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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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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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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6,637

작성
21.08.25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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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22쪽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9]

DUMMY

스탈리스 대륙의 노예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날 때부터 노예인 경우를 빼면 보통 나라의 백성이 자신의 자유를 팔아서 노예가 되거나, 노예사냥꾼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다.

올베린과 같은 몇몇 나라를 뺀 대부분의 나라에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땅에 정확히 몇 명의 사람이 사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오지나 험지에 사는 종족들을 나라에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점령했지만 행정력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이들은 백성으로서 나라에 바쳐야 하는 세금도 내지 않고 의무도 이행하지 않지만, 반대로 나라에서도 그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백성으로 평생 살아가기도 하지만, 운 없는 이들은 노예사냥꾼에게 노예가 되기도 한다.


“용사라는 단어가 언제부터 저주가 됐지?”

“확실한 건 진짜 용사가 있으면 이 나라부터 불싸질렀다는 거야.”

“불싸질러질 나라에 기름 퍼붓는 게 누군데 그래?”

“낄낄낄······.”


주점 구석 방에 모인 노예사냥꾼 무리들은 실없는 농담을 하며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었다.


“염병, 패 좀 잘 줘봐. 이게 뭐냐고.”

“네 운이지. 카드운도 똥이고, 사냥도 똥······.”

“······사냥 이야기 꺼내지 마라. 레이즈.”

“뭔 일인데 그래? 킵.”

“한몫 거하게 잡으려던 사냥 조진 녀석의 전형적인 행동이지. 술독에 처박힌다. 레이즈 리버스.”

“그거 아냐 새끼들아. 체크.”

“아니면 큰 건수라고 달려들었는데 잡고 나서 왕국군이 우르르 몰려오는 경우라던가? 오더.”

“썅놈이 이 타이밍에 오더를. 콜.”

“병신도 아니고. 이짓거리 몇 년을 하는데 그거 분간도 못하냐. 콜”

“한 탕 했는데 표면상으론 ‘노예 금지’라고 나불대시는 나으리들에게 상납금으로 뜯겼다. 오버롤.”


대부분의 국가에서 노예가 허용되고 노예사냥꾼이 돌아다녀도 아무런 제제가 없는 건, 노예사냥꾼들은 각 나라가 백성으로 인지하지 못한 이들을 노리기 때문이다.

망국의 난민,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유랑민, 나라에 그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이들. 그 외 범죄자나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는 이들.

내버려두었다 강도나 도적떼로 변질되기 쉬운 이들이고, 오히려 적지 않은 나라들은 이 노예사냥꾼의 존재를 퍽 반기는 편이다. 굳이 군사력을 동원해서 소탕하거나 들쑤셔야 할 무리들을 알아서 제거해주니 말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찌르면 꽤 짭짤한 부가 수익이 나오기도 하니까.


“차라리 그거면 속이나 편하겠다.”

“말을 하라고, 말을. 벙어리새끼도 아니고 네 속사정을 우리가 뭔 수로 알아?”

“후우······ 니들 루티스 쌍욕 중에 제일 심한 게 뭔지는 알지?”

“알지. ‘가죽 뜯어서 털옷 만들어다 내다 팔 놈아!’.”


털이 북슬북슬하게 나고 머리에 뿔이 비죽 솟아나 있고, 두 다리가 초식 짐승의 것과 유사한 종족, 루티스는 대륙에서 꽤 많은 수를 자랑하지만 자유민으로 만나긴 꽤 어려운 종족이다.

대부분의 루티스는 지하 동굴이나 각종 오지에서 살아가고, 왕국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나지 않고 숨어 살기 때문이다.

노예사냥꾼 중 한 명이 매우 우울한 표정을 하며 술병을 기울였다.


“······그 짓거릴 실제로 한 놈이 있나봐.”

“농담도. 아무리 뿔 난 짐승이라도 걔들도 사람인데 사람 가죽을 벗겨?”

