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6,471
추천수 :
261
글자수 :
259,046

작성
21.05.24 21:22
조회
151
추천
7
글자
12쪽

꼽추 아게르

DUMMY

“흐음, 수사국에서도 숨길 거라 예상은 했습니다.”


공문을 거둔 펜나가 이번에는 작은 마력석을 꺼냈다. 작은 공간에 사일런스 필드를 치는 아티팩트였다.


치직-


“그리고 지금부터 오프 더 레코드. 수사국은 아게르 코르닉스, 당신의 안위를 경계하고 있어요.”

“···써클 때문인가?”

“둘 다. 오늘 들어온 첩보에 의하면, 두 조직 모두 어제를 기점으로 대규모 이동이 일어났단 정황이 포착됐어요. 특히 싸이오닉 써클의 경우 본인들의 둥지에서 이렇게 움직인 적이 처음이라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의식이 방해받아서인지. 다른 이유가 있어서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고 펜나는 덧붙였다.


“그래서 수사국은 호위 겸 함정을 목적으로 아게르 코르닉스에게 인원을 붙이기로 했어요. 그 자리에 안면이 있다는 이유로 제가 임명됐고요.”


특히 안면이란 단어를 강조한 펜나가 주먹을 쥐고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상당히 격앙된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죠?”

“병원비?”

“그거 말고요!”


나는 천천히 차를 음미하고 대답했다.


“사사투스의 마력은 어느 연방 시민이 봐도 알아차릴 텐데.”

“그게 펜나란 사람을 특정 짓는 증거가 되진 않죠. 말 돌리지 말고, 어떻게 알아챘어요? 제가 당신 때문에 시말서를 몇 장 썼는지 알기나 해요?”


펜나가 퍽 억울한 듯 주먹에 힘을 줬다. 요원의 제 1원칙인 신분 은닉에 실패했으니, 징계를 안 받은 게 다행이다.


아니면 내 경호를 징계 대신 받은 셈이거나.


나는 말없이 펜나를 바라봤다. 대답을 듣기 전까진 결코 물러나지 않을 기색. 그래서 조용히 한 사람의 이름을 꺼냈다.


“피베르 사사투스.”

“뭐···라구요?”

“그는 널 잘 알고 있던데. 넌 모르나?”


여기서 그 이름이 나올지는 몰랐는지 펜나의 표정이 기괴하게 비틀린다.


“피베르. 그 사람한테 내 이름을 들었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그래.”

“어떻게! 아니, 언제 어디서요?!”


당장이라도 멱살을 잡고 흔들 기세. 대롱대롱 매달리는 건 헤일에게 당한 것으로 족하다.


“진정하고 앉아라.”


요원 특유의 컨트롤로 쉬이 감정을 가라앉히는 펜나. 나는 그녀의 잔에 찻주전자를 기울이며 준비해놓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 년 전. 암거래상의 기지에서 만났다. 그가 파는 물건을 사면서 안면을 텄지.”

“암거래, 어디 지역에서요?”

“알려줄 것 같나?”


불법적인 물건이 오고 가는 암거래 사이에도 불문율이란 게 있다.


수사국 사람에게 암거래상의 위치를 팔아넘기는 건 그들 전부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나 마찬가지.


나는 탁자 위의 마력석을 가리켰다. 지금 나누는 대화는 철저한 오프 더 레코드다.


수사국 요원이 아닌 사사투스 가의 펜나일 뿐이기에 내게 어떠한 압력도 행사할 수 없다.


그녀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뭐라던가요?”

“미래가 밝은 동냥이라더군. 잠깐씩 몰래 보러 가는데 그때마다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있어 놀랍다고.”

“아아···.”


파베르 사사투스가 이 년 전 암시장을 전전하고, 종종 모습을 감추고 사사투스 가에 펜나를 보러 간 것. 전부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가 결코 찾을 수 없으리란 것도.


“어떻게, 잘지내는 것 같았나요?”

