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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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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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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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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1)

DUMMY

가슴이 옥죄는 것 같은 기분을 받으며 길버트는 고개를 한 바퀴 빙 돌렸다.

당연히 주위 풍경은 길버트의 답답함을 해소해주진 못했다.

신장이 8큐빗 정도 되는 15개의 암석들은 정확한 간격으로 원을 그리며 길버트를 포위하고 있었다.

어떤 담대한 사내라도 답답함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그런 풍경이었다.

다음 순간 고개를 내저은 길버트는 특정한 두 암석들 사이를 주시했다.


암석들이 몸을 이용해 그리고 있는 원은 지름이 너무 컸고, 그 탓에 암석들 사이의 빈틈은 상당히 넓었다.

그저 바위에 불과했다면 당연히 그 사이로 빠져나가면 만사가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평범한 암석이 아니었고, 길버트는 그 틈으로 빠져나가도 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때 리버가 불쑥 거대한 암석들 앞으로 걸어나갔다.

사람들이 하나둘 의문 섞인 시선을 보내는 사이, 리버는 말릴 틈도 없이 두 암석의 정중앙에 나란히 섰다.

그렇게 리버가 원의 한 곡선을 차지하자마자 토비가 놀라 소리쳤다.


"뭘 하는 거냐 이 자식아! 당장 안으로 돌아와!"


"그냥 이 사이로 빠져나가면 되지 않겠어요? 이 녀석들은 움직임도 느린 편이니까 계단까지 달려가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요?"


리버는 사람들을 향해 '이 정도면 썩 괜찮은 방법이 아니냐'는 눈빛을 보냈다.

다시 토비의 주둥이가 들썩거렸을 때, 돌연 리버의 양 옆에 있던 암석이 움직였다.

보다 정확히는 리버의 왼편에 있던 암석은 시계 방향으로, 반대쪽 암석은 반시계 방향으로 빙그르르 몸을 틀었다.

결과적으로 리버는 양 쪽에서 두 암석의 지긋한 시선을 받게 됐다.

두 암석이 자신들의 사이에 있는 리버를 내려다 보자, 리버 역시 고개를 치켜들고선 양쪽에 있는 암석을 번갈아보기 시작했다.


물론 리버와 암석 사이에 유쾌하고 친근한 대화가 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인간과 두 바위는 그 상태로 얼마 동안 침묵을 고수한 채 서로를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문득 리버가 황급히 시선을 내리 깔았다. 리버는 원의 안쪽으로 움직였고, 그러자 두 암석은 다시 처음처럼 원의 중앙 쪽으로 몸을 틀었다.

리버는 멋쩍게 뒤통수를 긁으며 사람들 틈으로 들어오며 말했다.


"어, 왠지 제가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 돌아왔어요. 솔직히 좀 무섭더라고요. 이 방법은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죠?"


길버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섣불리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설령 리버군의 말처럼 어찌저찌 계단까지 도착한다고 해도 위로 올라가는 일은 힘들어 보입니다.

방금 전 일을 생각해보면 이 놈들 역시 위로 뛰어오를지도 모릅니다. 가장 최악의 경우, 이 바위들이 계단을 죄다 부술지도 모를 일이고, 만약 그렇게 되면 저희는 이곳에서 아사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튼 날아서 지상까지 갈 수는 없으니까요."


리버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바뀐 것을 확인한 길버트는 이번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루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보다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조금 전에 루나양은 저 문이 리버군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잘 모르겠어. 그냥 그렇게 느꼈을 뿐이야. 저 문에서 리버와 비슷한 느낌이 났어."


"...그렇습니까."


길버트는 답답함이 몇 배로 커지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길버트는 루나가 저런 식으로 나오기 시작하면 어차피 더 이상의 질문은 무의미하다는 걸 체득하고 있었다.

