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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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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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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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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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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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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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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8.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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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글자
18쪽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1]

DUMMY

본격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장소를 이동했다. 내용이 심각하다는 건 랑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고, 에닐과 크론도 동석해서 들을 분위기인걸 봐선 길드 내부에서도 중요하게 여기는 모양이다.

지구 출신이자 한국 사람인 일우가 생각하는 ‘적절한 대화 장소’는 뭔가 앉아서 음료를 마시는 곳이었고, 마침 이 ‘낙원’에 그런 곳이 하나 있었다.


“보쓰 왔놔. 뭐 줄꽈.”

“이 가게의 자랑이자 상징이자 내 잘난 머리가 만들어낸 최고의 결과물로.”

“얼음 주스라궈 말해롸. 그궈 길돠.”

“얘들한테 강조를 해야 한다고. 과일? 내가 만든 농장에서 왔고. 얼음? 여기서 생산하고. 그걸 여기서 섞어서 파는 것도 내가 하라고 한 거라는 거 말이지. 아무튼 머릿수대로.”


바로 카페였다.

‘낙원’에서 생산된 마력으로 제조한 얼음과 농장에서 가공한 과일 주스를 혼합한 차가운 과일 음료를 판매하는 장소다.


“아, 내 건 빼고. 난 얼음 넣고 검은 콩 태운 가루 우려낸 물에다 우유 친 거로 부탁해.”

“보통 그런 걸 커피라고 합니다.”

“알 게 뭐야. 아무튼 달달하게 만든 검은콩 우려낸 물로.”


당연히 커피도 있었고, 수소문해서 찾아온 엘프 바리스타도 있었다.

바리스타는 투덜대면서 커피를 만들어대며 고용주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여기 오고 다섯 번째로 파는 커피네요. 물론 손님은 한 분 뿐이지만.”

“그래서 돌아갈래?”

“뭐 급료는 제때 들어오니 상관은 없지만요.”


잠시 후, 각자에게 음료가 배정되자마자 일우는 커피를 단숨에 들이켰다.


“크어어어어!”

“아아, 커피 찾는 유일한 사람이 저따위로 마셔대는 걸 보니 속이 쓰리다······.”

“더 속 쓰리게 만들어주지. 한 잔 더!”

“으윽.”


새로운 커피를 주문한 일우는 곧바로 차갑고 단 음료를 홀짝이는 랑키를 향해 말했다.


“자, 나도 당분을 대가리에 밀어넣었고, 너도 지금 밀어넣었지. 원래 사람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울땐 단 걸 때려박으면 진정하게 되어 있어. 그게 바로 달달함의 마력이지.”

“······예, 조금 진정된 듯 싶습니다. 조금 전엔 추태를 부려서 죄송합니다.”

“이해해. 이놈의 길드 것들이 뭐 일 시키고 부려먹는 건 잘해도 복지나 사람 관리는 꽝이라는건 알겠더라구. 아무튼!”


어느 새 새롭게 나온 커피잔을 든 일우는 잔을 까딱였다.


“시작해보자고. 왜 그렇게 잘난 듯이 살던 아가씨가 맛탱이가 간 모습을 보여줬는지 말이지.”


고개를 끄덕인 랑키는 설명을 시작했다.

‘연금술사 우’의 행로를 잘못 판단한 랑키는 북쪽에서 헛고생을 하다 코랄에서 한참 일을 벌이기 시작한 일우의 소식을 들었다.


“아펜디스 길드 지부와는 잘 아는 사이였기에 제게 우 님이 코랄 쪽에서 던전 출입 자격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달해주더군요.”

“길드는 남의 신상을 잘도 퍼뜨리는구만. 아예 내가 언제 뭘 먹었는지까지 알려주지 그래?”

“아펜디스 길드마스터는 캐피탈 출신이라고 들었다. 아는 사이에서 알려주는 건 그녀석 잘못이다. 책임 따질 거면 그 녀석한테 따져라.”

“뭐, 좋아. 아무튼 권력과 인맥 찬스로 내 소식 들었다 치자구.”


코볼트들의 고향이기도 한 북부 대평원지대, 아펜디스와 코랄은 그야말로 대륙을 횡단한다는 표현이 걸맞은 거리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면 순간 사라져버리는 ‘연금술사 우’를 따라잡기 위해선 비공정을 타야 했다.