“농담 아냐.”

“피바람 몰아치는 복수가 다 그렇지. 가죽을 벗겨낼 정도의 복수.”

“씨발 그런 게 아니라고. 전문적으로 가죽일 하던 놈 솜씨였어.”


목격담을 꺼내는 남자의 말에 테이블에 둘러앉은 다른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튼실한 다리 덕에 루티스는 농장 노역자로서 매우 환영받는데, 촌락을 발견하면 그야말로 떼돈을 벌기에 노예사냥꾼들에게 루티스는 기본 상식에 가까운 종족이다.

그리고, 노예사냥꾼들은 결코 노예를 해치지 않는다. 그들은 멀쩡히 살아 있어야 돈이 되고, 죽이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사람을 사냥하는 건 익숙하지만, 사람을 도살하는 건 그들의 전문분야가 아니다.


“야, 세상에 네 발로 걸어다니는 짐승이 널리고 깔렸는데 그런 소름끼치는 가죽을 누가 원해?”

“나도 그 생각 하려고 했는데, 뿔까지 뽑아다 놓은 걸 봐선 진짜로 미친놈이 사람을 가죽 가공을 벌였어.”


그 때의 기억을 떠올리던 남자는 다시 술병을 들어 내용물을 뱃속에 쏟아 넣으며 불쾌한 기억을 털어냈다.


“염병, 그 때 딱 두 녀석 찾았어. 꼬맹이 둘.”

“루티스 꼬마 둘이면 푼돈이네.”

“염병. 그거 보고서 걔들 팔아치울 생각이 난 줄 알아? 저주받는 기분이었다고. 거기다 걔들이 뭐라고 한 줄 알아?”

“뭔데?”

“용사래. 용사가 나타나서 자기네들을 싹 쓸어버리고 그 짓을 했다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다른 이들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농담도 잘하셔.”

“주변에 나도는 소문에 맞춰서 개뻥 만드신 거 자알 들었수다. 한몫 잡은 돈 풀라는 소리 안 할 테니까 다음부턴 그런 구라는 치지 말자.”

“······새끼들아, 구라같아? 내가 그 꼬맹이들을 다른 부락에다 그냥 고스란히 맡기고 왔을 정도였는데 구라같아? 애새끼들 맡기면서 전부 뜨라고 했다고”

“세상에, 진짠가 보네.”


노예사냥꾼들은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진 순박한 여행자나 보부상, 혹은 모험가로 자신을 위장한다. 그렇게 오지 사람들과 친교를 다지며 그들의 정보를 파악한 뒤, 도주로를 사전에 차단하고 사냥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공들여 부락의 정보를 파악했지만, 가끔 그들을 붙잡지 않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감당 못할 정도의 사냥을 해서 전부 못 끌고 갈 경우. 혹은, 엄청난 위협이 출몰했을 경우.

흔치는 않아도 드물지는 않은 일이고, 먹잇감을 살려야 자신들에게 더 큰 이익이 찾아온다는 걸 경험으로 아는 노예사냥꾼들은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했다.

문제는 지금 하는 이야기와 연방국 내에서 나도는 소문의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 가죽공예 하는 미치광이가 이 동네에 나돌아 다니는 살덩어리 제조 용사다?”

“엔실로스에서 사람 가죽 징하게 갖고 놀았으니, 이젠 살 갖고 놀겠다 그거지. 염병.”

“와······ 존나 무섭네. 에잇 크라운.”


소름 끼치는 경험담이 나오고 있지만, 중요한 건 여긴 도박 테이블이라는 것이다.

남자의 경험담을 한 귀로 듣고 흘려넘긴 누군가는 테이블의 자신의 패를 드러냈고, 다른 이들 모두 조금 전에 들었던 이야기보다 격한 반응을 보였다.


“이런 썅.”

“니미, 가죽이고 살덩어리고 나발이고 이딴 패가 왜 나와?”

