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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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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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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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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9.29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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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9. 증오의 무한동력 [9]

DUMMY

노예 경매장은 잘 알려지지 않은 비밀스러운 공간이 존재한다.

지하 공간 아래의 지하.

일반적인 노예 거래도 좋지 않은 시선들이 가득하지만, 연방국에서는 대외적으로 ‘공정한 노예거래’를 주장한다.

딱히 주변국가에서 연방국의 노예제도를 비난하며 공격하지 않은데엔 노예들이 주로 국가의 테두리에서 굳이 지켜줄 필요가 없는 자들이었던 것도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연방국이 노예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리며 수많은 폐단을 그나마 제거했다는 것 때문이기도 하다.

어차피 노예거래는 영원히 없애지 못하고 탄압할수록 음지에서 이루어지니, 차라리 이걸 수면 위로 올려 나라의 관리감독 하에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런 연방국의 태도가 그럭저럭 먹히는 모양이고, 주변국들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그리고 정의와 공정을 표방하는 국가는 대놓고 으르렁댔고, 비슷하지만 국력이 모자라는 국가는 모른척 할 뿐이다.


“제발, 제발 용서해주십쇼······!”

“으흑, 흑, 흐윽······!”


당연히 표면상의 주장이 연방국의 일치된 뜻은 아니다.

그리고 잘 포장된 얼굴 아래에는 추악함을 품고 있듯, 정당한 대우를 받는 노예 경매장 지하 깊숙한 장소에는 흔히 생각하는 노예 거래장의 전형적인 모습이 펼쳐졌다.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한 채 가축처럼 취급받고,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이라 생각지도 못할 목적으로 거래되는 장소.


“어떻습니까, 학식왕이시여. 딱 적절한 녀석들입니다.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족속이지요.”

“그런 것 같군.”


이 비밀스러운 경매장에 접근하는 이는 제한되어 있다. 이 베릴이라고 하는 상인 역시 이 ‘지하 경매장’에 접근할 수 있는 자들 중 한 명이고, 이런 곳에 다가올 정도의 막강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학식왕’은 뒤룩뒤룩 살이 오른 얼굴을 한 베릴을 빤히 바라본 뒤, 그가 개목걸이를 채운 비루한 몰골의 노예를 힐끔 바라보며 나직하게 말을 걸었다.


“베릴, 네가 연방국에서 노예상을 한 지 몇 년 되었지?”

“연방국에서야······ 10년은 족히 되었습니다.”

“그 전은?”

“얼뜨기 시절부터면······ 한 30년은 됩니다. 정확히는 한 37년이 되겠군요.”

“30년 경력이라.”

“그동안 버틴 게 괜한 게 아닙니다.”


베릴은 ‘학식왕’의 외형을 언급하며 ‘너 같은 젊은 녀석 나이만큼이나 이 짓을 해왔다’라는 언급은 하지 않았다.

어설픈 자들이나 그런 허세를 부릴 수 있을 뿐더러, 베릴은 ‘학식왕 리온’이 엘프의 혈통을 일부 물려받은 걸 알고 있다.

다섯 왕 중 왕위에 오른 것은 40여년이지만, 그들 중에서 나이는 가장 많은 자.

세간에는 선대 ‘학식왕’의 사생아라는 소문도 있고, 3대 이전의 왕의 자식이라는 말도 있다.

중요한 건, 그만한 나이가 있고 세월 동안 쌓인 지혜가 있고, 그런 세월이 쌓은 눈에 보이지 않은 자산이 엄청나게 있는 남자라는 것이다.


‘니미, 제일 까다로운 인간한테 납품하려니 개떡같네’


베릴은 그 생각을 하면서 ‘학식왕’의 눈치를 살폈다.


“연방국의 노예시장은 불안정속의 안정을 추구한다. 남들이 꺼리는 것을 다루지만, 쉽사리 트집잡을 수 없도록 단속을 철저히 하지. 그게 우리의 강점이다.”

“물론입니다요.”

“이런 상태의 노예가 나온다는 건 그 강점을 훼손시키는 것이다만.”

“그러니까 이렇게 ‘처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학식왕’의 말에 베릴은 히죽 웃었다.

이 ‘지하 경매장’은 사악한 수요와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명목 하에 생겨난 공급이 합쳐진 연방국의 가장 어두운 면이다.

사람에게 의식주를 제공하고 건강하게 관리하는 건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고, 그게 아프고 병들고 나약한 자일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든다. 연방국은 그런 자들마저 일꾼으로서 쓸 수 있게끔 보살핀다고 다른 나라들에게 주장한다.

실제로 그런 식으로 노예를 다루지만 수지타산에 맞지 않은 이들도 존재하는 법이고, 그런 이들은 어느 새 사라진다.

당연히 이웃 국가에서 그런 문제를 따지기도 하지만, 연방국은 항상 똑같이 대답한다.


