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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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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괴
작품등록일 :
2023.05.2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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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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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과 낯선 것 (12)

DUMMY

사람들은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그리고 동시에 기대감과 불안감이 섞인 표정으로 토비를 바라보았다. 토비는 무릎을 쪼그리고 앉은 채 자신의 발치에 있는 암석과 눈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상태로 한참이 흘렀다. 지하 공동 내부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고, 주변의 공기 역시 착 가라앉아 있었다.

어느 순간 발치에 있던 작은 암석이 조금 움직였다. 암석은 고개를 들어 푹 파인 검은 눈으로 토비를 응시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던 반응은 나오질 않았다. 사람들이 토비와 암석을 몇 번인가 번갈아 쳐다보기 시작했을 때 토비가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토비는 다시 한번 조금 전의 대답을 크게 외쳤다.


"귓구멍이 막힌 거냐 이 울퉁불퉁하고 더럽게 딱딱한 자식아! 수수께끼의 답은 여행이다. 여행은 떠날 때에는 반드시 있지만 도착하고 나면 반드시 사라지잖냐!"


사람들은 다시 한번 토비의 대답에 감탄했다. 그리고 길버트는 방금 전 토비가 했던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깨달았다.

수수께끼에 대한 대답을 하기 전, 토비는 아돌프의 시선으로 봤을 때 쉬운 답이라고 말했었다.

길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토비가 지금 말한 것이 정답이라면 토비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것을 떠올리기 쉬웠을 것이다.

토비는 아돌프고, 아돌프에게 있어서 방랑은 삶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고 있다. 길버트 역시 그것보다 더 나은 해답을 찾아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이 녀석들이 갑자기 왜 이래? 한판 해볼 셈이냐!"


문득 토비가 불안한 투로 주변을 둘러보며 외쳤다. 사람들은 곧바로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아챘다.

토비의 발치에 있던 작은 암석이 제자리에서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 떨림을 기점으로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던 8큐빗쯤 되는 거대한 암석들에서도 심상치 않은 진동이 시작됐다.

진동은 점점 커졌고 종내에는 바닥까지 전해졌다. 바닥에 쌓인 흙먼지가 무성하게 피어올랐다.

흙먼지가 피어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불길한 상상을 피어올리고 있었을 때, 리버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우리를 공격할 셈인가 봐요! 토비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좀 더 신중하게 대답했어야죠!"


"이 젠장할 것아! 기회가 한번이라는 말은 없었잖냐!"


리버를 향해 말한 것인지 작은 암석을 향해 말한 것인지 불명확한 고함을 내지른 토비는 길버트를 바라보며 외쳤다.


"이봐 길버트! 이제 어떡하지? 혹시나 해서 말하지만 저 놈들과 한판 붙자는 의견은 지양하는 편이 좋아.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자신이 없거든."


길버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 동안에도 불길한 진동은 점점 더 커져 가고 있었다. 리버가 어쩌면 대륙에서 가끔 일어나는 지진이라는 것이 이 진동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망측한 상상을 하고 있었을 때, 길버트가 차분하게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우선 다들 흩어져서 구석으로 이동합시다. 저것들의 공격 방식은 단순합니다. 그저 위에서 아래로 내려 찍는 것 뿐이니 구석에 바짝 붙어 있으면 내려앉기 힘들 겁니다. 그리고 저것들이 사역마라면 분명 공급 받고 있는 마력이 있을 겁니다. 마력이 무한한 것은 아닐 테니 계속 도망치다 보면 저것들은 움직일 수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확실한 거냐? 길버트 넌 마법사도 아니잖냐."


"당연히 확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토비군, 다른 방법이 없잖습니까?"


토비가 표정을 찡그렸고 다른 사람들은 진중한 얼굴로 납득했다. 곧 사람들은 길버트의 조언대로 각자 흩어지려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사람들은 모두 제 자리에 멈춰 섰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모를 시점에 암석들의 움직임이 전부 멈춰 있었다. 조금 전까지 공동 자체를 울려대던 지독한 진동이 전부 사라진 탓에 공동에는 이질적인 침묵이 맴돌았다.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살피며 암석을 관찰하고 있었을 때, 갑자기 끼익- 하는 미세한 마찰음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가장 먼저 변화를 알아챈 것은 토비였다. 토비는 거대한 암석의 밑 부분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봐라! 저 놈들 갈라지고 있는 것 같은데?"


토비의 말처럼 암석들은 가장 아래쪽부터 위로 빠르게 금이 번지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에 토비의 발치에서 퍼석- 하는 맥없는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길버트는 토비의 발치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처음 수수께끼를 던졌던 작은 암석이 바스러져 있었다. 그 암석은 너무 작았던 탓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도 못한 채, 공동의 바닥과 완전히 동화되어버린 듯했다.

