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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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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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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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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1
글자수 :
259,046

작성
21.05.23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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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꼽추 아게르

DUMMY

“주인님! 오셨어요?”


오자마자 곯아떨어진 못 보고 간 미루가 반갑게 맞아준다.


“어제 못 주무신 거 아니에요? 안색이 수척하신데.”

“아냐. 잠은 잘 잤어.”


내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다면 두 사제지간 때문일 것이다.


순수하게 학구열로 가득 찬 일리야와 마치 실험대 위에 놓은 쥐를 보는 듯한 시선으로 캐물어 오는 카이엔.


둘의 시너지는 평범한 하이엘프가 감당하기엔 너무 강했다.


대화의 파도,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의견의 격랑, 쉼 없이 흔들려 산으로 가려는 배.


선장 겸 조타수가 되어 둘 사이를 조율하는데 신경쓰느라 결국 카이엔에게 어디서 만났는지 묻질 못했다.


나는 고개를 젓다 미루를 보곤 깜빡한 것을 떠올렸다.


“아차, 네 짐.”


아공간 배낭에 쑤셔 넣은 물건을 아직 돌려주지 않았다. 나는 배낭을 가지고 식당으로 내려왔다.


옷가지, 간병을 위한 물건들. 그리고 과일 바구니.


나는 과일 사이에 꽂힌 편지를 발견했다.


“미루, 이거 교수님이 주고 간 거 아니었어?”

“아니요? 가게에서 왔다고 했어요.”


가게라. 소로 주아르가 보낸 건가. 나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백지. 나는 앞뒤를 전부 확인했다. 편지지엔 아무런 내용도 적혀있지 않았다.


과일 바구니를 살 때부터 꽂혀있던 편지인가 싶어 집어넣으려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넬의 눈를 켰다.


「백조 두 쌍은 비상을 바란다. 연락 바랍니다. 18900-61-9-7」


“미루. 이거 주고 간 사람 누군지 기억해?”

“아니요. 아, 갈색 중절모를 쓰고 있었어요.”


모르는 사람이 준 물건을 덥썩덥썩 받는 것도 문제. 나는 앞으로 모르는 사람이 주는 물건은 받지 말라고 미루에게 당부했다.


울상짓는 미루를 두고 나는 종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시넬의 눈으로 본 문구가 드러난다.


특정 당사자의 마력으로만 드러나게 설계된 비밀 편지지. 보통 암흑가나 밀거래상이 쓰는 수법이다.


“참, 본가에는 연락 안 했지?”

“경황이 없어서···. 지금이라도 할까요?”

“아냐. 잘했어. 앞으론 별일 아니면 알리지 마.”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는 없겠지. 나는 물건을 건네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편지에 쓰인 숫자는 주소다. 나는 방 안 지도에서 숫자가 가리키는 위치를 찾았다.


북부의 시가지. 보통 빈민가라 불리는 지역이다.


내일은 또 다시 던전을 가야 해서 시간을 내기 어렵다. 나는 복장을 갖추고 다시 저택을 나섰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원해주지 못한다 했던가.


네 강대국의 힘이 집중된 제도에도 빈민가는 존재한다.


특히 제도 초기 건설 인력으로 쓰인 이민자들과 인페스티스와의 전쟁으로 고향을 잃어버린 피난민들이 주로 자리 잡은 북부지구는 군사시설의 영향까지 더해져 거의 슬램화 되어 있다.


편지의 주소는 그 한가운데를 가리켰다.


건물을 빈틈없이 붙여지어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골목. 오물과 쓰레기의 악취가 공기 자체에 스며들어있다.


빛을 잃은 공허한 눈동자가 내 쪽을 향한다. 언제든 범죄자로 돌변할 수 있는 부랑자들.


나는 빈민가로 들어서며 붙여놓은 로브 위에 사관학교의 뱃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군인을 건드리는 악질 범죄자도 기사 수련생을 건드리지는 않는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꼬인 옛 시가지 길을 따라 얼마나 걸었을까. 나는 목적지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주변의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과 달리 외관이 멀쩡한 3층 건물 입구에는 술집임을 알리는 작은 간판이 걸려있었다.


끼이익-


“아직 가게 안 열었소.”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시각. 테이블을 닦던 주인이 퉁명스레 말했다.


“편지를 보고 왔는데.”

“편지? 무슨 편지?”


나는 품에서 과일 바구니의 편지를 꺼내 보였다.


“여기서 보낸 거 아닌가?”

“별 미친놈을 다 보겠군. 술집에서 무슨 편지를 보낸단 말이오?”


곰 같은 덩치의 주인이 별놈을 다 보겠다는 시선으로 바라본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을 꺼냈다.


“백조 두 쌍은 비상을 바란다.”


주인의 걸레질이 멈춘다.


“이렇게 대낮에 찾아오고 편지까지 보여주는 어설픈 손님은 처음인데. 단속이 무섭지도 않은가?”

