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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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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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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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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꼽추 아게르

DUMMY

마시던 술병을 구석에 집어던진 기기스가 탁자 위에 둔 금고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78년 윌터 공방제 밀폐형 금고요. 오직 기계식 톱니의 연계로만 이루어져 있고, 결속 자체가 느슨해서 조금만 강한 충격을 줘도 나사가 빠져버리는 지랄맞은 물건이지. 정공법으로 따는 수밖에 없어.”

“얼마나 걸리지?”

“당신도 도망자 신세요? 말끝마다 얼마나 걸리지, 얼마나 걸리냐. 이딴 물건을 가져오고 땡처리 받았으면 양심이 있어야지.”


거친 말투와 달리 금고를 만지는 손은 섬세하기 그지없었다. 술기운이 잔뜩 오른 얼굴로 한참 금고를 매만지던 기기스가 견적을 냈다.


“최소 3시간. 최대는 나도 모르오. 운이 좋으면 금방 따는 거고, 아니면 한 달 내내 이 금고만 부여잡고 살아야지.”

“기다리겠다.”


배낭에서 나온 오십만 리브 어치 금괴를 본 기기스가 눈을 빛냈다.


“금괴 좋지. 아주 양심이 없진 않았던 모양이야.”


기기스는 술병을 가득 찬 1층에서 벗어나 2층으로 향했다. 그나마 사람 살만한 공간인 2층에는 작업대와 온갖 정체 모를 도구들이 즐비했다.


“기다리든, 내일 다시 오든 알아서 하쇼. 처음 오는 손님들은 죄다 무슨 환상이라도 품은 건지, 금고 따는 게 굉장히 멋있을 거라 생각하더군. 장담컨대 그런 모습을 상상했다면 당장 돌아가는 게 나을 거요.”


내가 별다른 대꾸 없이 구석의 의자에 앉자 기기스도 투덜대며 작업에 들어갔다.


미세한 소음을 증폭시켜주는 수인 전용 청진기를 귀에 끼고, 각기 다른 두 개의 락핏으로 살살 열쇠 구멍을 헤집는다.


집중하며 맺힌 땀을 따라 기기스의 술기운이 날아간다. 아주 조금씩 빨라지는 작업 속도.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려보고, 그 이상 걸린다 치면 돌아갈 생각이었다.



나와 기기스 둘 다 의자에 앉은 지 두 시간이 지났다.


특수방음 처리된 방안에서 두 사내의 숨소리만 잔잔히 들리는 상황. 기기스는 눈 깜빡이는 것조차 잊을 만큼 해제에 몰두해 있었고, 나는 그의 집중력이 깨지지 않게 사소한 몸짓 하나하나 통제했다.


“후우.”


락핏을 거둔 기기스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냉수를 들이켰다.


“8개 락 중 6개는 찾았소. 이제 나머지 2개만 찾으면 돼. 운이 좋군. 마지막 의뢰라 그런가.”


점차 어두워지는 사위. 저녁때가 되어선지 바깥 소음이 조금씩 방음을 뚫고 들려온다.


“···아! 시발!”

“······버려!”


빈민가에서 안 들리면 서운한 크고 날카로운 비명이 몇 번 지나간 후, 나는 의자를 통해 전해지는 진동을 감지했다.


“좆됐네. 개새끼들이 온 거 같아.”

“왈패들?”

“돈 많고 빽 있는 놈들이 단순한 왈패는 아니지.”


불안감, 혹은 공포감. 락핏을 든 기기스의 손이 잘게 떨린다. 이대로면 오늘 안에 금고 따기는 요원할 게 분명하다.


“금고 여는 데만 집중해. 바깥 상황은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까.”

“빈민가 밑바닥 놈들이 댁 신분을 신경이나 쓸 것 같소?”


나는 어깨를 확인했다. 로브를 바꿔 입으면서 사관학교 뱃지를 옮겨 다는 걸 깜빡했다.


“오십만 리브가 딴 놈 뱃속으로 들어가는 꼴은 못 보지.”

“안 되겠거든 도망이라도 가쇼. 나도 내 목숨 하나 챙길 여력은 되니.”


작업실을 나오니 소란이 한층 명확하게 들려온다.


“뭔 애새끼가 나와? 기기스 이 새끼, 애한테도 손대냐?”

“그 정도 말종은 아닙니다.”


빈민가의 좁은 골목을 수십의 장정이 가로막고 있다. 다들 눈빛이 형형한 게 토종 빈민가 출생으로 칼밥 좀 먹은 듯했다.


“상관없는 놈까지 담글 필요는 없지. 야! 애새끼! 당장 비켜!”


두목으로 보이는 개 수인이 다짜고짜 소리쳤다. 기기스가 개새끼 패거리라 부른 이유가 있었다.


