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6,495
추천수 :
261
글자수 :
259,046

작성
21.06.23 22:28
조회
66
추천
2
글자
13쪽

2년차

DUMMY

“우리가 알았나? 그게 네가 펼친 결계인지.”

“하여간 도움이 안 돼요.”

“시실라, 억울하다고 말 좀 해봐.”


헤일의 상처를 보살피던 시실라가 아몬의 시선을 피했다.


“여긴 어딜까요?”


디안이 주변을 살피며 의문을 드러냈다. 모든 풍경이 원색으로 물든 낯선 공간. 드물게 발견되는 정령석의 폭주나 정령왕급 존재의 초대가 아니면 입장조차 불가능한 곳이다.


“정령계예요.”

“정령계요?”

“이차원이라고 보면 돼. 일반적인 물리법칙, 마력. 모든 게 뒤틀린 곳이지.”


시실라의 대답에 설명을 붙인 나는 모두를 감싼 채 멈춰버린 흑마력을 제어해봤다. 체내의 마력과 마찬가지로 무언가에 얽매인 듯 수발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성질을 제어하는 건 가능해서, 가장 중요한 시간적 괴리를 막는 데 이용했다.


시간의 흐름조차도 뒤틀린 차원이다. 정령계에서의 몇 분이 현실에서 며칠이 될 수도, 반대로 몇 초에 불과할 수도 있다.


마력의 보호로 갑자기 정령계에서 벗어나자마자 아사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벗어날 방법은?”

“몰라. 내가 알기론 기다리는 것 외엔 없다.”


그래서 정령석을 이용하기 전에 사도를 처리하려 했던 건데. 괜한 동료의식을 불태우며 찾으러 온 누구 때문에 망했다.


“다 됐다.”

“고마워요.”

“일어날 수 있겠어요?”


첫 실습에 대비해 가문에서 챙겨왔다는 사겔샤 특제 연고를 바른 헤일이 조심스럽게 두 발을 디뎠다. 외상에 큰 효과를 발휘할 거라는 시실라의 장담답게 관통상이었음에도 눈에 띌 만큼 아물었다.


“이대로 기다리기만 해야 한다고?”


아몬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돌아다니다 보면 탈출할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정령계는 나도 아는 게 거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플레이어로 정령사가 되었을 때 몇 번 정령왕의 도움으로 방문했던 게 전부.


그때 정령왕이 말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정령도 두 부류로 나뉘어. 인류에 적대적인 쪽과 아닌 쪽. 후자의 영역을 찾아야 해.”


모든 경계가 흐릿한 채 색으로만 구분되어있는 지형이라 예전의 기억과 비교하기가 어렵다.


결국은 무작정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헤일, 걸을 수 있겠어?”

“응. 아마도?”

“불안하면 업혀도 돼.”

“···내가 꼽추한테 어떻게 업혀?”


그 말에 나는 그대로 로브 모자를 벗었다.


“어···.”

“이러면 됐지?”


시실라와 아몬이 놀라든 말든, 나는 헤일의 다리 상처를 확인했다.


“안 되겠다.”

“으앗.”


뒤로 업으면 상처 부분이 손에 닿아 팔로 어깨와 무릎 뒤를 안아 올렸다.


“야, 한동안은 숨긴다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 생각대로라면 졸업 때까지 꼽추인 채로 지내려 했다. 그러나 코르닉스, 정확히는 아게르가 십자회의 표적이 된 순간부터 그 리스크가 너무 커져버렸다.


꼽추 아게르는 유명하지만 실상 바깥과 교류가 거의 없던 아게르를 직접 본 사람은 몇 없다. 그 대표적인 예로 오늘의 납치 건이 있었던 것이고.


내가 계속해서 정체를 숨기려고 한다면 언제든 헤일과 릴리에게 잘못된 마수가 뻗칠 수 있다는 뜻이다.


변화에 따라올 귀찮음과 세간의 이목은 동생들의 안전에 비하면 별 것 아닌 문제다.


