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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6,483
추천수 :
261
글자수 :
259,046

작성
21.05.12 22:47
조회
462
추천
12
글자
7쪽

프롤로그

DUMMY

삑- 삑- 삑-


ECG 모니터의 소리가 긴박하다.


흐릿한 시야 속, 방금 전 나간 김 간호사님이 다시 병실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의사 선······! ······환자!”


언제나 미소와 친절로 무장해 날개 없는 천사라 불리던 예비 신부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다급한 표정이다.


“···아!”


호출을 받고 달려온 담당의, 정 선생님이 내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동공 반사를 확인한다.


신혼여행에서 얻은 블루문 베이비로 걱정과 기쁨을 동시에 토로하던 사람.

갓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의 사진을 보여주며 헤벌쭉 웃던 사람.

스케쥴이 꼬여 당당당으로 다크써클이 얼굴 절반을 드리워도 힘들단 내색 하나 없던 사람.


멋쩍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깍지 끼던 듬직한 두 손. 손전등을 든 그 손이 잘게 떨린다.


수전증이라곤 없던 사람인데.


“·········.”


이제 희미하게 들려오던 이명마저도 바람 앞 촛불처럼 사그라든다.


내게 남은 감각은 모니터에 필터를 끼운 것처럼 흐릿한 외곽의 시각뿐. 나는 위에서 병실을 내려다본다.


뒤이어 안면이 있는 의사 선생님 몇 분이 들어오고, 내 몸에 심폐소생술을 시도한다.


김 간호사님이 준비한 심장충격기를 받아든 정 선생님이 내 몸에 패들을 갖다 댄다.


벼락 맞은 메뚜기마냥 펄쩍 뛰는 내 몸. 살집 하나 없이 앙상하다. 3년 전부터는 수액과 영양제로만 연명해왔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다시 한번 충격을 가한다. 역시 살아날 기미는 없다. 애초에 내가 이렇게 병실의 허공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더 이상의 조치는 의미 없을 것이다.


“일영아!”


적막한 침묵 사이로 들려오는 선명한 목소리. 나는 병실 문으로 시야를 향했다.


꾀죄죄한 싸구려 옷, 푸석한 머리카락, 거칠게 일어난 피부. 한 손에 든 검은 비닐봉지를 바닥에 떨어트린 반백발의 중년.


아버지는 바닥에 떨어진 컵라면을 발로 밀어내며 내 곁으로 다가왔다.


“일영아···!”


뒤에서 대기중이던 의사 선생님들과 김 간호사님이 달려드는 아버지를 막는다.


무어라 크게 소리치는 아버지. 들리지 않는다.

김 간호사님을 붙잡고 애원하는 아버지. 들리지 않는다.

전신을 땀으로 젖은 채 심폐소생술을 시행하는 정 선생님의 다급한 외침. 역시 들리지 않는다.


일분, 십분, 한 시간.


의사 선생님들의 힘이 빠진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주변과의 선생님들이 모여 있는 가운데, 병실은 여전히 흐릿하다.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정 선생님의 등 뒤로 아버지가 어깨를 잡는다. 김 간호사님이 결국 눈물을 흘린다.


허망한 눈빛으로 차트를 받아든 정 선생님이 시계를 본다. 그렇게 몇 자의 기록으로, 내 삶은 작별을 고한다.


“일영아.”


모두가 떠나간 병실, 혼자 남은 아버지가 내 손을 잡으며 내 이름을 부른다.


“미안하다. 미안해.”


소리의 울림은 여기서 끝이었다. 그 후 찾아온 새벽녘 같은 침묵. 그나마 남아있던 시야도 점차 어두워진다.


이게 죽음의 문턱을 넘은 자의 세상인가. 나는 언제고 감각처럼 잊혀질 과거를 마지막으로 곱씹었다.


8년. 평범한 사회초년생이 불치병 판정을 받고 침상 신세를 진, 더럽고 치사하게 긴 세월이었다.


원인은 몸이 영양분을 무작정 배출한다는, 듣도 보도 못한 희귀질병.