“기기스한텐 무슨 볼일이지?”


두목은 칼을 들이미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우리가 없이 살아서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거든.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비켜라.”

“두목님, 이 새끼 아이가 아니라 꼽추인 모양인데요.”


안경을 쓴 인간의 말에 두목이 인상을 쓴다.


“애새끼보다 악질 아냐? 너 내가 쳐죽일 때 기분 나쁘라고 일부러 알려준 거지?”

“그럴리가요. 저 로브, 인식 방해가 걸린 고급품인 것 같으니 담글 때 조심하라고 알려드린 겁니다.”

“쉬벌, 옷부터 벗겨야겠구만.”


영 찜찜하다는 표정으로 칼을 치켜올리는 수인에게 마력을 전개했다.


펑!


“억!”


백마력의 폭발을 맞고 튕겨나간 두목. 인간이 안경을 치켜 올리며 경악한다.


“미친, 기사잖아!”

“그 안경, 아티팩트지?”


로브의 인식 방해를 뚫을 정도면 가격이 제법 나가는 물건이다. 나는 흑마력을 이용해 녀석의 얼굴에서 안경만 벗겨냈다.


“아, 안돼! 개새끼들아! 보고만 있을 거냐!”


인간의 외침에 주변 장정들이 일제히 주택 입구로 달려들었다.


먼저 선제공격 당했음을 입증하면 이들을 몰살해도 무죄다. 그러나 한번 쌓인 원한을 결코 잊지 않는 빈민가 왈패와 척을 지면 앞으로 제도 북부를 다닐 때마다 귀찮아질 게 분명하다.


적당히 기기스의 작업을 방해하지 못할 정도로만 처리해놓으면 충분할 것이다.


나는 흑마력 덩어리로 기기스의 집을 감쌌다.


나를 무시하고 들어가려 하면 곧장 균열을 만들어낼 목적이었다.


“으아아악!”


어린 인상의 마인이 낡은 무기를 내게 찔러온다.


스스-


균열에 무기가 갈리는 동시에 백마력 폭발을 맞고 날아간다.


좁은 골목, 한정된 지형. 적의 수는 많아도 공격할 수 있는 경로는 정해져있다. 나는 그들의 무기를 없애고 날려 보내기를 반복했다.


“그만! 멈춰 새끼들아!”


정신을 차린 두목의 외침에 공격이 멈춘다. 이미 절반 이상이 자신의 무기를 잃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총무 이새낀 어디갔어!”


쌍코피를 흘리는 수인이 주변을 돌아본다. 나는 반대쪽 골목을 가리켰다.


“안경 뺏기고 저기로 도망가던데.”

“시이발···.”


피 섞인 침을 뱉은 수인이 칼을 집어넣으며 물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순순히 놔줄 거요?”

“기기스의 작업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약속하면.”

“···어쩐지 운세가 안 좋더라니.”


총무 새끼가 금고 들고 튀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며 서둘러 부하들을 챙기는 두목.


“돌아가···!”


휙!


목소리를 높이는 수인의 앞으로 작은 물체가 날아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그대로 남아있는 인간의 머리였다.


그와 동시에 주변 골목길로부터 스산한 기운을 가진 이들이 하나씩 등장했다. 전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다.


“씨발, 함정이었나?”


이쪽을 노려보는 수인. 속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나도 지금 상황이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다.


“전부 죽여.”


피를 머금은 단검을 든 괴한의 말에 이번에는 사방의 검은 로브들이 나와 왈패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크악!”


갈대처럼 쓰러지는 왈패들. 무기도 없어진 데다가, 기본적인 실력 차이가 너무 컸다. 무엇보다도 마력의 유무가 그들의 사이를 갈랐다.


복장과 마찬가지로 통일된 무기인 단검에 하나같이 불길한 핏빛 마력이 맺혀있다. 그나마 있던 무기도 마력에 부서져 나가니, 곧 골목길이 시체로 가득 찼다.


스스-


기사 수련생과 비슷한 무력에 명확한 적대 의사. 이미 죽이려는 생각으로 온 이들을 왈패들과 달리 봐줄 이유가 없다.


한결 여유로워진 마력 운용을 통해 달려드는 괴한에게 균열을 선물했다.


왈패의 수가 줄어드니 공격이 내게로 집중된다.


이제는 명확해진다. 이들은 나를 노리고 온 암살 집단이다.


누가 보낸 것일까 고민하기에는 적들의 공격이 점차 거세진다.


스스-


균열의 전조에 흩어지는 괴한들, 그리고 그 자리에 시체를 집어 던진다.


몬스터와는 다르다.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고, 집요하게 빈틈을 찾아 노린다.


