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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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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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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 :
261
글자수 :
25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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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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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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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3쪽

2년차

DUMMY

“귀가 간지럽네.”

“괜찮나? 원래 처음 병기창에 방문하는 이들은 소음에 질색하지.”


은은히 남아있는 간지러움을 털어내고 차르체터를 따라 병기창 내부를 걸었다.


국립공방과 같이 연방 기관 중 하나인 병기창. 국립공방이 연방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온갖 시설물과 물자를 제작한다면, 병기창은 오로지 무기와 군에서 쓰이는 전략 물자만을 담당해서 만드는 조직이다.


끼이익!

쾅! 쾅!


“더 들어 올려! 더!”


단층을 이루어진 수천 평 규모의 부지에 다양한 작업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이 구역은 크기가 어느 정도 있는 물자를 생산하는 곳이라네. 기사 수련생이면 이곳보단 무기고를 더 보고 싶을 테지?”

“어디든 연방을 위해 헌신하는 장인들이 있는 곳 아니겠습니까. 괜찮습니다.”

“허허,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연방 중 제국에만 극히 드물게 남아있는 드워프 대부분이 병기창과 국립공방 소속이다.


원한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드워프답게, 그들은 자신의 열정과 인페스티스에 대한 분노를 연료 삼아 연방의 주춧돌을 공고히 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이곳일세.”


회의실로 들어서니 소음이 일순간 멈췄다. 완벽한 방음 처리가 되어있는 방 안에, 이미 퀴르헨과 베시가 도착해 있었다.


“문제는 구동 구조군요.”

“얼마나 걸릴까?”

“제작 기간이 있는 만큼 설계 자체는 기한에 맞출 수 있을 거예요.”


넓은 탁자에 펼쳐놓은 청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둘. 나와 차르체터가 다가가자 비로소 우리를 알아챘다.


“아, 어서 와요. 기다리고 있었어요.”

“설계 단계라면 차라리 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게 낫지 않겠소?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병기창이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닌지라.”

“아뇨. 최대한 많은 장인 분들이 있는 곳에서 진행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마침 회의실 문이 열리며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 뒤로 다수의 드워프들이 옹기종기 따라 들어왔다.


“괜찮다고 하신 분들만 모셔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장인 여러분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의 탁자를 둘러싸고 스무 명이 빙 둘러앉았다. 차르체터 옆에 자리한 나는 퀴르헨이 지지대에 청사진을 거는 것을 지켜봤다.


“제가 초안을 잡고, 국방 연구원들이 살을 덧대어 만든 프로토타입의 비행 기기에요. 이론적인 부분만 적용했을 뿐, 실질적인 구조와 부하 등에 대해서는 저보다 여기 있는 여러분이 더욱 잘 아실 거라 생각해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마련한 겁니다.”


모두의 시선이 청사진으로 향한다.


처음 보고 떠올린 건 드론이었다. 사람이 탑승할 수 있는 정사각형 구조의 선체. 모서리 끝에 하늘을 향한 회전익이 달려있다.


“목적이 뭐요?”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기사들을 태울 겁니다. 안정성이 최우선이에요.”

“회전익은 제작하기는 쉬워도 외부의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소.”

“네 개로 나뉜 것도 문제가 될 소지가 있지. 한쪽이라도 고장 난다면 효율이 급격히 떨어질 거요.”


각자의 분야에서 한가락 하는 장인들이 한마디씩 의견을 내기 시작하자 금세 격한 토의로 이어졌다.


퀴르헨과 베시는 연구원의 입장에서 그들의 의견을 적절히 취합하고 무리한 아이디어는 끊어내는 등 회의를 이끌어나갔다.


컨셉뿐이던 청사진에 베시가 장인들의 의견을 반영해 즉석에서 덧그렸다. 거대한 회전익 하나가 선체 중앙에 달렸다가 사라지고, 또 작은 회전익 두 개가 측면과 아래쪽에 붙었다가 사라진다.


“아래쪽에 다는 게 맞소!”

“그러면 무게 중심이 무너진다니까!”


그 열성적이다 못해 거칠기까지 한 의견 조율에 끼지 못한 나는 청사진을 보며 홀로 딴생각에 빠져있었다.


“자자, 너무 과열된 감이 있군. 다들 진정하게.”


존경받는 마이스테, 차르체터의 박수 소리에 장인들이 일단 열을 죽였다.


“기본적인 것부터 정하고 넘어가지. 박사, 크기는 얼마나 생각하고 있소?”

“제한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규모가 커질수록 안정적인 출력이 최우선 과제가 될 텐데, 인페스티스 상공으로 나아가면 싸이오닉 에너지의 영향을 받을 거요.”


한 장인의 발언에 몇몇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정작 당사자의 의견을 듣질 못 했구만.”

“마이스터, 누구요?”

“저 물건을 조종할 사람.”

“기사인가?”


장인들이 내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퀴르헨이 내게 물었다.


“아까부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음···. 그냥 잡생각?”

“거짓말.”


