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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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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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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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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6.08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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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꼽추 아게르

DUMMY

“갑자기 포지션은 왜요?”

“갑자기가 아니라 정석이야.”


요원 신분일 때는 호위였으니 전투에 손을 뗐었다. 그러나 이제는 같은 탐험가가 되었으니 전투의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


특히 안에 도사리고 있을 몬스터들을 생각하면, 미리 포지션의 언급을 통해 간단하게라도 전투의 양상을 과 역할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다.


“그럼 제가 전위, 아게르가 후위 잡으면 되겠네요.”

“아니, 반대로 간다.”


전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척후다. 플레이어 홀로그램과 연동된 시넬의 눈이라는 희대의 특성이 있는 내가 앞서는 게 여러모로 위험에 대처하기 좋다.


“급습당하면 위험할 텐데요.”

“알다시피 내 마력이 조금 정밀함이 부족하다. 괜히 도우려다 휩쓸리게 만드느니, 네가 내 공격을 뚫고 들어오는 적을 요격하는 게 나을 거야.”

“그래요. 일단 가보고 아니다 싶으면 바꾸면 되니까.”


바꿀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다. 펜나보다 한 발자국 앞선 나는 시넬의 눈으로 사방을 훑으며 나아갔다.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점차 진해지는 비릿한 악취. 몬스터 특유의 체취와 영역표시가 통로 곳곳에 남아있다.


“온다. 전방 일곱 개체.”


일렁이는 불꽃 같은 마력 패턴의 등장. 나는 그 경로를 향해 흑마력을 흩뿌렸다.


캬아아!


보랏빛 비늘로 뒤덮인 들개 형상의 몬스터가 진형을 이룬 채 달려온다. 주변으로 흩날리는 자색 마력의 잔향이 인상적이다.


캬아아아!

스스-


선두의 도약과 동시에 균열을 일으켰다.


팡!


균열에 휩쓸려 허공에서 잠시 붙들린 들개 몬스터. 잠깐 당황하더니 마력 방출을 통한 폭발의 반동으로 균열의 흡인력에서 빠져나왔다.


비늘 자체가 마력 기관인 듯, 균열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비교적 멀쩡하다.


샬리의 공격처럼 고밀도의 마력으로 균열을 무력화시키는 몬스터. 나는 흑마력의 흡인력에 변화를 줬다.


각성의 정밀제어를 이용한 인력의 특정성 부여. 써클의 습격에서 싸이오닉 에너지를 상대하며 깨달은 응용법이었다.


캬악!


전조 없이 나타난 균열을 그대로 뚫고 지나가려던 들개가 균형을 잃고 나뒹군다.


눈에 띄게 홀쭉해진 들개가 일어나려 몇 번을 시도하다 결국 쓰러진 채 멈춘다.


마력으로 가득한 외부 신체 대신 몸속의 혈액만을 상대로 인력이 발동한 결과다. 아무리 심장이 강인한 몬스터라도 몸속을 순환할 피가 없다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바짝 말라버린 동료의 시체에 잔뜩 흥분해 동시에 달려드는 몬스터들.


대처법을 파악한 이상, 좁은 통로를 통해 달려드는 몬스터를 전부 미라로 만드는 건 손쉬운 일이었다.


마력 비늘이 달려있는 가죽 상태가 되어버린 녀석들을 쿡쿡 눌러보며 펜나가 말했다.


“개성이 발전하는 건 좋은데, 어째 점점 음침해지는 것 같단 말이지.”

“차라리 면전에 대고 이야기해라.”

“자기도 알긴 아는 모양이죠?”

“이왕이면 효율적으로 발전한다고 해주지 않을래?”


웃는 펜나를 무시하고 나는 몬스터의 마력 비늘과 마력석을 챙겼다. 미이라로 만드니 쓸데없이 살을 파낼 필요가 없어졌다. 종종 애용해야겠다.