“글쎄, 로브를 덮고 있어서 그것까진 모르겠군. 알다시피 암거래란 게 다 그런 식이잖나.”

“혹시 연락할 방법이라던가, 아니면···.”

“포기하는 게 좋아.”


지금쯤이면 뛰어난 유적 탐험가였던 파베르 사사투스는 없어지고, 오직 인페스티스의 사천왕이자 검계의 파베르만 남아있을 테니까.


“이쪽 바닥은 좁아. 하루가 멀다 하고 활동하던 모험가가 하루아침에 잠적한다? 뻔한 결말이지.”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아니라 치면, 잠적한 마스터급 강자를 어떻게 찾으려고? 연방을 이 잡듯 뒤지기라도 할 건가?”


답이 없다는 건 그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용히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개인적으론 그녀가 파베르에 대한 집념을 떨쳐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펜나는 마음의 준비가 덜 된 모양이었다.


“···고마워요. 오랜만에 접한 지인의 소식이라 잠시 흥분했었나 봐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겠죠.”


지인이라. 펜나 사사투스의 복잡한 가정사를 떠올리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이 이상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은 그녀 스스로 해야할 일이다.


“그럼 의문이 해결됐으니, 호위는 예정대로 진행되는 건가?”

“해결되지 않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을 겁니다. 임무니까요.”


펜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마력석을 거뒀다. 말투 또한 딱딱한 어조로 되돌아갔다.


“호위는 71조가 담당하지만, 양지에는 저 혼자만 드러나 있을 겁니다. 다른 조원들은 음지에서 경비를 맡을 테니, 호위에 관한 사항은 제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저택에 빈방은 많다. 나는 미루에게 펜나의 방을 부탁했다.


“그럼 가까운 방이 좋지 않겠어요?”


미루는 펜나의 거처로 2층, 내 방의 바로 건너편을 제안했다.


서재 옆이고 내 방과 가장 가까운 방. 귀한 손님이 왔을 때를 대비해 준비한 숙소이기에 호화로움이 내 방에 버금간다.


“제일 가까운 방이니까. 앞으로 자주 볼 텐데, 잘 부탁드립니다.”

“저, 저두요!”


펜나와 미루가 예의바르게 인사를 나눈다.


식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기쁜지 미루는 힘을 내어 저녁을 준비했다.


그리고 펜나는 자기 음식은 스스로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



잠에서 깬 나는 괘종시계를 확인했다.


오전 4시 반.


슬슬 출발해야 할 시간이다. 간단하게 씻고 로브까지 쓴 뒤, 방을 나선다.


“어디 가십니까?”

“···깜짝이야.”


호위대상이 사라지면 또 무슨 질책을 받을지 몰라 조용히 깨울 생각이었는데, 이미 펜나는 중무장을 한 채 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안 자고 있었던 건가?”

“물소리에 깼습니다. 외출하시는 겁니까?”


펜나가 힐끗 복도의 창문 밖을 훑었다.


이 시간에 어딜 기어나가냐는 뜻이다.


어차피 한동안 같이 다녀야 할 테니, 나는 숨김없이 말했다.


“유적 발굴하러.”

“유적이요? 저번처럼?”

“그래.”


저택 밖으로 나서는 나를 펜나가 뒤쫓는다.


“아니, 유적이 뭐 동네 뒷산에 자라는 약초도 아니고. 찾으러 간다고 찾아진답니까?”

“호위는 대상의 사정엔 신경 쓰지 않는 게 원칙 아닌가?”

“유적으로 들어가면 저도 꼼짝없이 따라 들어가야 하잖습니까. 호위망도 문제구요.”


저번처럼 포탈로 이동할 경우 호위에 구멍이 뚫리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안심시켰다.


“앞으로 갈 유적들엔 포탈 없으니 걱정마라. 아. 조금 위험할 수는 있지.”


나는 택시를 잡아 서쪽으로 향했다. 저번처럼 미개척지로 간단 말에 펜나가 조용히 물었다.


