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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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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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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작성
21.07.30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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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글자
10쪽

15. 꿀 대신 물이 흐르는 지하낙원 [5]

DUMMY

‘연금술사 우’가 대중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조형물이 무너지자 여론이 술렁댄다.

당연하게도, 소문을 듣고 찾아온 지 얼마 안 되는 자들 사이에서 그런 말들이 오갔다.


“그렇게 무너질 리가 없다고 했으면서······.”

“뭔가 좀 그랬어. 세상에 그런 게 말이나 되냐고.”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다. 선동당해 몰려온 이들은 이리저리 휩쓸리기 쉽고, 거대한 조형물이 박살나는 건 그들이 꼬여든 원인이 흔들릴 빌미를 제공하니 말이다.

물론 일우는 이 흐름도 충분히 예상했고, 그런 이들 또한 계획의 일부다.

일우가 원한 상황은 만인을 포용하고 모두를 구원하는 게 결코 아니었다. 애초에 계획부터가 개방적이어선 안 된다.

적당히 외부와 거리를 두고, 배타적이면서, 그러면서 개방적인 공간이라는 착각을 가질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원했다.

참으로 모순적인 조건이지만, 그런 분위기의 사회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보아라! 순수한 우리의 열정을 방해하는 음해세력의 존재를! 세상 바깥에 널리 알릴 우리의 행동을 시샘하는 자들을!]


바로 사회를 무너뜨리는 적이 존재하는 상황이다.

적이 있다면 사회를 지키기 위해 낯설고 의심되는 것을 경계하기 마련이고, 아무리 개방적인 사회를 지향하더라도 타인을 배척하는 흐름을 띄기 마련이다.

누가 적인지 모르니 말이다.

그것도 있지도 않은 적을 만들어 둔다면, 나타나지 않는 적을 경계하고자 끊임없이 의심할 것이다.

혹은, 실제로 그런 적이 어딘가에서 생겨나거나.


[질투가 우리의 평화로운 소망을 앗아갔다! 우리는 그들을 정복하려는 것도 아닌데!]

“맞돠아아아아!”

“우리는 그냥 일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방해하지 망!”

“우우우우---!”

[자, 진정!]


‘연금술사 우’는 흥분하려는 대중을 진정시킨 뒤, 대중들의 흥분을 끌어 모아 스스로 흥분했다.


[그래, 뜻만으로는 아무것도 못한다. 평화롭게 나무 조형물이나 세우려고 했던 게 잘못이야! 그래, 내 탓이다! 저놈들이 박살내기 쉽도록 아예 대놓고 그런 걸 만들자고 했으니까!]


있지도 않은 적들에게 분노를 터뜨린 ‘연금술사 우’는 단상을 격하게 내리치며 없는 적들과 싸워나갈 것을 선포하듯 외쳤다.


[내가 우습냐 이새끼들아!! 좋다! 이번 계기를 통해, 나는 코볼트들에게 약속했던 지하 낙원을 만들 결심을 세웠다!]

“와아아아앙!”

“낙원!”

[허나 그것은 단순한 낙원이 아니다. 힘을 만들고, 모으고, 힘이 될! 힘 그 자체를 세울 것이다!]


그 말과 함께 일우는 얼마 전에 조형물이 쓰러지며 불탄 농장 폐허 쪽을 가리켰다.


[보라! 저 광경을! 우리의 적이 평화와 공존을 위해! 세계에 우리의 소망을 위해 만들던 상징물을 더러운 개수작으로 무너뜨린 저 치욕스러운 광경을!]

“되갚아주자! 복수하자!”

“누군쥐 모르겠쥐만 각오해롸!”

“이이이잉!”

[정체조차 알 수 없다. 코랄에서 우리를 시샘하는 자인지, 대륙 본토에서 우리가 일어나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자인지! 혹은 그냥 재미 삼아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온갖 추측을 뿌려 각자에게 저마다의 적을 만든 일우는 다시 한 번 불탄 농장 쪽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들이 무너뜨린 저 흔적에서 우린 다시 일어나리라! 너희에게 약속했던 그 낙원을! 조형물을 쓰러뜨려도 우리는 상관없다는 듯 땅을 파서! 만들어낼 것이다!!]