다만 랑키가 탄 비공정은 여객용 비공정이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무슨 수를 쓰셨는지는 몰라도, 모험가 길드에서 직접 운영하는 보급망 수송 비공정에 탑승하셨더라구요. 뭐, 보나마나 아펜디스 길드마스터가 몰래 태워준 거겠죠.”

“임시 계약직으로 호위 임무를 맡았던 겁니다.”

“비공정에 호위가 말이 되냐. 그것도 아펜디스에서 남쪽으로 가는 비공정은 ‘셀리안의 등뼈’를 따라가는 노선이다.”

“크론 씨 말대로, 그 길은 굉장히 안정적이죠. 등뼈를 따라서 항상 마력이 충만하기 때문에 비공정들이 애용하는 노선이기도 하구요.”


대륙 중앙에 위치한 ‘셀리안 산맥’은 신화 속 거대한 생물인 셀리안의 사체가 굳어 만들어졌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산맥에서도 ‘셀리안의 등뼈’는 안정적인 마력의 흐름이 형성되었고 몬스터들의 출몰도 거의 없기에 대륙 남쪽과 북쪽을 오가는 비공정들이 주로 선택하는 비행경로다.

그 말을 듣던 ‘연금술사 우’는 앞으로의 내용이 뻔한 듯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니들이 떠들어대는 거 보니까, 거기서 문제가 터졌구만?”

“예. 거기서 비공정이 불시착했습니다. 계약 호위였기 때문에 제가 현장에서 조사에 나서기로 했지요.”


단 것을 먹고 안정을 찾은 랑키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고, 그녀는 팔찌를 풀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자세한 설명은 이걸로 대체하겠습니다.”


팔찌는 일종의 저장도구였고, 랑키가 허공에 손가락을 휘젓자 들어간 내용물을 허공에 투영했다.

내용물은 랑키가 목격한 현장의 참상이었다.


[세상에······!]

[라, 랑키 님. 이,이이이이······이게 다······.]

[우웨에엑!]

[젠장! 토하지 말라고! 다 큰 사내새끼가······ 빌어먹을, 나까지 토할 것 같네.]


피와 뼈, 살점으로 이루어진 괴상한 조형물들이 건물 주변을 채우고 있었고, 저장장치에 담긴 랑키의 시선은 이내 구석에 세워진 흑색 수정을 향했다.


[이건······.]

[-바지지지지직!]

[윽!]

[우왁!]

[제기랄! 이게 근원이었어! 여기서 생겨난 불길한 파장이 마력을 통째로 흔들고 있었어!]

[대체 이게 뭡니까? 예? 아니, 대체 뭐냐구요! 악마라도 나타난 겁니까? 톨라에선 맨날 이런 걸 만드는 놈들이랑 싸운 겁니까? 아니면 저기 신성왕······.]

[노비우스에서도 톨라에서도 이런 미친 짓 하는 놈들이랑은 안 싸워! 애초에 이런게 세상 천지에 어디······.]


불시착한 비공정의 선장과 선원, 거기에 모험가 길드에서 비공정을 얻어탄 모험가들은 저마다 이 참혹한 현장에 정신적으로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나름 발버둥을 쳤다.

그 와중 랑키는 불길한 흑색 수정과 끔찍한 형상의 구조물들에 대한 정보를 캐내기 위해 수차례 마법을 쓰며 분석에 들어갔다.

그리고 결과를 확인한 순간, 저도 모르게 주춤대며 물러섰다.


[아냐, 이건 말도 안 돼.]

[뭐라도 나왔습니까?]

[여기, 여기······ 어디죠?]

[포칸테 마을입니다. 셀리안즈 인근의 마을인데······.]

[······그 마을 사람들, 전부 다 어디로 간 거죠?]

[이런 니미.]

[썅.]


경험 많은 선장과 숙련된 모험가는 랑키의 말을 듣자마자 현장의 정체를 곧바로 알아차렸고, 뒤늦게 깨달음을 얻은 신출내기나 선원들은 더 격한 반응을 보였다.


[아아악!]

[씨발! 아아악! 빌어쳐먹을!]

[사, 사람이라고?! 이게? 전부 다? 세상에!!]

[좀 닥쳐! 진정하라고! 여기에서 발악하면 남들도 다 휘말려! 스스로를 다스려!]

[이런 데서 어떻게 그게 돼요! 이 마을 사는 사람이 수백은 됐는데! 규모를 보니까 전부 다 이렇게 된 것 같은데!!]


