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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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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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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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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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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9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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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년차

DUMMY

크릉!


달려드는 늑대 사이로 은빛 궤적이 빠르고 간결하게 지나간다.


아몬의 몸놀림은 짧고 직선적이었다. 펜나처럼 유려한 곡선을 통한 끊임없는 연계 대신, 빠르게 급소를 치고 지나가는 격검 형태의 검술을 펼쳤다.


쉭!


바닥에 붙어 달려드는 늑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아몬. 그러나 보다 빠르게 접근한 채찍이 녀석의 사지를 붙잡고 날아올랐다.


켕!


살아있는 뱀처럼 치솟은 채찍에서 수십의 녹색 사선이 뻗어 나와 늑대를 갈기갈기 찢어발긴다.


보란 듯이 펼친 잔혹한 광경에도 흘깃 바라만 볼 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혼자 나아간다.


“하, 하하?”

“카이엔.”


나는 무시에 몸을 떠는 카이엔을 진정시켰다. 아몬이야 성격상 제멋대로 행동한다 쳐도 이에 휩쓸려 카이엔까지 폭주하면 막기 힘들어진다.


“안 하겠다고 드러눕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저거 봐요, 저거. 대놓고 우리한테 따라오라는 거잖아.”


우리가 움직이지 않자 황무지 늑대들의 이목이 전부 아몬에게로 집중되었다. 다수의 몬스터에 포위됐음에도 그 어떤 도움 없이 이겨내겠다는 듯 우직하게 검을 휘두르는 걸 보면 의도가 명백했다.


“점차 난이도 단계가 올라가는 형식일 테니 일단 지켜봅시다.”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첫날부터 인상이 별로더라니. 완전 싸가지, 아, 거기 좋아요.”


옛날 동생들을 달래주던 습관처럼 뒷목을 주무르는 손길에 카이엔이 마력을 거두고 순한 양이 되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마지막 조원에게 말했다.


“어디까지나 조별 실전 훈련이 목적이니 전투에 끼어들어도 뭐라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 그럼 저도···.”


창을 움켜쥐고 늑대와 싸가지의 무대로 난입한다. 소극적인 태도와 달리 아몬에 필적하는 전투력을 선보이며 늑대를 학살해나갔다.


“무슨 꿍꿍이에요?”

“뭐가요?”

“저 싸가지한테 잘 해주는 이유.”


티가 많이 났나. 내가 웃음을 흘리자 카이엔이 노려보았다.


“카이엔은 사사투스 가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제국 제일의 검술 가문. 제국의 중추. 연방원수의원회의 일익.”


아는 게 많은 사람과는 이야기하기가 편하다. 나는 천재에게 약간의 힌트만 주었다.


“저 둘을 돕는 게, 궁극적으로는 퍼스마일을 돕는 일이 될 겁니다.”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알아들어요. 아, 몰랑. 빨리 구체적으로 설명해줘요. 안 그러면 저 싸가지 발목 전부 부러뜨릴 거야.”


뒷목 마사지에 녹아 흐물흐물해진 태도에 협박은 살벌하기 그지없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카이엔 퍼스마일이 끝까지 내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일지. 그녀에게 언급한 내용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미래를 바꾸지 않을지.


“카이엔 퍼스마일. 당신은 신뢰할 만한 사람인가?”

“연방에는 상호 간의 신뢰를 강하게 증명하는 제도가 있죠. 결혼이라고.”

“진심으로 묻는 거야.”


내 물음에 카이엔 또한 정상적인 표정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진지해지니까 막 떨리네. 그렇게 말하기 어려운 거면 안 알려줘도 돼요.”

“아니. 생각해보니 카이엔도 알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거든.”


카마라스 공화국이 연방 중에서도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기로 유명하다지만, 퍼스마일 쯤 되는 가문이면 적어도 연방이란 초월적 이해관계가 공화국에 필수불가결적인 요소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조금 유용하는 정도는 협조의 대가로 얼마든지 눈감아줄 수 있고.


“···그거 알아요? 지금 굉장히 다른 사람 같은 거.”

“곧 사사투스 가문이 분열할 겁니다.”

“뭐라고요?”

“명목상으로는 방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성토한다며 나서겠지만 실제로는 제국 내부에서 벌어지는 암투의 일환이고, 직계와 방계로 갈린 사사투스 가문에 여러 세력이 거들고 나서면서 내전의 양상으로 확장될 거에요.”


원래라면 펜나가 이 내전 과정에서 활약하며 지부장으로 승진하고, 방계가 내전에서 승리하며 권력을 쥐게 된다.


그리고 격화된 무력 충돌로 줄어든 국력에 훗날 베사 요새에도 영향을 미치는 병력 개편안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결과를 야기한다.


“참, 아몬은 아직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을 테니 혼자만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내전에 대비하라고 신경 써주는 거예요?”

“대비가 아니라 직계 쪽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방계의 뒷수작에 써클이 관련되어 있으니까.”


써클이란 단어에 카이엔의 표정이 싸늘해진다. 지난 몇 달 동안 그녀가 바쁘게 돌아다닌 원흉이 갑자기 튀어나왔으니.