‘최선은 다했습니다만 올 때부터 상태가 너무 안 좋았습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이들이 바로 지하 경매장에 와서, 가축과 같은 용도로 쓰일 매물로 팔려나간다.

그런 장소에서 ‘학식왕’은 베릴을 빤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어, 어······ 왜 그러십니까요?”

“최근 보고서에 입고된 수치와 출고된 수치의 격차가 나날이 심해진다는 정보가 있었지.”

“어······ 그게 저와 무슨······.”

“원칙 상, 상품으로서 판매가 불가능한 노예는 상품화되도록 관리를 해야 한다. 그게 비용이고, 노예의 가격은 그런 비용을 고려한 선에서 책정되지.”


여기에 온 판매자나 구매자 모두 이 곳의 비밀을 알고서 온 것이고, 설명이 없었지만 분위기나 흐름을 감지한 매물들 역시 알고 있다.

그런 와중에 대외적으로 주장하는 번지르르한 말을 꺼내자, 베릴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하하······ 뭐 그렇습죠. 앞으로는 주의를 하겠습니다. 다음에.”

“내 말을 잘못 이해한 모양이군. 지금 나는 책임을 묻는 것이다만.”

“그게 무슨······!”


노예상을 수십년 동안 해먹기 위해선 직감이라는 게 필요하다.

그 직감이 베릴의 머리를 강렬하게 후려쳤다.


“······설마!”

“변명은 듣지 않는다. 이미 모든 건 조사가 끝났으니까.”

“자, 잠깐······ 잠깐 기다려 주십시요! 설명 다 할 수 있습니다요! 이전에 그 문제 때문에 이러시는 겁니까?”


무어라 항변을 하려던 베릴의 모습을 보던 ‘학식왕’은 무언가를 내밀었고, 거기에서 불길한 힘이 뿜어져 나와 베릴의 생명력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자신들을 개미처럼 다루던 노예상 베릴이 알 수 없는 무언가에 고통스러워하며 생명력이 빠져나가는 걸 보던 노예들은 벌벌 떨어댔다.

잠시 후, 생명력이 소실된 베릴의 몸뚱이가 바닥에 엎어졌고, ‘학식왕왕’은 내밀었던 물건을 갈무리한 뒤 부하들을 향해 나지막하게 말했다.


“노예거래장 공고에 명시해두도록. 노예상 베릴은 노예 관리법규를 위반한 자를 단속하여 본보기로 처형하였다고.”

“알겠습니다.”


이후 ‘학식왕’은 자신들을 향해 닥쳐올 운명을 직감하고 벌벌 떨고 있던 노예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은 저 자를 따라간다. 너희들을 배불리 먹이고 치료한 후, 정당한 절차에 따라 노예로서 매각될 것이다.”


그 말을 듣자, 노예들은 팔려나간다는 말이 그렇게나 반가울 수 없다는 듯 반응했다.


“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 경매장의 용도는 인간 미만의 과거를 가진 자에게 인간 미만의 대우를 해주는 것 뿐이다. 너희들에겐 어울리지 않는 장소다.”


노예가 된 것도 서러울 판이지만, 눈앞에서 끔찍하게 죽어버린 자를 본 이상 살아서 나갈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 할 판이다.


“운이 좋다면, 재주가 있는 이는 날 위해 봉사할 것이다. 그럴 뜻이 있는 자라면 말이지.”

“노, 노력하겠습니다!”

“데려가도록.”


살아남았다는 안도 속에서 노예들이 인솔되어 다른 장소로 향했고, ‘학식왕’의 곁에 남아있던 수하가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어떻습니까, 폐하.”

“예상대로다. 잘 먹고 기름을 채운 자에게 추출한 생명력이 훨씬 풍부하군.”

“법칙을 속이더라도 대전제를 어길 순 없는 법입니다.”

“좋은 결과는 좋은 재료에서 나오는 법이지.”

“선택해주신 결과로 인해 저희들에겐 명분과 새싹, 그리고 긴요한 시험 결과가 생겼습니다.”

“더불어 배신자를 효과적으로 처리하기도 했지.


당연하게도, ‘학식왕’이 베릴을 처리한 건 그가 저지른 행동이 도를 넘었기 때문이다. 노예 거래 관련은 단순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저 살아남은 노예들에겐 중요하고, 정상적으로 팔려나간다면 어떻게든 소문이 날 것이다.

실제로 지하 노예 경매장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만한 대접을 받아 마땅한 자들을 위한 장소라고.

장소를 숨기고 소문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없으니, ‘학식왕’은 다른 소문을 퍼뜨려 이 장소를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다.

물론 그 소문을 조금 전의 모든 노예가 퍼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실험의 신뢰도를 높이려면 반복과 대조가 필수다. 골라내도록.”

“이미 정해뒀고, 따로 빼낼 예정입니다.”

“좋다.”


‘연금술사 우’가 준 이 장치를 정확히 쓰기 위해선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했고, 살아 있는 자들에게서 얼마나 힘을 뽑아내는지에 대한 실험도 필요하다.

