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인간농장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새글

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최근연재일 :
2024.06.30 23:56
연재수 :
164 회
조회수 :
10,769
추천수 :
573
글자수 :
1,068,691

작성
24.01.09 17:34
조회
10
추천
0
글자
16쪽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5)

DUMMY

네 사람은 각자 생각에 잠긴 채 걸었다.

누군가 옆에서 봤다면 상을 치르러 가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할만한 분위기였다.

무거운 분위기의 주범은 역시 리버와 길버트였다.

동굴을 벗어난 뒤부터 두 남자는 어떤 말도 없이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넋이 나간 표정의 두 사람은 앞서 걷는 루나의 발뒤꿈치를 보며 타성적으로 발을 놀렸다.

그리고 토비는 무거운 분위기와 더불어 실재적인 무거움도 느끼고 있었다.

토비는 등에 업고 있는 분홍색 살덩어리를 한 번 추슬러서 제대로 단단히 업었다.

그것은 자꾸만 흘러내리려고 했고, 꽤나 무거웠고, 냄새가 고약했으며, 또 묘한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토비는 루디를 데려온 선택이 정말 옳았냐고 묻고 싶었다.

후들의 동굴 앞에서부터 걸어오면서 몇 십 번은 더 했던 생각이었다.

하지만 리버와 길버트의 표정이 너무 심각했으므로 토비는 질문을 미루기로 했다.

잠시 후 네 사람은 마을 입구에 다다랐다.

마을에서 네 사람을 발견했는지 두 인간이 뛰쳐나왔다. 홉스 형제였다.

가까이 다가온 홉스는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루나를 살피다가 길버트에게 말했다.


"대체 어떻게 후들에게서 도망쳐 나왔는지 묻고 싶지만, 그 얘기는 차차 하도록 하지요. 우선 집으로 모시겠소. 이번에는 결코 불순한 의도는 없으니 안심하셔도 되오. 우리는 내일 아침 이 마을을 뜨기로 했소. 당신들은 부담 없이 편히 묵었다 가면 될 거요."


길버트는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홉스가 의아한 눈빛으로 바뀔 무렵에 루나가 말했다.


"그럴 여유는 없을 거야."


"여유가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요?"


"이제 곧 잠에서 깬 후들이 여기로 몰려올 거야. 아마 모든 성체가 몰려오겠지."


홉스의 얼굴이 굳었다. 그때 콥스가 험악한 얼굴로 홉스를 제치고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전부 몰려온다니! 지금부터 산을 내려가도 한나절은 족히 걸릴 테고, 그동안 스무 마리의 후에게 도망칠 순 없단 말이다! 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거냐!"


루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군. 이런 일을 벌인 것은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야."


"우리가 비겁한 선택을 한 것은 인정하겠다. 하지만 형이 말한 것처럼 단 하루만 지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됐을 거야. 내일 아침이 되면 우린 드디어 이 빌어먹을 마을을 떴을 테니까. 그런데 지금 당장 후들이 전부 마을로 쳐들어온다고? 네년 하나 살자고 마을에 남은 인간들이 다 죽게 생겼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 우리는 여태 후들을 자극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자극했고, 이제 그들은 우릴 죄다 죽이려 들 거야. 이제 어떻게 할 셈이야!"


"네 말은 마치 우리에게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 들리는군."


"맞아! 후를 자극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란 말을 하고 있다!"


"너흰 모르겠지만 우린 무벤으로 가던 중이야."


콥스가 갑자기 웬 쌩뚱맞은 소리냐는 표정을 지었다.

루나는 콥스의 반응 따윈 애초에 신경 쓰지 않고 있는 듯했다.


"우리는 대륙에서 가장 시급한 사안을 해결하러 가는 길이지. 우리의 시간은 귀해. 마을에 있는 수백 명의 멍청이들의 시간보다 훨씬.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너희들이야. 너희는 우리의 시간을 훔쳤어."


콥스가 황당한 얼굴로 대꾸하려 했을 때 홉스가 덥석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홉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콥스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고 나서 루나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여 보인 뒤 말했다.


"미안하오. 못난 동생을 대신해 내가 사과하겠소. 당연히 당신 말이 맞소. 이것은 우리 일이고 당신에겐 어떤 책임도 없지. 나는 마을 놈들을 설득하겠소. 어차피 이 밤중에 후들을 상대로 숲에서 도망치는 것은 무리일 테니, 결국 맞서 싸우는 수 밖에 없겠지. 당신들은 그 사이에 산을 내려가시오. 이것을 속죄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이 정도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오."


"형 만한 아우는 없다더니 너희 형제가 딱 그렇군. 홉스, 마을에 남은 인원은 얼마나 되지?"


"대략 삼백 명쯤이지만, 갑자기 그건 왜 물으시오?"