마을 사람들이 전부 괴기한 구조물이 되는데 희생되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제정신으로 버티고 서 있을 이는 그리 많지 않고, 경험 있는 모험가들이라도 비명을 내지르지 않고 꾹 참는 것만으로도 한계다.

그나마 경험 있는 비공정 선장이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떠올리는 것 정도다.


[지금 당장 길드에 연락해라.]

[안됩니다. 우린 지금 비공정이 추락할 정도로 엄청난 왜곡장의 영향을 받고 있어요.]

[아가씨! 아가씨 도움이 필요해! 당신, 여기서도 마법 쓸 수 있지?! 당장 여기서 벌어진 일을······.]

[······기다리세요. 생명 반응이 감지됩니다.]

[젠장. 이거 비슷한 거 어디서 봐서 아는데, 그거 쓸데 없어. 보나마나 이 구조물에서 나는 반응일 거야. 이거 산제물 의식이야.]


모험가 중에 경험이 가장 풍부한 이가 그 말을 하며 주변을 향해 손짓했다.


[어떤 새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미친 짓을 그냥 했을 리는 없어. 뭔가를 소환하던가, 아니면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저도 그게 뭔지 압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방식으로 감지했습니다. 온전한 인간 형상을 한 존재를 찾은 거니까요.]

[진짜 대단하구만. 이거 비슷한 걸 세 번이나 보는데도 난 돌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수나 있다니.]

[저 쪽입니다. 멀지 않아요. 건물 안에, 보호 처리된 상자에요.]

[저기면 마법도구점이야. 주인은 아는 사이였지만······ 보나마나 뒈졌겠지. 아니면 혼자 살아남았거나.]

[어느 쪽이건 끔찍하긴 매한가지일 겁니다. 갑시다.]

[나머진 물러나 있어! 계속 이런데 있으면 너희들이 미친다! 비공정으로 돌아가서 띄울 수 있는 지나 확인해!]


선장과 숙련된 모험가, 그리고 랑키 셋만이 이 참극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거기까지 본 일우는 손을 내밀어 팔찌에서 재생되던 영상을 중지시킨 뒤 함께 지켜보던 이들을 돌아보았다.

현장을 직접 목격한 랑키의 표정이야 당연히 좋지 않았고, 크론은 미간을 한껏 구긴 표정이었다.


“이게 뭐냐.”

“으음······!”


그리고 에닐은 창백해진 표정으로 입가를 가리고 있었다.

그걸 본 일우는 이죽댔다.


“전령 보내서 정보 전달한다는 소식 들었으면 마음의 준비 단단히 했어야지.”

“아니, 저, 저는······ 그냥 말로 전달할 줄 알았지 이런 식의 영상으······으으.”

“시끄러워. 화장실은 저쪽이다.”


일우의 손가락이 향한 곳을 향해 에닐이 곧바로 달려갔고, 곧이어 뭔가를 비워내는 소리가 아스라히 들려왔다.


“현자니 뭐니 하지만 정작 내장은 허풍을 버티지 못하는구만. 그리고 넌 의외로 버틴다?”

“도살장 같은 전투는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건 끔찍한 현장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내용은 더 안 좋을 게 뻔하다는 게 내 생각이야.”


그 말을 한 일우는 두 사람에게 손을 내저었다.


“얜 나한테 이걸 보여주려고 온 거고, 난 이런 멋진 영상물은 혼자서 감상하는 취미가 있어. 다들 꺼져봐.”


그 말을 들은 랑키는 그 상황을 떠올리는 영상을 볼 용기가 나지 않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크론 역시 도살극 같은 영상을 더 이상 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혼자 자리에 남게 된 일우는 느긋하게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한 잔 추가!”

“······얼음 들어간 주스 먹궈 토하뤄 갔돠. 우리 물건 문제 있돠.”

“상품엔 문제 없으니 부담 갖지 마. 좀 자극적인 걸 봐서 그러니까.”


잠시 후 새로운 커피를 받아든 일우는 팔찌를 작동시켰고, 랑키가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영상이 이어서 재생되었다.


[대체 이건······.]

[살점으로 쳐발라 놓은 것 같군. 아니면 그런 부류의 뭔가가 잠식을 했거나.]

[마치 괴물의 내장에 기어들어온 것 같네만.]

[이게 뭘로 만들었는지 생각하면 더없이 끔찍하지만 말입니다. 아가씨? 그래서 사람은 어디에 있지?]

[저 상자입니다.]