퀴르헨의 미간이 살짝 파인다. 억울하다. 진짜 잡생각에 버금가는 옛 기억들을 떠올린 것 뿐인데.


“부끄러워 말고 말해보게. 때로는 무지한 자의 한 마디가 전문가의 열 마디보다 가치 있을 때가 있으니까.”


퀴르헨의 눈빛에 차르체터까지 겹치니 얼버무리기도 뭐해졌다. 나는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꼭 회전익이 있어야 할까요?”

“꼭 회전익이 아니더라도 부력을 얻기 위한 장치는 필요하지.”

“마력으로 대체한다면?”


게임 내에서 비행기를 제작해본 적은 없지만, 지구에서는 온갖 형태의 비행기를 접했다.


내가 청사진을 보고 떠올린 건 유명한 우주 SF소설의 비행선이었다.


관성 조작 장치를 통해 비행과 가속이 자유롭다는 설정의 우주 비행선. 그 설정을 마력으로 구현할 수만 있다면, 회전익을 이용한 비행기보다는 훨씬 안정적일 것 같단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인력과 척력, 싸이오닉 에너지에 영향을 받지 않는 잿빛 마력까지. 어떻게 잘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봐요.”

“이게 말로 설명하기가 조금···, 아, 그 청사진 조작 저도 가능할까요?”


나는 베시에게 건네받은 마력 펜으로 청사진에 머릿속 우주 비행선을 축소해 그렸다.


돛 없는 범선과 같은 형태에 하단 중앙에 달린 넓적한 마력 엔진. 그리고 양옆에 달린 포대까지.


“뭐지? 양옆의 구조가 분사구인 건가?”

“배를 닮았군.”


이미 회전익에 꽂힌 장인들은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대신 퀴르헨이 담담하게 물었다.


“회전익을 배제한 이유라도 있나요?”

“될 것 같아서요.”


거짓 없는 대답에 퀴르헨이 곰곰이 고민에 빠졌다.


“혹시, 아주 미약하게라도 좋으니 구현 가능하겠어요?”


비행을 시도해본 적은 없지만, 저번 샬리의 무덤에서 배낭을 옮기며 비슷한 짓은 한 적이 있다.


나는 완벽한 반자성을 띠며 허공에 떠오르는 초전도체를 떠올렸다.


싸이오닉 에너지를 중화시킬 수 있다면, 수천 년간 인류의 발목을 잡아 왔던 중력 또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덜컹-


바닥에 깔린 흑마력이 공간을 장악하고, 백마력이 회의실 내부를 물들인다.


“어어?”


전신을 감싼 부유감에 장인이 다급히 앞의 탁자를 잡았다. 그러나 탁자도 곧 마찬가지로 허공에 떠올라 균형을 잃어버렸다.


“되네?”


나는 혼란으로 가득 찬 회의실을 떠다니며 마력의 균형을 잡았다. 질적으로 열세에 있는 백마력의 소모가 조금 더 크나, 운용에 지장을 줄 만큼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문제는 운용이 아닌 다른 곳에서 발견되었다.


“이, 이게 뭔가!”

“내려주게! 으아악! 대지신이시여!”


땅과 친화력이 높은 드워프들은 연신 신을 찾으며 혼비백산했고, 퀴르헨과 베시는 그 사이에 적응해 벽을 차고 돌아다니며 무중력을 만끽하고 있었다.


대략적인 마력 소모량과 운용 방법을 외워둔 뒤 마력을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회의실 내의 물건과 사람들, 그리고 결정화된 잿빛 마력이 쏟아져 내렸다.


“허억! 허억!”

“꺄핫!”

“이건··· 정말 진귀한 경험이네요.”


마력으로 날아다니는 것과 무중력을 경험하는 것은 다른 느낌일 것이다. 생소한 감각에 드워프들은 치를 떨고, 호기심이 빛나는 연구원 출신 두 명은 즐거워한다.


“우리가 할 일은 정해졌군요.”


마력으로 부력을 대체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증명되자 회의는 급속도로 진전되었다.


병기창에선 마이스터 차르체터의 지휘 하에 프로토타입 비공정의 선체를 제작하기로 했고, 나와 베시를 비롯한 나머지는 잿빛 마력을 연료 삼는 구동 체제를 완성하기로 했다.


“저, 한 번만 더 해줄 수 있어요?”


국방연구소로 가는 내내 나는 놀이기구가 되어야 했다.



**



가상 전투실. 마력을 이용해 몬스터와 인페스티스를 구현해 실전을 치를 수 있는 기사학부 전용 실습실이다.


조마다 지정된 자리로 걸어오던 카이엔이 흠칫 놀란다.


“뭐에요?”

“수련 중입니다.”


내가 아닌 아몬의 이야기다. 나와 계약이 성립된 뒤, 그의 개화를 돕기 위해 모종의 조치를 해놓았다.


“무···시···해···라.”

“동작만 느려진 게 아니네. 어떻게 한 거예요?”

“주변을 척력으로 둘렀습니다. 아마 몸이 자기 몸 같지 않을 겁니다.”


