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빅슬립 님의 서재입니다.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빅슬립
작품등록일 :
2021.05.12 22:45
최근연재일 :
2021.06.29 23:2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6,468
추천수 :
261
글자수 :
259,046

작성
21.06.10 22:46
조회
100
추천
5
글자
17쪽

꼽추 아게르

DUMMY

옛스러움이 묻어있는 작은 정원.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는 화단 옆에 설치된 테이블에서 두 여인이 티타임을 즐기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정원을 찾은 건데?”

“그냥. 갑자기 떠올라서.”


햇빛에 닿아 창백함이 더욱 두드러지는 릴리가 화단의 꽃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아주 어렸을 때, 오라버니가 여기서 꽃을 꺾어준 게 꿈에 나오더라구. 크리스랑 언니도 나오고.”

“그런 적이 있었나?”


헤일이 뒤에 시립한 크리스를 쳐다봤다.


“아마 아게르 님이 각성하실 때를 말하시는 것 같습니다.”

“되게 무서웠던 기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꿈에선 엄청 따뜻하게 느껴지더라. 그때까지만 해도 오라버니랑 매일같이 붙어 다녔는데.”

“···아버지의 명령이었으니까.”


당시 왜 못 만나게 하냐고 우는 릴리를 달래주었던 헤일은 생생히 기억했다. 위험한 개성을 각성한 이후, 가주인 아버지는 아게르와의 모든 접촉을 금지했다.


스스로 제어 가능하기까지 근 10년간, 아게르는 홀로 독방에서 지내야 했다. 아마 그 어둠 속의 세월이 아게르를 괴팍한 성격으로 만든 주범일 거라고, 헤일은 짐작했다.


“오라버니도 참 불쌍한 사람이야.”

“그런 이야기 할거면 티타임 관둬.”

“언니는 왜 그렇게 오라버니를 싫어해? 전에는 그러지 않았잖아.”


그래. 어느 날 가문의 금고가 털리기 전까진 이 정도로 증오하지 않았지.


언제까지고 0릴리에게 핑계를 댈 수만은 없다. 성인식이 끝나면 현실의 냉혹함을, 그토록 믿고 있는 오라버니란 존재에 대한 추악함을 알려주리라. 헤일은 속에서 이는 천불을 식히기 위해 미지근해진 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사람 싫은데 이유가 있나.”

“아직도 그때 일을 마음에 두고 있는 거야?”

“···아니야.”


과거를 떠올리자 생각이 부정적으로 흘러간다. 헤일은 고개를 젓고 주제를 바꿨다.


“이제 한 달 뒤면 성인식인데, 준비는 잘 돼가?”

“아직 잘 모르겠어. 뭘 준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한 명의 하이엘프로 우뚝 섰음을 세계수에게 증명하는 성인식. 옛날에는 엄격한 제례의식을 갖춰 치렀다지만 오늘날에 이르러선 성인이 된 것을 지인과 초대받은 이들 축복하는 일종의 축하연이 되었다.


당사자는 큰 부담 가질 것 없이 축하하러 오는 이들에게 감사와 답례를 전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최대한 마음 편하게 가지면서 컨디션 잘 조절하고. 그러면 돼. 하루만 고생하면 끝나니까.”


아직 돌린 초대장에 답장이 올 시기가 아니었다. 최대한 많은 이들이 오길 바라면서도, 또 많은 인파가 몰리면 릴리의 약한 몸에 무리가 갈지도 모른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앞으로 있을 성인식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고용인 한 명이 상자를 들고 테이블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지?”

“릴리님 앞으로 소포가···.”


고용인의 짐을 넘겨받은 크리스가 소포에 붙은 영수증을 확인했다. 보내는 이와 받는 이의 이름과 주소가 적혀있었다.


“아게르님이 릴리님에게 보냈군요. 어제 자에 특급으로요.”

“이리 줘봐.”


헤일이 먼저 소포를 가로챘다. 혹시 아는가. 안에 더러운 병원균이 있어 릴리에게 감염되기라도 할지.


“언니. 줘.”

“안 돼. 내가 먼저 확인하고 줄게.”

“언니!”


드물게 목소리를 높이는 릴리에 놀란 헤일이 동작을 멈춘다.