[외부에서 마력 갖고 미친 짓을 벌였다면, 저런 데 아니면 못 살아남겠지. 어쩌면 멀쩡할지도 모르겠어.]


모험가는 그 말을 하며 상자에 다가가며 자신의 검을 뽑아들었고, 선장은 바닥을 가리켰다.


[마법지팡이가 떨어진 걸 봐선 누가 이 상자를 지키려고 한 것 같네만.]

[하지만 깜짝 괴물 선물상자일지도 모르지. 다들 마음 단단히 먹으쇼.]


선장과 랑키는 고개를 끄덕이고 각자 무기를 꺼내들어 상자 쪽을 겨누었다.

모험가가 상자에 손을 가져가 확 열어젖히고 거리를 벌리고 검을 겨누자, 그 안에선 한 소년이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좋아, 깜짝 선물은 아니군. 꼬마, 괜찮나?]

[괜찮을 리가 없지 않나. 이런 현장에서 혼자 살아남은걸 아는 모양인데.]

[다들 뭐 하는 겁니까! 아이 눈부터 가려야 하잖습니까!]


서둘러 자신의 품에서 안대로 쓸 손수건을 든 랑키는 소년의 눈을 가렸고, 모험가는 곧바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소년을 들쳐 맸다.


[좋아, 친구. 이제 넌 안전해. 괜찮아. 정신 똑바로 차려. 널 구해주려고 어른들이 왔으니까.]

[아, 아아······.]

[그래, 어른이야. 모험가이기도 하고, 사악한 악당들 때려잡는데 도가 튼 사나이 어깨 위에 올라와있단다. 괜찮아. 여길 이따위로 만든 악당은 우리가 조질테니까 걱정 마.]


넋이 나간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해 나름 말을 건네던 모험가의 말이 효과가 있는 모양인지, 비공정으로 돌아와 눈을 가리던 손수건을 푼 아이의 눈빛은 많이 돌아와 있었다.


[좋아, 차분하게 숨을 쉬고 내쉬고, 넌 이제 괜찮아.]

[괘, 괜찮······ 괜찮은 거에요? 다, 다른 사람들······.]

[너도 알 거야.]

[······.]

[하지만 우린 몰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줘야 해. 가급적 아는 건 뭐든지 말해야 해. 그래줄 수 있지?]


관록 있는 모험가는 간략하면서 확실하게 소년을 설득했고, 그 말에 용기를 얻은 소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 이렇게 만들었어요.]

[그걸 알아야 해. 그게 누군지 알아야 뭐라도 할 수 있어.]

[그, 그 사람, 처음엔······ 처음엔 우리를 도와줬어요. 어려운 일이 있다고, 펜조 아저씨가 목격했다는 몬스터를 때려잡고, 무너진 건물에서 사람도 구해주고, 거기에, 에리안의 약도······ 약도······.]


소년은 두서없이 말을 꺼내다 이내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모험가는 닦달하지 않고 차분하게 기다렸다.

아무래도 소년에게 매우 중요한 사람인 모양이고, 이런 상황에서 대답을 부추겨봤자 소용없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잠시 후, 눈물을 훔친 소년은 고개를 떨구며 힘없이 말을 이어갔다.


[······그랬는데, 전부 다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 사람이 누군데.]

[몰라요. 어느 순간 나타났어요. 어디에서 왔는지 몰라요. 어디 출신이라고 한 적도 없고, 어디 사람이라고 한 적도 없고,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아무도 몰라요.]

[스읍······.]

[······용사라고 했어요. 그 사람, 그래, 맞아, 용사에요. 용사였다고 했어요. 처음엔 다들 안 믿었어요.]


용사라는 말을 듣자 선장과 모험가는 미간을 좁혔지만, 반대로 랑키는 저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키며 입을 가렸다.

그 사이에도 소년의 말은 두서없이 쏟아졌다.


[그런데 수상한 일들이 생겼어요. 몬스터가 갑자기 나타나서 위험해졌고, 지진이 났고, 에리안이 갑자기 이상한 병에 걸리고······ 그래서 다 해결해주면서 다들 용사라고 믿었는데······.]

[그래, 용사라고 자처하던 수상한 남자? 아니면 여자?]

[여, 여자에요. 그래서 용사라고 믿었는데······.]

[너는 어떻게 살은 거지?]

[에리안이, 에리안이 날 그 상자에 밀어 넣었어요. 여기면 안전하다고. 자기는 이 상황을 막아보겠다고 했는데······.]


