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papercraft 님의 서재입니다.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papercraft
작품등록일 :
2021.05.17 12:01
최근연재일 :
2021.10.06 12:49
연재수 :
136 회
조회수 :
358,621
추천수 :
9,781
글자수 :
946,637

작성
21.08.26 14:19
조회
1,033
추천
37
글자
18쪽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10]

DUMMY

사람은 자신이 특별한 대접을 받는 것에 민감하다.

타인이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 남보다 자신이 좀 더 귀하고 소중한 자라는 것, 자신이 남들보다 우월하다는 기분을 만끽하는 것.

물론 내키지 않는 이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자신에게 안 어울리는 옷과 같기에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런 옷을 입는 것을 꺼리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이들이라면, 자신에게 그 특별한 옷을 입혀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기대 이상의 반응이로군.”

“왜냐면 남을 부리는 녀석들은 본능적으론 남들 위에 서고자 하는 놈들이니까.”


‘은행왕’은 노예시장의 우수고객들에게 보낸 비밀 서한이 모조리 긍정적인 답변이라는 보고를 받았다. 그 우수고객들은 연방국의 새로운 사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고, 최초로 그 현장에 참석하는 것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심지어 2주 전에 거의 통보하듯 내민 초청장을 거부한 이는 하나도 없을 정도로.

돈을 다루는 재주는 곧 사람을 다루는 것이라 여겨지는 법이나, ‘은행왕’은 자신이 모르는 인간의 일면에 턱을 쓰다듬었다.


“이 특별한 고객들은 모두 자신의 사업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숨만 쉬어도 핏줄이 주는 부를 누리는 자들을 제외하면, 2주 뒤의 예정을 함부로 조정할 수가 없는 이들이지.”

“그래서 반대했었군.”

“그래. 보나마나 대부분의 고객은 참석을 꺼리고, 몇몇 귀족들의 친목회정도의 수준밖에 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런 이들은 실제로 돈이 된다고 보긴 어렵지.”


노예 시장은 의외로 귀족들은 그리 좋은 손님이 아니다. 인간의 수요는 허레허식보단 실질적인 노동력에 투입하고자 하는 이가 절실하고, 귀족들의 허영에 맞춘 까다로운 요구보단 사업가들의 단순하지만 확실한 조건이 충족하기 더 쉽다.

그렇기에 ‘은행왕’은 이 ‘연금술사 우’의 개최 통보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었다.


“남을 부리는 것들은 남들 대가리 위에 올라서 있다는 걸 즐길 기회를 마다하지 않거든.”

“그 정도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내 고객들은 허영심이 자신의 부를 불리는 욕망을 누를 정도는 아니라고 보았다만.”

“그래서 내가 그 초대장 초안에 적어놨지. 그 누구보다 우수한 노예를 확보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의 장이라고.”

“자신을 속인 거다 그거군.”


‘은행왕’의 대답에 ‘연금술사 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심리 별 거 아냐. 자기를 속일 명분만 제공하면 어어 하다 넘어가거든. 자제심이 강해? 그건 취약점을 못 찾은 머저리가 하는 변명이야.”

“어느 면으론 나와 일치하는군.”

“바로 그거야. 그리고, 나와 일치한다면 내가 왜 왔는지 알겠지?”


‘연금술사 우’는 손가락을 까딱였고, ‘은행왕’은 자신의 단독 접견실에 온 이유를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슬슬 정산할 때라고 생각하겠군.”

“전혀 나랑 안 맞잖아. 내가 돈놀이하는 놈으로 보여?”

“그런 차이점은 천천히 좁혀나가도록 하고, 아직 멀었다면 의사표현이 필요한 시점이군.”

“그 놀이터는 너희들이 알아서 굴려.”


그 말을 듣자 ‘은행왕’의 눈매가 미묘하게 가늘어져다.


“완성 직전에 몸을 빼겠다는 건가?”