“아, 제기랄! 재수없는 소리들 하니 천하의 개쌍놈패가 떴잖아! 아 내 돈!”

“낄낄낄······ 님들이 재수 없는 소문에 정신 팔릴 때 난 내 패만 봤거든요.”

“씨발, 그래 너 다 해쳐먹어라.”

“개새끼. 이번 반 년치 성적 1등이면 좀 카드판에서 약해져라.”

“아무래도 내 운은 존나 좋은가봅니다요, 님들아.”


불길한 소리를 깡그리 무시한 결과, 남자는 카드 테이블의 돈을 싹 쓸어가게 되었다.

다른 이들의 눈길이 영 곱지 않자, 승자는 히죽 웃으며 소리를 높였다.


“어이! 여기 머릿수대로 최고로 비싼 거 들고 와! 아가리에 고급진 술이라도 박아둬야 지랄들을 안하지.”

“거 고오오오오맙수다. 우리 돈으로 산 술 자아아알 먹겠수.”

“쏘지 마?”

“말이 그렇다는 거지. 난 엘로스 99!”

“코랄의 눈물로!”

“화이트필드 있으면 그걸로 갖고 와.”


노예사냥꾼은 연방국 내 주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고객이고, 1년에 두 번씩 벌어지는 노예사냥 철이 끝난 지금 같은 시기엔 엄청 중요한 고객이다.

그런 중요한 고객이 소리 높여 주문을 불렀는데도 특실 너머에선 별다른 대답이 없었다.


“······야, 바텐더. 주문 안 받아?”

“이것들이 사냥꾼들 몰려온다고 어지간한 주문은 와서 하라고 베짱장사질이라도 하나······.”

“야, 여기서 제일 똥패 너였지? 주문 네가 하고 와.”

“씨발, 이번 판 네가 섞은 거 아냐?”

“너였잖아. 똥패에 똥손에 감도 개똥이네.”

“썅, 내가 섞었구나. 아 씨, 손목 자르고 온다.”


패가 가장 밑바닥인 남자는 어기적대며 자리에서 일어나 특실 밖으로 나섰다.

하지만 특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비명을 질렀다.


“니미! 이건 또 뭐야? 왜 다들 뒈져있어?!”

“······썅!”


그 말을 듣자마자 노예사냥꾼들은 테이블을 박차고 벌떡 일어났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항상 계략만으로 다 되지 않고, 저항하는 이들과 싸울 일도 생기는 법이다.

직감적으로 칼을 들고 나서야 할 상황이라는 걸 깨달은 그들은 사방이 피로 난자된 주점 안에서 멀거니 서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씨발, 이럴 줄 알았다. 언젠가 저런 미친년이 복수랍시고 지랄하면서 쳐들어올 줄 알았다니까?”

“완전 미친거 아냐? 이 새끼야! 조지려면 우리 같은 놈만 치지 여기 손님들은 뭔 죄야?!”

“복수에 미친 년이 다 그렇······ 잠깐, 이거 소문에서 듣지 않았어?”

“씨이이이이이발. 저년 그거구나.”


사방을 피와 살점으로 난도질해버린다는 소문의 그 용사.

상대의 정체가 그것이라고 파악한 노예사냥꾼들은 자신들을 향해 덮쳐드는 기괴한 공격에 맞서 싸우려 했다.


“아아아악! 이 개새······ 으겍!”

“이, 이 씨바, 씨발······ 오지 마!”

“우웨에에에엑!”


하지만 저항도 하지 못하고 모두가 뼈와 살점으로 만들어진 날에 꿰뚫리거나 목이 비틀어졌고, 최후까지 살아있던 한 남자는 도저히 감당 안 되는 상대라는 걸 파악하고 검 끝을 내렸다.


“염병. 이번분기 운빨도 끝이네.”

“······.”

“좃까. 너한테 뒤져줄 것 같아?”


