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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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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3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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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낯선 것 (7)

DUMMY

국방부 대신 아졸타는 졸도할 지경이었다.

속은 더부룩하고 메스꺼웠고, 그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두통과 근육 경련 같은 것도 동시에 겪고 있었다.

아졸타는 어째서 자신이 그토록 최악의 상태에 놓여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여러가지 이유 중 아졸타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침에 먹었던 고기 스튜였다.

먼저 그 스튜는 평소에 먹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맛이었다.

전통적인 조리법을 고수한다면 스튜를 만드는 데에 적어도 세 시간 정도는 걸린다.

하지만 아졸타는 오늘 아침의 스튜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을 거라 확신했다.

고기는 질겼고, 야채는 충분히 볶지 않아 풍미가 없었으며, 더군다나 오래 끓이지 않아 전체적으로 맛이 밍밍했다.


처음에 아졸타는 스튜의 처참한 맛이 짧은 조리 시간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시간째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는 지금, 아졸타는 어쩌면 조리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스튜가 처음부터 아예 상해있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의심에 파묻힌 채 한참 동안 고민하던 아졸타는 이내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것은 모로 보나 저질스러운 스튜였지만, 재료나 스튜 자체가 상해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물론 이 경우 아졸타가 믿은 것은 조리장의 양심이 아니라 엄격한 군율 쪽이었다.

상한 재료로 요리를 했다면 지금쯤 조리장의 목은 깃대나 창대에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생각의 그 지점에서 아졸타는 불쑥 마차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차 밖에 우뚝 솟아 있는 수십 개의 창대 중 조리장의 목이 꽂혀 있는 것은 없었다.

아졸타는 안심하며 다시 탁자 위로 시선을 돌렸고, 이어서 자신의 메스꺼움에 대해 계속 고민했다.


스튜가 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졸타는 그 스튜가 메스꺼움의 원인 중 일부분이라는 점은 확신했다.

확실히 그 스튜는 아졸타에게 혐오감을 불러 일으키기는 했다.

스튜에 들어있던 고깃덩어리들이 문제였다.

둥그렇게 막 썰어낸, 스튜에 둥둥 떠다니거나 푹 잠긴 고기들은 아졸타에게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고기들은 며칠 전 콜텐의 명소에 효수되었던 예술부 대신의 머리와 꼭 닮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다시 구토감이 치밀어 올라서 아졸타는 머리를 짚었다.


잠시 후 아졸타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아졸타는 만족스럽지 못했던 아침 식사에 대해선 잊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기억을 지우기 위해 아졸타는 현재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그리고 주어진 일에 매진하기로 마음먹었다.

흔들리는 세계 속에서 아졸타는 탁자 위를 바라보았다.

탁자 위에는 수십 장의 헤르바지가 놓여 있었고, 그것들은 세계의 흔들거림과 맞춰 위 아래로 나풀거리고 있었다.

질 나쁜 헤르바지는 마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서로 마찰했고, 그 탓에 역겨운 풀냄새를 마차 안에 풍겨 대고 있었다.


잠깐 동안 탁자를 노려보던 아졸타는 결국 그곳에서 위안을 얻을 수 없음을 인정해야 했다.

마지막으로 아졸타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마자 메스꺼움이 더욱 강렬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졸타의 맞은 편에는 자드가 앉아 있었다.

보다 정확하게 서술하자면, 아졸타의 앞에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관찰하는 시선을 보내고 있는 그의 직속상관이 앉아 있었다.

마차는 끊임없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흔들거림은 아졸타의 위장 속 아직 덜 소화된 스튜를 계속해서 뒤섞고 있었다.

아졸타는 머지않아 자신이 마차 안에서, 그리고 상관이 지켜보는 앞에서 성대하게 구토하고 말 거라 확신했다.

그때 아졸타를 관찰하던 자드가 입을 열었다.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군. 너무 긴장하지는 말게 이건 가벼운 행사 같은 것이니까."


자드는 가벼운 투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고 있었다.