“가자.”


오늘 처음 본 디안은 살짝 놀라는 것으로 끝났지만, 동기 둘은 사뭇 반응이 격했다.


“···대단하군. 어떻게 십 년을 넘게 연방의 이목을 숨긴 거지?”


아몬은 내가 처음부터 세상을 속였다고 판단한 듯 심각한 표정으로 있지도 않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고, 시실라의 경우는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손뼉을 쳤다.


“아, 그래서 카이엔이.”

“야, 너 진짜 그 카이엔이란 마인이랑 아무 관계도 아니야?”


약간의 해명 타임 후에 우리는 이동을 개시했다.


“너는 정령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나는 처음 듣는다.”

“애초에 신정왕국 시절을 끝으로 사장된 지식이니까.”


정령이 몬스터로 분류된 건 연방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그 전에는 정령과 교감을 나누며 그들의 힘을 빌려쓰는 정령사의 존재가 드물지 않게 나타났고, 정령왕을 소환하는 드루이드의 경우 일군에 버금가는 화력을 보장하기도 했다.


“사겔샤 쪽 정령사들이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었다고 알고 있는데.”

“정령사요? 유명하죠. 제 부모님 대까지는 실제로 남아있기도 했고.”


시실라는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실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 부족들의 신성숭배가 정령과도 무관하지 않으니까요. 실제로 자아가 강한 정령의 도움을 받아 가뭄이나 홍수를 이겨낸 기록도 밝혀지기도 했고. 부모님이 아시던 정령사도 옛날 마을을 도운 정령을 모시는 무녀님 같은 분이셨어요.”


옛날과 같이 강한 무력을 지닌 정령사는 과거 속으로 사라졌지만, 아직 그 풍습이 남아 잔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정령계에 대해서도 무녀님에게 들었었죠. 그분이 여길 보셨다면 좋아하셨을 텐데.”

“지금 시대에 정령계에 들어서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우리가 그걸 해냈고.”


대략적인 하늘의 모습을 보고 방위를 짐작해 북쪽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적어도 플레이어 시절 만났던 정령왕이 다스리던 북부 동토는 인류에게 호의적인 정령들만 모여있던 기억이 있다.


“정령이다.”


눈썰미 좋은 디안이 멀리 흐릿한 초목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정령들을 발견했다.


“선공하기 전엔 절대 손대지 마.”


남의 홈그라운드에서 싸우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없다. 나는 검병을 매만지며 흥미를 드러내는 아몬에게 특히 주의를 주었다.


“그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런 놈이 검을 왜 만지고 있어?”

“습관.”


펜나가 급격히 그리워진다. 적어도 펜나는 무모한 짓을 하려고 들지는 않았는데.


시넬의 눈도 봉인되어, 디안의 눈썰미에 맞추어 정령들을 피해 알음알음 북쪽으로 올라갔다.


시싯!

쾅!


그럼에도 결국 먼저 우리를 보고 달려드는 정령을 전부 피할 수는 없었다.


갑자기 바닥에서 튀어나온 토글 무리의 공격. 시실라와 아몬이 방어에 나서고, 디안이 물 만난 고기처럼 이리저리 날뛰며 정령핵을 부수고 다녔다.


“몸이 둔해진 느낌인데.”

“마력이 동결되면서 신체 능력이 떨어진 거 맞다.”


이들과 달리 몸을 쓰는 공격에는 영 젬병인 나는 헤일과 같이 보호를 받는 입장이 되었다.


“내려줘.”

“안 돼. 환자는 가만히 있어.”

“나도 싸울 수 있어.”

“그러다 덧나면?”


헤일이 벗어나려고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정령계의 저주는 그녀의 신체에도 적용됐다.


평범한 힘으로 전설의 강골을 제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오 진짜, 돌아가면 가만 안 둬.”

“너무 가볍다. 살 좀 찌워야겠어.”

“돌아가면 죽었어.”

“이거 봐봐. 팔이 이렇게 얇아서.”