기존 병리학과 궤를 달리해 해외의 유명 석학들이 모여 연구를 거듭했지만 결국 원인의 규명도, 치료법도 찾지 못했다.


유일한 성과라면 초고농도의 수액과 영양제로만 그나마 목숨을 연명할 수 있는 상태임을 밝혀낸 것. 차라리 밝혀지지 않았어야 했다. 그래야 희망을 놓았을 테니까.


병원비와 연명비용 마련. 처음에는 집을 팔았다. 다음에는 아버지가 일을 늘리셨다. 다음은 동생들의 학자금을 땡겨 왔다.


가족의 모든 소득이 내게로 흘러들어왔다. 그마저도 몸의 상태가 악화됨에 따라 늘어나, 결국은 빚까지 져야만 했다.


가세가 기울고, 가족들의 안색이 어두워지고, 아버지의 방문이 점차 뜸해지고, 빚쟁이가 병원까지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때론 동생들이 찾아와 미동도 없는 내게 저주 어린 말을 퍼부을 때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딱 한 가지는 가능했다.


뇌사 판정 환자들과 식물인간 환자에게 시범적으로 테스트 중이던 뇌파연동 VR기기. 테스트의 참가 비용으로 넉넉한 양의 금액이 주어졌지만, 이미 쌓일 대로 쌓인 빚과 이자를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나 하나로 인해 아버지가, 동생들이 지옥 속에서 살아야 했다. 아버지는 회사와 부업, 나머지 시간엔 나를 돌보느라 하루에 채 4시간을 못 잤다.


두 여동생은 그토록 가고싶어하던 대학, 여행. 모든 게 물거품이 되었다.


미안하다. 비록 생각밖에 할 수 없는 나여서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오빠. 오빠. 진짜 미안해. 미안한데, 이제 그만 죽어주면 안 돼?’


6년째 어느 날, 빚쟁이가 찾아와 병원에서 행패를 부린 그 날.


새벽 늦게 찾아온 둘째 여동생이 내 머리맡에 고개를 파묻으며 오열할 때에도, 나는 속으로 미안하다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왜 미안하다고 했을까. 미안한 건 나인데. 가족들은 아무 잘못 없는데.


부디 다음 생에서는 이런 오빠, 아들을 두지 않기를. 만약, 신이 있고 환생이 있어 내게 단 한 번의 기회를 준다면, 그들에게 이번 생의 죄를 갚겠노라고.


나는 8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간절했던 기도를 속삭였다.


[동기화 중···]

[VR 접속 완료]


번뇌와 주마등으로 점차 흐릿해져 가는 의식. 그 너머로 낯이 익은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 인증 완료]


VR기기 시스템인 젊은 여성 풍의 목소리다. 병상 신세를 진 이후 가장 많이, 오래 들은 목소리. 잊을 리가 없다.


[플레이어 정일영. 후회하십니까?]


후회한다. 미치도록 후회한다. 적어도 불치병임을 알았을 때 일찍이 포기했다면 적어도 가족들마저 고통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후회하는 이유가 가족 때문입니까?]


처음에는 원망했다. 왜 하필 내게 이런 병이 생겼을까. 전생에 무슨 업보라도 졌던 것일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과 분노는 사그라들고, 그 자리를 죄책감과 미안함이 대신했다.


나는 원래 이렇게 될 놈이었을 뿐. 가족들은 거기에 휘말린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그래서 후회하는 거다. 분명 내가 행동으로 옮길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을 목적과 대상이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낭비해버렸을 뿐이다.


[좋습니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유난히 선명하다. 인공학습을 위해 이런저런 문답을 많이 나누었는데, 오늘 같은 사적인 질문은 처음이다.


[지금의 각오, 부디 잊지 말길 바랍니다.]


잊고 말고 할 게 있나. 어차피 기억은 사라질 테고, 그 후엔 어찌 될지 모르는데.


점차 사고력이 약해지는 게 느껴진다. 마취제를 맞았을 때의 느낌. 나를 강제로 잠으로 밀어넣는 감각.


진정한 죽음을 나는 겸허히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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