아졸타는 억울함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수백 대의 마차와, 기치창검을 들고 있는 제국군 수천 명을 이끌고 나서는 행사가 가벼울 리 없다.

무엇보다 아졸타는 그 행렬의 목적과, 또 헤르바지에 적힌 각종 전략과 전술이 무엇을 위해 쓰일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자드는 행사라는 말로 넘겨버렸지만, 그 행사의 주요 식순 중에는 분명 무자비한 살육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졸타는 그 주요 식순의 진행을 맡은 진행자였다.

긴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아졸타는 상관 앞에서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토로하지는 않았다.

그 모든 식순을 짜고, 또 행사를 열고 주관한 당사자는 눈 앞에 있는 남자였고, 정작 그 남자가 담담하게 행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득 아졸타는 자드의 정치적 수완이나, 공작의 개인적인 역량에 대해 의심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었는지 깨달았다.

자드는 예술부 대신을 효수했고, 그 후 열린 회의에서 출사표를 내던졌고, 바로 다음 날 출정식을 치렀다.

그 모든 일은 놀랄 만큼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아졸타는 그 중대한 사안들이 그토록 매끄럽고 빠르게 처리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아졸타는 어째서 자신이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전략을 검토하고 있어야 하는지조차 의문스러웠다.

이른 아침에 마차에 타기 전까지, 아졸타는 북진을 목적으로 잘 훈련된 병사들이 수천 명이나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전략이나 전술을 세워 놓지도 않았으며, 또 필요한 물자나 보급선을 계획해 놓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아졸타는 자신이 왜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졸타가 보기에 공작은 모든 것을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인물 같았다.


맞은 편에서 공작은 여전히 아졸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서야 아졸타는 자신이 아직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하지만 지금 입을 열면 말 대신 위장 속에 있는 것들이 나올 것 같았기에 아졸타는 필사적으로 마음을 추슬렀다.

다행히 아졸타는 그 사고의 과정에서 위안으로 삼을 만한 것을 한 가지 정도는 떠올릴 수 있었다.

아졸타는 자신의 뒤에서 따르거나, 앞에서 선행하고 있는 마차에 대해 생각했다.

그 마차에는 각각 외교, 법무, 행정, 문화, 교통을 대표하는 대신들이 타고 있다. 그리고 아마 그 대신들은 지금 자신과 똑같은 메스꺼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아졸타는 적잖이 속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아침에 먹은 스튜가 영 소화되질 않는군요. 아무래도 체한 것 같습니다."


"그렇군. 맛이 없기는 했지. 하지만 그런 이유로 마차를 멈출 순 없으니 정 급하면 창 밖으로 몸을 내밀고 토하게. 등 정도는 두드려 줄 용의가 있으니까."


자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리고 억양도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그래서 아졸타는 공작의 말이 농담인지, 혹은 세련된 반어법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마땅한 대답을 찾기 어려웠던 아졸타는 차라리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공작님, 이렇게 급하게 출정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차피 남부와 북부의 전력차는 명백합니다. 이건 제 사견이지만 아마 북부놈들은 저희가 출정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백기를 내 걸고 투항해 올지도 모릅니다."


"꼭 그렇지는 않아. 이 전쟁에서 병사의 수나 질을 비교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네. 아니, 오히려 전력을 비교하자면 북부군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지. 그들은 수십 만의 남부군이 몰려와도 끄떡없을 무서운 전력을 갖추고 있으니까."


아졸타는 자드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 만큼 멍청하지는 않았다.


"북부군의 전력이라면... 날씨 말씀입니까?"


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졸타는 이 모든 일이 어째서 이토록 급박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북부를 정복할 계획이시군요."


"그래. 그래야겠지."


"하지만 그런 것이라면 봄이 왔을 때 전쟁을 치러도 되는 것 아닙니까. 물론 남부인에게 북부의 날씨는 어느 때나 비슷하게 보입니다만, 북부도 엄연히 봄이 있습니다. 굳이 추운 날씨에 전쟁을 치를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자드는 희미하게 웃으며 아졸타를 바라보았다. 아졸타가 가라앉았던 메스꺼움이 부상함을 느끼는 것과 동시에 자드가 말했다.