‘학식왕’은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를 철저히 완수하고자 했다.


“무가치한 것에서 가치를 창출한다면, 가치있는 것에선 더한 가치를 뽑아내는 법이지.”

“그리고, 모든 힘에서 사람의 생명은 무엇보다 강대한 원천이기도 합니다.”

“마침 우리에겐 쓸모는 없지만 원천이 될 자들이 넘쳐난다. 우리의 자산을 충분히 활용하지 않으면,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이유가 없지.”


그 말을 남기고 ‘학식왕’이 자리를 벗어났다.

천장 구석의 틈새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민영은 눈으로 확인한 상황을 되짚으며 중얼거렸다.


“······정보대로 뭔가 수상한 걸 쓰고 있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어글리 잭’의 목소리가 들리자, 민영은 숨겨두었던 지팡이를 슬쩍 꺼내 거기에 으르렁댔다.


“······가서 말해줄 거니까 기다리라고 했지?”

[그, 그렇지만 이럴 때 쓰라고 제가 이 기능을 찾아낸 거잖습니까.]

“내가 너한테 왜 보고를 해?”


‘연금술사 우’가 준 지팡이는 어글리 잭을 통해 몇 가지 기능이 더 있다는 것이 파악되었다.

그 중 하나가 통신기능으로, 어글리 잭은 뭔가 수를 써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법도구와 지팡이를 연결시켰다.

물론 실제로는 일우가 다 계획해둔 것이지만 말이다.

그 진실을 알 리 없는 민영은 미간을 좁히며 지팡이를 집어넣을까 했지만, 조금 전의 광경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뭔가 이상한 도구를 내밀었더니 돼지가 죽었다.”

[설마······ 생명력을 빼앗은 겁니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혹시 그런 도구가 있어?”

[있긴 합니다만 그런건 엄연히 불법인데다······.]

“이런 인간들이 불법 합법 따지면서 살진 않잖아. 거기다, 일단 그녀석들 왕이잖아? 왕이면 법 따윈 맘대로 만드는 자들이잖아.”

[그게 아니라 톨라나 다른 마도국가에서······.]

“그러니까 이런데서 몰래 하고 있겠지.”


민영의 투덜거림에 잭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어······ 설마 지금 공격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러고는 싶어. 하지만 네가 그러면 안된다고 했잖아.”

[예에, 아직 그 변신이라는 거의 구체적인 과정이라던가 제어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확인이 안 되었으니 지금은 위험······.]

“······닥쳐. 변신이라는 표현 쓰지마.”

[변신이잖습니까? 그 미친 연금술사도 그랬고······.]

“시끄러워.”


영락없이 만화에 나오는 마법소녀 꼴이지만, 민영은 끝끝내 그 현실을 부정하며 눈앞의 문제로 돌아갔다.


“일단 힘을 모으고 있다는 걸 확인했으니, 그걸로 뭘 하는지를 알아야 해. 알아볼 수 있어?”

[예, 알아보고 있습니다.]

“빨리 알아볼수록 좋아. 시간 주면 점점 힘이 쌓일 거고, 그럴수록 저 녀석들 목적을 방해하기 어려워질 테니까.”


어느 새 민영의 말에는 ‘죽인다’나 ‘없애버린다’라는 목적이 사라져 있었지만, 그녀는 그 점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작가의말

어느새 점점 악당 포지션이 되어가는 다섯 왕 쪽과 점점 마법소녀화가 진행되는 용사 세력이었습니다.

이래서 수상한 사람이 주는 물건 막 쓰고 그러면 안되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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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19. 증오의 무한동력 [11] +6 21.10.01 411 19 12쪽
132 19. 증오의 무한동력 [10] +3 21.09.30 414 19 18쪽
» 19. 증오의 무한동력 [9] +2 21.09.29 450 23 12쪽
130 19. 증오의 무한동력 [8] +1 21.09.28 470 21 17쪽
129 19. 증오의 무한동력 [7] +1 21.09.27 510 22 15쪽
128 19. 증오의 무한동력 [6] +2 21.09.24 576 21 12쪽
127 19. 증오의 무한동력 [5] +5 21.09.23 621 26 17쪽
126 19. 증오의 무한동력 [4] +5 21.09.17 671 22 12쪽
125 19. 증오의 무한동력 [3] +2 21.09.13 755 34 12쪽
124 19. 증오의 무한동력 [2] +7 21.09.11 700 37 16쪽
123 19. 증오의 무한동력 [1] +2 21.09.10 753 29 19쪽
122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10] +3 21.09.08 809 35 18쪽
121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9] +2 21.09.07 764 34 17쪽
120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8] +4 21.09.06 792 30 17쪽
119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7] +1 21.09.04 868 2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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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3] +5 21.08.31 926 37 20쪽
114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2] +9 21.08.28 992 44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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