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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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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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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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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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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22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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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꼽추 아게르

DUMMY

“구면 맞잖아요? 저 기억 안 나요?”


년차도 다르고 종족도 다르다. 사관학교 내에서 마주칠 일 자체가 거의 없다.


“흐응. 학교라서 모른 척 하는 건가?”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면 밖에서 조우했을 것이다.


나는 아게르의 기억을 뒤져봤으나 카이엔에 대한 내용은 없다.


“기억에 없는데.”

“어머, 저는 그때를 한시도 잊지 못하고 매일이 설렘의 연속이었는데. 그쪽은 아닌가 봐요.”


점점 미궁으로 빠진다. 아게르의 성격상 누군가와 핑크빛 무드를 잡았을 리는 없는데.


“참나, 이러면 나만 기대한 것 같잖아.”


손톱을 다듬으며 퉁명하게 혼잣말을 내뱉는다.


악연으로 이어진 관계는 아닌 모양. 나는 침묵을 택했다.


“제가 먼저 아는 척 안 했으면 끝까지 말도 안 걸었겠다. 그죠?”

“···.”

“그 말이 딱 맞네요. 가해자는 금방 잊어버리지만 피해자는 평생 그 기억이 남는다더니.”

“···내가 피해를 끼쳤나?”

“끼쳤다면, 보상할 생각은 있어요?”


이때다 싶어 물어오는 카이엔. 나는 또 빚이 있나 싶어 가슴이 철렁했다.


“반응을 보니까 진짜 기억 못 하는 모양이네.”


마치 가벼운 농담을 던진 사람마냥 말하면서, 무서운 표정으로 줄곧 나를 노려본다.


진심과 농담의 경계를 판단하기 어렵다.


혼돈. 카이엔 퍼스파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이 단어가 제일 잘 어울릴 것이다.


“죄송해요! 조금 늦었네요!”


대화가 더 진행되기 전 일리야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빈손이다.


“카이엔 양. 와줘서 고마워요!”

“교수님의 부탁이니까요.”


카이엔도 일리야의 제자 중 한 명이었지. 나는 일리야가 그녀를 부른 이유를 대충 알 것 같았다.


“흥.”


나를 보고 티나게 콧방귀를 끼는 일리야. 그 모습을 카이엔이 흥미롭게 바라본다.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한번 생긴 감정의 골은 빨리 풀지 않으며 차차 깊어진다.


골을 메우는 가장 좋은 수단은 직접 말로 전달하는 것이고.


“나도 미안해요. 낯선 곳에서 깨어나 가지고 정신이 없었을 텐데, 너무 몰아붙이기만 해서.”


서로가 사과하는 순간만큼 어색한 상황이 없다.


다행히 이런 훈훈한 풍경을 못 견디는 인물이 자리에 있었다.


“뭐야, 이 연애 초기 커플 같은 달달함은? 교수님. 염장 지르려고 부르신 거예요?”

“따스한 사제지간을 불순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카이엔 양이 이상한 거 아닐까요?”


일리야는 의자 세 개를 소환했다. 나와 카이엔은 일리야의 맞은편에 앉았다.


“오늘 카이엔 양을 부른 이유는, 아게르 군의 마력 운용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예요.”

“저 그렇게 쉬운 사람 아닌데요.”

“그런데 왔잖아요?”

“그렇게 궁금증을 잔뜩 자극시키는 편지를 보낸 누구 탓이죠. 이제 보니 알겠네. 아주 애제자 났어.”

“카이엔!”


엄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일리야의 태도에 카이엔이 어깨를 으쓱하곤 입을 다문다.


“수업 분위기 해치지 말아요.”

“예예. 알겠어요. 을인 내가 참아야지.”


더 이상 강하게 나가지 못하는 일리야와 금세 딴청을 피우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카이엔.


지구에서 여동생 둘이 다툴 때의 느낌이다.


나는 둘의 일대일 수업 분위기를 대충 알 것 같았다. 한시도 수업을 빙자한 대화가 끊이질 않겠지.


“일단, 아게르 군에게는 양해를 구할게요. 카이엔 양에게 마력에 대한 걸 드러내도 될까요?”


마력을 전개하면 저절로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이를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건 자칫 무례한 행위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그거 보러 파바튀르에서 단숨에 날아왔어요. 거절하면 서운할 뻔.”

“미안해요. 원래 이런 성격이라.”

“괜찮습니다.”


카이엔의 말려 들어가는 화법엔 익숙하다. 그래서 둘이 있을 때 침묵을 택하기도 했고.


“제가 카이엔 양을 부른 이유는 그녀가 두 종류의 마력을 동시에 다루기 때문이에요.”


카이엔이 5살 때 첫 마력을 개방하고, 12살 때 두 번째 마력을 개방했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두 개의 마력을 조율하는 데는 스페셜리스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폭탄 수업은 하나의 마력이 가진 부작용을 제어력의 확장으로 해결하려는 목적이었어요. 그러나 상반되는 다른 마력이 공존한다면, 하나의 단점을 없애 균형을 맞추기보다 둘을 적절히 조화시키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겠죠.”


