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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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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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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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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정벌 준비 (1)

DUMMY

왕도 도착하고서 한 달 조금 지난 뒤.

대귀족과 트렐라드 변경백과의 협상이 끝났다. 펠릭스를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족쇄인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강하게 나서서 시간이 오래 걸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트렐라드 변경백은 펠릭스를 통제하는 대가로 금전적 지원뿐만 아니라 기사단을 요구했다. 알카탄 공국과 지세트 백국을 동시에 압박하고, 두 국가를 짓밟을 수 있는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려고 한 것이다.

왕도의 중앙정계에서는 트렐라드 변경백의 폭주를 원하지 않았다. 그들이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동맹국인 키펠 왕국에 내세울 안정과 변명거리였다. 국경을 어지럽히는 공국과 백국을 압박하는 정도로 주문했는데, 트렐라드 변경백은 두 국가를 무력으로 찍어누르기를 원했다.

이렇게 견해 차이가 벌어지는 원인은 간단했다. 10년 넘게 국경을 소홀하게 여기며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며 무시로 일관하던 중앙귀족을 향한 경멸과 분노가 첫째. 해안 개척에 몰두해야 할 기사단을 북쪽으로 이동시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이 둘째. 소드마스터 상급만으로도 변명하기 어려운데 기사단까지 옮기면 키펠을 자극한다는 것이 셋째.


"많이 힘드셨겠군요."

"그래도 내 요구를 무시할 순 없었지. 어쩌겠는가. 빈정거리지 말고 진즉에 지원해 줬어야지."


트렐라드 변경백령의 수도, 텔로드에서 펠릭스는 오래간만에 만난 변경백과 회포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번과 달리 지금의 펠릭스는 당대에 한정된 단승이라지만 남작으로서 정당한 귀족 자격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펠릭스는 트렐라드 변경백이 희희낙락 말하는 내용을 적당히 받아주었다. 원래는 모험을 떠나고 싶었지만, 이곳에 있는 거니까. 남쪽으로 끌려가 미개척지에서 개고생하는 것보다는 나으므로 가만히 있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제가 할 일은 있습니까? 보아하니 국왕 폐하와 윗분들은 확장을 반기지 않는 눈치였는 데요."

"안정적인 외교판에 파란을 만들긴 싫겠지.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생각해줄 이유는 없고."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오슬레아 대왕국의 외교사정을 듣고서야 펠릭스는 어째서 국왕과 대귀족들이 그토록 남쪽으로 보내려 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한국에서 이 상황과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17년 사드 배치 말이다.

주도권이나 국력이 완전히 다르므로 상황이 똑같지는 않으나 핵심 부분은 일맥상통했다.


"알카탄 공국을 공격해서 짓밟는 방법과 지세트 백국을 조기에 밟고 알카탄으로 북상하는 방법이 있네. 무엇이 끌리는가?"

"음···. 각하께선 골렘을 몇 기나 거느리고 계십니까?"

"자네의 골렘을 제외하고 기간트 골렘 13기, 매그넘 골렘 71기일세. 백국을 짓밟기는 충분하고, 공국 상대로는 열위지."

"오, 생각보다 많네요."

"생각보다, 라니···. 기분이 좀 그렇구먼."

"지금까지 여기에 지내면서 골렘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트렐라드 변경백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언짢은 내색을 보였지만, 펠릭스의 설명을 듣고 그럴듯하다며 수긍했다. 텔로드 내에서 골렘 기동을 펼친 적은 없었으니까.


"국가 간 전쟁도 아니고, 영주전도 아닌데 골렘을 동원할 필요는 없잖나. 초기에는 골렘을 동원해 국경을 압박하기도 했지만, 혼란이 길어지면서 군축하느라 골렘 운용을 줄이고 병사를 더 모집했어."

"아아."


난민과 도적을 상대하는데 골렘은 부적격한 게 맞았다.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 난민에게 골렘은 과잉전력이고, 만만한 약자를 노리는 도적에게 골렘은 '여기 군대가 있소.'라고 떠드는 표지판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매그넘 골렘은 그나마 적당한 전력이지만, 난민 상대로 과잉대응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고, 도적 상대로는 기민한 반응이 어려워 토벌 성과를 뽑아내기 어렵다.

골칫거리가 괜히 골칫거리인 게 아니었다.


"지세트 군사력은 얼마나 됩니까?"

"골렘 다 합쳐서 오십 기가 안 되지. 기간트 골렘은 다섯인가 그럴 것이고."

"골렘 보유량은 기밀일 테니. 방첩에 꽤 신경을 쓰나 보네요."

"그럴 리가. 기간트 골렘의 외장갑 한 세트가 최소 8만 골드야. 백국 따위가 제대로 훈련이나 할 수 있을 리 없지. 1년에 몇 번 싸우지도 못하는 허수아비를 상대로 뭘."

"엥."