적에게 당한 곳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건 좋은 핑계다. 애초에 저곳이야말로 일우의 진짜 목표지만 그 누구도 일우의 생각을 알 리 없다.

여기까지 오는데 그가 벌인 일은 수상쩍은 연구소 바닥을 파내려가는 것이 목적이라고 여길 수가 불가능한 규모였으니까.


[그리고 그 낙원은 너희들의 힘이 되어 줄 것이고, 너희들에게 힘을 줄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낙원이니까!!]

“돠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앙!”

“낙원! 낙원! 낙원!”


그리고 아무것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그저 ‘연금술사 우’의 말에 환호할 뿐이다.

잠시 후, 농장의 비공정 격납고에서 셀반과 마주한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

“뭐 그리 죽상이야? 웃으라고. 새 출발. 새로운 마음가짐. 그리고 새출발할때 인상 쓰면 안 좋아.”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아무래도 ‘연금술사 우’의 연설을 본 모양이었다. 정황상 별로 쓸모 없는 행동이라 판단한 셀반은 일우를 매섭게 바라보았지만, 그에게 말할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내 연구에선 그 검은 물은 조금이라도 땅에 스며들면 치명적이야. 네가 키우던 게 식물이니, 가급적 깊은 곳을 파서 그 흔적을 지워나가야겠지.”

“······.”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곤란해. 뿌리 조각마저도 확실하게 찾아내고 파헤쳐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재생의 여지마저 없앨 거야.”

“······내 연구에선 그런 재생능력은 없었는데.”

“그게 무서운 거야. 이세계의 지식은 우리 예상이나 계산 안에만 있지는 않거든.”


셀반의 연구를 다시 한 번 위험한 것이라 정의내린 ‘연금술사 우’는 그 연구가 굉장히 위험하고 폭주할 가능성을 가진 것을 짚었다.

물론 당사자에게 씨알도 안 먹힐 것 같지만, 그가 연구하는 건 미지의 영역이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로 인해 폭주를 해서 식인식물이 될 가능성이나 살아 움직이는 식물로 변이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없다.

그러니 아는 척을 하는 ‘연금술사 우’는 아무 말이나 갖다붙일 수 있었다.


“해봐서 알아. 다행스럽게도 난 그걸 예측하고 완전 폐쇄 가능한 연구실에서만 했지. 그래서 몇 개 날려먹었고 말이야.”

“······엔베리스 산맥에서 날아온 건 그 일 때문이야?”

“아니, 그건 다른 연구. 폐쇄된 연구실은 그보다 더 옛날 일이야. 물론 한 번 깨닫고선 두 번 다신 그쪽 연구는 안 건드리고 있지.”


일우가 처음 ‘연금술사 우’라는 위장신분을 썼을 때 아무렇게나 둘러댄 말들이 벌써 세상에 퍼진 모양이다.

하지만 그건 꼬마를 통해서 퍼뜨린 소문이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또 다른 사연을 덧붙여도 괜찮다.

비밀스러운 일을 하던 셀반에겐 충분히 먹힌 모양인지,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새로운 일을 맡게 된 소감은?”


일우는 그 말을 하며 정박된 비공정 쪽으로 다가갔다.

엔셀 상단이 소유했던 비공정을 인수하여 어딘가에 처박아 둔 일우는 이걸 놀려둘 생각은 없었다. 다만 팔기엔 다소 아까웠다.

그렇기에 셀반을 설득한 것이다. 원래 계획에선 셀반을 그 ‘정체불명의 적 중 하나’로 몰아세우려 했지만, 비공정이라는 변수가 생긴 이상 그를 써먹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전에 아로엔에게 말했듯이, 인적 자원은 중요한 자산이니까.


“평생 할 생각 없어. 당분간만, 이델린과 이곳을 정기적으로 오가는 교역 비공정의 성능 개선이랑 이것저것 내 흥미를 이끌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때까지만이야.”

“일단 그러려면 그 비공정이 이델린까지 한번에 도달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부터 해야 할 걸?”