관건은 서로 충돌하고 반목하는 두 마력를 어떻게 붙여놓느냐였다. 그 단서가 바로 카이엔이고.


“그런 면에선 저보다 오랜 기간 두 마력을 다뤄온 카이엔 양의 조언이 더욱 도움이 될 거예요.”

“이해했습니다.”


나는 카이엔을 바라봤다. 그녀의 개성은 융해와 간섭. 마력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동화시키는, 손에 꼽는 희귀한 개성이다.


“자, 이제 제 차례죠?”


의자에서 일어난 카이엔이 일리야의 곁에 가서 앉았다


“궁금하니까 이제 보여봐요. 상반된 마력이 도대체 뭔지. 어떤 개성이길래 일리야 교수님이 내게 도움을 구한 건지, 너무너무 기대되거든요.”


그녀의 두 성질은 침투력이 강하단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을 갖는다.


나는 허수아비를 불러 첫날 일리야에게 보인 흑마력을 전개했다.


스스-


“뭐에요?”

“마력 자체가 짙은 인력을 띄고 있어요. 지금은 마력 자체가 체내에 고밀도로 압축되어 있어 저렇게 공간의 균열을 만들어내는 거구요.”


일리야의 설명에 카이엔은 탄성을 터트렸다.


“내 마력도 한 기괴함 하는데, 이쪽은 더하네. 그럼 다른 마력은 척력인가요? 밀어내는 힘?”


나는 이번엔 백마력을 허수아비 발밑에서 폭발시켰다.


팡-!


하늘 높이 솟구쳤다 떨어지는 허수아비. 마치 용수철을 밟고 날아가는 인형 같았다.


“신기하네, 신기해.”


시연을 본 카이엔이 내 앞에 섰다.


“발현 과정을 더하는 건 시도해봤어요?”

“불가능합니다.”


기사의 개성은 보통 발현을 거쳐야 드러나는 게 정상이다.


빛이나 검날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하고, 때론 소리와 파동, 혹은 구체적인 물질의 형태를 갖추기도 한다.


하지만 내 마력들은 형태나 특징을 갖질 못한다.


발현을 시도하면 죄다 빨아들이고 튕겨내 버리기 때문이다. 덕분에 발현 가능한 마력보다 제어력이 딸리는 부작용도 덤으로 생긴 것이고.


“이 앞에 마력 뭉쳐봐요.”


내가 앞에 백마력으로 감싼 흑마력 구체를 띄웠다. 무색무취무향의 마력 덩어리. 하지만 마력 특유의 이질감만은 느껴진다.


“한번 건드려볼게요.”


카이엔의 손가락에서 녹색 촉수 한 가닥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개성 중 융해를 상징하는 녹의 사선(蛇線)이다.


백마력에 닿은 실이 멈춘다. 이윽고 실이 조금씩 백마력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사아아-


주변 마력을 조금씩 녹이며 들어가는 실과 이를 저지하려는 백마력의 충돌. 그 영향으로 실의 앞부분이 용접하는 것처럼 빛으로 뒤덮였다.


“아?”


백마력의 껍질을 뚫어냄과 동시에 실의 끝부분이 사라진다.


흑마력의 인력에 흡수된 것. 그 자극으로 흑마력 덩어리가 터질 조짐을 보이자 나는 허공으로 던졌다.


스스-


균열을 일으키고 사라지는 마력의 구.


“다시 한번 만들어봐요. 이번엔 마력에 간섭해볼 테니까 느낌이 이상하더라도 놀라지 말아요.”


다시 한번 얇은 녹색 실을 뽑는 카이엔. 이번엔 실에 희미한 비늘이 돋아있다.


“으음, 반발이 너무 심하네.”


실을 백마력에 댄 카이엔이 신음을 흘리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조금씩 전진하면서 겉에 난 비늘이 주변 백마력을 조금씩 녹색으로 물들인다.


척력의 성질을 잃고 변질된 마력은 척력에 의해 실이 들어온 구멍 바깥으로 밀려난다.


아까보다 빠른 속도로 흑마력까지 닿은 실. 그러나 역시 제어를 잃고 흡수된다.


스슷-


“으으, 어렵네. 겉의 마력은 괜찮은데 안쪽 마력의 흡인력이 너무 강해.”


아마 등급의 영향일 것이다. s급과 b급은 두 단계 차이지만 절대적인 격차를 나타내니까.


“흐음. 분명 어릴 때는 꼽추가 아니었다고 했지. 체내에서도 인력을 띄는 마력이 훨씬 강세인 거죠?”

“혹시 그 척력을 띄는 마력은 인력을 띄는 마력보다 훨씬 늦게 얻었어요?”


두 질문 모두에 고개를 끄덕이자 카이엔이 대뜸 물었다.


“그쪽. 돈 많아요?”

“없습니다.”