“진짜 유적을 찾아가는 겁니까?”

“내가 이 꼭두새벽부터 쓸데없는 짓을 할 사람으로 보이나?”

“그건 아니지만 말이 안 되잖아요. 연에 많아야 스무 개 남짓 발견되는 유적을 잃어버린 물건 찾으러 간다는 식으로 말씀하시니까.”

“말을 놓을 거면 편하게 놔라. 나이도 한참 많을 텐데.”

“···저번처럼 문서를 보고 가는 거예요?”

“그런 셈이지.”


서쪽 끝 초소를 통과해 한참을 도보로 이동했다. 그 뒤를 펜나가 의심스런 눈으로 따라온다.


“진짜네.”


그녀가 의심을 푼 건 미개척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린스킨의 던전을 발견하고 나서였다.


“들어가지.”


배낭에서 손전등을 꺼내고 어두운 입구로 먼저 들어갔다.


“가, 같이 가요!”


사서의 금고처럼 사람이 만든 시설에 몬스터가 자생하는 던전이 있는 반면, 몬스터 스스로가 만든 던전도 있다.


후자의 경우 유물이나 골동품을 얻기는 요원해도 마정석 같은 몬스터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개체수가 제법 되는 모양인데.”


나는 입구부터 걸려있던 그린스킨 특유의 장식들을 살폈다.


인류가 종족별로 다른 문화를 꽃피웠듯, 몬스터 또한 각자의 고유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린스킨의 경우 본인들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화려하고 섬뜩한 장식을 제작해 걸어놓고는 한다.


그 수와 규모에 따라 던전의 대략적인 위험도를 예측할 수 있다.


“삼 사백쯤 되겠어.”


기존에 알던 규모의 두배 쯤 된다. 아마 개체수의 증가로 몇 년 뒤 확장을 시도하고, 그 후에 플레이어로 입장했을 것이다.


“제도 근처에 이 정도의 던전이 있을 줄이야.”

“그만큼 제도의 경비가 허술해졌단 뜻이지.”


궁극적인 원인은 인력 부족이다.


베사 요새를 비롯한 인페스티스와의 국지전은 지금도 연방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일반 병력부터 기사 급의 고위 전투 인력까지 전부 부족해지고 있다. 당장 내년부터 기사학부의 인원이 폭증하는 게 이를 반증한다.


거기에 십자회나 써클 같은 내부 조직까지 말썽을 일으키니.


“찬란하던 연방이 어쩌다···.”

“아직 위기의식을 못 느끼는 거다. 언제든 멸절시킬 수 있다는 오만함을 버리지 않는 이상, 연방의 손해는 계속해서 누적될 거야.”


베사 요새의 함락이 연방에 얼마나 큰 충격을 줬는지 떠올리면 아직도 멀었다.


“그건 혼자만의 생각인가요? 아니면 하이엘프 특유의 직감?”

“정상인의 판단. 수사국에선 정세 분석은 안 가르치나?”

“우린 수사국이지, 군 참모부가 아니에요.”


그 참모부 너무 믿지 않는 게 좋을 텐데.


나는 말을 삼키고 동굴 안으로 걸었다.


주기적으로 갈아놓는 횃불이 동굴 안을 밝힌다. 나는 조용히 길을 따라 걷다 마력을 던졌다.


퀘엑!


독수리만한 덩치의 흡혈박쥐가 균열에 빨려 들어가 한 줌 피로 화한다.


이제부터 슬슬 그린스킨의 경계조가 등장할 위치. 나는 펜나에게 말했다.


“호위면 적극적인 무력 행사는 자제하는 건가?”

“마력 탈진으로 쓰러지면 밖으로 데려는 가 드릴게요.”


경호원이지 용병이 아니다. 나는 시넬의 눈을 켜고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한 채 앞으로 나아갔다.


푸카둠!

크크크!


갑자기 동굴 폭이 넓어지는 중간지점에 두 마리의 그린스킨이 떠돌고 있다.