“시간이 없어서. 오히려 낮에 당당히 다니는 게 더 안전하지 않나?”

“걸리면 당신이 책임지시오.”


방금까지 닦던 테이블에 침을 뱉은 주인이 손짓하곤 카운터 옆문으로 들어갔다.


묵은 때로 거뭇해진 주방. 그 너머로 작은 문이 하나 더 존재했다.


“들어가시오.”


다 썩어가는 나무문을 열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드러났다. 간간이 붙어있는 마력 전구의 불빛에 의지해 내려가길 5분여. 다시 문 하나가 드러난다.


끼이익-


“어서 오십시오.”


지하는 넓었다. 족히 수백 평은 되어 보이는 대공동(大空洞). 수십의 철창과 가벽으로 나눠진 구역의 입구에, 갈색 중절모를 쓴 사내가 인사를 건넨다.


“입원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릅니다. 이렇게 쾌차하신 걸 보니 저도 마음이 놓이는군요.”

“부른 용건은?”


내 질문에 중절모를 고쳐 쓴 사내가 빙긋 웃었다.


“당연히 고객님이 찾으실만한 좋은 매물이 들어왔으니 아니겠습니까?”


매물.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어쩌면 지금 아게르가 가져간 돈의 출처를 밝혀낼 수 있을지도 모른단 직감이 들었다.






“가시죠.”


나는 조용히 중절모 사내의 뒤를 따랐다.


공동 내부에는 내가 들어온 입구 말고도 다양한 통로가 존재했다. 그곳으로 정체불명의 상자를 옮기는 인부들의 모습도 보인다.


나는 시넬의 눈을 켜고 주변을 훑었다.


다양한 마력의 반응.


나는 전율했다. 평범한 아티팩트는 물론이고, 각 국가에서 기밀로 취급할만한 고급 아티팩트들이 마치 일반 공산품처럼 쌓여있다.


그 중 압권은 작은 마을 하나는 통째로 날려버릴 수 있는 공화국 특제 마폭탄이었다.


인페스티스에 점령된 주요 군사 시설을 초토화시킬 목적으로 만든 자폭용 폭탄.


지휘관급이나 존재 여부를 알고 있을 만큼 극비인 군비 물자가 버젓이 상자에 담겨있다.


이 정도면 제도, 아니 연방을 통틀어도 최고 수준의 암거래상일 확률이 높다.


아게르는 여기서 무슨 물건을 거래했던 걸까.


“여기입니다.”


한 가벽의 철창 앞에서 멈춘 중절모 사내가 레버를 당겼다.


드르륵-


역시나 상자가 가득 쌓인 구역. 나는 장내를 가득 채운 광채에 시넬의 눈을 껐다.


“얼마 전에 발견된 신정왕국의 대규모 유적에서 가져온 물건입니다. 전에 구매하셨던 것보다 더욱 뛰어난 품질을 자랑하죠.”


네 개의 상자를 바닥에 옮긴 사내가 뚜껑을 열었다.


첫 번째 상자에 든 건 얼핏 평범해 보이는 티아라. 하지만 나는 봤다.


이 손바닥 만한 어린아이용 티아라가 어마어마한 마력을 품은 최고급 아티팩트임을.


사내가 꺼내 보인 네 개 전부 방대한 마력을 품은 아티팩트였다.


이해할 수 없다. 여태껏 그 돈으로 아티팩트을 사왔던 거라면, 그 물건들은 전부 어디로 간 건가.


“어떠십니까. ”


마치 자랑하듯 묻는 사내. 자신들이 이 정도의 물건을 구할 수 있다고 과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실제로 이 암거래상의 물건 확보 능력은 연방 제일일 것이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대꾸했다.


“좋군. 전주 최상급이야.”

“물론이지요. VVIP 고객님한테 질 떨어지는 물건을 보여드리는 건 저희 상회의 수치입니다.”


VVIP. 소름 끼치도록 불쾌한 단어였다.


“구매하시겠습니까? 아시다시피 빨리 사는 사람이 임자인 물건들입니다.”

“잠시 생각 좀 하지.”


용도를 모르는 이상 살 필요도 없고, 살 돈도 없다.


그렇다고 그냥 가기에도 뭔가 찜찜하다.


나는 여기서 아게르가 얼마나 썼는지, 언제부터 썼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내가 올해 얼마나 썼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그런데, 구매 내역을 확인할 수 있나?”

“예?”


비밀거래가 원칙인 암거래에서 장부가 존재할 것 같지는 않지만, 이 정도 규모의 암거래상이면 오히려 당당하게 작성할지도 모른다.


“고객님이 쓴 장부가 있지 않습니까?”


모른다. 있더라도 어딨는지 기억이 없다. 아게르에 대한 기억에서 단초를 찾는 건 반쯤 포기했다.


“얼마 전 지하에서 폭발이 일어나며 불타버렸네.”

“아하. 그랬었죠. 안타까운 일입니다.”