루나는 아주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말을 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겠군. 홉스 너는 사람들을 전부 무장시킨 뒤에 마을 입구로 모여."


홉스와 콥스는 루나가 무슨 말을 하는지 대번에 이해한 듯했다. 콥스가 소리쳤다.


"이런 계집의 말을 들을 필요는 없어 형! 무장을 시키라고? 기껏해야 조잡한 농기구들로 어떻게 그들과 맞선단 말이냐. 겁쟁이라 불러도 상관없어. 차라리 도망치는 게 나아. 추격을 따돌리긴 물론 힘들겠지. 하지만 이쪽은 수가 많아. 흩어져서 도망치면 놈들이 전부 추적하진 못할 거야. 그래! 생각해보니 이게 훨씬 좋은 방법이군. 형, 사람들에게 가자. 한 놈에게 상황을 전달하라고 한 뒤에 우리부터 빠져나가면 돼. 그러면 우리는 살 수 있어."


말을 끝내고 나서 콥스는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했다.

홉스가 어느 시점부터 입을 꾹 다물고서 어떤 것을 주시하고 있었다.

콥스는 형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아돌프의 거대한 덩치에 가려 보이지 않던 것이 그제서야 콥스의 시야에도 들어왔다.

아돌프는 무엇인가 업고 있었다.

그것은 꼭 인간만 한 크기였지만, 콥스는 도무지 그 분홍색 덩어리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콥스는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으며 토비의 곁으로 이동했다.

콥스가 토비의 바로 옆에 섰을 때, 그 분홍색 덩어리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콥스. 콥스."


콥스는 왠지 모르게 그 목소리가 지나치게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터무니없는 망상이 분명했지만, 망상이라고 치기엔 목소리가 너무 선명했다.

분홍색 덩어리에는 놀랍게도 눈이 달려 있었다. 그 붉은 눈은 정확히 콥스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콥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짐과 동시에 다시 한 번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인간. 남자. 마을. 촌장. 콥스."


조사나 동사도 없는 단순한 명사의 나열이었다.

콥스는 불가해한 두려움을 느꼈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분홍색 살덩어리에 파묻힌 크고 붉은 눈은 끊임없이 콥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콥스는 그 눈을 직시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그것은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의 눈이었다.



*



마을 입구에서 망을 보고 있던 키 작은 사내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마을 안쪽으로 달려왔다.


"보입니다..! 숲에서 놈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외치면서 사내는 입구 바로 옆에 있는 건물 뒤편으로 몸을 숨겼다.

사내가 숨어든 곳엔 홉스와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입구를 기준으로 오른 편에 있는 건물이었다.

한편 리버 일행은 왼 편에 있는 건물 뒤에 숨어 있었다.

남자가 숨어든 곳과 맞은 편에 있는 곳이었다.

두 건물은 성벽에 세워진 두 개의 첨탑처럼 입구 양 옆에 마주 보고 서 있었다.


길버트는 주변에 있는 시민들을 둘러보았다.

토비의 뒤에서 마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무기를 꼬나쥐고 있었다.

참고로 그들이 들고 있는 무기란 대부분이 넓적한 조리용 팬, 나무 몽둥이였다.

그나마 몇몇은 쇠스랑이나 쟁기 같은 것들을 들고 있기는 했다.

관찰을 끝낸 길버트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마을 사람들을 설득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전투가 일어났을 경우 그들이 썩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솔직한 심정으로 길버트는 그들이 전투 도중에 옆에 있는 전우를 다치게 하지는 않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토비 역시 길버트와 같은 생각인 듯했다.

토비는 전혀 믿음이 가지 않는다는 눈길로 주변을 살피다가 결국 중얼거리듯 불평을 내뱉었다.


"영 석연치 않군 그래. 이 비겁한 놈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둘째 치자구. 하지만 이 녀석들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가 않잖냐. 지금 몰려 오는 것들은 멧돼지가 아니라고."


토비가 말한 비겁한 놈에 해당되는 마을 사람들은 그 말을 부정할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오히려 개중엔 토비의 말에 수긍하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까지 있었다.

토비는 그 반응에 넌더리를 내며 이번에는 루나를 바라보았다.


"이봐 루나, 우리 쪽에 승산은 있는 거냐? 미리 말해두지만 말이야, 나는 고작해야 너댓놈이 한계다. 나머지는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야 한단 말이지. 동굴 앞에서 본 놈들은 대략 열 댓마리였다. 그중 넷 정도는 내가 어떻게든 처리한다고 치자. 그리고 너희들이 각자 하나씩 맡는다 쳐도, 열 마리 정도는 남을 거야. 내 생각엔 마을 놈들이 죄다 달려들어도 안될 것 같은데."