얼마간 고민한 끝에 길버트는 지금은 역시 실질적인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아무래도 이 작은 녀석이 낸 수수께끼를 맞추는 수 밖에 없어 보입니다. 만약 이 바위들이 저희를 뭉개 놓을 생각이었다면 진작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이 놈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저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마치 대답을 강요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음, 잠깐, 혹시나 해서 묻는 것이지만 루나양은 이 바위들을 혼자서 처리할 수 있습니까?"


"불가능해. 한둘이면 모르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


"그렇다면 역시 방법은 하나 뿐이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후 길버트는 묘한 시선으로 두 추기경을 응시했다.


"정말 두 추기경께선 이 사태에 대해 짐작가는 점이 조금도 없으십니까?"


길버트의 추궁에 멀락이 시선을 회피하며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테오도르는 왠지 모르게 안절부절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었다.

길버트의 눈에 마침내 의심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을 때, 테오도르가 앞으로 나섰다. 그러고선 범죄 사실을 자백하는 범인처럼 말했다.


"신께 고백하건대 일부러 숨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뭐야? 이 자식아! 그럼 너는 저런 것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우릴 여기까지 안내한 거냐?"


토비의 역정에 테오도르는 자신의 의미 전달력이 형편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오도르는 차분한 태도로 토비를 마주보았다.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건 그저 성물을 흡수한 사람이 이 유적에 왔을 때, 어떤 특별한 변화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맹세코 그 변화의 내용에 대해선 저도 멀락 추기경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도 북부에서 얻은 정보입니까?"


"예 파스토르 대주교에게 얻은 정보입니다. 저희들은 종교전쟁 이후에도 계속 통신을 주고받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니까 저는 지하로 내려오고, 또 방으로 들어갈 때만 하더라도 혹시 어떤 변화가 있지 않을까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태 아무 변화도 없었잖습니까. 그래서 저는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대주교 역시 확실하지 않다는 투로 전한 정보여서, 저는 그것이 완전히 틀린 정보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서 테오도르는 깊게 숨을 골랐다. 테오도르는 진중한 표정으로 설명했다.


"앞서 쭉 말한 것처럼, 저희들이 성물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정말로 그리 많지 않습니다. 저희들은 그저 성물이 고대인이 만든 종족의 정수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 여러분께서도 조금 전 복도 끝의 벽화를 보셨으니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 저희들은 그 벽화 속 남자가 들고 있는 것이 성물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벽화 속의 남자는 여러분들도 충분히 알 만한 인물일 겁니다. 그 남자의 이야기는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로 남았으니까요."


"어, 혹시 다섯 명의 인간이 대륙을 구한 그 영웅담을 말하는 건가요?"


리버가 길버트를 제치고 앞으로 나왔다. 테오도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렇습니다. 그 얘기는 정확한 원형을 알 수 없는 설화나 전설이지만, 그럼에도 실제로 일어난 일은 분명합니다. 성물이 버젓이 존재하고 이 유적도 저희들의 눈 앞에 존재하니까요.

저희들이 아는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계단을 내려올 때도 말했지만, 고대인들은 성물을 통해 인간이라는 종의 한계를 초월하려 한 것 같습니다. 도무지 그 과정에서 성물이 어떻게 쓰였을지 짐작은 되지 않지만, 일단 제 추측은 이렇습니다.

진화라는 것은 결국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전과 같다면 진화라고 부를 수 없으니까요. 결국 진화하기 위해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찾아다녀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들이 본능적으로 현재와 현재 상태에 머무르길 원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곳간에 곡식이 가득 쌓여있고, 또 튼튼한 집과 수 많은 가축을 기르고 있는 인간은 더 이상 사냥을 나서지 않습니다. 안락한 상태에 놓인 인간은 위험 속에 노출되기를 본능적으로 꺼려합니다.

따라서 모험하지 않는 인간은 미개척지에 어떤 새로운 것이 있는지 모른 채로 평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곳에 진리가 있다고 해도 찾아 나서려 하지 않는 겁니다."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테오도르는 잠시 말을 멈췄다. 테오도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반응을 살폈다.