그리고 그 말과 함께 자신의 목을 검으로 찔렀다.

마지막으로 남은 남자가 자살을 하자, 그때까지 말 없이 서 있던 여인은 혀를 찼다.


“쯧. 경험치 덜 들어왔네.”


노예사냥꾼들의 예측대로 상대의 정체는 소문이 무성한 그 용사였다.

노예사냥꾼들의 집결지로 알려진 주점에 들어온 그녀는 특실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차단한 뒤 주점 내의 모든 인물을 제거했고, 막 특실에 있던 자들도 없애려던 찰나 뭔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에 끝까지 들으며 기다렸던 것이다.

그들에게 엿들은 대화를 되짚던 그녀는 미간을 좁히고 작은 큐빅을 꺼내들었다.


“루티스? 그게 뭐지?”

[스탈리스 중남부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종족. 거뭇거뭇한 털가죽과 머리 위에 난 뿔의 외형적 특징.]

“······악마 아니고?”

[성향. 평화 지향적.]


스탈리스 게임 엔진은 대부분 가이드 형식의 시스템을 쓰는데, FTW에서도 ‘로직 큐브’라는 도우미 시스템을 쓴다.

CIS의 스카웃과는 달리 기본적인 정보 제공만을 하지만, 중요한 건 로직 큐브가 언급한 정보가 영 석연찮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지도를 열고 언급한 일이 벌어진 지역을 확인한 그녀는 미간을 좁혔다.


“엔실로스······ 여기면 그 황금 떡칠한 꼬맹이가 간 곳인데.”


여신 누아즈에게 선택받은 용사 중 한 명인 그녀는 그 때 당시를 떠올렸다.

각자 찢어져서 활동하다 시간이 지나면 합류하기로 결정한 네 명은 모두 다른 지역으로 흩어졌는데, 성질 급한 준규는 자기가 갈 지역만 언급하고 알아서 찾아오라는 식으로 대꾸하고 먼저 출발해버렸다.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미쳤다고 거주민들을 공격했겠어?”


문제는 그렇게 준규가 갔던 지역인 엔실로스에서 영 석연찮은 소문이 나돈다는 걸 사냥꾼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이 새끼들은 죽어도 싼 놈들이지만.”


그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주점을 나섰다.

한 마을을 박살내면서 뒤늦게 쿨타임이 걸린 걸 알게 된 그녀는 당분간 레벨을 올리면서 쿨타임을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이 역겨운 나라에서 벌어지는 노예사냥을 방해할 작정으로 주 공급선을 차단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아직 레벨이 충분히 붙은 건 아니었기에 겸사겸사 레벨을 올릴 겸 노예사냥꾼의 중간집결지를 급습해서 쓸어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 주점도 노예사냥꾼들이 주로 모이는 장소라는 걸 알기에 찾아왔던 것이지만, 원래 이렇게 싹 쓸어버릴 작정으로 온 건 아니었다.


‘어, 당신······ 소문으론 죽었다고 들었는데······.’

‘나 미워하는 새끼가 절벽에서 밀었는데 기어 돌아왔다 쳐.’

‘당신 그 미친 용사한테서 죽었다는 소문 다 퍼졌······.’

‘쯧. 이 얼굴도 못 써먹겠네.’

‘컥!’


이전에 없애버린 상대의 외형을 위장하는 ‘페이스 커버링’을 이용해 노예사냥꾼으로 위장해서 들어왔지만, 그녀가 벌인 일이 퍼지는 속도가 더 빠른 모양인지 금방 들통났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 않기 위해 주점 내의 모든 인물을 쓸어버린 것이고, 겸사겸사 새로운 위장용 얼굴을 확보하기 위해 평범한 손님도 전부 없애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런 나라에 살면 다 똑같은 놈이겠지.”


그 말을 중얼거린 그녀는 주점 내에 적당한 사람의 외형을 위장해 빠져나간 뒤, 좀 더 큰 도시 쪽으로 향했다.

