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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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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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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셔플 & 딜 (2)

DUMMY

트렐라드 변경백의 조력 하에 지세트 수도 지크셀레이트에서 개회한 경매에 참가한 펠릭스. 직접 갈 수는 없고, 경매 당시 통신구로 가격을 넣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지만, 거느린 마법사가 없는 펠릭스에겐 충분한 배려였다.

수도에서 공개적으로 열린 경매였고, 참가자나 구경꾼도 많았다. 어떻게든 자신의 사업장을 지키려고 돈을 끌어와 참가한 소상공민도 있었다. 그 숫자가 물경 천 명.


'이건 뭐, 고등학교 아침조회 시간도 아니고.'


펠릭스에겐 별거 아니었지만, 이만한 숫자가 모이는 건 드문 일인 듯 주위에서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구경하는 사람 천지였다.

수정구 때문에 볼 수 있는 시야각이 제한된 펠릭스는 좁은 통신실에 앉아 지루하게 기다리는 게 고작이었다. 시종이 가져온 꿀물을 마시며 기다리기를 약 1시간.


- 경매에 참가해주신 제현(諸賢)께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1일차 경매를 시작합니다!


1회차 경매는 수도의 기반시설과 사업장이었다. 상품은 왕궁 빼고 전부라고 불러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알짜배기 품목으로 가득했다. 펠릭스는 변경백에게 미리 전달받은 명단을 보면서 차근차근 경매에 임했다.

경매는 크게 두 가지로 진행되었다. 핵심입찰과 공개경매 방식이다. 핵심입찰은 다리나 성처럼 중요한 인프라 시설을 최고가로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1골드 차이로 주인이 달라지며, 중요성보다 시간이 오래 끌리지 않도록 정했다. 명목은 많은 매물을 빠르게 팔기 위해서지만, 실제로는 주인이 이미 정해졌으므로 싼 가격에 가져갈 수 있도록 도장 찍듯 당연한 절차였다.

정복자의 권리로서 지세트에 진즉 투자해둔 귀족이나 상인이 경매참여권을 가진 귀족에게 뇌물을 상납하며 '소유권을 보장해주십시오'나 '확장할 수 있게 옆 건물을 사주십시오'라는 부탁을 받으면 이런 식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주인이 암암리에 정해진다. 일종의 관례였다.

펠릭스가 전달받은 명단에도 사전에 주인이 정해진 사업장, 시설이 체크되어 있었다.


'내가 노리는 건 공개경매니까 상관은 없지만.'


핵심입찰로 나오는 매물 상당수가 이미 주인이 정해졌다면, 공개경매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경매처럼 점점 가격을 높게 부르며 가장 크게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방식이다.

경매로 나온 물건은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것들이고, 경쟁해야 하는 물건들이었다. 인프라처럼 장기적으로 봐야 하는 물건이 아니라 당장 돈을 굴릴 수 있는 물건들이었다. 펠릭스는 자신이 찍어둔 매물이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 푸른 꿩 8번 길 유리공방은 에히트 경께서 814골드로 가져가십니다!

- 은빛 별 1번 길 귀금속 거래소는 라파힐 자작께 5,170골드 낙찰!


가장 먼저 팔리기 시작한 건 관리하기 쉽고 확실한 사업장이었다. 공방과 거래소가 풀리고, 수십 명이 손을 들리며 가격을 높여나갔다. 300골드에서 시작한 유리공방은 2배가 넘고, 천 골드에서 시작한 거래소는 5배를 넘겼다.

평소에는 절대로 팔리지 않는 고급 사업장이므로 이럴 때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프리미엄이 붙어 시세보다 더 비싸게 팔렸다. 펠릭스는 그들과 경쟁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내가 사려는 건 인력 많이 잡아먹고, 신경 덜 써도 되는 것들이니까.'


부하가 충분히 있었다면 그때그때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산업시설에 관심을 기울였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손이 덜 타는 물건이 좋은 물건이었다.

펠릭스가 원하는 매물이 나온 시간은 경매가 시작하고도 3시간 뒤.


- 이번 매물은 동쪽 라카이 숲입니다. 단풍나무와 자작나무가 대부분이고, 숲지기 5명이 관리합니다. 토끼와 사슴을 사냥할 수 있는 사냥터이기도 합니다. 약 5,000에이커짜리 매물은 누가 차지할 것인가! 1천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00골드."

- 란소스 남작께서 천백 골드! 더 없으십니까! 없으시면 남작님께서 라카이 숲을 가져가십니다! 더 없으십니까! 셋! 둘! 하나! 란소스 남작님께 낙찰! 축하합니다!


펠릭스는 낙찰 다음으로도 경쟁을 안 하는 매물을 구매했다. 이날 지세트 백국의 농지 70%, 산림 100%가 펠릭스의 손에 떨어졌다. 겨우 2만 골드로 구매한 면적이 54,000에이커. 서울 면적의 35% 정도 되는 광대한 영역이었다. 농지를 독식했다면 6만 에이커에 육박할 수 있었다.