“자, 돈놀이왕. 몇 가지 알려주지. 첫째, 이미 그 놀이터는 완성되었어. 멋진 장식과 네 우수 고객의 허영심 만족하는 내부 장식 빼곤 기능적으로나 구조적으로나 다 만들었어. 끝!”


하지만 ‘연금술사 우’는 일에서 손을 떼고자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나름의 이유들을 늘여놓았다.


“둘째, 이건 손을 대고 움직여야 움직이는 거야. 반대로 말하면, 갖고 있는 쪽은 계---속 움직여야 한다고. 일이 는단 말이다.”

“그렇긴 하지만, 그 정도도 감당하지 못하리라고 보진 않다만.”

“그리고 매우 중요하고 엄청난 셋째! 나는 일이 많아! 이미 하고 있는 게 몇 개인지 알아? 여기까지 오기 전에 건드린 게 아직 돌아가는 게 하나, 둘, 셋, 매우, 엄청, 무지막지하게, 많아.”


펼친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접던 ‘연금술사 우’는 이내 주먹을 쥐고 허공에 휘저었다. 그의 정보는 대강 알고 있는 ‘은행왕’은 이 자가 수많은 일을 벌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내가 여기 와서 땅 빌리고 탑 세워서 연구하는 대가로 네 친구들에게 약속한 선물도 만들어야 해. 한 명은 당장 달라고 징징대고, 다른 한 명은 안 준다고 찡찡대고! 두 놈은 내가 아직도 믿을 놈이 아니라고 지랄을 하고!”


‘은행왕’도 그건 알고 있었다. ‘산업왕’은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하루라도 빨리 노동 생산성을 놀리는 그 회색 노예를 원했고, ‘문화왕’은 다방면에 쓸 약물을 원했다.

하나만 보더라도 엄청난 일거리지만 ‘연금술사 우’는 그걸 전부 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하면 한시라도 빨리 들여오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다.


“알겠니? 너희 다섯 중 적어도 두 명 이상에게 ‘참 잘했어요’ 동장이라도 안 찍으면 이 관계는 다 물건너 간다고. 그러니, 대표격인 너한테, 저 손 많이 가는 작업장 넘기겠다고 선언한 거다.”

“개인적인 소견으론 네가 여기에 협력했다고 우리 고객에게 알려주고프다만.”

“아! 그건 네 번째군! 공개적으로 내가 거기에 손을 댔다고 선포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상상만으로도 지겹다는 표정을 한 ‘연금술사 우’는 허공에 대고 누군가를 흉내내었다.


“다음 날부터 누가 찾아오겠지. 안녕 나는 어디의 누구, 네 작업에 인상 깊었다. 난 이 나라 최우수 고객이다. 그러니, 해 줘.”

“하긴, 그들이 그냥 지켜보고 감탄할 이는 아니지.”

“알았니? 난 너희들 요구사항 말고도 할 일이 매우 많아. 근데 내 일을 벌늘리려고 작정을 하셨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군.”


설명을 모두 들은 ‘은행왕’은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턱을 괴었다.


“그럼 수익에 대한 분배에 대해······.”

“아, 그건 다섯번째. 만일 내가 운영을 할 거면 배분은 8대 2야. 내가 직접 손을 대면 그 정도는 받아야겠어.”

“그건 좀 무리한 조건이군.”

“그으래? 어차피 그냥 팔 거 배에 배로 얹어서 팔리는 가치창출이 그냥 될 것 같아? 거기에 귀한 고객에게 보여줄 유흥에 대한 값어치는? 그리고 내가 경영할 때 보여줄 나만의, 고유하고 멋지고, 창의적인데다 탄성을 자아내는 구경거리를 만드는 내 노동의 대가가 그렇게 싼 줄 알아? 어?!”


다른 네 가지 이유에선 그리 큰 반응이 없었지만, 이익금의 대부분을 가져가겠다는 말에는 눈에 확 띌 정도의 거부반응이었다.

말 그대로 ‘은행왕’이라는 칭호대로다.


