루나는 별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났다.

무엇을 뜻하는 동작인지 너무 명확했고, 또 길잡이의 명령에 익숙했던 리버는 거의 본능적으로 마법진 앞으로 이동했다.

커다란 문에 비하자면 앙증맞은 마법진을 마주한 리버는 망설이는 몸짓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루나를 바라보던 테오도르가 리버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궁금하시다면 시도해 보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요."


테오도르의 옆에 있던 멀락 역시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이었으므로 리버는 안정을 되찾았다.


"그럼 해 볼게요."


리버는 마법진 위에 손을 올렸다. 사람들은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고 실제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던 두 추기경은 이내 마법진과 리버에게 관심을 끈 채, 다시 알 수 없는 얘기를 주고 받기 시작했다.

토비는 여전히 더위에 허덕이고 있었다. 리버는 김이 샜다는 표정으로 팔을 내렸다.


"역시 아무 일도 없네요. 음, 그럼 이만 올라가는 건 어떨까요? 어차피 다른 방에 들어갈 수도 없고, 이곳에서 볼 건 이미 다 봤으니까요.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슬슬 지상이 그리워지는데요."


"웬일로 옳은 소리를 하는군. 나도 동감이다. 여기서 볼장 다 봤으면 이제 그만... 응?"


리버의 말에 격한 동의를 표하던 토비가 돌연 귀를 쫑긋 세우며 돌문을 주시했다. 토비는 어리둥절한 투로 중얼거렸다.


"잠깐만 있어봐라. 문이 열리고 있는 것 같은데?"


"더워서 실성하기라도 한 거예요 토비? 문은 가만히 있는데요."


"그렇긴 하지만... 지금 분명 돌이 스치는 소리가 나고 있는데."


미심쩍은 눈빛으로 두 번째 돌문을 바라보던 토비가 벽 앞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커다란 돌문에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댔다.

잠시 후 토비의 한쪽 주둥이가 올라갔다. 동시에 토비의 귀가 쉼 없이 쫑긋거리기 시작했다.

토비가 그 상태로 한참이나 움직이지 않자 사람들이 토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한편 테오도르는 토비의 바로 뒤 편에 서서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토비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었다.

테오로르는 대체 무슨 일인지 묻고 싶었지만, 토비가 너무 진지한 태도여서 테오도르는 토비에게 직접 묻지는 못했다.

대신 테오도르는 그 자리에서 토비를 가장 잘 알고 있을 인물에게 대신 질문하기로 마음먹었다.

테오도르는 옆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리버와 길버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사람의 반응이 의아했던 테오도르는 곧장 질문했다.


"토비님도 그렇고 왜들 그렇게 심각한 표정들을 하고 계십니까? 혹시 지금 어떤 중대한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어, 뭐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문제가 생겼냐고 하면, 아마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음, 추기경님께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지만 저희들은 그러니까... 아무튼 일종의 모험가라고 볼 수 있겠죠?"


"예? 그야 당연히 그렇습니다. 길버트님도 그렇지만, 특히 리버님은 폴 영지에서 무벤까지 올 수 있는 모든 경로 중 가장 험난하고 위태로운 경로를 지나오셨잖습니까. 여러분이 모험가가 아니라면 대륙에 더 이상 모험가는 없을 겁니다."


"너무 치켜세워주지는 말아주세요, 제 자신에게 도취될 것 같으니까요. 사실 추기경님의 말처럼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평탄하지는 않았어요.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이런저런 위험이 많았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저와 길버트씨는 그 수 많은 위험을 겪으면서 한 가지 깨닫게 된 사실이 있어요."


테오도르는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서 질문했다.


"여행은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곤 합니다. 귀여운 자식에게 여행을 시키는 것은 그런 이유지요. 궁금합니다. 리버님은 그 여행에서 어떤 것을 깨달으셨습니까?"


리버는 끄응-하고 신음을 내뱉은 뒤 토비의 등을 가리키며 대답했다.


"언제나 들어맞는 건 아니지만, 그러니까... 저 바보 같고 순박한 아돌프가 갑자기 저런 행동을 할 때면 보통 그 다음엔 썩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곤 했거든요."


리버가 말을 끝마친 것과 거의 동시에 토비가 돌문에서 뒤로 크게 뜀박질했다. 테오도르와 멀락이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거렸다.

한번에 거의 10큐빗은 뒤로 날아오른 토비는 잔뜩 격양된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전부 뒤로 물러서!"


가장 먼저 루나가 뒤로 크게 물러났다. 리버와 길버트는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곧바로 토비의 지시에 따라 빠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두 추기경은 움직이지 않았다. 두 추기경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네 사람의 행동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다.

이 경우 두 추기경에게 위기 감각이 부족하다고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수도원에서 말하는 위급한 상황이란, 보통 빙판길에서 거하게 넘어졌다거나, 혹은 늦잠을 잔 탓에 아침 미사에 불참하는 일 정도다.


"젠장할! 너희 두 명도 어서 이리 뛰어!"


토비가 두 번째로 외친 시점에서도 두 추기경은 여전히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테오도르는 토비가 서 있던 문 앞을 바라보았다. 돌문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고고하게 버티고 있었다.

다음으로 테오도르는 마법진을 확인했다. 하지만 마법진에서도 뚜렷한 변화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다시 토비에게 고개를 돌리려던 테오도르는 이내 문 바로 옆의 벽면이 조금 이상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벽면의 한 부분이 깊게 파여 있었다. 겉면은 흙이었지만 파여진 안쪽 부분은 문과 마찬가지로 암석의 한 종류인 듯했다.

테오도르는 그 장면에 의아함을 느꼈다.

비록 수도승이었지만 테오도르는 세상에 일어나는 물리 법칙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저 만큼의 암석이 벽에서 떨어져 나갔다면 떨어져 나간 부분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마땅한 것이다.

그때 토비가 한번 더 외쳤다.


"위! 위를 봐라!"


테오도르는 고개를 들고 위를 바라보았고, 이내 자신의 의문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었다.

바닥과 20큐빗 정도 떨어진 공중에서 거대한 암석이 맹렬한 속도로 테오도르를 향해 하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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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익숙한 것과 낯선 것 (8) 24.03.10 5 0 17쪽
130 익숙한 것과 낯선 것 (7) 24.03.03 7 0 12쪽
129 익숙한 것과 낯선 것 (6) 24.03.03 8 0 18쪽
» 익숙한 것과 낯선 것 (5) 24.03.03 10 0 9쪽
127 익숙한 것과 낯선 것 (4) 24.03.03 4 0 12쪽
12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3) 24.02.23 9 0 19쪽
12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 24.02.23 10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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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얻은 것과 잃은 것 (4) 24.01.20 7 0 13쪽
112 얻은 것과 잃은 것 (3) 24.01.20 7 0 14쪽
111 얻은 것과 잃은 것 (2) 24.01.16 7 0 13쪽
110 얻은 것과 잃은 것 24.01.14 8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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