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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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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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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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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낯선 것 (6)

DUMMY

다행히 두 추기경과 달리 토비는 위기대처능력이 훌륭한 아돌프였다.

추기경들이 제자리에 굳어 있는 사이 토비는 재빨리 다시 문 앞으로 뜀박질했다. 그러고선 두 추기경의 허리를 양 팔에 붙잡고 공동의 중앙으로 뛰었다.

두 사람의 무게 때문에 처음만큼 도약하지는 못했지만 위험에서 벗어날 정도의 거리는 됐다.

토비가 두 추기경을 안고 문 앞에서 벗어나자마자 굉음과 함께 테오도르가 서 있던 자리에 암석이 떨어졌다.

흙먼지가 어지럽게 날렸고, 이제 토비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확연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토비의 말대로 그것은 돌이 스치는 소리였다.

다만 조약돌이나 자갈이 부딪히는 소리는 아니었다.

적어도 몇 아름은 될 바위들이 서로 마찰될 때나 날 법한 육중하고 무거운 소리였다.

잠시 후 흙먼지가 전부 걷혔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버가 흙먼지 속에서 꿈틀대며 움직이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게 뭐죠 길버트씨?"


길버트는 지금 자신들을 공격해 온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리버가 던진 말은 질문의 형식이었고, 그동안 수많은 질문에 대답해오던 길버트는 거의 타성적으로 대답했다.


"바위...로군요. 살아있는."


물론 길버트가 낭만주의자적 성향을 발휘하거나, 혹은 풍부한 문학적 감수성으로 바위에 대한 의인화를 시도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실재적인 대답이었다.

길버트는 일어난 사태를 가장 단순하게 해석한 후 말했고, 실제로도 틀린 구석이 없는 말이었다.

길버트의 말처럼 토비를 덮친 것은 확실히 살아있는 바위였다.

그렇게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일반적인 바위란 팔이나 다리가 달려 있지 않으며, 제 멋대로 풀쩍 뛰어오르거나 혹은 화난 얼굴로 사람들을 노려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길버트는 신화 시대로 되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바위를 관찰했다.

바위는 까맣고, 모든 부위의 재질이 우둘투둘했다. 겉면에는 크고 작은 구멍들이 숭숭 뚫려 있었고, 그 탓에 커다란 얼굴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거의 토비의 손 만한 바위의 손은 배꼽을 중심으로 위 라래로 배를 짚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한 뼘 남짓한 발과 다리는 제각각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꽉 붙어 있었다.

전체적인 비율만 놓고 보자면 몸집에 비해 머리가 지나치게 큰 아이가 배를 쥐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다만 이 경우 아이의 덩치는 일반적인 성인 남성의 4배는 될 것이 분명했다.

길버트가 빠르게 관찰을 끝마쳤을 때, 리버는 조금 전 길버트가 한 대답과 마찬가지로 타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잠시 후 리버의 한쪽 눈이 가늘어졌다. 동시에 한쪽 눈썹을 들면서 리버는 의문스럽다는 듯 말했다.


"어, 길버트씨의 말은 거의 틀린 적이 없지만요. 아무래도 '바위'라는 명사에 붙이기엔 '살아있는' 이라는 형용사는 뭔가 어색하게 느껴지는데요?"


"...동감합니다. 하지만 저것에 어울리는 다른 표현을 생각해내기가 어렵군요."


길버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위가 다시 위로 뛰어올랐다.

당연히 그때쯤에는 모든 사람이 바위를 주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바위는 거의 20큐빗이나 뛰어올랐고, 램프의 빛은 그렇게 높은 곳까지 전부 비추기엔 너무 약했다.

어둠 속으로 사라진 바위를 보며 사람들이 질겁했을 때, 허공을 주시하던 토비가 소리쳤다.


"리버! 이번에는 네 쪽이다!"


리버가 허겁지겁 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났다. 다시 쿠궁-하는 소리와 함께 리버가 있던 자리에 거대한 바위가 떨어졌다.

몸체도 무겁고, 그 재질과, 공중에서 떨어졌다는 점 때문에 바위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마침내 어리둥절해 하던 두 추기경의 표정도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아마 바위 밑에 깔렸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한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직접 공격을 받은 리버 역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위는 다시 뛰어올랐다. 이번에도 토비가 소리쳤다.


"리버!"


"알겠어요! 또 저란 말이죠!"


바위와 경도 시합을 벌이고 싶었던 생각은 추호도 없었던 리버는 다시 뛰었다.