그 말 뒤로 소년은 고개를 떨구었고, 더 이상 대답을 듣기 어렵다고 판단한 모험가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래, 마음 고생 심했겠구나. 일단 쉬어. 이봐, 얘 데리고 선실에 눕혀.]

[허 참, 용사라니······ 세상에 나도는 헛소문 중에 제일 흔한 부류군. 게다가 이런 참사를 일으켰다? 말이 되지 않는가.]

[나도 저 꼬맹이한테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하고 싶었는데, 자칭 용사는 보통 미친 놈이거나 확 돌아버린 놈이 태반이죠. 물론 가아끔 진짜가 나타날 때도 있긴 하지만······.]

[이번 건은 절대 아니겠지.]


모험가 길드 소속 인원 두 명이서 서로 대화를 나눈 뒤, 동시에 랑키를 돌아보았다.


[자네 생각은······.]

[이봐, 아가씨. 아가씨는······.]

[······표정 보니 뭔가 아는 모양이로군.]

[그리고, 저런 식으로 행동하면 우리한텐 절대 정보 말 안해주겠죠. 뭔가 비밀이랑 얽혀 있고, 급하게 어디로 가야한다는 식으로······.]

[······지금 당장, 당장 코랄로 가야 합니다. 지금 당장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보통 이러더라.]

[뭐라도 이야기를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네.]

[아뇨, 여러분들에게 설명하면 너무 시간이 걸리고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아무것도 못 합니다. 오직 그 분만이 이 문제를 해결해주실 겁니다.]

[대체 누구?]

[제가 찾는 분입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누구길래 그러는지······.]

[우, 연금술사 우. 그 분께 가야 합니다.]


랑키의 말을 듣자, 두 사람은 서로를 돌아보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어······ 그 소문의 괴짜? 그 사람이 뭔가 엄청나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런 헛소리같은 상황을 해결해 준다고?]

[그러고 보니, 자네 그 페니카 쪽에 머물렀다고 했었지. 거기서 용사 비슷한 뜨내기랑 얽혔다는 소식도 있고, 그걸 그 자가 어떻게 했다는 소리도 있던데······.]

[······뭐,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 아가씨 표정으론 우리 말 절대 안 들을 것 같군요.]

[좋네. 띄울 수만 있으면 비공정 당장 띄워서 인근 지부에 현장 소식 전달하고, 이걸로 코랄로 직행하도록 하지.]

[스으으읍, 판셀로 가야 하는데 이런 엿같은 건수에 걸리면 나도 가야할 것 같은데.]


그 이상은 봐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한 일우는 팔찌의 재생을 멈추고 팔짱을 꼈다.

뭐든지 해결해주리라 믿고 찾아온 랑키의 태도 때문이 아니라, 영상에서 본 참극이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지?”

[정보 수집 중. 매직 스트림 내 데이터 대조 개시.]

“문제는 내가 이걸 지구에서 봤다는 거고, 그러면 게임에서 구현한 거야. 대체 어느 게임이지······.”


‘용사’라는 언급이 있었다면 분명 스탈리스에 온 네 명중 한 명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거기까지 떠올린 일우는 천천히 이 곳에 처음 왔을 때의 대화들을 짚어보기 시작했다.


‘글로리어스? CIS? 아니 FTW에서 그게 뭔 말이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린 순간, 일우는 혀를 찼다.


“생각났다. FTW였어.”


작가의말

저는 여러분들에게 판타지 장르 네명과 FPS 한명을 보여드렸습니다.

하지만 판타지 네명이 다 정통판타지나 막 영웅이 정의롭게 활약하는 그런 장르라고 말씀드린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구한다는 뜻이 ‘사는 사람들을 구한다!’라는 의미만 해당되지 않습니다.


걱정마세요. 주인공이 되갚아주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다만 조지는데 명분이 하나 더 붙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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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16. 네가 거기서 왜 나와 [1] +5 21.08.06 1,331 54 12쪽
94 ?. 강렬한 흔적을 따라서 +4 21.08.05 1,374 55 15쪽
93 15. 꿀 대신 물이 흐르는 지하낙원 [8] +5 21.08.04 1,356 52 12쪽
92 15. 꿀 대신 물이 흐르는 지하낙원 [7] +7 21.08.03 1,341 4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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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15. 꿀 대신 물이 흐르는 지하낙원 [5] +8 21.07.30 1,457 5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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