농지 독점에 제동을 건 사람은 지세트 농민연합이었다. 자작농이 뭉쳐서 밭을 지키려고 돈을 모아 경쟁한 것이다. 소작농으로 전락하지 않겠다는 열망이 보이기도 했거니와 다른 도시의 근교도 장악해야 하기에 적당한 값에서 물러났다.

해가 저물 즈음에 1일차 경매가 끝났다. 경매가 끝나고서 일부 참가자 앞에 경매장 측 사람이 찾아왔다.


- 전 왕조가 지급해야 하던 전쟁배상금입니다. 지금 돌려드리겠습니다.


펠릭스는 그날 지불한 2만 골드를 그대로 상환받았다. 명목은 전쟁배상금. 패배자가 승리자에게 물어줘야 하는 금액이었고, 여전히 막대한 채무가 남아있었다.

모두 배상금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침공군에 속한, 트렐라드 연합군에 한정된다. 테루아 공작과 알카탄 공국은 이 순환에 포함되지 않았다. 따라서 경매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펠릭스는 오히려 돈이 더 많아지는 구조였다.

비굴하게 웃는 경매장 직원을 보내고, 펠릭스는 액수를 확인했다. 일단 펠릭스는 소드마스터 상급이면서 기간트 골렘을 연달아 결투로 보내버린 전공 덕분에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10%에 약간 못 미치는 지분이 있었다. 알카탄까지 멸망시켰으면 펙시스 함락이라는 절대적 명제 덕분에 지분이 2배는 넘었을 테지만, 알카탄쪽 전공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경매에서 매각된 총액 1,200만 골드의 약 10%인 113만 골드를 받았다.


'예상보다 많네.'


오늘은 왕도라서 그런 것이고, 다음부터는 기껏해야 총액 300~500만 골드에 그칠 가능성이 컸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영향력을 확보하려 할 것이고, 펠릭스는 영향력보다 기반시설을 차근차근 먹어치워 포위망을 형성할 생각이었다.

영지는 없지만, 영지에 맞먹는 권역을 먹어치우려는 생각이었다. 이걸 눈치챈 건 4일차 경매가 끝났을 무렵이었다.

카난리아프에서 호화로운 만찬을 즐기던 펠릭스에게 밀담 제안이 들어왔다. 왕도 오세안에서 사델라 공작의 딸이었다.

펠릭스는 거국적인 협상과 밀약으로 키펠 왕국을 엿먹인 천재가 자신을 만나자고 하기에 흥미가 돋아 기꺼이 응했다.

그녀가 제안한 것은 간단했다.


"3배로 값을 치러줄 테니 내가 사들인 밭의 절반을 팔아달라, 라. 갑작스럽군."

- 모쪼록 좋은 첫인상을 드리고 싶었는데, 이렇게 격식 없는 자리에서 말씀드리게 되어 죄송합니다.

"그런 말을 들었으니 화는 좀 누그러지는군. 그런데 이를 어쩐다. 나는 팔 생각이 없는데."

-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니, 가격 문제가 아니야. 그저 팔 생각이 없다는 거다."


펠릭스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걸 내비쳤다. 수정구 너머에서 다르멜은 부드럽게 웃으며 거듭 간곡하게 부탁했다.


- 남작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우선도가 떨어지는 밭과 숲을 대거 구매하셨으니, 지세트의 반 정도를 가져가셨잖습니까?

"다들 건물을 사느라 바빴지. 공방이나 성을 사느라 경쟁이 심했어. 저택을 겸비한 장원 정도가 그나마 관심을 받았지."


펠릭스가 사들인 건 밭이었다. 전쟁에 패배한 탓에 자작농의 토지까지 몰수당했는데 그나마 모아둔 재산이 있는 자작농 계급은 멀리 수도까지 찾아와 자신의 밭을 구매할 수 있었다. 그러나 소작농이었던 자들은 밭을 사들일 돈이 없어 펠릭스에게 자비를 구걸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 결과 지세트 백국의 밭 60%, 숲 50%가 펠릭스의 소유가 되었다. 다른 자들은 지세트에서 생활하는 자가 아니므로 관리하기 귀찮은 농지와 산림은 꺼렸다.


'난 마름을 대리로 세워서 세금을 받아낼 거지만.'


농지와 산림만 사들이진 않았다. 도서관이나 저수지 같은 것들도 쏠쏠하게 구매했다. 알카탄 측의 참가자들이 펠릭스의 독주를 저지해보려고 했으나, 1일차에 백만 골드 이상 먹어치운 펠릭스에게 경쟁을 걸어봐야 뒤늦은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펠릭스는 4일차가 끝난 시점에서 지세트의 절반을 먹어치운 영지 없는 영주가 되었다.


- 홀로 농지를 관리하시는 건 어려우실 텐데, 쉬운 관리를 위해서라도 분담하는 게 나을까 합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관리가 필요한가? 농부가 농사를 짓는데 왜 남의 도움이 필요하지? 누군가가 고의로 용병 패거리를 보내거나 짐승과 몬스터를 몰아넣지 않는 이상 전혀 걱정할 게 없는 곳인데 말이야."