루나는 덤덤했고, 리버는 이미 얌전히 제자리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토비는 애초부터 얘기에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토비는 그저 자신의 발치에 있는 작은 바위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는 뭔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었다.

결국 테오도르는 이번에도 길버트에게 시선을 옮겼다. 길버트는 테오도르와 똑같이 주변을 한번 둘러봤고, 한숨을 쉰 뒤에 말했다.


"대강 알겠습니다. 예, 말씀하신 대로 진화란 새로운 것이 되는 일이며, 새로운 것이 되기 위해선 언제나 새로운 지평을 마주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에 안주한 사람은,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사람은 더 이상 그러기 힘들지요.

우리는 아는 것만 알 수 있다는 말이 이 경우에 꼭 적절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것들은 전부 알고 있는 것을 다른 방식으로 조합한 것에 불과하니까요.

그런데 우선 이것부터 알아야겠습니다. 추기경께선 제가 흡수한 성물이 머리에 해당하며, 동시에 이성이나 지성 같은 것들을 상징한다고 말하셨습니다. 또 리버군의 경우엔 얼굴이며 감정이나 소통 같은 것들이라고 하셨지요. 그렇다면 다른 성물들도 각각 어떤 것을 상징할 것 같습니다. 맞습니까?"


테오도르는 길버트의 머릿속에서 대체 얼마나 빠르게 정보들이 처리되는지 들여다보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멍하니 길버트를 쳐다보던 테오도르는 이내 자신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서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리버님과 길버트님이 흡수하신 성물을 제외하면 대륙에는 세 개의 성물이 남습니다. 남은 세 개의 성물은 인체 부위 중 각각 손과 발, 그리고 심장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다시 손은 힘과 창조성을, 발은 자유와 재미를 상징합니다."


대화 도중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리버가 슬며시 두 사람의 곁으로 다가왔다. 리버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질문을 얹었다.


"어, 끼어들어서 죄송하지만 심장에 대한 설명을 빼먹으신 것 같은데요."


"아쉽게도 거기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파스토르 대주교는 심장에 해당하는 성물이 악시오마의 뒷부분에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들이 얻은 정보들은 모두 악시오마의 앞부분, 즉 몇십 페이지도 되지 않는 내용입니다.

악시오마를 해석한 그 천재적인 소년은 저희가 북부에 머무르는 동안에도 계속 해석에 매진하고 있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북부에선 책의 뒷내용을 알아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보다 길버트님. 어떠십니까? 얘기를 듣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신지요?"


테오도르의 눈빛에는 명백하게 기대감이 깃들어 있었다. 길버트는 부담감이 치미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닙니다만, 성물이 그런 식으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개념들을 상징하고 있다면, 어쩌면 성물은 일종의 색안경과 비슷한 아티팩트는 아닐까 생각되긴 합니다."


"색안경 말입니까? 무슨 의미로 그런 비유를 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소 복잡하지만 최대한 쉽게 풀이해 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개념이라는 것이 결국 인식의 문제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탁자 위에 포도 하나가 있다고 치겠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포도라고 불린다는 것. 알맹이가 둥글고 매끄럽다는 것. 보라색이라는 것. 먹으면 달고 시큼하다는 것 등의 여러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우리들은 당연히 그것이 포도의 특성이며, 그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지요 리버군?"


"음. 뭐 그렇죠? 그런데 제 생각에 그건 너무 당연한 말 같은데요? 길버트씨의 말은 포도가 그냥 포도라는 말이잖아요?"


길버트는 싱긋 웃으며 계속 설명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볼까요.