인과관계야 명확하지 않지만 길버트는 다음에 일어날 일을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길버트는 거대한 암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작은 암석과 달리 그 거대한 암석에서는 쩌적- 쩌적- 하는 큰 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왠지 처참하게 들리는 그 소리는 암석의 깊은 내부에서 공동을 향해 계속해서 비집고 나왔고, 또 점점 커지고 있었다.

마침내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확신을 가지게 됐을 때, 불쑥 루나가 리버에게 돌진했다.


"피해!"


루나는 리버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메치듯이 밀어 붙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의 공격이었고 리버는 손 쓸 도리없이 바닥에 무너졌다. 루나의 운동에너지가 그대로 리버에게 전해지는 바람에 두 사람은 몸을 포갠 채 관성에 의해 바닥에 몇 바퀴나 굴렀다.

곧 공동이 굉음으로 가득 찼다.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 구르는 소리, 부딪히는 소리, 땅이 파이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고함소리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리버는 루나의 밑에 깔려 있던 탓에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볼 수 없었다. 리버는 머리를 바닥에 대고 있었고 루나는 리버의 양 귀 옆에 팔을 뻗어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바닥에 누운 채 리버는 루나의 아래로 처진 앞머리 사이로 예의 그 문양을 보았다. 염소와 닮은 작은 문양은 언젠가처럼 작게 빛나고 있었다.

멍하게 루나의 이마를 쳐다보던 리버의 시선과 루나의 시선이 순간 얽혔다. 잠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리버가 뭔가 중요한 것을 말해야 할 것 같다는 불가해한 기분을 느꼈을 때, 굉음이 뚝 멎었다.

공동을 메운 굉음이 사라지자 루나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루나는 마지막까지 리버의 눈을 쳐다보고 있어서 그때까지 얽혔던 눈빛은 다소 끈적하고 미지근한 느낌으로 풀렸다. 리버는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끼면서 루나를 따라 제자리에 똑바로 섰다.

이내 흙먼지가 차차 가라앉았다. 리버는 자신이 서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지름이 2큐빗쯤 되는 바윗덩어리가 박혀 있었다.

리버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바위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 바위에 눈과 코가 달려있는 것으로 봐서는 암석의 머리 부분인 듯싶었다. 한번 소스라친 리버는 그제서야 루나에게 할 말을 떠올렸다.


"그.. 고마워.."


루나는 리버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몸을 틀고서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냈다. 리버가 무안한 기분에 코를 긁적였을 때 토비가 곁으로 다가왔다.


"괜찮냐?"


"뭐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아요."


잠시 후에 사람들이 리버와 토비 옆으로 하나둘 모여들었다. 다친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토비는 정신없이 재채기를 하는 와중에도 무너지는 바위를 잘 피한 것 같았고, 다행히 두 추기경과 길버트 쪽으로는 아예 파편이 튀지 않은 것 같았다.

리버는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던 암석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터무니없이 위협적이던 거대한 암석들은, 이제 열다섯 개의 작은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동산으로 바뀌어 있었다.

동산을 바라보며 리버가 허무함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을 때 길버트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다.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아무래도 토비군이 말한 것이 정답이었던 모양이군요. 하지만 토비군, 혹시 다음에도 이런 일이 생기면 그때는 저희와 충분히 상의한 후에 움직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결과적으로야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지만 그새 수명이 몇 년은 줄어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길버트의 말에 두 추기경과 리버가 동의한다는 눈빛을 보냈다.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주목하자 토비는 코를 몇번이나 킁킁거리고, 털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고개를 조금 숙이며 대답했다.


"끄응.. 알겠다. 주의하도록 하지."


멋쩍게 대답한 토비는 화제를 돌리려는 듯 화난 투로 질문했다.


"그런데 뭣하러 저 덩치 큰 녀석들은 우르르 몰려온 거지? 이렇게 답을 맞추는 걸로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다면, 그냥 이 작은 녀석 혼자서 우리에게 수수께끼만 냈으면 될 일 아니냐."


"글쎄요.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고대인들의 훈육이나 시험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훈육? 자식들에게 하는 것 말이냐?"


"예. 현대인들의 지성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고대인들의 지성보다는 못할 겁니다. 그 차이는 어른과 아이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보통 어른들은 말로 아이를 훈육합니다만... 아이가 도무지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다른 방법을 쓰곤 하지요. 아, 어쩌면 아돌프의 문화는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토비군은 알겠지요. 그러니까 어떤 좋은 말로 훈육해도 아이가 통 반항적인 경우에 아돌프들은 어떻게 합니까?"