스스스-


골목길을 완전히 메우는 균열의 등장에 주변 건물이 휘말린다.


벽돌과 피, 부서진 무기의 잔해가 빨려 들어간다. 암살자들은 재빠르게 회피해 건물 위쪽으로 피한다.


“하악, 하악.”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내 모습을 본 암살자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이미 왈패들과의 싸움으로 주변 사람들은 전부 도망갔고, 그 왈패들도 이미 전부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렸다.


시넬의 눈으로 모든 괴한이 일정 반경에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는 곧장 흩어진 흑마력 덩어리 중 하나를 회전시켰다.


키잉!


사천왕 아게르의 패턴 중 결계와 같이 플레이어를 동료와 분리시키는 데스 필드가 있다.


외부의 공격은 모조리 차단하고, 내부에서 사천왕과 일대일 대결을 펼쳐 이겨야 풀리는 까다로운 패턴.


회전하는 흑마력을 어떻게 이용할까 고민하다 비슷하게 재현해낼 수 있었다.


필드 효과인 지속적 데미지는 없지만 내외부의 차단은 회전이 계속되는 한 유지된다. 또한 벽 쪽에 기습적으로 균열을 만들어 변수를 창출할 수 있다.


주변을 감싸는 어둠에 공세를 멈추고 상황을 파악하는 괴한들.


“···발악인가.”

“발악?”


나는 웃었다. 사천왕 아게르의 등장에 온갖 요새와 전선을 잃었던 연방이 들으면 기가 찰 말이었다.


“진짜 발악이 뭔지 보여주지.”


팔다리가 날아가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는 녀석들이다. 사로잡는다고 그 배후를 불 것 같지도 않고.


나는 내 주변과 집에 백마력을 두른 후 데스 필드의 회전을 풀었다.


하늘과 땅이 무너지며 한점으로 모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인력의 힘이 대지와 공기, 사람과 비명을 집어삼킨다.



**



“됐다!”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환경에 집중을 더한 기기스가 마침내 모든 락을 찾아냈다.


이제 락핏으로 열기만 하면 끝난다. 털에 묻은 땀을 닦아낸 기기스는 시간을 확인했다.


“신기록이군.”


3시간 40분. 악명높은 윌터제 금고를 이 짧은 시간만에 딴 건 자신의 스승도 못했을 일이이라.


“아까부터 조용한데.”


무사히 금고를 따고 나니, 이제야 의뢰인의 안부가 걱정됐다. 진즉 개새끼들이 들이닥치지 않은 걸 보면 어떻게든 해결한 모양인데, 그 꼽추 엘프가 어떻게 그들을 구워삶았는지 궁금해졌다.


끼익- 끼익-


낡은 계단의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1층으로 내려가 문을 연 기기스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 이게···.”

“금고는?”


나갈 때와 별 달라보이지 않는 의뢰인 뒤로, 모든 풍경이 바뀌어있었다.


집을 주변으로 빽빽이 들어차 있던 빈민가의 건물 대신 대지 본연의 땅이 드러나 있다.


“그, 금고가 문제가 아니잖소.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기에···.”

“나와 관련된 일이니까 추적당할 걱정은 안 해도 돼.”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아니오. 그나저나 개새끼들은?”


의뢰인은 미개척지처럼 변해버린 땅 한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엔 개새끼들의 두목이 사용하던 검이 반으로 부러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금고는?”

“열었소. 들어오시오.”


1층에 깔려있던 술병을 다급히 정리한 기기스는 금고를 내려놓고 의뢰인에게 말했다.


“금고 안에서 뭐가 나오든, 내 책임은 없다는 걸 알아두쇼.”

“열기만 하면 돼.”


아까는 별 느낌 없었던 의뢰인의 말이 갑자기 무섭게 들렸다.


‘빨리 튀어야겠어.’


침을 삼킨 기기스는 얇은 고정핀 8개를 들고 하나씩 열쇠 입구에 꽂아 넣었다.


딸깍-


마지막 핀을 넣자 경쾌한 마찰음이 들리며 금고 문이 열렸다.


“확인하쇼.”


자리를 비켜주며 기기스는 슬쩍 금고의 내용물을 훔쳐봤다.


몇 개의 문서철과 정체 모를 물건들이 전부. 오십만 리브나 써서 구할 만한 것들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배낭에 금고와 내용물을 집어넣은 의뢰인이 떠났다. 기기스는 다급히 집에서 챙길만한 소지품과 금괴를 챙기고 집을 나왔다.


“미친···.”


오직 자신의 집만 멀쩡했다. 주변 반경 안에 있던 모든 구조물이 모조리 사라졌다.


마지막 액땜을 크게 했다고 생각하며 기기스는 포탈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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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꼽추 아게르 +1 21.06.04 11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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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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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7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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