연구시설은 내부로 들어갈수록 점점 넓어지는 구조였다. 몬스터를 관리하는 사육 시설의 확장에 맞춰 규모를 같이 키운 경우였다.


커헝!


화염을 두른 검치가 직도에 잘려나간다. 사사투스의 검로를 따른 깔끔한 수평베기였다.


제길, 뭐가 이렇게 많아!


발단은 펜나의 발치에 걸린 금속 파편이었다. 정밀하게 가공된 금속 구슬이 발에 맞고 튕겨나가 사육 시설 쪽으로 흘러가고, 인기척을 감지한 몬스터들이 떼로 기어 나오며 웨이브가 시작됐다.


균열을 전개하는 속도보다 몬스터가 쏟아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몸을 희생해 가드 라인을 뚫고 들어오는 양이 많아지자 펜나가 직검을 빼어든 것이다.


“슬슬 마력 딸리는데.”

“아오!”


펜나의 동공이 변하며 은빛 마력이 비산한다. 대 물량전에 최적화된 수천의 칼날이 폭풍처럼 주변을 할퀸다.


온갖 비명이 화음이 되어 연구소를 뒤덮는다. 난데없는 몬스터 웨이브가 끝난 건 펜나가 검안을 펼치고도 삼십 분이 더 지난 후였다.


진즉 탈진해 드러누운 내 옆에 펜나가 앉았다.


“갸악. 도대체 이 좁은 지하에 수천 마리가 어떻게 살고있는 거예요?”

“고대 마법의 위대함이지.”


사육 시설의 존재 의의은 내부의 몬스터에게 필요한 양분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데 있다.


지금 연방이 인페스티스와 끝나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신정왕국 또한 몬스터 왕국과 수없이 마찰을 빚었고, 몬스터에 대한 수많은 실험과 연구를 진행했다.


낯선 환경에 음식 섭취를 않는 몬스터에 강제로 에너지를 부여하는 마법은 생체 연구시설이라면 어디서든 발견되는 고대 마법 중 하나이고, 현대에도 목적에 맞게 개조해 병원 같은 곳에서 연명 치료용으로 사용한다.


“튀어나온 건 수천이지만, 안에 수천수만이 더 남아있을지도 몰라. 유적이 그렇지 뭐.”

“미안해요. 내가 부주의해서.”

“어차피 죽여야 했어. 몰아 잡았다고 생각하면 편해.”


플레이어 캐릭터로 홀로 들어왔을 땐 압도적인 무력 때문에 죄다 도망가버려 쫓는데 애를 먹었다. 오히려 이렇게 단체로 달려들어 주는 게 상대하긴 고돼도 시간을 아낄 수 있다.


“후유증은 어때?”

“견딜만해요. 완전 개방한 게 아니라서. 끝까지 땡겼으면 사체까지 죄다 곤죽이 되었을걸요?”


대충 갈무리만 진행하고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시넬의 눈으로 마력이 깃든 기관과 마력석, 그밖에 돈이 될만한 몬스터 부위를 챙긴 후 피와 시체가 없는 통로 쪽으로 일시 후퇴했다.


“그건 뭐예요?”

“고문서.”

“아, 유적 관련된?”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문서에 집중했다.


사실 유적에 관련된 게 아니라 금고에서 나온 문서였다.


돈에 눈이 먼 아게르가 내버려 둔 만큼 금전과 관련된 내용은 아니었고, 코르닉스 가와 다른 네 하이엘프 가문 사이의 교류를 적어놓은 일종의 보고서였다.


작성 연도는 왕국 멸망 후 엘피니아 포레스트가 탄생했을 무렵. 그 당시의 고어가 다량으로 섞여 있어 제대로 된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여기서 뛰어난 이해력의 등급 상승이 제 몫을 발휘했다.


차분히 정독할 때마다 조금씩 고어의 뜻이 머릿속에서 조립되며 그 뜻이 떠오른다. 단순히 습득 효율을 올려주는 특성에서 처음 보는 언어도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이해 가능한 특성이 되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저택에서 문서를 확인한 이후 시간이 될 때마다 줄곧 고문서만 들여다보고 있다.