“하지만, 내가 손 떼면 이건 너희들에게 선물로 줄 수 있지. 어차피 내 일 아니면 상관 없고, 나는 돈 많아서 이거 갖고 돈 안 받아도 되거든.”

“좋다. 그러면 우리가 맡아서 하도록 하지.”

“자알 생각했어. 그리고 이제 손 뗄 거니까 나 데려다 놓고 이거하라 저거하라 시키지 말라고.”


‘은행왕’에게 경기장을 넘긴 ‘연금술사 우’는 접견실을 빠져나온 뒤 ‘산업왕’과 ‘문화왕’의 접견실로 향했고, 양 쪽 모두에게 비슷한 말을 퍼부었다.

너희들 만족시키기 위해서 상당히 바쁠 예정이니, 제대로 된 물건 받고 싶으면 당분간 방해하지 말라고.

노예들을 이용해 보여준 시연이 꽤나 인상깊었던 ‘산업왕’은 당연히 인내심을 가지기로 마음먹었고, ‘문화왕’은 작은 불만을 표현했지만 빠른 시일 내에 샘플을 제공한다는 것으로 불만을 누그러뜨렸다.


“좋아, 이제 밑밥은 다 깔았으니······ 남은 건 판이 벌어질 시간만 기다리면 되겠구만.”

[목표 대상, 포인트 12에서 감지 확인됨.]

“그리고, 그 녀석은 소문 주워듣고 차근차근 올라오고 있고. 그 날이 참으로 기대되는구만.”


모든 게 준비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그 날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1주일 뒤.

한 때 ‘엔로펜’이라 불린 마을은 이제 특별한 경기장이 세워졌고, 경기장 근처에는 호화롭게 꾸며진 마차들과 각종 부대시설들이 죽 늘어서 있었다.

그 주변부에 지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게 꾸며진 관객석에는 노예시장에 충분히 영향력을 행세할 수 있는 큰 손들이 이 새로운 볼거리이자 특별한 경매가 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이 바빠서 이런 자리에 관심 없을 줄 알았소만.”

“초청장을 마다할 정도로 바쁜 건 아니외다.”

“마침 지루했는데 잘 됐어.”

“검증된 노예를 구할 수 있다면 평소의 그 지루한 과정보다 훨씬 낫겠지.”

“어디 연방국에서 뭘 준비했나 보자고.”


나름 대륙 곳곳에서 잘나가는 자들은 자신에게 온 초대장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에 약간 실망스러웠지만, 동석한 이들을 확인하자 그럴 만 하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 장소가 그만큼 특별하다는 것 역시 깨닫고 있었다.


[귀하고 바쁘신 분들을 이렇게 한 장소에서 뵐 수 있는 것이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장소의 진행과 사회를 맡게 되어 참으로 영광스럽기 그지 없군요!]


경기장의 중앙에 나타난 한 아가씨가 마법으로 증폭된 음성으로 좌중을 둘러보며 그렇게 외쳤고, 이내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


[여러분들께선 전혀 새로운 방식의 유흥과 유래 없는 경매가 결합된, 연방국의 미래를 최초로 관람하시기 위해 찾아오신 귀한 분들이십니다!]


한껏 목소리를 높여 이 장소에 대해 간략히 소개한 사회자는 곧이어 경기장의 양쪽을 가리켰다.


[자아! 그럼 첫 번째 검증의 순간! 예선을 거쳐 선별된 서른 명의 노예! 그리고······ 서른 명에 속하지 않았기에 탈락 판정을 받고 새롭게 태어난 자들!]


경기장의 각 끝에는 서른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한 쪽에는 평범해 보이는 노예, 다른 한 쪽에는 회색 피부가 된 자들.


[이쪽은 조만간 연방국에서 선보일 또다른 ‘상품’입니다. 잠자지 않는 무한한 체력의 노예! 하지만 이쪽은 순수하게 경쟁에서 이겨 올라온 서른 명! 과연 이들 중 어느 쪽이 우수한 자인가! 여러분들이 구매할 가치가 있는 쪽은 어디인가!]