"봄이 되고 난 후엔 너무 늦어."


자드는 당연하다는 듯 그렇게 말했고 아졸타는 당연하게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혼란에 빠진 부하의 모습을 지켜보던 자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는 혹시 조경을 가꾸어 본 적이 있나?"


새퉁스러운 질문이었고, 그래서 아졸타는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조경을 가꾼다면, 정원을 관리하는 일 말입니까? 그야 사용인들이 가꾸는 것이야 자주 봤지만 당연히 직접 해본 일은 없습니다. 공작께선 직접 해보셨습니까?"


"몇 번 해 본 적이 있지. 그런데 말이야, 때론 단순해 보이는 일에도 진리라고 할 만한 것들이 담겨있더군.

예컨대 가지가 많은 나무들은 한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를 잘라내야 해. 죽거나 시든 가지들은 안으로 파고들어 나무 자체를 썩어버리게 만들거든. 그 밖에도 시든 가지들은 멀쩡한 가지들의 양분을 훔쳐가버리지. 게다가 순을 자르지 않으면 봄이 와도 볼품없는 나무가 되어버리고 말지.

잘려나간 가지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그들은 나무 전체의 생장을 놓고 보자면 전혀 쓸모가 없는 존재들이네. 기생충과 비슷한 그것들이 사라져야 나무는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자라지."


아졸타는 공작의 해박한 조경 지식에 감탄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왜 이런 급박한 시기에 한가롭게 정원을 가꾸는 얘기나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맞은 편에서 자드는 아졸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눈치챈 듯했다. 자드가 이어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로군. 간단하게 말해서 이건 효율성의 문제라네. 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를 쳐내는 이유는 그것이 나무의 성장에 더 효율적이기 때문일세. 그리고 효율성이란 언제나 모두에게 더 큰 행복을 불러오는 법이지."


아졸타는 여전히 공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은 그대로 아졸타의 표정에 드러났다. 자드는 그런 아졸타를 바라보며 싱긋 웃은 후에 불쑥 품 속에 손을 집어 넣었다.

공작의 다음 행동을 예상한 아졸타가 미간을 찡그렸다.

잠시 후에 공작이 연초를 깊게 빨아들였고, 다음으로는 창밖을 향해 빨아들인 연기를 쭈욱 내뿜었다.

아졸타는 더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제 생각에 공작님 말씀은 이렇게 들립니다. 그러니까 공작님은 북부와 전쟁을 하는 것이 대륙 전체를 놓고 보자면 더 효율적이라고 하고 싶은 겁니까?"


"정확하네 국방부 대신. 현재 대륙이라는 나무에는 시들고 썩은 가지들이 너무 많이 달려있어. 모두가 더 행복해지기 위해선 겨울이 오기 전에 가지를 솎아낼 필요가 있지."


공작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아졸타의 눈을 들여다보며 이어 말했다.


"그런데 아졸타."


"예?"


"내 생각에, 자네는 왠지 나를 미치광이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아졸타는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아졸타는 감정을 잘 숨기지 못하는 부류였다. 아졸타는 지금 자신이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자드는 다시 연초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가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지.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대면하게 되면 자신의 무지함을 탓하기보다는 그것을 비난하고 보는 불행한 습성이 있으니까.

하지만 다행히도 무벤까지 가려면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아 있네. 자네의 의문을 전부 해소시켜줄 수야 없겠지만 아마 대부분의 것들은 대답해줄 수 있을 것 같네. 어떤가, 아주 즐거운 시간이 될 것 같지 않나?"


아졸타는 여태 잊고 있었던 울렁거림이 다시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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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익숙한 것과 낯선 것 (8) 24.03.10 5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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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얻은 것과 잃은 것 (4) 24.01.20 7 0 13쪽
112 얻은 것과 잃은 것 (3) 24.01.20 7 0 14쪽
111 얻은 것과 잃은 것 (2) 24.01.16 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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