"우린 싸우지 않아 토비. 마을 사람들을 무장 시킨 건 만약의 경우를 대비한 거야. 나는 그들과 협상할 거야. 그리고 협상에 실패하면 우린 전력으로 달아날 테니 미리 준비해둬. 사람들을 방패로 삼으면 우린 충분히 도망갈 수 있을 테니까."


루나가 말하는 방패에 해당하는 마을 사람은 이번에는 그 말에 수긍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불안함과 경악이 뒤섞인 복잡한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토비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이야 어쨌건 루나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토비가 다시 질문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협상이라니? 저 말도 통하지 않는 놈들과 무슨 협상을 한단 말이냐? 그건 말도 안되는..."


토비는 대답을 듣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온다!"


리버의 외침과 함께 마침내 마을 입구에 후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들은 대략 열댓 마리 정도 돼 보였다. 동굴 입구에서 봤던 것과 거의 같은 숫자였다.

후들은 상체의 굵직한 팔을 다리처럼 이용해 말처럼 뛰어오고 있었다.

개중 몇몇은 솜씨 좋게 하반신만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양 손으로 가슴을 마구 두드려대며 달려왔다.

그런 녀석들에게선 둥- 둥- 하는 북이 울리는 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다.

살과 살이 맞닿는 소리라곤 도저히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거센 소리였다.


마을 입구의 목책은 견고하고 두꺼웠지만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기준인 듯했다.

가장 앞서 달려오던 후 한 마리가 달려오던 중 자세를 바꾸었다.

어깨를 전면으로 내민 녀석이 그대로 목책을 들이받았다.

목책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무너져 내렸다.

이 과정에서 몇몇 마을 사람이 무기를 떨궜다.

손을 벌벌 떨고 있는 그들은 자신들이 무기를 놓쳤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쯤에서 토비는 아무래도 도망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조금 전 루나는 협상이라는 말을 꺼냈지만, 장님이 아닌 이상에야 지금 후들의 사나운 모습을 보고 협상이라는 단어를 꺼낼 수는 없을 것이다.

토비는 결심했다.


"길버트! 도망치자. 도저히 잘 될 것 같지가 않다. 리버와 루나는 내가 메고 달리면 돼. 지금이 아니면 안된다. 몇 놈이 우릴 발견하고 쫓아오면 도망가는 일도 장담할 수 없다."


도망칠 준비를 하던 토비는 기겁했다.

리버와 길버트가 건물 밖으로 상체를 한참이나 내밀고 있었다.


"야 이 자식들아. 들키면 곤란하다니까!"


토비는 강제로 리버를 들어 올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폭력적인 상황이 일어날 때마다 자신을 믿어주는 것은 고맙지만, 토비는 용기와 만용 정도는 구분할 줄 아는 아돌프였다.

이기지 못할 거라면 전력으로 도망치는 게 옳다.

사내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건 멍청이들이나 할 짓이다.

그때 리버와 길버트가 건물 밖으로 완전히 몸을 드러냈다.

그 행동에 기겁한 토비는 황급히 리버를 따라 나섰다.

두 사람을 기절시켜서라도 도망쳐야겠다고 다짐한 순간, 토비는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그제서야 토비는 언젠가부터 루나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토비는 마을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당장이라도 마을을 박살 내버릴 것 같던 후들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각자 제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그리고 토비는 그런 후들의 맞은 편에 있는 루나를 발견했다.

루나는 후들을 향해 느긋하게 다가가고 있었다.

토비가 다시 돌아오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 망설이고 있었을 때, 갑자기 후들이 좌우로 갈라졌다.

두 무리로 나뉜 중앙에서 후 한 마리가 나타났다.

녀석은 다른 놈들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컸고, 울퉁불퉁한 팔은 거의 루나의 몸통 정도는 되는 두께였다.

토비는 동굴 앞에서 루나와 대치했던 바로 그 녀석임을 알 수 있었다.

덩치 큰 후는 루나의 앞에 마주 섰다.

둘은 지그시 서로 바라보았다. 응시가 이어지던 도중 루나가 입을 열었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신기하게도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선명히 들리는 목소리였다.


"어떤 일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난폭하게 굴 필요는 없어."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인간이 대번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유일한 아돌프 역시 인간들과 거의 비슷한 심정을 느끼고 있었다.

토비는 어이없는 심정을 드러내며 말했다.


"대체 루나는 뭘 하는 거냐. 저런 말로 설득이 가능했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치닫지도 않았겠지!"


길버트가 뭐라고 대답하려던 찰나 루나가 다시 말했다.


"숲으로 돌아가. 가서, 원래 너희들이 살았던 대로 평화롭게 살아가. 이런 답지 않은 짓은 그만 두는 게 좋아. 너희를 위해서도 말이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후가 코웃음 치며 당장에 팔을 휘두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장임이 명백한 그 후는 놀랍게도 루나의 말을 가만히 경청하다가 마지막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의 사나웠던 눈매가 차차 유순해졌고, 붉게 물들었던 눈은 점점 까맣게 변했다.