“가문으로 보낸 게 아니라 제 앞으로 보낸 소포라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거야.”

“아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헤일은 말을 삼켰다. 지인들 앞에선 한없이 약한 릴리지만 가끔 저렇게 무기질적인 태도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마치 영혼 없는 망자의 마지막 유언을 읊는듯한 느낌. 그 날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동생의 태도에 헤일은 차마 거스를 수 없었다.


“그럼 같이 뜯어보자. 그건 괜찮지?”

“···좋아.”


두꺼운 종이 포장을 개봉하자 안에는 작은 나무 상자 두 개가 나란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그 위엔 편지봉투가 하나 놓여있었다.


「친애하는 릴리에게.」


“오라버니 글씨!”


말릴 새도 없이 편지를 채어가는 릴리.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밝은 표정으로 왁스를 뗐다.


어째서 아게르와 관련되기만 하면 사람이 확확 바뀌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헤일은 한숨을 쉬고 상자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첫 상자엔 장신구가 들어있었다. 은으로 형태를 잡고 작은 보석으로 꾸며낸 귀걸이와 팔찌, 목걸이 한 세트는 요즘에 보기 어려운 고풍스런 설계가 특징이었다.


“크리스, 감정기.”

“여기 있습니다.”


집사장인 크리스가 항상 휴대하고 다니는 감정기를 통해 장신구를 검사했다. 저주, 역병, 함정은 검출되지 않았다.


“고농도의 마력 밀도가 측정됩니다.”

“위험할까?”

“어떤 성질의 마력인지 알아야···.”

“괜찮아요.”

“뭐?”


편지지를 내려놓은 릴리가 상자 속의 목걸이를 잡았다. 유려한 목줄 사이 고아한 자태를 뽐내는 펜던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릴리는 펜던트의 중앙에 박힌 보석을 조심히 자신의 이마에 가져다 대었다.


우웅-


“릴리!”

“아가씨!”


마력의 상호작용을 나타내는 파동에 헤일과 크리스가 다급히 릴리를 불렀다. 그러나 눈을 감은 채 손을 들어 둘을 제지한 릴리는 어두운 안개가 몰아치는 펜던트를 계속 이마에 붙여놓았다.


“크리스! 정밀 측정기 가져와!”


헤일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도대체 어떤 물건을 보냈길래 릴리에게 이상한 현상이 벌어진단 말인가.


혹시라도 동생에게 해가 된다면 당장 제도로 날아가 그 추악한 목을 꺾어버릴 것이다.


“하아.”

“릴리, 괜찮아?”

“괜찮아.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거니까.”


깊은숨을 쉬며 펜던트를 뗀 릴리는 방긋 웃었다.


“진짜 괜찮은 거 맞지? 도대체 편지에 뭐라 적혀있었길래 그런 위험한 짓을 한 거야? 그 목걸이는 또 뭐고?”

“히히. 언니한테는 비밀이야. 오라버니가 언니한테는 말하지 말라고 적어뒀거든.”


망할 아게르. 제도에 가면 반드시 사지 중 하나는 부러뜨린다. 펜나는 찌푸려지려는 인상을 가까스로 붙잡고 릴리를 설득했다.


“그래도, 나쁜 일인지 좋은 일인지는 알려줘야지.”

“좋은 일이야. 아주 좋은. 오라버니는 약속을 잊지 않았던 거야.”

“약속?”


펜나의 물음에 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장신구를 걸쳤다.


청초한 미인에게 고급스러운 장신구가 더해지니, 흡사 동화 속 여왕을 연상케 하는 아름다움이 뿜어져 나왔다.


“어때? 어울려?”

“응. 여신님 같네.”

“다행이야. 평생 차고 다녀야 할 물건인데 잘 어울린다니.”


점점 모를 소리만 하는 릴리에 펜나는 흘깃 테이블에 놓은 편지지를 바라봤다. 동생의 갑작스러운 변화에는 분명 저 편지의 내용과 연관되어 있다.


“함부로 훔쳐보면, 분명 후회할 걸.”

“누가 훔쳐본 댔나···,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그러면서 저번처럼 몰래 내 일기장 훔쳐봤잖아.”