며칠 후, 주요 대도시에서 정보를 얻기 좋은 한 주점에서 앞으로의 일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던 그녀는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들이 손님으로 들어온 것을 목격했다.


“하, 그래······?”

“그 용사 나으리가 왔으면 완전 개박살이 났겠지. 여긴 발도장 찍은 적 없수다.”

“쓰읍, 이거 우리 예상이랑 다른데. 여긴 주요 경로고 한 번 정돈 얼굴 내비췄을 거로 봤는데.”

“올베린 기사 나으리가 연금술사 나으리 부하짓 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시구만?”

“시끄러워. 누군 좋아서 이러는 줄 알아? 그리고 그건 어떻게 알았어?”


이 지역과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의 정체는 바로 웰즈와 밀리아렌이다. 두 사람은 나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쑤셔보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정보가 드문 지역의 거점 대도시에서 정보가 잘 모이는 주점에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뒷모습을 훔쳐보는 소문의 당사자는 묵묵히 그의 말을 엿듣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연금술사 나으리는 그 미친 용사랑 아무 상관 없다고 알고 있는데, 댁들이 알아서 뭣하려고 그러슈?”

“그 사람, 우리 엄청 싫어해서 그러나 봐요. 아무런 관심 없는 일에 계속 우리 일 시키는 거 봐선······.”

“댁들이 싫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일부러 손에 더러운 거 안 묻히게 하려고 그러는 거 같소만.”

“뭔 소리래.”


주점의 주인장이 꺼낸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내어준 잔을 받아들었다.

정보료 겸 술값으로 꽤 많은 액수가 건네지자, 주점 주인은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르며 말을 이어갔다.


“이 짓거리 하면 딱 보이거든. 댁들은 이 나라에서 굴러먹을 인간도 아니고, 쓸 만한 정보 얻을 재주도 없어.”

“참 친절하시네요오. 건배.”

“······건배 할 여유가 나오디?”

“알 게 뭐야. 그 이상한 아저씨 우리 놀려먹으려고 작정했는데.”

“그 양반은 우리 왕들이랑 뭔가 새로운 거 하시느라 매우 바쁘신 것 같소만.”

“뭐 그 인간이 평소에 하던 짓이지. 어디 가서 뭔가 벌인다.”

“아, 그건 나도 대충은 들었소.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라서 그렇지.”

“······개중에 몇 개는 진짜야. 우리가 그 경험자고.”

“허! 웃기는 소리구만. 코랄에서 노예 해방했다는 게 사실이라고? 그런 인간이 노예 결투장은 왜 손대나 몰라.”


주점 주인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뒤, 주점 주인을 향해 잔을 내밀었다.


“우리 취했나봐. 딱 한 잔 마셨는데.”

“아니, 멀쩡하니 이런 소리가 들리는 거야. 더 마셔야 할 때야.”


주점 주인은 말없이 술잔을 따라준 뒤, 자신의 잔에도 술을 채워 넣었다.


“노예 결투 같은 건······ 뭐 내가 꼬맹이였을 때도 없어진 지 한참 되었다는 거니 나도 좀 그렇소이다. 헌데 그게 다시 만들어지고 있지.”

“에이 설마.”

“그런 거 벌이면 다른 나라에서 뭐라고 안 하나.”

“그래서, 고급 손님만 받는 특별한 결투장이 될 거라고 하더이다. 1등 빼면 전부 최고급 우량 노예가 되는 거니, 그런 녀석들 돈 주고 살 사람만 받아들이겠다 그거지.”

“······그 양반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노예 거래만 해도 속이 뒤틀리는데.”

“설마 거기에 손님들 다 받아서 터뜨리려고 그러나?”

“설마 그럴 리가 있겠어?”


두 사람이 근거 없는 말들을 하는 와중, 주점 주인은 잔을 다시 채워주며 히죽 웃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댁들이 찾아올 걸 그 나으리는 이미 안다는 거지.”