- 누가 그렇게 몰염치한 짓을 저지르겠습니까?

"뻔한 수작 아닌가. 이런 식으로 구매자에게 관리의 어려움을 강요할 수 있으니 이런 매물이 값싼 거고, 더 나아가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거지."


심심하면 몬스터를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성벽이 없는 농지 관리는 지극히 위험했다. 그나마 제대로 굴러가는 도시는 순회사를 둬서 치안을 확보하고, 상비군으로 습격에 대비한다. 그러나 한 번 멸망한 국가에서 이런 대비는 기대하기 어려웠고, 당연히 매력도는 곤두박질쳤다.

펠릭스는 시종이 가져온 꿀물을 마시며 느긋하게 다르멜의 답을 기다렸다. 대비책이 있는데 상대방의 의도에 끌려다니는 건 사양이니까.

다르멜은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유지하며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빈틈을 찾으려는 듯 눈동자가 살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뱀과도 같았다. 그러나 펠릭스는 바위이고 물이라, 약점이 전혀 안 보였으면서 모든 모습이 약점으로 보였다.


- 평정심이 대단하시네요. 마치 신실한 주교를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럴 리가. 태평한 거지. 고블린이 오우거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 걸 수도 있지 않나."


지나가는 듯이 가볍게 말했지만, 펠릭스는 다르멜의 신경을 긁었다. 고블린이 누구고 오우거가 누구인지는 뻔한 일. 자신을 낮추는 것 같으면서도 상대방을 꼬집는 말이었다.

다르멜은 작게 웃었다.


- 후훗. 소드마스터 상급에게 두려운 게 있을 리 없지요. 부디 앞으로 잘 지냈으면 할 뿐입니다.

"나 역시 부탁하지. 이번 일은 없던 거로 합시다."

-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테루아 공작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이번 거래를 꼭 성사하고 싶습니다.

'뭐, 공작이 끼어 있었나?'


생각을 멈추고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해보니 대략적인 윤곽이 보였다. '지금 돌아가는 판에서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서 나오는 인물, 테루아 공작.

트렐라드 변경백령이 있는 지역이기도 하고, 오슬레아 북서쪽이라 알카탄과 지세트 지역에 맞닿은 영역을 관장하는 최고위 귀족이다. 지금까지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판을 주도할 수 있게 천재를 후원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에게 무슨 접점이 있지? 왜 쟤는 공작을 돕는가?'

- ······.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아꼈다. 펠릭스에겐 정보가 없고, 다르멜은 힘이 없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만 있어도 펠릭스에겐 충분했다.

결국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다르멜이었다.


- 제가 어떻게 해야 남작님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요?

"그대는 내가 혹할 제안을 할 수 없는 모양이니, 없다고 해야겠지. 아까부터 제시할 수 있는 게 돈밖에 없지 않나."


펠릭스는 다르멜의 자존심을 살살 긁었다. 얼마나 더 큰 계획을 수립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펠릭스의 개입으로 깨졌다는 건 확실했다. 직접 밀담을 요청할 정도로 중요한 퍼즐 조각이라는 것도 은근하게 느껴졌다.

막대한 노력을 쏟아 부어서 결실을 수확할 수 있게 된 막바지에 초를 친 펠릭스가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러니 조금만 자극해도 본성이 튀어나오기에는 충분하다.


'어쭈, 제법인데.'


그러나 펠릭스의 짐작과 다르게 다르멜은 분기를 억누르며 웃음을 유지했다.


- 황급히 연락 드리느라 제 준비가 부족했군요. 내일 다시 연락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내일 밤에 봅시다."


다르멜이 먼저 한 수 접고, 펠릭스는 도전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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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셔플 & 딜 (1) 20.06.30 83 3 10쪽
43 진흙탕 위 나룻배 (8) 20.06.28 91 2 11쪽
42 진흙탕 위 나룻배 (7) 20.06.25 87 1 12쪽
41 진흙탕 위 나룻배 (6) 20.06.21 88 2 12쪽
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89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8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4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6 3 12쪽
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1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1 1 12쪽
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6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0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7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29 지세트 최후의 날 (3) 20.05.09 137 3 12쪽
28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3 5 12쪽
27 지세트 최후의 날 (1) +1 20.05.07 153 5 11쪽
26 정벌 준비 (7) +1 20.05.05 155 6 11쪽
25 정벌 준비 (6) 20.05.05 154 4 12쪽
24 정벌 준비 (5) 20.05.04 157 3 11쪽
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2 5 12쪽
21 정벌 준비 (2) +1 20.04.27 189 6 12쪽
20 정벌 준비 (1) 20.04.25 209 7 12쪽
19 기간트 골렘 (2) +2 20.04.25 210 5 13쪽
18 기간트 골렘 (1) 20.04.24 226 6 13쪽
17 서임식 (6) +2 20.04.23 226 7 12쪽
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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