둘의 목에 달린 뿔피리를 확인하고 흑마력 두 개를 날린다.


카구?


스스-


감이 좋은 녀석이 무기를 들어 올리며 경계를 강화하지만 이미 늦었다.


크륵!


목과 기관지, 폐 일부를 잃어버린 녀석들이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다 힘없이 쓰러진다.


“진짜 암습에 최적화된 개성이네요. 혹시 수사국에서 일할 생각 없어요?”


정부의 궂은일만 도맡아 해 까마귀린 멸칭이 붙은 수사국이다. 이리저리 휘둘리는 조직에 들어가 개고생할 생각은 없다고 쏘아붙이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돈 많이 주나?”

“박봉은 아니죠. 위험수당도 있고.”


질문에 가능성이 있다 싶었는지 수사국의 메리트를 이리저리 설명하는 펜나. 즉석 제안치고는 절박함이 엿보인다.


“특히 조장급으로 승진하면···.”

“쉿.”


나는 펜나의 입을 막고 전방을 주시했다. 마력을 품은 생명체 넷이 다가오고 있다.


경계조 교대 시간인가. 나는 횃불 사이의 그림자에 몸을 숨겼다.


카둠?

프베르 브레브다크.


저 멀리서 다가오던 그린스킨 조장이 정지 신호를 보내고는 무기를 고쳐 잡는다.


혹시 자신의 목소리가 들린 건가 펜나가 손으로 입을 막는데, 때맞춰 동굴 입구로부터 바람이 불어왔다.


키지카!


눈이 벌게져서 달려오는 그린스킨 앞에 거대한 균열이 벌어진다.


횃불의 빛을 왜곡하여 마치 개기일식의 태양처럼 보이는 균열.


크아악!


인지하지 못하고 달려오던 그린스킨의 복부가 빨려들어가며 상하체가 분리된다.


마홐! 마홐!


마찬가지로 두 팔을 잃은 다른 그린스킨이 고함을 치며 뒤로 물러난다.


펑-!


그러나 뒤에서 짓쳐들어오는 압력에 앞으로 튕겨 나간다. 균형을 잃고 앞으로 상체가 쏠린 그린스킨.


스스-


균열 아래 목을 잃은 시체가 추가됐다.


남은 두 마리가 도망가려 뒤를 돌았으나 이미 그들의 발목 아래가 사라진 상태.


이타!


고통으로 울부짖는 녀석들의 성대가 가라지며 적막이 내려앉는다.


나는 남은 시체를 한데 모아 다시 한번 흑마력을 뿌렸다.


방금 우리가 들킨 이유는 바람에 실려온 그린스킨의 혈향 때문. 시체를 지울 필요가 있다.


“히야···.”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펜나를 뒤로 하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2년차 21.06.29 56 5 13쪽
42 2년차 +2 21.06.26 57 2 13쪽
41 2년차 21.06.24 62 3 14쪽
40 2년차 21.06.23 66 2 13쪽
39 2년차 21.06.21 70 4 13쪽
38 2년차 21.06.20 65 5 14쪽
37 2년차 21.06.19 76 4 13쪽
36 2년차 21.06.16 82 6 13쪽
35 2년차 21.06.15 87 5 15쪽
34 2년차 21.06.14 95 6 14쪽
33 2년차 21.06.13 101 7 16쪽
32 2년차 21.06.12 111 5 15쪽
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6 9 13쪽
30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6 8 15쪽
28 꼽추 아게르 21.06.08 104 7 13쪽
27 꼽추 아게르 +2 21.06.06 108 5 12쪽
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3 7 12쪽
25 꼽추 아게르 21.06.03 116 7 14쪽
24 꼽추 아게르 21.06.03 119 6 13쪽
23 꼽추 아게르 21.06.01 127 6 14쪽
22 꼽추 아게르 21.05.31 131 8 14쪽
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20 꼽추 아게르 +1 21.05.29 173 5 14쪽
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69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6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8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