편지지를 가져간 릴리가 팔랑팔랑 흔들어 보였다.


“앞으로 내 일기랑 이 편지를 훔쳐보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선물을 줄게.”

“선물?”

“응. 오라버니가 언니한테 보낸 건데, 줄지 말지는 나보고 결정하라네.”


릴리의 고운 손이 남은 한 상자를 열었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빛을 품은 건틀릿 한 쌍이 담겨져 있었다.


“고대 왕국의 왕이 직접 하사한 물건이라는데, 누가 써야 어울리려나~.”


헤일은 침을 삼켰다. 권사 특유의 감이 말해주고 있었다. 저 건틀릿은 시장이나 경매에서 쉬이 구하기 어려운 명품이라고.


저 정도 물건이면 사관학교에 들어가기 전 무장을 맞추려 했던 자금을 전부 릴리의 성인식 준비 비용으로 돌릴 수 있다.


“아가씨, 측정기 가져왔습니다.”


분해한 정밀 측정기를 싣고 온 크리스를 보던 릴리가 헤일을 향해 고개를 저어보였다. 헤일은 한숨을 쉬고 크리스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다시 가져다놔.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알겠습니다.”


한마디 말없이 다시 정원을 나서는 크리스를 보며 헤일은 한동안 동생에게 잡혀 살 것 같다고 직감했다.


“미리 말하지만, 적당한 선에서 어울려 줄··· 릴리?”


혹여 심한 장난을 치지 않도록 미리 당부하려던 헤일은 멍하니 어느 방향의 허공을 바라보는 릴리를 발견했다.


“언니. 저기, 제도가 있는 쪽이지?”

“맞아. 그건 왜?”

“그냥, 갑자기.”


투명하리만큼 하얀 손이 심장 위 펜던트를 꾸욱 잡았다.


“방금, 굉장히 슬픈 느낌이 들어서.”



**



“바이탈도, 체내의 마력도 정상입니다.”

“아니! 그럴리가 없잖아요! 분명 피를 토하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의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안경을 치켜 썼다.


“비정상을 정상이라 진단할 의사는 없습니다. 이미 보호자 분의 요구에 다섯 차례나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 또한 동일하게 나타났구요. 참고로 병원 내 진료기기가 오류를 낸 경우는 지난 십 년간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연방 내 최고의 시설을 갖췄다는 제도병원의 검사였다. 아무리 부정한들, 그 검사 결과가 바뀌는 일은 없었다.


“그럼 저 명치의 구슬은요? 저건 어떻게 된 건데요?”

“이미 체내의 마력과 동화된 상태입니다. 고대 마핵이 신체와 결합하는 경우는 저희도 처음이라, 연구가 필요합니다. 무작정 적출한다면 분명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겁니다.”


결국 지금 조치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소리였다. 펜나는 말문이 막혔다.


“일단 특이 케이스인 만큼 안정을 취하며 추후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겠습니다. 보호자 분도 흥분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군요.”


의료진이 일인실에서 나간 후, 펜나는 멍하니 침상에 누워있는 아게르를 바라봤다.


죽을 고비를 넘겨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의료 기기로도 관측하지 못하는 중상과 처음 보는 증세에 불행이라 해야 할지.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펜나는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고서 정신을 차렸다.


먼저 저택에 돌아가서 미루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이러나저러나 주인바라기인 미루는 언제 돌아오시려나 하며 줄곧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그 다음 일리야에게 가 도움을 요청하면, 적어도 의사들보단 유의미한 진단을 내려줄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움직이자. 마음을 먹은 펜나가 일어나는데, 손목을 꽉 쥐는 손길이 느껴졌다.


“아게르! 깼어?”


다급히 불러보는 펜나. 그러나 손과 달리 아게르는 의식이 채 돌아오지 않았다.


“······.”


숨소리에 섞인 희미한 발음. 펜나는 귀를 바짝 다가가 댔다.


“돈···보내야돼···릴리······, 아빠··· 미안···.”


무의식에서 뱉어내는 단어의 나열. 펜나는 무한히 반복되는 문장에서 그가 말하고자 하는 뜻을 헤아렸다.


“알았어요. 다녀올게요.”