토비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아돌프라고 다를 것 있겠냐. 그럴 때는 콧잔등이 시리도록 한대 쥐어 박아버려야지. 그래, 길버트 네 말이 무슨 말인지 대강 알겠다. 방금 일어난 일은 너희들이 성인이라고 부르는 놈들이 하는 가르침 같은 것이라는 말이로군?"


"제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그 암석이 낸 수수께끼가 어떤 종류의 가르침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고대인들이 말하고 싶은 것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젠장할 것들... 그럼 그냥 좋게 말할 것이지 꼭 이런 덩치들을 데려왔어야 했나?"


"음 토비군. 아쉽게도 사람은 기본적으로 타인의 말에 완전히 무관심한 법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말에 어떤 진리가 숨어 있다고 해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헛소리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이 일어납니다. 다만 이렇게 지독하게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신의 말을 귀 기울여 말을 듣게 할, 거의 유일한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뭔지 아시겠습니까?"


토비는 팔짱을 끼고 길버트의 말을 생각했다. 조금 전 수수께끼를 풀 때와 거의 비슷한 집중력으로 토비는 정답을 찾아냈다.


"힘이로군?"


"예 힘입니다. 권력이나 폭력, 위협적인 표정과 말투. 성(性). 무기. 어떤 것으로 불러도 상관없습니다만 그것들은 전부 설득의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아무튼 척 보기에도 더러운 부랑자의 말보다야 근사하게 차려 입은 신사들의 말에 더 신뢰감이 들지 않겠습니까?

방금의 경우에는 저희들을 둘러싸고 있던 그 무시무시한 바위들이 설득의 도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여러분도 느끼셨겠지만 수수께끼에 귀를 기울이게 할 만큼 충분히 위협적이더군요. 음, 그리고 아마 거기서 토비군이 틀린 정답을 말했다면..."


길버트는 말끝을 흐리며 바닥의 돌무더기들을 한번 바라보았다. 길버트는 아무런 설명도 잇지 않았지만 사람들은 정답이 틀렸을 경우 자신들이 어떤 훈육을 당했을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테오도르 추기경이 맥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길버트님이 훈육이나 시험이라고 하신 말의 의미를 알겠습니다. 방금 전 일은 시험도 포함하고 있는 것이군요. 요컨대 수수께끼를 풀 지혜가 없다면 저 암석들을 무너뜨릴 만큼의 강력한 힘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고대인들이 후대에 이 유적을 방문할 사람들의 자격을 시험하는 것이라면 그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길버트는 말을 끊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꺼내기 망설여진다는 듯이 우물쭈물거렸다. 길버트가 한참 동안 그러고 있자 사람들의 표정에 하나둘 의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잠깐 사람들의 기색을 살피다가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마지못해 꺼낸다는 투로 말했다.


"으음. 제 생각을 말하기 전에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는 방금 일어난 일이 일종의 시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암석들이 튀어나온 것은 저희들이 문을 열려고 시도했을 때였지요.

그러니까 제게 이 상황은 집주인이 자신의 집에 들어올 사람을 선별하는 과정처럼 느껴졌습니다. 방금 그것들이 손님을 가려내는 시험이었다면, 과정이야 어떻든 저희는 시험을 통과한 셈입니다. 집주인은 현관을 열었고, 문 앞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맞이해도 좋을 손님이라는 것도 인정한 셈이지요. 한마디로 저희는 집주인에게 자신의 집에 들어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겁니다."


길버트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의 의중을 눈치챈 토비가 거의 역정을 내듯 소리쳤다.


"길버트 너,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우린 방금 몰살당할 뻔했다. 그런데 너는 이런 일을 겪고서도 저 방에 다시 들어가자고 말하고 있는 거냐? 이 무식하게 큰 바위를 봐라! 우린 이 놈들에게도 쩔쩔맸다는 말이다. 만약 저 안에 더 위험한 놈들이 도사리고 있다면..!"


"글쎄요 토비군. 집주인은 언제나 낯선 자를 경계하고 시험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관에 들이기 전까지의 일입니다. 문을 열고 손님을 손님으로 인정한 집주인은 그때부터는 반대로 예의를 갖춰 손님을 대접하지 않습니까?"


토비는 진심이냐고 묻는 눈빛으로 길버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에 토비는 길버트의 눈빛 깊숙한 곳에서 감출 수 없는 학구열을 발견했다.

고작해야 몇 분 전에 죽을 뻔한 인간이 가질 만한 감정은 도무지 아니었고, 그래서 토비는 어이없는 심정으로 길버트에게서 눈을 돌렸다.

이어서 토비는 자신에게 동의해주길 바라며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두 추기경과 리버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고, 루나는 여느 때와 같이 완전히 무신경한 태도로 돌아와 있었다.