“······그래서?”

“나한테 미리 와서 두둑---하게 돈 얹어주면서 말 하더이다. 댁들 하는 꼬락서니가 영 마음에 안 드니, 당분간 여기서 나랑 말벗이나 하면서 놀고나 있으라고.”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뒤, 이내 주점 주인이 새롭게 채워준 잔을 내려다보며 투덜댔다.


“어쩐지 우리한테 잘해주더라. 다른 동네에선 다 비웃던데.”

“연방국 주점은 다 외지인 차별한다고 생각했는데.”

“다아, 돈의 힘이지 않겠수? 거기서 벌어질 온갖 구역질나는 짓거리에서 눈 돌리고 취하기나 하슈.”

“쓰으으으읍. 미치겠네 진짜.”

“아, 몰라아. 더 이상 조사고 뭐고 안 하고 싶어. 그냥 우리 보고 놀라고 했으니까 나도 여기 가만히 있을래.”

“자알 생각하셨수다. 그나저나 이 나라도 선을 넘는 일이 많아서 걱정이 드는구만.”


의욕을 잃어버린 올베린의 두 기사가 여기에 머무르기로 결심하자, 주점 주인은 이 나라의 불길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 구석에서 홀로 앉아있던 여인이 슬쩍 탁자 위에 돈을 올려두고 주점을 빠져나가자,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딱 이틀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혀 신경 쓸 이유가 없는 손님이었지만, 누군가가 찾아온 이후 주점 주인의 신경을 매우 거슬리게 만드는 존재였다.


‘오늘부로 이 주점은 내가 산다.’

‘뭔 개소리요?’

‘금괴가 하나, 둘, 셋, 넷······아무튼 여러 개면 개소리가 아니게 되지.’

‘예 주인님.’

‘이래서 이 동네 마음에 들어. 돈이면 뭐든 다 돼.’


갑자기 나타나 금괴를 던져주며 이 주점을 사들인 자, ‘연금술사 우’는 주점 주인에게 특별한 요구를 해왔다.


‘자아, 내가 주인이라고 달라질 건 없어. 하지만 특별한 요구사항만 해결해주면 돼.’

‘어, 뭐, 뭡니까?’

‘며칠 있으면 올베린에서 공수해 온 내 졸개들이 여기 빌빌대면서 올 거야. 걔들이랑 놀아주고, 그냥 여기 안 떠나게 붙들고 있어.’

‘어······ 그거면 됩니까?’

‘응. 어차피 걔들 무능력한데 죽으면 나한테 지랄할 사람이 있거든. 그건 좀 귀찮아 질 것 같아. 게다가 걔들은 샌님들이라서 내 본격적인 노예 결투장 같은걸 보면 지랄들을 할 거란 말이야. 그러니 여기 박아두게.’


‘연금술사 우’의 괴상한 지시에 주점 주인은 편한 일로 금괴를 얻었다고 좋아했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한순간이었다.


‘아, 한 가지 더.’

‘어······ 뭡니까?’

‘요즘 소문에 나도는 그 용사랍시고 사람 쳐 죽이는 미친 년 있지? 조만간 여기 올 것 같아.’

‘예에? 그, 그······ 가는 주점마다 사람 쳐 죽이는 미친년이요?!’

‘혼자서 말없이 술 먹는 여자 보이면 일단 걔라고 생각해. 그리고 절대 걔가 용사다 뭐다 아가리 털지 마. 들키면 넌 죽어.’


순간 핏기가 싹 가신 주점 주인은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고, ‘연금술사 우’는 손가락을 들어 까딱였다.


‘자, 네가 살 방법을 알려주마. 여기서 붙들고 있으라는 녀석들에게 내 욕을 해. 내가 벌이는 새로운 사업이 도를 넘었고 나쁜 짓이라고 욕을 해. 아마 걔들도 동조를 할 거야.’