조심히 손목을 부여잡은 손가락을 떼어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건지, 손은 쉽게 풀렸다.





“오늘은 언제쯤 들어오시려나.”


미루는 식당을 청소하다 둔중한 음을 내는 괘종시계를 바라봤다.


이제 곧 해가 질 시간. 오늘도 혼자 저녁을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루는 우울해졌다.


“항상 같이 먹자고 하시고선.”


전에는 당연히 혼자 먹었고,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누군가와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고급 침대에 눕는 것과 같았다.


한번 겪은 뒤로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다. 전에는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이제는 불편함의 기준이 되어버린다.


미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유분의 식사를 챙겨놓았다. 늦게 오시더라도 언제든 끼니를 때울 수 있도록.


철컹-


“어?”


정문 열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녁 전에 귀가한 적은 손에 꼽는데. 미루는 급히 불을 끄고 로비로 나갔다.


“오셨어요···?”

“미루.”

“펜나님? 주인님은요?”


엉망진창의 몰골을 한 채 홀로 돌아온 펜나. 미루는 까치발을 들고 뒤를 확인했다. 검은 로브가 보이지 않는다.


“어디 들렸다 오시나?”

“미루. 아게르는 병원에 있어.”

“병원···이요?”

“어. 다쳤는데 멀쩡한··· 아무튼, 당장 생명에 지장은 없을 테니까 너무 걱정말고.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아게르의 인장. 어디다 보관해?”


펜나의 기세에 눌린 미루가 2층 서재를 가리켰다. 쏜살같이 달려가는 펜나를 멍하니 바라보던 미루는 대화의 내용을 이해하고 곧 화들짝 놀랐다가 울상을 지었다.


“히잉, 또···.”


벌써 두 번째다. 미루는 병원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챙겼다. 경험 덕인지 짧은 시간에 짐을 쌀 수 있었다.


“찾았다! 미루! 따라와!”

“펜나님, 적어도 씻고 가는게···.”

“시간 없어!”


작은 반지 하나를 쥔 펜나가 미루를 데리고 택시를 잡아탔다.


“연방은행으로 가주세요.”

“에? 은행은 왜요?”

“너, 계좌 대리인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했지?”

“네. 오래전에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과거의 주인님은 외출을 극도로 삼가던 적이 있다. 그때 주인님을 대신해 은행 업무를 보기 위해서 대리인으로 등록했었다고 흘러가듯 말한 적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을 줄이야. 미루는 곧 의아함이 들었다.


“그건 왜요?”

“의식 없는 아게르가 부탁하더라. 본가로 돈 부쳐야 한다고. 곧 은행 닫을 시간이잖아.”


은행에서 내린 펜나와 미루는 곧장 창구로 향했다.


“손님, 오늘 업무 시간은 이미 끝났···.”

“급해서 그래요! ”


펜나는 인장을 내밀었다. 하이엘프를 상징하는 증표에 귀찮아하던 직원의 표정이 바뀌었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복잡한 업무라면 내일 다시 찾아오시는 게 나을 겁니다.”

“단순한 송금이에요. 아게르 코르닉스의 개인 계좌에 있는 돈을 본가로 보내면 됩니다.”

“잠시, 인장을 확인하겠습니다.”


은행에 등록된 인장과 비교한 직원은 차분히 절차를 설명했다.


“타인의 계좌를 이용하기 위해선 계좌 대리인 또는 위임장이 필요합니다. 100만 리브 이상의 금액을 이체할 때는 보증인 또한 필요하구요.”

“제, 제가 계좌 대리인이에요. ”

“성함이?”

“미루 메르키요.”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신분증을 확인한 직원이 이번에는 거래 금액을 물었다.


“잔액은 총 430만 7천리브입니다. 전부 이체하실 겁니까?”

“어, 보증인은 아무나 가능한가요?”

“신분 제한은 없지만, 보증인의 예치금이 송금 금액의 절반을 충족해야 합니다. 차후 계좌 주인이 와서 거래를 확인하기 전까지 해당 금액은 동결됩니다.”


담보가 필요하단 말에 펜나가 미간을 찌푸렸다. 본가에서 가출하며 은행 계좌 또한 막힌지 오래다.


뭣 모르고 따라온 미루에게 그만한 거금이 있을 리도 없다.