놀리는 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전투가 끝난지도 모르고 있었다.


“카이엔이 보면 눈 뒤집힐 광경이네요.”

“왜, 보기 좋은데. 가족끼리 사이가 좋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어휴.”


북방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기온이 내려가는 게 느껴졌다. 나는 보온 기능이 달린 로브를 벗어 헤일에게 입혔다.


“걸어간다고!”


펄쩍 뛰어 보이며 건강함을 증명하는 헤일의 의견을 받아들여 여기서부턴 내려주었다.


“아게르, 점점 추워지는데, 이 길 맞나?”


추위에 강한 수인족인 시실라와 통각 따위는 개나 준 디안 사이에서 슬슬 고통받기 시작한 아몬이 물었다.


“조금만 버텨봐라.”


녹색, 청색, 갈색으로 물들어있던 지형이 점차 순백색으로 뒤덮인다.


동토의 구역에 들어서니 정령들 또한 눈과 얼음, 바람 속성이 다수가 모여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정령계에 몇 안되는 인공 건축물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으으.”


몇몇 우리에게 호기심을 보이는 정령들이 다가왔다. 다짜고짜 습격하던 녀석들과 달리 천천히 날아와 주변을 배회하며 관찰한다.


“이 녀석들이 다가오니까 더 추워지는군.”


추위에 벌벌 떠는 아몬이 재미있는지 얼음의 정령 한 마리가 녀석의 목덜미에 내려앉았다. 털 복숭이 모양의 정령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가 아몬의 피부를 모조리 뒤집어놓았다.


“아게르, 공격···.”

“안 돼. 참아.”

“이 녀석들은 왜 나한테만 달라붙는데!”


고함 소리에 도망갔던 정령이 친구들을 데리고 왔다. 졸지에 정령들의 쉼터가 된 아몬의 입술이 파랗게 질린다.


정령들에겐 단순한 장난이고 친해지고 싶단 감정의 표현이지만 인간에겐 생명의 위협이다. 더 이상 내버려 두면 저체온증이 찾아올 아몬을 대신해 손을 뻗었다.


‘이리 와. 나랑 놀자.’


플레이어 때 익혀둔 의념을 통한 의사소통. 특성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해주는 정령사들의 고유 방법이었다. 이 또한 동토의 주인에게 배운 방식이다.


“시원하다.”


아몬에게서 내 곁으로 옮겨온 정령들이 머리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온도 변화에 적응력이 뛰어난 하이엘프의 신체답게 약간 머리가 시원한 정도에서 멈췄다.


“어떻게 한 거예요?”


나는 부러워하는 시실라를 정령에게 권유했다. 몇몇 관심을 보인 정령들이 수인 특유의 복슬복슬한 머리털이 마음에 들었는지 귀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정령들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걸어가는데, 헤일과 디안 근처에는 아무 정령도 다가가지 않았다.


디안은 상대를 귀신같이 알아보는 정령들이 좋아할 리 없으니 그렇다 치는데, 헤일은 의외였다. 건틀릿의 무서움을 감지한 건지, 훗날 개화할 헤일의 마력을 알아본 건지.


정령들에게 물어보아도 돌아오는 의념이 애매했다. 중구난방으로 전해져오는 의념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굳이, 였다.


한참을 걷다 보니 드디어 거대한 건축물이 코앞에 다다랐다.


동토의 지배자, 정령계의 폭군이 먼 옛날 정령사들을 납치해다가 짓게 했다는 백류성. 다시 찾은 이 통곡의 성에 감회가 새롭다.


“그래서, 이젠 어떻게 할 거지?”


굳건히 닫혀있는 성문을 바라보던 아몬의 질문에 간단하게 답했다.


“들어가야지.”


평범한 힘으로는 도저히 열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성문 앞에 선 채 헤일을 제외한 세 명에게 손짓했다.


“파자.”




깡- 깡-


“이래도 되는 거 맞아? 아무리 집주인이 신경 안 쓴다고 해도 함부로 부수고 들어가면···.”