-챙그랑! 쨍강! 챠르르르륵---!

[그것은 원초적인 결투로 승부를 볼 것입니다. 자아! 무기를 들고 싸울 때입니다! 살아남는 자가 최고의 노예!]

“호오, 구시대의 노예 결투인가? 말이 많아서 폐지된 지 오래인 옛 시대의 방식이지 않나.”

“저 회색 피부들은······ 흐음, 일단 내 관심은 저쪽에 두고 싶군.”

“아, 마침 잘 됐어. 호위용 노예가 좀 필요했는데. 이긴 녀석이 있다면 데리고 가야지.”


시대착오적으로 보이는 원초적인 결투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유혈이 난무하는 혈투는 고전적인 유흥이고, 양쪽 모두 꽤 흥미로운 노예들이었다.


[자아! 첫 번째 대결! 30대 30!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무기를 든 노예들과 몽둥이와 연장을 든 회색 피부의 노예들이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곧 피가 쏟아지는 혈투가 이어졌다.


“저 친구 괜찮군. 아니, 회색 단발. 자알 교육하면 밤시중에도 쓸만한 호위용 노예가 되겠어.”

“아, 아아, 아, 안돼. 저 노예 생긴게 마음에 들었는데······ 어휴, 안되겠네. 아! 저기 저 녀석! 그래! 잘한다! 난 못생긴 노예는 안 살 거란 말이야!”

“행동 방식을 봐선······ 저 회색들은 지능이 떨어지는 단순노역용 근력강화형 촉진제라도 먹인 모양이군.”

“저 회색 노예들 빨리 좀 팔았으면 좋겠네. 딱 내가 원하던 게 저런 것들인데 말이야.”


살아남기 위한 혈투를 지켜보는 관객들의 시선은 가지각색이지만, 공통적으로 산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확실히 아니었다.

우수한 상품이 있는지 탐색하거나, 선보인 샘플의 품질에 대해 논하거나, 유흥거리를 단순히 즐기는 시선일 뿐이다.

그리고 혈투 대신 관객을 주시하는 이들도 있었다.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군.”

“······그 자는 왜 자리에 없죠?”


다섯 왕들은 상석에 나란히 앉은 채 관객들과 경기 품질에 대해 논의를 나누고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반응이었지만, 그 와중에 ‘마도왕’은 영 불만이라는 표정이었다.


“저 회색 놈들 보면 볼수록 탐나. 아, 좀 빨리 어떻게 해 줬으면 싶은데.”

“그것 때문에 자리를 비운 거겠지. 우리 중에 누군가가 그의 새로운 결과물을 빠르게 내놓길 원하니까.”


‘산업왕’의 중얼거림에 ‘학식왕’이 무덤덤하게 말하자, ‘마도왕’은 미간을 좁혔다.


“안 보던 사이에 그 자에 대한 평가가 바뀌기라도 했나요?”

“너처럼 감정적인 접근은 좀 물려야 할 때라고 본다.”

“위험하다고 우리들 사이에서 결론 냈다고 봤는데요.”

“하지만 우린 다수결이고, 세 명이 이미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연방국의 의견은 다섯 왕이 동등하다. 맹주라고 해도 ‘은행왕’과 다른 왕들의 의결권은 동일하고, 다수가 긍정한다면 나머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조금, 조금만 더 신중하게 접근하죠. 아로엔에게 들은 바로는 그 자는 위험요소가 산재해있어요.”

“우리 아가씨는 친구랑 만나더니 겁쟁이가 되셨나보네요. 후훗.”


‘문화왕’의 말에 ‘마도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라리 겁쟁이가 나아요. 그 자는 위험해요.”

“항상 이득은 위험 요소를 껴안고 있는 법이다. 위험 부담은 곧 이득이지.”


‘은행왕’은 그 말을 하며 경기장을 내려다보았고, 막 스무 번째 회색 노예가 쓰러지는 것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현재로선 우리의 가장 큰 위협은 그가 아니다. 정체불명의 용사지.”