팔과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달 듯, 아몬의 전신에 부하를 걸었을 뿐이다. 완력만으로 극복이 불가능하니, 진실로 벗어나고자 하면 자연스레 마력을 사용하는 법을 깨우칠 것이다.


일견 무식해 보이는 방법이지만, 플레이어 때 아몬에게 직접 전해 들었던 개화 방식이다.


“···뭡니까?”

“칭찬해줘요.”


아몬이 다른 데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걸 알자마자 옆에 와서 앉더니 머리를 들이민다. 짙은 장미 향이 코를 찔렀다.


“빨리.”

“무슨 칭찬이요?”

“장남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으니, 대가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제 저택에서 무슨 일 있었습니까?”


미루에게 카이엔이 왔다 갔다고만 들었다. 왠지 미루가 말하길 꺼려하는 탓에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는 상태였다.


“좀스럽게 묻지 말고 칭찬만 해요. 칭찬만.”

“···머리만 쓰다듬어주면 됩니까?”

“정성을 담아서.”


릴리에게 해주던 것처럼 조심스러운 손짓으로 부드러운 흑발을 쓰다듬었다.


“아게르도 동생한테 신경 좀 써요. 한창 예민할 나이 아니겠어요?”

“신경 안 쓰는 게 도와주는 겁니다.”

“무신경한 거랑 배려하는 거랑은 다른 거예요. 이래서 남자들은.”


칭찬해달래서 칭찬해줬더니 욕을 먹었다. 만족한 표정으로 머리를 뗀 카이엔이 흑발을 정돈했다.


“사소한 이야기라도 좋아요. 하루에 한두 마디씩 시작해서 조금씩 늘려나가다 보면 곧 평범하게 대화할 수 있을 테니까.”


시실라가 도착하며 사적인 대화는 끝맺었다.


시실라와 웃음꽃을 피우는 카이엔을 보며 나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헤일을 대하는 게 어렵다.


오로지 내 탓이었다. 친하게 지내려 들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사에 반목하는 일이 잦았다. 더욱이 내가 사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가문 대소사는 전부 헤일이 도맡아야 했다.


어느 하나 동생 앞에서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 갑자기 친해지자고 다가온다면 얼마나 같잖게 보일 것인가.


지금은 그저 폐만 끼치지 말자는 심정뿐이었다. 빚을 다 갚고, 본가 금고를 두둑하게 채워놓으면 그나마 좀 마음이 놓일지도 모르겠다.


“아, 은행.”


금고하니 떠올랐다. 슬슬 퀴르헨이 약속한 일당이 들어올 시기. 돌아가는 길에 잠깐 들려야겠다.


“다 왔네요! 오늘 실습은 학기 초 조별 전투력 측정이에요!”


조원끼리 모인 것을 확인한 뒤, 가상 전투실을 나누는 내벽이 형성되었다.


“오늘 전투력 측정은 다음 주에 있을 외부 실습 장소와 직결되니 부디 전력을 다하길 바라요!”


일리야의 목소리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몬의 모래주머니를 풀었다.


“한참 좋았는데 무슨 짓이지?”

“아무리 수련이 좋아도 실전만 못 하다.”

“쳇.”


이리저리 스트레칭하며 몸을 푸는 아몬. 그 모습에 여자 둘이 다가왔다.


“외부 실습이면 미개척지겠죠?”

“담당 교수님이 저래서. 혹시 모르죠. 저기 어디 카마라스 오지로 보낼 수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검을 쓰는 아몬을 제외하고, 둘의 무장을 보는 것은 처음이다.


시실라는 체구와 비슷한 길이의 창을, 카이엔은 가죽 재질로 된 채찍을 들었다.


“전용 무장은 처음 보는데.”

“흉해서 남들 앞에선 잘 안 꺼내요. 이래 보여도 병기창에서 손에 꼽히는 가죽 장인이 만든 명품이랍니다.”


유연하게 흐르는 마력 회로를 보아도 평범한 물건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온갖 추태를 보여도 카마라스의 권력 가문이고 훗날 아홉 영웅에 추대되는 대단한 마인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띵-


기계음과 동시에 전방에서 마력이 투영된다. 오랜 세월 발전하고 다듬어진 가상 전투실의 실습 프로그램은 거의 원형에 가까운 재현을 선보인다.


크르르-


미개척지에서 흔히 보이는 황무지 늑대 서른 마리가 주변을 포위했다.


“어떻게 할···?”


카이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몬이 이탈해 튀어나갔다.


나는 고운 이마에 한줄기 근육이 치솟는 걸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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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년차 21.06.20 66 5 14쪽
37 2년차 21.06.19 76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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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년차 21.06.15 87 5 15쪽
34 2년차 21.06.14 96 6 14쪽
33 2년차 21.06.13 101 7 16쪽
32 2년차 21.06.12 111 5 15쪽
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7 9 13쪽
30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7 8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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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4 7 12쪽
25 꼽추 아게르 21.06.03 117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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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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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7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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