토비는 다시 길버트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어서 생명의 존귀함에 대해 한소리를 늘어 놓으려 했다.

그 순간 루나가 불쑥 한 방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루나가 향하는 곳이 두 번째 방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토비가 소리쳤다.


"어이 루나!"


"들어가도 괜찮아. 길버트의 추측이 맞아. 안 쪽에 더 이상의 위험은 없어."


"그걸 네가 어떻게 장담하냐!"


"네게 장담한 적은 없어. 내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말이야. 어차피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아주 사소한 차이야. 내가 아는 것을 네가 믿을지 말지는 네 선택이지. 굳이 따라와 달라고 사정하지 않을 테니 내키지 않는다면 너는 거기에 서 있으면 돼. 안 쪽은 혼자서 보고 올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루나는 거침없이 두 번째 방을 향해 걸어나갔다. 토비는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주먹으로 가슴을 퉁퉁 쳤다.

루나가 방을 향해 몇 큐빗쯤 걸어갔을 때 이번에는 길버트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길버트!"


"루나양이 앞장섰으니 괜찮을 겁니다. 그녀는 저희들의 길잡이잖습니까."


길버트가 싱긋 웃으며 토비를 지나쳤다. 다음으로는 두 추기경이 움직였다. 토비가 기막힌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자 테오도르가 설명했다.


"음, 길버트님이 앞장섰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길버트님은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 만큼 어리석은 분이 아니시잖습니까? 분명 모든 요소를 고려한 뒤에 내린 판단이실 겁니다. 그리고..."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테오도르는 길버트와 마찬가지로 작은 미소를 걸치고서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저 안이 궁금하긴 하고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두 추기경은 토비를 지나쳤다. 두 추기경이 종종걸음으로 앞서 간 두 사람을 따라잡는 사이 마지막으로 리버가 움직였다.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는 토비에게 리버는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뭘 멍하니 서 있어요? 빨리 가요, 혹시 안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면 당신이 있어야 하잖아요?"


리버는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인 다음 앞서 간 네 사람을 따라 걸었다. 홀로 남은 토비는 잠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을 쳐다보았다. 지하는 더웠고 그 계단은 토비에게 어서 지상으로 올라가라고 유혹하고 있었다.

가만히 서서 양쪽을 번갈아보던 토비는 이내 고개를 휘휘 저었다. 토비는 방으로 향하고 있는 다섯 사람의 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 자포자기한 투로 중얼거렸다.


"누가 아돌프고 누가 인간인지 모르겠군. 그래, 간다 가! 이 용맹한 자식들 같으니라고."


토비는 투덜대며 두 번째 방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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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1) 24.03.10 12 0 17쪽
133 익숙한 것과 낯선 것 (10) 24.03.10 7 0 12쪽
132 익숙한 것과 낯선 것 (9) 24.03.10 8 0 11쪽
131 익숙한 것과 낯선 것 (8) 24.03.10 6 0 17쪽
130 익숙한 것과 낯선 것 (7) 24.03.03 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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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 익숙한 것과 낯선 것 (5) 24.03.03 11 0 9쪽
127 익숙한 것과 낯선 것 (4) 24.03.03 5 0 12쪽
126 익숙한 것과 낯선 것 (3) 24.02.23 10 0 19쪽
125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 24.02.23 11 0 12쪽
124 익숙한 것과 낯선 것 24.02.15 10 0 14쪽
123 얻은 것과 잃은 것 (14) 24.02.15 9 0 18쪽
122 얻은 것과 잃은 것 (13) 24.02.10 8 0 17쪽
121 얻은 것과 잃은 것 (12) 24.02.10 6 0 13쪽
120 얻은 것과 잃은 것 (11) 24.02.10 6 0 11쪽
119 얻은 것과 잃은 것 (10) 24.02.10 8 0 11쪽
118 얻은 것과 잃은 것 (9) 24.02.01 8 0 15쪽
117 얻은 것과 잃은 것 (8) 24.01.29 9 0 13쪽
116 얻은 것과 잃은 것 (7) 24.01.29 8 0 13쪽
115 얻은 것과 잃은 것 (6) 24.01.26 9 0 19쪽
114 얻은 것과 잃은 것 (5) 24.01.21 8 0 15쪽
113 얻은 것과 잃은 것 (4) 24.01.20 8 0 13쪽
112 얻은 것과 잃은 것 (3) 24.01.20 8 0 14쪽
111 얻은 것과 잃은 것 (2) 24.01.16 8 0 13쪽
110 얻은 것과 잃은 것 24.01.14 9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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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5) 24.01.09 12 0 16쪽
107 만드는 것과 부수는 것 (14) 24.01.06 7 0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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