“······그건 이미 주시하고 있어요. 이미 들어와 있고, 감시중이죠.”

“이 자리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고객에게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는 것. 두 번째는 위험요소 격퇴.”

“그러니, 불만 가지고 있는 저도 얌전히 착석하고 있는 거죠. 절 가르치려 들지 말아요, 맹주님.”


‘마도왕’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마법으로 감지중인 대상을 확인했고, 혀를 찼다.


“쯧, 계속 남의 눈을 없애는 건 참 착실하게도 하네.”

“우리 아가씨, 부담스러운 건 아니죠?”

“시끄러워요. 언제까지 어린애로 볼 거죠?”


‘문화왕’의 말에 ‘마도왕’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자, 곁에 있던 ‘학식왕’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무래도 동료를 만든 것 같군. 새로운 반응이 포착되었다.”

“동료 하나 늘더라도 상관없어요. 거기서 보여준 수준이면 충분히 제압 가능하니까.”

“행동 유형이 다르다. 그는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 상부에 진입하고 있다. 이 곳 전체를 감시하는 모양 같다만.”

“상관 없어요······ 아, 또. 짜증나게. 새로 키우려면 꽤 시간 걸리는데.”


‘마도왕’은 그렇게 말하며 또다시 사라진 자신의 ‘눈’에 대한 불평을 퍼부었다.

그 시간, 경기장 통로에 배치된 경비병들의 목에 뼈로 된 단검을 쑤셔박으며 차분하게 전진중인 사람이 있었다.


[아아! 16번! 16번! 왼손이 날아갔습니다! 어휴, 그러게 잘 좀 막지.]

“아아! 저놈 사려고 했는데! 아이씨!”

[오! 25번! 가녀린 소녀가 16번의 복수를 합니다! 아, 복수는 아니죠. 살아남으면 서로 싸워야 할 상대니까요? 이건 그런 의미에서 보답인 겁니다. 경쟁자를 없애줘서 고마우니 고통에서 해방을 시켜주겠다는 소녀의 마음!]

“이야, 그래. 저런 미소녀가 하나 정돈 있어야 균형이 맞지. 일단 쟨 마지막까지 올라오면 무조건 사가지고 간다.”

“전형적인 투기장의 꽃 같은 아가씨구만. 음, 경쟁자 많이 붙겠어.”


경기장 저 너머에서 들려오는 사회자의 잔혹한 설명과, 간간이 이어지는 박수와 환호를 들으면서.


“으겍.”

“······정말 역겹네.”


유민영은 스탈리스 대륙에 온 직후 FTW에서 하던 일이 아니라 그럴싸한 용사놀이를 하게 된 것에 약간 신선함을 느꼈다.

FTW는 용사나 영웅이 되는 내용이 아니라 살아남는 게 주가 되는 내용이고, 배신과 급습, 계략질이 주가 되는 FTW의 플레이는 흥미진진하지만 하다보면 지긋지긋해질 때가 있다.

민영은 FTW 특유의 게임 플레이에 슬슬 지겨움을 느끼고 있었고, 때마침 스탈리스 대륙에서 하는 ‘용사 놀이’는 신선한 기분을 주었다.


“결국 용사놀이도 내 방식대로 해야 한다 그거네. 쯧.”


하지만 그 용사 기분은 오래가지 않았고, 한 번 치솟은 분노 뒤엔 언제나 그렇듯 FTW식의 유혈과 살점, 뼈가 난무하는 도살이 이어졌다.

그리고 민영에게 하던 일을 강요하게 만든 원흉들은 바로 이 경기장 내에 몰려있었다.


“사람에게 뭘 심어서 감시하는 걸 봐선 날 끌어들일 함정같아 보이는데······ 그렇게 보여줬는데 아직 정신 못 차렸다 그거지?”


민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이 숨통을 끊은 경비병의 시체에 무언가를 새롭게 심었다.