“고어도 읽을 줄 알아요? 일리야 교수님한테 배웠나?”

“교수님? 교수님이 왜.”

“몰랐어요? 교수님이 사관학교에 유일하게 고어 교양수업 여시잖아요.”


부전공이 고대문화라 했으니 고어를 익히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역시 참스승, 모르는 게 없다.


내일이 계절학기 마지막 수업이다. 사소한 선물이라도 챙겨가서 고문서에 대해 도움을 청하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소모한 마력을 채우고 다시 탐색을 시작했다.


종종 습격해오는 몬스터를 물리치며 연구시설을 샅샅이 뒤졌으나 이미 철수할 때 한번, 사육시설에서 탈주한 몬스터들에 의해 또 한 번 청소되어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플레이어 때보다 이른 시간대에 들어와 혹시나 했던 마음을 접고, 나는 사육 시설 쪽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죽고 죽이고, 종을 불문하고 서로 교배가 진행되고, 또 다시 적자생존의 지옥도가 펼쳐지는 순환이 수백 년 넘게 진행됐다.


아까 뛰쳐나온 몬스터들은 그렇게 형성된 생태계에서 영역을 차지하지 못한 뜨내기들일 뿐이고, 진짜는 이 안에 잠들어있다.


“와···.”


사육 시설에 입장한 펜나가 천장을 올려다보며 감탄을 터뜨렸다. 신정왕국의 기술이 총집약된 정수인 사육 시설을 육안으로 직접 보는 건 처음일 것이다.


“저 하늘도 마법인거죠?”

“맞아. 이 공간 자체가 고대 마법의 집합체인 셈이지.”


공간 확장, 낮과 밤의 구현, 대기 조성의 조절 등등. 마법이라는 수단의 궁극적 발전을 이룬 말기 신정왕국의 힘을 보여주는 단편이 여기 깃들어 있다.


말 그대로 지상의 환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들판이 시야를 사로잡고, 그 들판 위를 제집처럼 지나드는 몬스터 무리가 또 한 번 시선을 강탈한다. 지상에선 보스 몬스터라 불릴만한 놈들이 어림잡아 수백이다.


“이거 받아라.”


나는 그린스킨 던전에서 얻었던 은폐 아티팩트를 펜나에게 넘겼다.


“어떻게 하려고요?”

“곧장 중앙으로 가서 동력원부터 확보한다.”


공간 확장 마법을 통해 제도 정도의 부지를 가진 사육 시설에서 일일이 찾아가며 사냥하면 몇 날 며칠이 걸릴지 모른다.


플레이어 시절 이 유적에서 꼬박 일주일을 낭비하고 깨달은 게 있다면, 사육 시설은 무조건 핵심부터 처리해야 편해진다는 점이었다.


아티팩트의 힘을 빌어 몬스터들의 감각에서 벗어난 우리는 곧장 꺼지지 않는 태양이 떠오른 방향으로 향했다.


중간중간 숲이나 산, 구릉과 늪지 같은 다양한 환경이 구현되어있는 걸 본 펜나는 꼭 환상계열의 개성을 보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휴양지 삼아도 좋겠네. 유적의 동력이 끊기면 사라지겠죠?”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다른 시설처럼 변하지.”

“그럼 공간도 줄어들고, 몬스터도 몰리겠네요. 얼핏 보니까 기세가 흉흉한 놈들이 많은데, 괜찮겠어요?”

“사방에서 몰려드는 웨이브는 없을 테니까 괜찮아.”


동력원을 노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작법만 알면 사육 시설을 통제해 아주 간단하게 시설의 모든 몬스터를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한데 모인 몬스터를 학살할 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겠지만, 물량전 특화인 펜나가 있으면 걱정 없다.