그 상황이 몇 차례 반복됐고, 덕분에 당황스러움과 혼란 속에 빠져 있던 나머지는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

리버 입장에서는 억울하겠지만 바위는 집요하게 리버 만을 노리고 있었다.

리버가 목숨을 건 술래잡기를 하고 있는 동안 길버트는 두 추기경과 토비의 옆으로 이동해 있었다. 길버트는 다급하게 물었다.


"추기경님! 저것들 대체 뭐고, 왜 저희를 공격하는 겁니까?"


"모...모르겠습니다. 저희들은 지금까지 몇 번이고 이곳에 내려 왔지만 저런 것이 나타난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길버트는 입술을 씹으며 리버에게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은 술래잡기에 여념이 없었다.


"뒤에서 온다!"


토비가 지시했고 리버는 착실히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 리버는 잘 도망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길버트가 보기에 상황은 곧 최악으로 치닫게 될 것 같았다.

지금 리버는 공동을 마구잡이로 뛰어다니고 있었고, 바위의 도약은 공동의 가장 오래 묵은 먼지조차 들썩이게 만들고 있었다.

만약 광활한 초원이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에서 한 사람과 바위의 그런 움직임은, 초원과 달리 어떤 아돌프에게 치명적인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왼쪽으로 뛰어라! 엣취! 이번엔 오른쪽! 쿨럭! 앞으로 크게 굴러! 푸엣취!"


토비는 쉼없이 코를 파고드는 먼지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토비의 기침 소리는 점점 격해졌고 종내에 토비는 눈물마저 찔끔찔끔 흘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흙먼지가 공동을 메우기 시작해서 시야마저 흐려지고 있었다.

모두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토비의 지시가 점점 한박자씩 느려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큰 폭으로 바위의 낙하를 피하던 리버는 이제 두 큐빗 정도의 거리만 남겨 놓은 채 아슬아슬하게 낙하를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연신 코를 비비며 콜록대던 토비는 그 모든 상황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자신의 상태를 점검한 토비는 그 술래잡기를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토비는 바위를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리버! 지금부터 벽을 끼고 한 바퀴 크게 돌아라! 있는 힘껏 달려!"


바위가 공중에서 방향을 바꾸는 일은 없었으므로 그런 식으로 달리자 자연스레 낙하를 피할 수 있었다.

한편 리버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린 토비는 암석이 바닥에 떨어질 때마다 내는 소리에 집중했다.

소리의 간격은 거의 일정했다. 토비는 바위의 다음 착지 지점일 거라 예상되는 곳을 노려보다가, 다음 순간 앞으로 뛰쳐나갔다.

토비의 예상은 적중했다. 토비의 바로 앞에서 무거운 진동이 느껴졌고, 흙먼지 사이로 방금 내려 앉은 바위가 보였다.


"적당히 날뛰어라 이 빌어먹을 자식아!"


힘껏 달려간 토비는 10큐빗 정도의 거리를 남겨 놓고 바위를 향해 뛰어 올랐다. 그리고 바위와의 거리가 5큐빗 정도 남았을 때 토비는 한쪽 발을 쭈욱 내밀었다.

이내 토비의 뒤꿈치와 바위의 뒤통수가 격돌했다.

토비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달려오던 힘과 온 몸의 체중을 전부 실어낸 발차기였고, 인간이 맞았다면 틀림없이 절명할 공격이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바위가 산산조각 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산산조각난 것은 토비의 발 쪽이었다.


토비는 뒤꿈치부터 지잉-하는, 전기가 타고 오르는 것 같은 끔찍한 감각을 느끼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발 쪽에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격통이 밀려왔다.

마음 같아선 발을 잡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토비는 간신히 그런 추태 만큼은 참았다.

한편 토비의 공격을 바위는 크게 한번 기우뚱거렸지만 그것으로 끝인 듯했다.

다만 주의를 돌리는 일에는 성공한 것 같았다.

대체 어떤 기전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지만 바위는 빙그르 몸을 돌려 토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바위의 볼록 튀어나온 눈알과 토비의 눈이 일직선 상에 놓였다.

잠시 기분 나쁜 침묵이 이어지고 있었을 때, 불쑥 리버가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루나!"


리버의 외침과 동시에 토비는 자신의 어깻죽지에 가벼운 무게감을 느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비는 루나가 자신의 어깨를 밟고 뛰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토비는 고개를 들어 공중을 바라보았다. 바위의 머리보다 한참 높은 곳에서 루나가 바위를 향해 떨어지고 있었다.