‘······무슨 말인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뎁쇼.’

‘그 욕을 들으면 미친년이 나한테 올 거야. 너 같은 잔챙이 조지는 것보단 날 쳐 죽여야겠다, 그런 생각이 들겠지. 못하더라도 내가 벌일 일을 갈아엎거나.’

‘어······ 그게 무슨 도움이 되신다고 그러십니까?’


소문의 그 미친 용사를 자신에게 끌어들이려는 ‘연금술사 우’의 행동이 도무지 이해가지 않았지만, 이후에 이어진 그의 말은 나름 납득할 근거가 되었다.


‘새 사업이 방해받는 것보다 올베린 애들이 그 미치광이랑 싸우는 게 더 골치 아프거든. 걔들은 올베린 공주님의 친구란 말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니?’

‘아······.’

‘그것만 알아둬. 개 둘이 말려서 다치면, 올베린에서 군대 끌고와서 이 주점부터 불태울 거라고. 이 나라 사정 알지?’


실제로 그 정도의 위명이 없는 두 사람이지만, 사방에서 쳐들어올 명분을 만들고 싶어 안달인 나라에서 그 명분을 만들고 싶지 않은 주점 주인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분란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전쟁인 법이니 말이다.


‘그리고, 너희네 왕들이 알면 더 꼬이는 것도 이해하지?’


한층 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인 주점 주인의 반응에 ‘연금술사 우’는 히죽 웃었다.


‘그 양반들 수 틀리면 사람 쳐죽여서 해결하는 방식이던데, 살고 싶으면 아가리 간수 잘 하라고. 하하하하!’


마지막으로 그 말을 남기고 떠난 ‘연금술사 우’의 기억을 억누르려는 듯 주점 주인은 자신의 잔을 들었다.


“자아, 당분간 할 일 없어진 기사 나으리들을 위하여.”

“놀리니?”

“아, 몰라. 위하여.”


작가의말

나라 안에서 미친 인간이 나돌아다녀서 깽판 치는 것보단 아무래도 전쟁 쪽이 더 큰 문제죠.


그리고 금괴는 초면의 상대를 주인님으로 부르게 만드는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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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19. 증오의 무한동력 [10] +3 21.09.30 414 19 18쪽
131 19. 증오의 무한동력 [9] +2 21.09.29 450 23 12쪽
130 19. 증오의 무한동력 [8] +1 21.09.28 471 21 17쪽
129 19. 증오의 무한동력 [7] +1 21.09.27 511 22 15쪽
128 19. 증오의 무한동력 [6] +2 21.09.24 576 21 12쪽
127 19. 증오의 무한동력 [5] +5 21.09.23 622 26 17쪽
126 19. 증오의 무한동력 [4] +5 21.09.17 671 22 12쪽
125 19. 증오의 무한동력 [3] +2 21.09.13 756 34 12쪽
124 19. 증오의 무한동력 [2] +7 21.09.11 701 37 16쪽
123 19. 증오의 무한동력 [1] +2 21.09.10 753 29 19쪽
122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10] +3 21.09.08 810 35 18쪽
121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9] +2 21.09.07 764 34 17쪽
120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8] +4 21.09.06 793 30 17쪽
119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7] +1 21.09.04 868 28 15쪽
118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6] +2 21.09.03 865 29 14쪽
117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5] +5 21.09.02 874 34 16쪽
116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4] +7 21.09.01 863 38 11쪽
115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3] +5 21.08.31 926 37 20쪽
114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2] +9 21.08.28 992 44 15쪽
113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1] +13 21.08.27 1,008 42 14쪽
112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10] +1 21.08.26 1,033 37 18쪽
»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9] +3 21.08.25 1,031 39 22쪽
110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8] +6 21.08.24 1,008 40 18쪽
109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7] +2 21.08.23 1,058 41 14쪽
108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6] +3 21.08.21 1,053 4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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