“장담하는데 이 문, 한 번도 열린 적 없을걸.”


당사자의 발언을 직접 들었으니 정확할 것이다.


“이렇게 잘 지어놓고?”

“주인이 정령이잖아. 돌아다니면서 일일이 열고 다니느니 날아서 가면 훨씬 편하지.”

“아.”


그럼 왜 성을 지었냐고 아몬이 검집으로 성문을 부수며 투덜거렸다. 나는 간단하게 감성이라고 설명했다.


“드루이드들이 정령과 오랜 교감을 나누며 그들에게 동화되듯, 오랜 세월 정령사들과 교류를 나눈 정령이 중간계의 영향을 받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는 거야.”

“그래서 우호적일거라 생각한 건가요?”

“적어도 대놓고 공격은 안 할 거다. 가뜩이나 정령사의 소멸로 중간계에 드나들 일이 없어졌을 테니까. 아마 이것저것 물어보지 않을까?”

“무단침입한 도둑 취급이 아니면 다행이지.”

“트롤, 불평 말고 문이나 파.”

“···점점 취급이 나빠지는 건 기분 탓인가?”


여기서도 디안의 단검이 큰 힘을 발휘했다. 정령계에서도 단단하기로 으뜸인 동토 대리석을 두부 가르듯 간단하게 파고 들어간다.


디안이 파낼 구역을 잡고, 나와 아몬, 시실라가 안을 파는 쪽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체감상 1시간 가량 걸리고 나서야 사람 한 명 지나갈 구멍이 완성되었다.


“난 아직도 께름칙해. 진짜 주인이 공격하지 않을까?”

“보기보다 겁이 많구나.”

“겁이 아니라 당연한 걱정이다.”

“괜찮을 거예요, 선배.”


보기 드물게 디안이 자기 의견을 냈다. 내심 디안을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던 아몬이 이유를 물었다.


“아게르 선배가 괜찮을 거라고 했으니까요.”

“그게 이유가 돼?”

“우리 중 정령계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 저 멀리서 이 성을 찾아온 사람. 누군가요?”


한번 믿고 따라왔으니 끝까지 믿자는 뜻이었다. 아몬은 무언가 말하려 입을 씰룩이다 결국 포기했다.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간 백류성의 내부는 단순했다. 동토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정령계 감성의 석상이 길을 따라 양옆을 장식하고 있었다.


“제국 황성 입구와 비슷하군.”


아몬의 감상대로 이 석상들은 제국 출신의 정령사가 만든 작품이다.


100미터 남짓의 성문 길 끝에는 실질적으로 성의 내부인 회랑 입구가 연결되어있다.


나는 감회에 젖은 채 회랑으로 진입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2년차 21.06.29 57 5 13쪽
42 2년차 +2 21.06.26 57 2 13쪽
41 2년차 21.06.24 62 3 14쪽
» 2년차 21.06.23 67 2 13쪽
39 2년차 21.06.21 71 4 13쪽
38 2년차 21.06.20 66 5 14쪽
37 2년차 21.06.19 77 4 13쪽
36 2년차 21.06.16 83 6 13쪽
35 2년차 21.06.15 88 5 15쪽
34 2년차 21.06.14 96 6 14쪽
33 2년차 21.06.13 102 7 16쪽
32 2년차 21.06.12 112 5 15쪽
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7 9 13쪽
30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7 8 15쪽
28 꼽추 아게르 21.06.08 105 7 13쪽
27 꼽추 아게르 +2 21.06.06 109 5 12쪽
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4 7 12쪽
25 꼽추 아게르 21.06.03 117 7 14쪽
24 꼽추 아게르 21.06.03 120 6 13쪽
23 꼽추 아게르 21.06.01 127 6 14쪽
22 꼽추 아게르 21.05.31 132 8 14쪽
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20 꼽추 아게르 +1 21.05.29 174 5 14쪽
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7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2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9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