“아쉽네. 돈만 있으면 대충 길이 보일 것 같은데.”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아마 마력의 질을 높여주는 아이템을 구해 백마력을 끌어올리겠단 방법이겠지.


근본적으로 내가 떠올렸던 방법과 같은 해결책이다.


“그럼 차선책을 쓸 수밖에. 일단 내 얘기를 하자면, 나 같은 경우는 둘을 뒤섞어버렸어요.”


융해와 간섭.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마력이다.


실제로 그녀가 둘을 섞을 때 융해가 간섭의 마력을 잡아먹으려 들어 사실상 마력의 조화를 안정화시킨 건 열여덟 살 때서였을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마력의 불균형이에요. 이걸 해결하려면 약한 쪽을 키우거나, 강한 쪽을 누르거나. 둘 중 하나이고. 혹시 둘을 섞어봤어요?”


잿빛 마력. 나는 회색 덩어리를 끄집어냈다.


“어라, 이건 육안으로 보이네?”

“수련생, 이건?”


나는 얼마 전 실수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싸이오닉 창에 맞은 여파는 아닐까요?”

“아닐 겁니다.”


혹시 후유증과 관련되어있는 것 아닐까 걱정하는 일리야와 반대로 카이엔은 신기한 듯 사선 몇 가닥으로 회색 구체를 이리저리 뒤집었다.


“섞는 것 자체가 발현으로 나타난 걸까? 두 성질이 상쇄된 거면 흩어지는 게 정상일 텐데. 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밀한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어요.”


두 마력과 달리 몸에서 떼어놓아도 유지되는 잿빛 마력을 나는 일리야에게 넘겼다.


“두 마력을 합치는 데 어려움은 없어요?”


카이엔의 질문에 나는 두 마력을 허공에서 천천히 섞었다.


흑백의 마력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교류하다 서로의 성질에 자연스레 흑마력은 안쪽으로, 백마력은 바깥으로 나뉜다.


평소 다루던 것과 같은 구체가 되어버리는 상황.


“지금은 안 되네요.”

“역시 무슨 악영향이 있었던 게 분명해요. 이 마력의 특징이 확인될 때까지 둘을 섞는 건 지양하도록 해요.”

“그럼 강한 쪽을 누르는 것밖에 방법이 없네. 제가 또 그쪽으론 빠삭하죠.”


카이엔은 자신이 두 마력을 다루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들을 하나둘 풀어냈다.


“아까 말했듯 나는 둘을 섞었지만, 처음에는 그쪽처럼 두 마력이 불균형했어요. 큰 쪽이 작은 쪽을 잡아먹으려 해서 하루도 몸이 정상인 적이 없었죠.”


나와 달리 그녀는 몸 전체에 마력이 퍼져있었기에 전신 곳곳에서 마력 충돌 현상이 일어났다.


“매일 밤 누가 망치로 온몸을 때리는 듯한 고통 때문에 잠에서 계속 깨다 보니 아,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필사적으로 방법을 고안했죠. 처음에는 구역을 나눴어요.”


약한 간섭의 마력을 가장 제어력이 강한 심장 부근으로 모아 최대한 피해를 막았다.


“제어가 풀리면 꼭 심장이 멈춘듯한 통증이 일더라구요. 그래서 집중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다보니 운용 실력도 늘고. 마력이 더 커질 때까진 그래도 괜찮았어요.”


자신의 몸을 토대로 한 배수의 진.


아쉽게도 나는 사용하기 어려운 방법이었다. 내 마력 중 강한 쪽인 흑마력은 전신으로 흩을 수 없으니까.


“영약이랑 수련으로 두 마력의 최소한의 균형을 이뤘을 때, 조금씩 둘을 꼬아서 같이 흐르도록 만들었어요. 발현 전의 마력은 제어가 쉬워서 가능한 일이었죠.”


현대 문명의 근원인 마력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려는 많은 이론들이 있다.


하지만 개개인마다 다른 특징과 성질, 개성을 가져 하나의 통일 이론 대신 개인에게 맞는 이론을 여러 가지 섞어 이론적 토대를 세우는 것이 보통이다.


그 중 마력을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명체로 취급하는 이론이 있다. 마력은 개인이 태어남과 동시에 정해지는 동반자이고, 같이 성장해나간다는 게 주요 골자이다.


카이엔은 자신의 두 마력이 친해지도록 같이 놀아주었다고 표현했다.


“그렇게 둘이 붙여두고 시간이 지나니까 조금씩 둘 간의 반발이 줄어들더라구요. 그리고 그다음은 보다시피.”


녹색 비늘의 실을 선보인 카이엔이 나를 가리켰다.


“물론 나랑 그쪽은 마력의 성질이 다르니 이 방법이 그대로 통용될 거라 생각하진 않아요.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야겠죠. 나는 그걸 위해 온 거고.”


그녀의 개성이 두 마력의 균형점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따분했는데 잘됐네요. 한동안은 재밌겠어. 앞으로 잘 부탁해요?”


카이엔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씩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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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 꼽추 아게르 21.05.22 15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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