태양 바로 아래에 가까워지자 작은 사막이 드러난다. 마핵이 뿜어내는 마력은 연구소 전체에 동력을 공급하고, 나아가 지하의 마력 농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한다.


마력에 특히 민감한 몬스터들은 마핵의 근처에 자리잡길 원하고, 자연스레 마핵을 중심으로 강력한 몬스터가 몰린다.


그리고 모든 경쟁자를 물리친 강자만이 마핵의 바로 옆에 머물 자격을 얻는다.


“드, 드래곤?”

“드래곤은 아니고 드레이크 특이종. 0.5드래곤쯤 되려나.”


나와 펜나는 사막 언덕 위, 마핵을 감싼 채 누워있는 거대한 덩치의 몬스터를 관찰했다.


몸길이 80미터, 웬만한 주택 건물에 비견되는 크기를 가진 금빛 도마뱀이 눈을 감고 있다.


화르륵-!


숨을 쉴 때마다 콧구멍에서 청염이 피어오른다. 마력과 융화된 불꽃이 주변 모래를 녹인다.


“지, 진짜 잡을 거예요? 저 정도면 영물 취급받아도 안 이상해 보일 텐데.”


죽을 때 염화를 보내는 걸 들었으니 영물이 맞긴 하다.


그렇다고 내버려둘 수도 없다. 나는 펜나와 작전을 수립했다.


“포지션 변경. 내가 후위, 네가 전위다.”

“저 덩치에 깔리면 마력이고 뭐고 즉사일 테니까 어쩔 수 없죠. 그럼 어떻게, 타격으로 가요?”

비행 능력만 봉쇄해도 절반은 먹고 들어가. 내가 전투 공간을 제한해볼 테니까 시선을 끌기만 해줘 봐.”

“시간 끌기···.”


전투라면 마다하지 않는 펜나가 웬일로 머뭇거린다.


“제가 물리형이나 강화형엔 강해도 저렇게 불 뿜는 위상형엔 항상 죽을 쒀서.”


펜나의 천검은 방어보다 공격에 특화된 개성이다. 특히 저런 브레스 류의 공격을 막기 위해선 마력 검을 촘촘히 모아 방벽을 세워야 하는데, 그 난이도가 단순히 검의 폭풍을 불러일으키는 것보다 배는 어렵기 때문이다.


“브레스만 막아주면 해볼 만한 거지?”

“아마도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 백마력을 얇게 펼쳐 펜나의 몸에 덧씌웠다.


흑마력이 대상을 특정해 인력을 가할 수 있다면, 백마력 또한 특정 대상만을 가려낼 수 있을 것이다.


“이거 느낌이 조금···, 기묘한데.”

“한번 실험해보자.”


펜나의 팔을 잡고 작은 소도를 꺼내 휘둘렀다. 몬스터의 두터운 살점도 가볍게 베어내는 소도가 작은 흠집조차 내지 못하고 지나간다.


“됐네. 어디까지나 막을 수 있는 건 고온의 열기와 브레스 같은 마력 공격뿐이야. 물리적인 공격은 알아서 해결해야돼.”

“뭐야, 어떻게 한 거예요? 아티팩트?”


계절학기 수업에 참관 형식으로 들어왔어도 워낙 일리야와 카이엔끼리 쑥덕대서 정작 무슨 연구를 하는지는 몰랐던 펜나였다.


내가 두 개의 마력을 지니고 있단 사실 또한 모르고 있는 상황에 전혀 다른 마력 운용을 보이니, 아티팩트의 힘으로 오해하는 모양이다.


크르릉-


“이런, 마력 파동에 깼나 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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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7 9 13쪽
30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6 8 15쪽
» 꼽추 아게르 21.06.08 10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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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3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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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꼽추 아게르 21.06.01 127 6 14쪽
22 꼽추 아게르 21.05.31 131 8 14쪽
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20 꼽추 아게르 +1 21.05.29 173 5 14쪽
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70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6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2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8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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