“당신이 써클에 대해 어떻게 알아요?”

“내가 가문의 직계도 모르는 반란을 어떻게 알고 있을 것 같습니까?”


우문에는 우답으로. 잠시 노려보던 카이엔이 한숨을 쉬었다.


“바라는 게 있다는 건 알겠는데, 깊게 간섭하지는 못할 거예요. 우리 쪽도 바빠서.”

“차인차라 봉우리.”


지붕산맥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의 언급에 아름다운 흑안이 동그랗게 변한다.


“동쪽 중턱에 교묘하게 가려진 환상 결계가 있을 겁니다.”

“당신···.”

“본거지 중 한 곳인 만큼 대비는 철저히 해야 할 거예요.”


시간이 흐르면 자연적으로 철거될 써클의 주요 거점 중 한 곳. 지금 시점에서 거래를 위해 저울에 올려놓기엔 가치가 충분했다.


이번에는 꾸며낸 게 아니라 진짜 놀랐는지 반응이 없다.


“생각해보니 카이엔이 작년부터 많이 도와줬지 않습니까. 그에 대한 마음의 표시라고 여겨주면 좋겠네요.”


현재 퍼스마일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인 써클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면 사사투스에 손을 뻗을 여력도 생길 것이다.


알 수 없는 표정이 된 카이엔은 양손을 뻗어 내 로브 모자 안으로 집어넣었다.


로브를 뒤집으려는 건가 싶어 모자 부분을 잡으니 그대로 목을 끌어안는다.


“아직 수업 중이에요.”

“그게 무슨 상관? 조원 간에 신뢰 좀 쌓겠다는데.”


가까이 다가와 숫제 공간이 넓은 로브 안으로 얼굴을 밀어 넣은 카이엔이 귓속말로 물었다.


“첫째는 코르닉스로, 둘째는 퍼스마일로. 셋째는 어떻게 할까요?”


나는 마침 새로 구현되는 몬스터에게로 도망쳤다.


조별 전투력 측정이 끝났다. 중반부터는 마력 없이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 등장해 나와 카이엔까지 거들어 합격을 펼쳐야 했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나누던 격벽이 사라지고, 천장에 조별 측정 결과가 떠올랐다.


[1등 : 20분 28초 – 카이엔, 아게르, 아몬, 시실라]


2등과 5분 정도의 차이를 내며 1등에 등극했다. 카이엔의 사선이 적을 묶고 내가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마지막 단계까지 무난하게 깬 덕일 것이다.


“사관학교도 우리를 축복해주고 있네요!”


한층 증세가 심해진 카이엔을 무시하며 그 뒤로 붙는 실습 장소를 확인했다.


대부분이 미개척지의 특정 좌표를 가리키는 가운데, 상위권에 올라온 조부터는 제도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 배정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표시된 1등 조의 실습 장소.


[1등 – 카마라스 공화국 지붕산맥]


나는 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의심했다.



**



“주인님? 안색이···.”

“아냐. 조금 시달려서 그래.”


눈 밑을 매만지며 은행에 들려오다 구입한 옷을 미루에게 건넸다.


“도저히 같이 갈 시간이 안 날 것 같아서 사 왔어. 영수증도 있으니까 마음에 안 들면 가서 교환해.”


수트 케이스처럼 생긴 의복 가방을 열어본 미루가 기뻐하며 옷을 구경한다.


“감사해요!”

“그리고 이건 월급.”

“와아!”

“이건 생활비.”

“와아···.”

“이건 비상금.”

“···주인님?”

“헤일까지 신경 쓰려면 어찌저찌해도 돈 들 일이 많을 거야. 써야 할 곳엔 아끼지 말고 써.”


나야 기존의 저택 시설이 워낙 좋게 느껴져 별 불만이 없지만, 본가에서 지내온 헤일은 알게 모르게 불만이 있을지 모른다.


내게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온 미루에게는 속마음을 털어놓을 테니, 그때를 대비해 미리 전해두는 것이다.


“헤일은?”

“아직 안 오셨어요. 곧 오시지 않을까요?”


마침 정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구소에 가기 전 간단하게 끼니를 때울 요량으로 미루에게 식사를 부탁했다.


끼익-


“야.”


미루인지 알았더니 헤일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식당에서 뭐해.”

“일찍 식사하려고. 너도 먹을래?”

“됐어.”


많이 겪어본 상황이다. 나는 최대한 가볍게 물었다.


“할 말 있니?”

“···아니야.”


마지막 용기가 부족했는지 다시 식당 문을 닫고 나간다.


그래도 말을 꺼내려 했던 걸 보면 그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진짜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저렇게 티를 내지도 않는다.


나는 식사를 준비해 준 미루에게 오늘 밤 헤일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라고 이야기했다.


“같은 여자한테 더 털어놓기가 편하겠지.”

“저 그런 거 잘 못 하는 거 아시면서···.”


우는소리를 하면서도 미루는 일단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잠깐 방에 들렸다. 오늘부터 베시를 비롯한 연구원들과 잿빛 마력에 최적화된 구동부 재료를 찾는 실험에 들어간다.