“그럼 일단 백만 리브라도 송금해주세요.”

“외람된 질문입니다만, 손님께서는 아게르 코르닉스 님과는 어떤 관계이신지?”


한시가 급한데 엉뚱한 질문을 던지는 직원에 펜나가 화를 냈다.


“지금 그게 중요한가요?”

“대리인을 포섭하여 타인의 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빼돌리는 사기 수법이 종종 적발됩니다. 담당 직원으로 당연한 질문임을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명백한 의심. 펜나는 그제서야 자신의 꼴을 확인했다.


산발이 된 머리, 전투로 엉망이 된 복장. 곳곳에 몬스터의 체액과 혈흔이 묻어있다. 누가 보아도 수상한 사람의 몰골이었다.


“이상해 보일 수 있단 거, 이해해요. 전 아게르 코르닉스랑 같이 탐험가 활동을 하는 동료이고,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본인의 부탁을 받아서 대신 온 거예요.”

“계좌 주인의 입원을 증명할 서류가 있습니까?”

“부탁받고 당장 달려왔는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요. 인장이랑 대리인 있는데 다른 게 더 필요한가요? 남의 계좌도 아니고, 본가의 공용 계좌로 보내겠단 건데.”

“타인에 의해 치러지는 거래는 특히 엄격하게 심사하도록 규정되어 있습니다. 양해해주시길.”


펜나는 직원의 눈빛에서 짙은 의혹을 발견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며 영업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려는 속셈.


미루가 거들었지만 직원은 철벽으로 일관했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퇴근을 위해 창구에서 물러난 상태.


“내일 다시 찾아오십시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었습니다.”


사경을 헤매며 중얼거리던 아게르의 모습이 떠올라 펜나가 다시 한번 재촉하려는 그때,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요원님 아니세요?”


붉은 고딕풍의 드레스를 입은 흑발의 미인, 카이엔 퍼스마일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온다.


“이 시간에 창구에서 뭐하세요? 꼴은 또 그게 뭐고?”


신의 뜻이 있다면, 분명 지금 계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 펜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손을 덥썩 잡았다.


“부탁 하나만 합시다.”

“뭔데요? 수사 협조?”


고개를 저은 펜나가 카이엔을 위아래로 훑었다.


“보증 좀 서주세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사관학교의 꼽추 하이엘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3 2년차 21.06.29 56 5 13쪽
42 2년차 +2 21.06.26 57 2 13쪽
41 2년차 21.06.24 61 3 14쪽
40 2년차 21.06.23 66 2 13쪽
39 2년차 21.06.21 70 4 13쪽
38 2년차 21.06.20 65 5 14쪽
37 2년차 21.06.19 76 4 13쪽
36 2년차 21.06.16 82 6 13쪽
35 2년차 21.06.15 87 5 15쪽
34 2년차 21.06.14 95 6 14쪽
33 2년차 21.06.13 101 7 16쪽
32 2년차 21.06.12 111 5 15쪽
31 꼽추 아게르 +3 21.06.11 116 9 13쪽
» 꼽추 아게르 21.06.10 101 5 17쪽
29 꼽추 아게르 21.06.09 106 8 15쪽
28 꼽추 아게르 21.06.08 104 7 13쪽
27 꼽추 아게르 +2 21.06.06 108 5 12쪽
26 꼽추 아게르 +1 21.06.04 113 7 12쪽
25 꼽추 아게르 21.06.03 116 7 14쪽
24 꼽추 아게르 21.06.03 119 6 13쪽
23 꼽추 아게르 21.06.01 126 6 14쪽
22 꼽추 아게르 21.05.31 131 8 14쪽
21 꼽추 아게르 21.05.30 133 7 14쪽
20 꼽추 아게르 +1 21.05.29 173 5 14쪽
19 꼽추 아게르 +1 21.05.27 169 6 14쪽
18 꼽추 아게르 21.05.26 146 8 13쪽
17 꼽추 아게르 +3 21.05.25 152 8 13쪽
16 꼽추 아게르 21.05.24 151 7 12쪽
15 꼽추 아게르 21.05.23 151 6 13쪽
14 꼽추 아게르 21.05.22 158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