“그러니까 먼저 와서 하고 있잖아.”


비공정의 전 소유주 카로스는 이 비공정으로 어떻게든 대륙 북부까지 오갔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이 비공정은 일우가 원하는 항로를 오가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아무래도 기존에는 중간 보급지를 경유하는 방법으로 운용했겠지만, 이제는 그 방법을 쓸 수가 없다.

셀반에게 이 일을 맡긴 것은 비공정의 개량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우가 직접 건드릴 수도 있지만 그러면 너무 최첨단 기술이 도입될 것이고, 앞으로 두 번 다시 볼 일 없는 비공정에 그런 일을 하다간 일우의 정체가 유출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적당한 수준의 개량을 하고 남들이 의심하지 않을 사람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다만 여기선 연료를 구할 수 없으니 문제지.”

“걱정 마셔. 내 계획대로면, 뭐 적당한 공급처가 마련될 테니까.”

“대체 저기서 뭘 만들 작정인 거야?”

“말 그대로. 쟤들한테 약속했던 힘을 주는 거지.”


‘힘’을 다시 한 번 언급한 ‘연금술사 우’의 말에 셀반은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저기에 지하수맥이 있다는 건 알고서 저런 일을 하나 모르겠는데.”

“아, 그거? 계획에 포함되어 있어.”

“······지하수가 있는 지역을 파내려간다고?”


그 말에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었다.


“저 낙원엔 꿀 대신 물이 흐르거든. 아주 중요해.”

“대체 무슨 작정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가지만······.”


셀반은 그의 생각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내저어 어포를 꺼내 입에 물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연금술사 우’는 셀반의 손을 쳐 어포를 날려버렸다.


“어허 씁!”

“무슨 짓이야?”

“어디서 어포 따윌 먹으려고.”

“그럼 뭘 먹으라고?”

“고기 먹어, 고기. 앞으로 네가 할 일 중 하나는 여기에 고기를 나르는 일도 포함되니까, 그딴 건 두 번 다시 입에 넣지 마.”


그 말에 셀반은 어이가 없다는 듯 ‘연금술사 우’를 바라보다 이내 그럴 만 하다고 생각했다.

소문상으론 이 괴짜 연금술사는 한 때 고기에 미쳐살았던 이력도 있으니, 어포에 굉장한 불만을 가질 법도 하다.


“나 참. 남의 식단까지 멋대로 간섭하려 드네.”

“당연히 간섭하지. 세상에, 어포를 먹어? 미쳤어? 고기가 있는데 뭐하러 말린 생선 따위를 먹냐고. 돌은 거 아냐?”

“······.”

“단백질이 필요하다면 그런 쉽게 상하는 폐급보단 우수한 고기가 최고야. 육류 최고. 고기 만세.”


그 소문이 사실이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한 셀반은 혀를 차며 자신의 어포를 힐끔 바라봤다.

일우가 돌아가고 나면 주워서 먹을 생각이었다.


“어허 씁.”


하지만 그 생각을 간파하기라도 하듯, ‘연금술사 우’는 그 어포를 자근자근 밟아버렸다.


“어디서 모오오옷된 생각을 해? 어디서 어포를 주워 먹으려 하고 앉았어.”

“······.”


셀반은 잔뜩 얼굴을 구겼고, ‘연금술사 우’는 활짝 웃으며 소매에서 육포 주머니를 꺼냈다.


“자, 널 위해 준비했다. 가짜 단백질은 가라. 여기 진짜 단백질이 왔으니까. 네 취향을 고려해서 일부러 말려서 왔어.”


소문대로 그는 고기에 진심인 자였다.


작가의말

땅 파는게 사실 그의 목적이라고 대놓고 말해도 아무도 안 믿을 겁니다.

예? 저 땅을 파고 내려가기 위해서 코랄 농장의 대분을 조졌다구요?말이 됩니까?

그리고 설정은 디테일입니다. 헤이 돈 잇 어포. 잇 고기. 츄라이츄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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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꿀 대신 물이 흐르는 지하낙원 [5] +8 21.07.30 1,458 5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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