루나는 양 손으로 단검을 움켜쥐고 있었고, 도약한 힘을 이용해 그것을 그대로 바위에 꽂아 넣을 생각인 듯했다.


밑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토비는 그것이 어리석은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루나가 쥐고 있는 단검은 토비의 뒤꿈치보다야 뾰족할 것이다.

하지만 루나는 너무 가볍다. 학자들처럼 복잡한 계산식을 쓸 수는 없었지만 토비는 무게와 힘이 비례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따라서 토비의 발차기에 꿈쩍도 하지 않은 암석이, 루나의 공격에 쓰러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토비가 어떻게 생각하건 루나는 자연의 법칙에 따라 아래로 떨어졌다.

루나의 아래 쪽에는 정확히 바위의 뒤통수가 놓여 있었다. 마침내 루나가 낙하하는 힘을 이용해 단검을 찔러 넣었다.


잠시 후 토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토비가 자리에서 일어난 것과 정반대로 바위가 자리에 쓰러졌다.

쿵-하는 공동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바위 주변으로 무수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도저히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던 토비는 몇 번이나 눈을 부볐지만, 몇 번을 확인해도 일어난 상황은 명백했다. 루나는 멋지게 바위를 쓰러뜨렸다.

토비는 천천히 리버와 루나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가까운 곳에서 바위를 확인하던 토비는 문득 바위의 뒤통수 쪽에 희미하게 빛나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아주 작은 마법진이었다. 루나의 단검은 정확히 그 마법진의 중앙 부분에 박혀 있었다.

루나는 태연하게 단검을 뽑아 들었다. 토비는 기막힌 심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알 수가 없군. 도대체 너는..."


"무사하십니까!"


토비의 말을 길버트가 가로챘다. 어느새 두 추기경과 길버트가 세 사람의 옆으로 다가와 있었다.

금방 상황을 파악한 세 사람은 놀란 눈으로 바위와 루나, 그리고 토비를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다.

토비는 루나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이어서 토비는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길버트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들은 괜찮다. 크흠, 아무래도 내 발은 조금 빗나갔던 모양이야."


길버트가 안심하는 모습을 확인한 토비는 곧 두 추기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나저나 이 자식들아! 대체 이건 뭐냐? 이런 것이 나온다는 얘기는 없었잖냐!"


토비가 두 추기경을 단단히 추궁하려고 마음 먹었을 때, 불쑥 리버가 토비의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리버는 미약한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만요 토비, 질문은 나중으로 미뤄두는 게 좋겠어요.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것 같으니까요."


"뭐야?"


리버의 말에 토비는 황급히 바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바위가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들이 반사적으로 몇 걸음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을 때, 검고 투박한 바위가 잘게 쪼개지기 시작했다.

루나가 다시 단검을, 토비가 손톱을, 길버트가 숏소드를 치켜들었을 때, 쪼개진 바위 속에서 작은 바위 하나가 등장했다.


"응?"


사람들의 당황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 바위는 뚜벅뚜벅 리버 앞으로 걸었다.

녀석의 신장은 고작해야 두 뼘이 될까말까한 정도였고, 모습은 큰 바위의 축소판 같은 모습으로 완전히 닮아 있었다.

다만 리버를 공격했던 바위와 달리 녀석은 뛰어오르며 이동하지는 않았다.

녀석은 걷고 있었고, 다리가 나뉘어져 있지 않았으므로 그 작은 바위의 걸음은 넘어질 듯 위태로웠다.

마침내 작은 바위가 뒤뚱거리며 리버의 바로 앞으로, 동시에 사람들의 가장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위협은 커녕 귀여움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어서 루나와 토비는 얼떨떨한 얼굴로 경계 태세를 풀었다.

작은 바위는 고개를 들고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을 한번 죽 둘러보았다.

긴장감이 맴도는 가운데 바위가 그 자리에 있던 모두를 향해 말했다.


"떠날 때는 반드시 있지만, 도착한 후에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응? 이 녀석,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거냐?"


당황한 토비가 습관적으로 옆에 있던 길버트에게 물었다.

길버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지 못했는지 두 추기경 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두 추기경은 길버트와 완전히 같은 과정을 거친 후에 마지막에 가서 루나를 쳐다보았다.

루나는 팔짱을 끼고서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이건 수수께끼로군."


"젠장할, 술래잡기 다음엔 수수께끼냐? 이봐 이딴 장난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얼른 이곳을 나가버리자고!"