가령 우리가 포도에 대해 가지는 모든 개념들은, 사실 사람이 사람의 방식으로 포도를 인식하기 때문에 생겨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런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뱀은 사람과 달리 사물의 온도를 봅니다. 사람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뱀에게 포도는 당연히 보라색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른 경우를 볼까요. 수달은 맛을 느끼지 못하니 이번에는 달거나 시큼하다는 개념이 사라집니다. 또 포도의 표면을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벌레들에겐 표면이 매끄럽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수염을 통해 공간을 지각하는 무스들에게 '탁자 위의 포도'는 우리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존재할 겁니다."


리버와 테오도르는 깊은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 멀락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고민에 빠진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길버트가 다시 설명했다.


"결론만 말하자면, 대상 자체에는 어떤 개념도 내포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대상을 인식하는 객체가 대상에 대한 개념을 적극적으로 만들어 낸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추기경께선 진화가 완전히 다른 것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른 것이 되기 위해선 완전히 다른 개념을 수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 깊은 사고를 하기 위해선 자연스레 더 많은 인식이 필요하게 됩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개념이라는 것은 결국 인식의 부산물에 불과하니까요.

더불어 우리의 감각과 인식 작용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습니다.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고 해서 뱀의 눈이나 수달의 미각을 가질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성물이 일종의 색안경이라고 말한 이유는 그런 이유입니다. 색안경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야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다른 시야는 다시 다른 인식을 제공합니다.

진화라는 것은 결국 인식의 끝자락까지 도달하는 일입니다. 즉, 어쩌면 고대인들은 성물이라는 아티팩트를 통해 새로운 인식 체계를..."


"그래! 알았다!"


길버트가 말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커다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탄성을 내지른 것은 얘기에 심취해있던 테오도르가 아니라 의외로 토비였다.

길버트는 미심쩍은 눈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여태 쪼그리고 앉은 채 조막만한 바위와 눈씨름을 하고 있던 토비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토비는 흥분 섞인 눈으로 사람들을 둘러보며 다시 외쳤다.


"알아냈단 말이다!"


"대단하십니다 토비님! 길버트님께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지만, 솔직히 말해서 사실 저는 거의 알아듣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식과 개념의 문제는 가장 어려운 문제잖습니까!

아, 어쩌면 토비님의 종족이 다르다는 점이 이해를 도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길버트님의 예는 그야말로 적절했군요. 예, 토비님께선 아돌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실 테니까요."


테오도르가 토비에게 감탄의 눈빛을 보내며 떠들었다.

그리고 토비는 '이 놈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냐?'에 해당하는 표정으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길버트는 이내 설마하는 심정으로 토비에게 질문했다.


"토비군? 혹시 토비군이 알아냈다는 것이 인식과, 그 인식을 기반으로 구성된 개념 사이의 상관관계를 말하는 겁니까?"


"응? 무슨 소리냐."


토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발치에 있는 작은 바위를 손톱으로 가리켰다.


"당연히 이 녀석이 낸 수수께끼의 해답을 알아냈다는 말이지."


사람들은 잠시 벙찐 얼굴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사람들은 각자 기대와 놀라움을 토로하며 토비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리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리버는 분하다는 얼굴로 약간 떨어진 곳에서 토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열성적으로 수수께끼의 해답을 묻는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토비는 한쪽 입매를 씰룩씰룩거리며 말했다.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그래, 테오도르의 말처럼 아돌프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쉽더군."


"...으스대지 말고 빨리 정답이나 말해요. 도대체 떠날 때는 있다가 도착하면 사라지는 게 뭐에요?"


토비는 리버의 어깨에 손을 척 올려 놓은 뒤 애잔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버가 토비의 인격과, 토비의 신체 구조를 다양한 방법과 기상천외한 표현들로 헐뜯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맞받아쳤을 것이 분명했지만 토비는 이번 만큼은 리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토비는 가련한 것을 바라보는 표정을 지음으로써 리버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적당히 리버를 골려준 후에 토비는 작은 암석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토비와 시선을 마주한 암석은 여태 그랬듯 무감정한 투로 말했다.


"떠날 때는 반드시 있지만, 도착한 후에는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토비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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