스케쥴에 따라서 철야 작업까지 고려해야 해 필요한 것들을 챙기기 위해 샬리의 아공간 배낭을 챙길 요량이었다.


“언제 한 번 정리를 해야 되는데.”


가뜩이나 어지럽게 흩어져있는 책상에 배낭의 물건까지 꺼내놓으니 쓰레기장이 따로 없다. 나는 대충 정리 가능한 것들만 제자리에 옮겨놓고 나머지를 살폈다.


금고에서 얻은 고문서와 정체불명의 잡동사니들, 예비용으로 남겨둔 마석과 오브 장비, 그리고 샬리가 넘기고 간 두 자루의 창과 군기.


고문서의 해독은 완료되었다. 정확히는 엘피니아 포레스트 건국 당시 하이엘프 가문 간의 거래와 조율 내역이 담겨있었다. 잡동사니는 그와 관련된 증거인 듯 싶은데, 확실치는 않다.


훗날 어딘가 쓸모가 있을 테니 금고에 넣어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일단 가지고는 있다.


그리고 오브. 전용 무장 제작을 위해 고이 보관해놓은 최고 등급 품질의 고대 장비다. 천익 프로젝트가 궤도에 오르면 차르체터에게 부탁해 도움을 받을 생각이다.


“이게 문제네.”


다른 건 내 소유의 물건이니 어떻게 처리해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샬리의 유품은 주인을 찾아줘야 하는 장물이라 멋대로 처리하기가 곤란했다.


솔직히 슈발리에 가문의 후예를 지금 와서 찾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정보 길드를 통해 의뢰를 넣어두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정보력이 소로 상회보다 뛰어나지는 않을 테니 과거의 행적을 찾아 밝히는 건 무리이고, 최근에 들어오는 정보가 있길 바랄 수밖에 없다.


못 찾으면 네가 쓰라는 샬리의 말도 있었으니, 스토리가 진행되려는 시점에도 슈발리에를 찾지 못한다면 창을 다루는 다른 네임드에게 넘기는 걸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세 물건을 저택의 비밀 창고에 고이 모셔두고 연구소로 향했다.






대부분의 동아리 활동은 금요일에 집중되어 있다. 강의가 널널하게 편성되어 있고, 주말까지 이용해 긴 시간이 필요한 활동을 짜기에 편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서먹하게 모여있는 실전 동아리의 신입생도를 보다 옆자리에 뚱하게 서 있는 아몬에게 물었다.


“원래 이렇게 사람이 많나?”

“첫 주는 원래 많이 온다.”


성격 상 이런 자리는 싫어할 줄 알았는데. 2년차 대표로 참석한 아몬은 참석 인원과 명단을 대조하며 착실하게 인솔 대표로서의 모범을 보였다.


그리고 저편, 여자 생도들이 모여있는 곳엔 시실라의 모습도 보였다. 물어보니 동아리에서 안면을 익힌 경우라고.


“인맥 관리다. 실전 동아리의 경우 졸업한 선배 기사들과도 끈끈한 연계가 계속되는 몇 안 되는 사교장이어서 웬만한 가문 사람은 전부 가입하지. 네가 오히려 특이한 경우다.”


계약 후 아몬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아무리 꼴 보기 싫은 사람이라도 일단 무언가를 배운다면 스승이라고 딱 잘라 말하는 모습은 명문가의 자제다웠다.


“너도 뒤늦게나마 인맥의 중요성을 깨닫고 실전 동아리에 들어온 건 훌륭한 판단이다.”

“그런 거 아니다.”

“그럼? 동생 때문인가?”


나는 마침 시실라와 대화중인 헤일을 가리킨 아몬의 몸에 백마력을 둘렀다. 명단과 펜을 든 손이 느릿해진다.


“일주일에 이틀로 어느 적에 마력을 개화하려고?”

“그···렇군.”


이동해야 하는 만큼 적당하게 부하를 조절했다. 남들에게 조금 어눌하게 보이는 정도일 것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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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2년차 21.06.29 57 5 13쪽
42 2년차 +2 21.06.26 57 2 13쪽
41 2년차 21.06.24 62 3 14쪽
40 2년차 21.06.23 66 2 13쪽
39 2년차 21.06.21 71 4 13쪽
38 2년차 21.06.20 66 5 14쪽
» 2년차 21.06.19 77 4 13쪽
36 2년차 21.06.16 83 6 13쪽
35 2년차 21.06.15 87 5 15쪽
34 2년차 21.06.14 96 6 14쪽
33 2년차 21.06.13 101 7 16쪽
32 2년차 21.06.12 111 5 15쪽
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7 9 13쪽
30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7 8 15쪽
28 꼽추 아게르 21.06.08 105 7 13쪽
27 꼽추 아게르 +2 21.06.06 108 5 12쪽
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4 7 12쪽
25 꼽추 아게르 21.06.03 117 7 14쪽
24 꼽추 아게르 21.06.03 120 6 13쪽
23 꼽추 아게르 21.06.01 127 6 14쪽
22 꼽추 아게르 21.05.31 132 8 14쪽
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20 꼽추 아게르 +1 21.05.29 174 5 14쪽
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7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2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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