내 소식을 접하고 과일을 보낼 정도면 폭발 또한 알고 있겠지.


다행히 사내는 납득하곤 양해를 구하고 잠깐 다리를 비웠다.


그 사이 나는 상자에 담긴 물건을 보다 자세히 살폈다.


오랜 세월 마력을 간직한 만큼 어마어마한 마력을 담고 있지만, 정작 위험한 아티팩트들은 아니었다.


대부분이 보온이나 가벼운 고대 보호 마법. 또는 통역 등의 실생활 장비였다.


아마 영구적인 사용을 위해 마력을 잔뜩 때려부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의문인 거다. 특징이라곤 마력의 양뿐인 이 아티팩트들을 뭐하러 샀을까.


차라리 마력이 필요한 거라면 마정석을 구하는 게 훨씬 싸고 편했을 텐데.


“기다리셨습니다.”


사내가 얇은 책자를 하나 들고 들어왔다.


나는 조심히 그 장부 끝을 펼쳤다.


27번의 거래. 83개 품목. 총 거래 금액 97,000,000 리브.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몰려오는 돈이 여기로 빠져나갔다.


마약이나 도박 같은 쪽에 손을 안 댄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 삼아야 하나.


의구심만 깊어지는 가운데 나는 한숨을 쉬었다.


“고객님?”

“더 이상 구매는 불가능하겠군. 올해는 너무 많이 썼어.”

“원하시면 대출도 가능합니디만.”


암거래상이 빌려주는 돈. 살인적인 이자가 붙을 게 자명한 일이다.


“아니. 요즘 가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한동안은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거든.”

“아하, 그러고 보니 동생 분이 사관학교에 입학하시는 군요.”


모르고 있었다. 플레이어의 1년 선배이니 내년이면 입학하는구나.


저택으로 들어올지, 기숙사에 들어갈지 모르지만 준비를 해놓아야겠지.


나는 장부를 되돌려줬다.


“안타깝지만 내년을 기약하지.”

“내년에 이런 물건이 들어올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중절모 사내가 입맛을 다시며 장부를 품에 넣고는 출구로 안내했다.


들어온 곳과 다른 문.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땐 꼭 구매하도록 하지.”


아쉽다는 티를 최대한 어필하며 출구로 나섰다.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한참을 올라가니 작은 나무문이 등장했다.


와하하!

과일 사세요!


출구는 서쪽 시장거리 구석의 건물로 이어져 있었다. 단속을 대비해 여러 출입구를 마련해놓은 것이겠지.


나는 시장 거리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암거래상 방문으로 아게르가 탕진한 돈의 사용처를 알아냈고, 까먹고 있던 헤일의 입학을 떠올렸다.


저택에서 다닐지, 기숙사에 들어갈지는 모르지만 제도 생활을 이어가려면 적잖은 돈이 필요한 것은 사실.


거기에 빚 변제까지 생각하면 제도 근처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유적도 염두에 두어야 할 때다.


신정왕국 유적에서 대박이 터져주면 좋을 텐데.


쓸데없는 없는 생각을 하며 저택으로 돌아가니 손님이 와있었다.


“펜나?”

“공무 때문에 온 거니 71조장으로 불러주십시오.”


사복을 입은 펜나가 미루의 차를 마시고 인상을 썼다.


“쓰게 마시는 걸 좋아하시나 봅니다?”

“마시다 보면 적응된다.”


얼마 만에 들어오는 건지 모를 접객실에서 펜나와 마주 앉았다. 쓰다면서도 잔은 비운 그녀가 먼저 운을 띄웠다.


“이건 내일 발표될 수사국의 공식 입장입니다.”


펜나는 공문서 한 장을 내밀었다.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제도의 실종사건은 십자회의 소행으로 밝혀졌어요. 이에 연방은 사도의 몽타주에 현상금을 걸었고, 십자회를 추격하여 엄중한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게 주요 골자에요.”


내일 나올 어용신문의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는 쭉 읽어내려가다 중간에 줄이 그어진 문구를 발견했다.


「한편, 수사 도중 결정적인 제보를 한 시민이 기사 수련생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선택하면 돼요. 언론에 얼굴을 알릴 건지, 공을 마다하고 신분을 숨길 건지.”


공개할 경우 연방 정부의 이름으로 훈장과 소정의 보상을 수여할 것이고. 숨기면 아무런 혜택이 없다.


“지우지.”

“진짜요? 돈이 필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테니까.”


말이 좋아 유명세지, 결국 나를 향한 시선이 늘어나는 일이다.


가뜩이나 기이한 신체구조 탓에 길거리에서 쳐다보는 시선이 많은데, 여기서 신분까지 밝혀진다면 유적을 발굴하는 데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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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꼽추 아게르 +2 21.06.06 108 5 12쪽
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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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꼽추 아게르 21.06.01 127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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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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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7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 꼽추 아게르 21.05.23 152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9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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