"글쎄,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루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팔을 들어 올려 한 지점을 가리켰다. 루나의 손 끝이 향한 곳은 두 번째 돌문이 있던 지점이었다.

돌문의 바로 옆 쪽 벽에는 처음 바위가 튀어나온 큰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사람들이 의아하게 그 지점을 바라보던 와중에, 그곳에서 다른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제 완전히 들리지 않던 돌들이 격하게 마찰하는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다만 이전보다 확연히 더 큰 소리였고, 이번에는 아예 바닥과 벽 자체가 둥둥 울릴 만큼 큰 진동을 수반하고 있었다.


마침내 어떤 사실을 깨달은 토비가 울상을 짓기 시작했을 때, 벽면에서 처음과 똑같은 살아있는 바위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바위들은 이전처럼 각자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일행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에 토비는 사람들에게 도망치라고 외칠 수 없었다.

토비는 몇십 개나 되는 바위들이 각각 어디에 착지할지 전부 알아낼 자신이 없었다.


바위들은 사람들을 짓눌러버릴 기세로 뛰어올랐지만 참혹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더 이상 공중으로 뛰지 않았다.

대신 작은 바위와 마찬가지로 양쪽으로 버둥거리며 저마다 사람들의 뒤 편에 자리를 잡았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가장 작은 바위를 중심으로 여섯 명의 사람이 원을 그리고 있었고, 다시 사람들을 중심으로 바위들이 더 큰 원을 그리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길버트는 심각한 얼굴로 자신들을 포위한 바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두 추기경은 언제부터 시작했는지 모를 기도를 읊고 있었다.

썩 좋은 상황이라고 말하기 어려웠고, 토비는 콧잔등을 있는 대로 구겨 올릴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잠시 관심에서 멀어져 있던 발치의 작은 바위가 다시 말했다.


"떠날 때는 반드시 있지만, 도착한 후에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조용히 좀 해 봐라 이 조막만한 자식아!"


토비가 발을 들어 바위를 걷어차려 했을 때 테오도르가 황급히 토비의 허리를 붙잡고 막아 섰다.


"자...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이 녀석을 부수면 안됩니다! 이건 어쩌면 시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험? 누가 누구를 시험한다는 말이냐?"


"이건 고대인들의 시험일지도 모릅니다. 아시다시피 고대인들은 엄청나게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습니다. 예, 그들의 마법 수준을 생각해보자면... 그러니까 이 바위들은 아마 마법사들의 사역마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역마라면 마법사들이 부리는 다람쥐 같은 녀석들 말이냐?"


"그렇습니다. 보통은 청설모나 지빠귀 같은 작고 지능이 낮은 것들만 부릴 수 있지만, 아무튼 그들의 마법은 종잡을 수 없으니까요. 지금 상황을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쯤에서 리버가 나섰다.


"이 놈들이 사역마라고 쳐도 왜 우리를 공격하는 거죠?"


"이를 테면, 이 바위들은 저희들의 자격을 시험하려 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그러니까 일종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금은보화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마법을 탐구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고대인들의 마법은 그 자체로 보물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언제나 강력한 힘은 부패나 타락을 몰고 오는 법입니다. 마법사들이 마탑에서 몇 년 동안 심신을 수양하며 수련한 뒤에야 비로소 마법사로 거듭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저라도 그럴 것 같습니다. 만약 제가 위대한 유물을 후대를 위해 남겨 놓았다면, 적어도 그 힘을 가질 인물이 적절한지 아닌지 정도는 구별하고 싶을 겁니다."


테오도르의 설명에 사람들은 조금 전까지와 확연히 다른 묘한 눈빛으로 바닥을 내려다 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길버트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첫 관문은 저 바위를 처치하는 것이고, 이 수수께끼가 두 번째 관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이것이 고대인들의 시험이건 아니건, 저희들에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이 많은 바위들이 한꺼번에 공격해오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다행히 이 녀석들에게 지금 당장 저희를 공격할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됐건 일단 수수께끼의 답을 찾아보는 수 밖에 없겠군요."


그때 리버가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저 길버트씨? 그런데 혹시 저희가 내놓은 답이 틀렸을 경우에 어떤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거나 하면 어떡하죠?"


길버트는 자신들을 둘러싼 바위를 한번 죽 훑어보고 나서 우울한 얼굴로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 최대한 정확한 답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길버트의 말에 다시 모두의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다. 두 뼘 정도 되는 작은 바위는 고저 없이 깊게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떠날 때는 반드시 있지만, 도착한 후에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두 추기경과 리버 일행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끼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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