그 순간 루나가 여태 없던 강한 어조로 말했다.


"돌아가."


그 한마디를 끝으로 대장 후는 몸을 돌렸다.

녀석이 천천히 숲을 향해 걸어가자 나머지 후들도 뒤를 따라 움직였다.

사태는 일단락 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곧바로 세 남자와 홉스는 루나에게 달려갔다.

토비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 채 물었다.


"혹시 이게 네가 말했던 협상이냐?"


"맞아. 말귀를 잘 알아 먹는 녀석이 있어서 다행이었어."


"잠깐만,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다면 왜 동굴 앞에서 하지 않았냐? 그때 이렇게 했더라면 애초에 위험한 상황 자체가 없었을 것 아니냐."


리버와 길버트가 과연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얼굴로 루나를 바라보았다.

루나는 애매하다는 투로 말했다.


"글쎄, 그때는 그럴 수 없었어. 왜 그럴 수 없었는지는 모르겠군. 굳이 예를 들자면. 그래, 어떤 행동을 직접 하고 있는 사람은 그 행동이 옳은지 아닌지 파악하기가 힘들지. 가령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은 그저 눈 앞에 있는 술을 마실 뿐이야. 그러다가 다음 날에 지독한 숙취나, 기억의 상실, 혹은 자신도 모르는 새 갑자기 멀어져 있는 교우 관계등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닫게 돼. 아, 어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으면 안됐구나 하는 식으로 말이지."


리버와 토비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길버트가 질문했다.


"그러니까 루나양은 일부러 후들을 이곳으로 유인해, 여기는 그들이 있을 곳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단 말입니까? 술에 취해 길거리에서 잠든 사람의 뺨을 쳐서 깨우는 것처럼?"


"적확하진 않겠지만 비슷한 원리겠지. 내가 설명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야. 세상 모든 일을 해석하려 하는 건 나쁜 버릇이야 길버트. 우리는 왜 밤이 되면 졸리는지도 모르잖아."


길버트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고, 그대로 대화에서 제외되었다.

이번에는 리버가 말했다.


"뭐가 됐든 상관없어. 어쨌든 후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변함없으니까! 이제 확실히 전부 끝났어."


길버트와 토비 그리고 홉스는 리버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조금 감개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루나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이 이야기의 마무리는 그들이 지어야 해."


그렇게 말하고서 루나는 팔을 뻗어 멀리 있는 한 건물을 가리켰다.

나머지 네 사람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루나가 가리킨 건물을 보고 나서는 모두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루나가 가리킨 곳은 콥스와 루디가 있는 건물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인간농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3) 24.04.22 4 0 12쪽
13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2) 24.04.22 5 0 17쪽
134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1) 24.03.10 11 0 17쪽
133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0) 24.03.10 6 0 12쪽
132 익숙한 것과 낯선 것 (9) 24.03.10 8 0 11쪽
131 익숙한 것과 낯선 것 (8) 24.03.10 5 0 17쪽
130 익숙한 것과 낯선 것 (7) 24.03.03 7 0 12쪽
129 익숙한 것과 낯선 것 (6) 24.03.03 8 0 18쪽
128 익숙한 것과 낯선 것 (5) 24.03.03 9 0 9쪽
127 익숙한 것과 낯선 것 (4) 24.03.03 4 0 12쪽
12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3) 24.02.23 9 0 19쪽
12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 24.02.23 9 0 12쪽
124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4.02.15 9 0 14쪽
123 얻은 것과 잃은 것 (14) 24.02.15 9 0 18쪽
122 얻은 것과 잃은 것 (13) 24.02.10 7 0 17쪽
121 얻은 것과 잃은 것 (12) 24.02.10 5 0 13쪽
120 얻은 것과 잃은 것 (11) 24.02.10 5 0 11쪽
119 얻은 것과 잃은 것 (10) 24.02.10 7 0 11쪽
118 얻은 것과 잃은 것 (9) 24.02.01 7 0 15쪽
117 얻은 것과 잃은 것 (8) 24.01.29 9 0 13쪽
116 얻은 것과 잃은 것 (7) 24.01.29 7 0 13쪽
115 얻은 것과 잃은 것 (6) 24.01.26 8 0 19쪽
114 얻은 것과 잃은 것 (5) 24.01.21 7 0 15쪽
113 얻은 것과 잃은 것 (4) 24.01.20 7 0 13쪽
112 얻은 것과 잃은 것 (3) 24.01.20 7 0 14쪽
111 얻은 것과 잃은 것 (2) 24.01.16 7 0 13쪽
110 얻은 것과 잃은 것 24.01.14 8 0 13쪽
109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6) 24.01.09 8 0 19쪽
»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5) 24.01.09 11 0 16쪽
107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4) 24.01.06 7 0 17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