일종의 좀비 겸 시체폭탄을 만드는 기술이고, 이게 터지면 이전에 이 경기장이 있기 전 있었던 마을처럼 된다.


“그래, 나 하는거 구경이나 하고 있어라. 작업 다 치고 여기도 똑같이 만든 다음에, 그 때 안 썼던 스킬 다 퍼부어서 니들 싹 쓸어줄테니 말이야.”


이 곳이 자신을 위한 함정이라는 건 진작에 간파한 민영은 제 발로 함정에 들어가 그들의 콧대를 확 꺾어버리기로 마음먹었다.


“이 야만인새끼들한테 민주주의라는 걸 가르쳐줄테다.”


전혀 민주적이지도 않고, 문명인답지도 않고, 심지어 용사와 한참 거리가 먼 방식이지만 민영은 개의치 않고 작업을 이어갔다.


“······.”


그리고 경기장의 가장 높은 첨탑에 홀로 올라서 있는 남자는 경기장 전경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섯 왕들은 이미 그의 존재를 파악했지만 행동하기 전까지 방치하고 있었고, 관객들은 눈앞의 볼거리에 사로잡혀 그의 존재를 파악하지도 못했다.


작가의말

세팅 완료.

다음 화부터 무슨 일이 벌어지긴 할 겁니다만, 여러분들이 만족하실지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구상한 저도 ‘이걸 하겠다고?’라고 되물었을 정도니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예정보다 많이 틀어졌다는 건, 제게 뭔가 트러블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것이 그날 써서 그날 업로드 하는 방식이니까요. 어헣.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난 당하고는 못 살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여러분들에게 약속드렸던 1부가 마무리되었습니다. +14 21.10.06 630 0 -
136 !. 진실을 알아도 변하는 건 없다 +7 21.10.06 603 23 14쪽
135 ?. 촉수 마법소녀가 되고 내 인생이 달라졌다 +2 21.10.05 416 21 15쪽
134 19. 증오의 무한동력 [12] +2 21.10.04 440 18 17쪽
133 19. 증오의 무한동력 [11] +6 21.10.01 412 19 12쪽
132 19. 증오의 무한동력 [10] +3 21.09.30 414 19 18쪽
131 19. 증오의 무한동력 [9] +2 21.09.29 450 23 12쪽
130 19. 증오의 무한동력 [8] +1 21.09.28 471 21 17쪽
129 19. 증오의 무한동력 [7] +1 21.09.27 511 22 15쪽
128 19. 증오의 무한동력 [6] +2 21.09.24 577 21 12쪽
127 19. 증오의 무한동력 [5] +5 21.09.23 622 26 17쪽
126 19. 증오의 무한동력 [4] +5 21.09.17 671 22 12쪽
125 19. 증오의 무한동력 [3] +2 21.09.13 756 34 12쪽
124 19. 증오의 무한동력 [2] +7 21.09.11 701 37 16쪽
123 19. 증오의 무한동력 [1] +2 21.09.10 753 29 19쪽
122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10] +3 21.09.08 810 35 18쪽
121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9] +2 21.09.07 764 34 17쪽
120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8] +4 21.09.06 793 30 17쪽
119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7] +1 21.09.04 868 28 15쪽
118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6] +2 21.09.03 865 29 14쪽
117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5] +5 21.09.02 874 34 16쪽
116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4] +7 21.09.01 863 38 11쪽
115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3] +5 21.08.31 926 37 20쪽
114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2] +9 21.08.28 992 44 15쪽
113 18. 뜬금없이 나타나는 자 [1] +13 21.08.27 1,008 42 14쪽
»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10] +1 21.08.26 1,034 37 18쪽
111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9] +3 21.08.25 1,031 39 22쪽
110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8] +6 21.08.24 1,008 40 18쪽
109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7] +2 21.08.23 1,058 41 14쪽
108 17. 그는 용사가 아닙니다 [6] +3 21.08.21 1,053 4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