펠릭스는 멍청한 의문을 흘렸다. 실전훈련, 중요하다. 군대에서 병사를 개처럼 굴리는 이유가 훈련도 유지를 위해서고. 그런데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이런 소리를 들으니 좀 의문스러웠다.

군대에 양이 중요한 건 맞다. 뭘 하려고 해도 규모가 받쳐줘야 하니까. 그런데 질을 중시하다가 정작 훈련이 소홀하여 고철 덩어리나 다름없을 정도면 보유할 이유가 없다.


"오슬레아의 변경백에게 밀릴 정도로 약한 국가가 뭘 믿고 이렇게 수작을 부리는 거죠?"

"카팔라 제국이 혼란스럽기 때문이지. 황제는 앓아누웠고, 황태자는 계승권을 지키느라, 다른 황자들은 계승권에 도전하느라. 카팔라 제국과 국경을 접한 국가들은 난리야, 난리."

"군공으로 계승권이 뒤집히기도 합니까?"

"그럼. 카팔라 제국은 무력을 중시하는 군사국가라서 말이야. 인류 최후의 요람이었던 땅이라 문화나 기술도 뛰어나지. 대규모 정복활동에 대응하는 연합체가 있지만, 국경을 들쑤시며 목을 챙기는 건 막지 못해."


카팔라 제국의 정복법은 다른 국가와는 달랐다. 일반적인 전쟁이 상대국가의 요충지를 점거하여 우위를 유지하거나 전투수행능력을 파탄내 항복을 받아낸다면, 제국은 그런 거 없이 그냥 쳐들어가 군공을 따낸다. 선전포고도 없고, 항복요구도 없다. 그저 목을 따낼 뿐이다.

이런 식으로 공포를 조성해 국경 일대를 초토화하여 원주민이 떠나면 그 빈 땅을 잡아먹는 식으로 정복했다.


"왜 그렇게 번거로운 방법을 쓰는 겁니까?"

"카팔라 제국의 시조가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니까. 카팔라 제국은 인류를 상대로 선전포고하지 않는 걸세.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도적이나 방랑용병 무리라고 선전하지."

"······."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정도가 아니었다. 한때 인류의 수호자였던 자들이 점차 인간의 영역이 확대되면서 그저 강한 국가가 되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는 말.

그리고 이런 카팔라 제국의 혼란성은 인접 국가의 불안을 사고, 그 사이 뒤가 안전해진 그 너머 국가들이 서로 싸우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설명이었다.


"알카탄과 지세트 넘어 로블 공국과 에올라 백국이 있지. 카팔라 제국과 국경을 맞댄 국가일세. 이제 대략 이해가 가지?"

"로블 공국과 에올라 백국이 카팔라 방면에 군사력을 집중시켜 국경이 안전해진 알카탄과 지세트가 오슬레아를 도모한다···."

"바로 그거야. 영토확장을 노리는 시기가 되었다는 걸세. 오슬레아 대왕국도 그런 식으로 성장한 국가이기도 하고."

'전국시대가 따로 없네, 진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우던 일본의 전국시대보다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차라리 더 가까웠다. 중·근세 유럽 특유의 난장판이라고 보기엔 카팔라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가 있었다. 프랑스 왕국도 나름 왕권과 귀족권의 분쟁이 있었고, 영국이라는 천적이 있었다.

카팔라 제국을 진나라로 보면 그나마 좀 이해가 됐다. 무엇보다 중세 판타지라고 넘어가기엔 국가라는 울타리가 생각보다 견고했다.


'아무리 밑바닥부터 기어올랐다지만, 문명이 최소 3천 년 넘게 유지됐으니 기형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가정을 버릴 수 없긴 한데.'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튀어나온 게 민족주의고, 그 민족주의를 넘어선 사상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였다. 땅을 기준으로 삼던 제국주의는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민족주의에 밀렸고, 사람을 기준으로 삼는 민족주의는 생활을 기준으로 삼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밀렸다.

그러나 이 세계관에는 민족주의 이상의 분류가 존재했다. 종족 자체의 차이점이다. 인종 정도는 우습게 여길 정도로 거대한 차이점이다. 그나마 마왕을 함께 몰아냈다는 공동체 의식을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튀어나온 것이 국가주의 비슷한 무언가라고 펠릭스는 판단했다.


'자세한 건 인류학 관련 전문가를 찾아서 들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마왕에게 밀려 대륙 변두리로 밀린 세 종족은 예전처럼 서로 싸울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졌고, 예전처럼 외견만으로 차별이 생기진 않을 것이다. 엘프 노파가 말했듯 이 시대의 평균은 종족 단위의 탄압이다.

봉건제도라는 구식 체제가 유지되면서, 국가 단위의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는 건 인류라는 공동체라는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 그 이유는 당연히 마왕을 향한 트라우마다.


'어이가 없네. 그거 하나만으로 이런 결과가 나오나?'


뭔가 결정적인 단서가 몇 개 빠진 느낌이었다. 펠릭스가 모르는 별개의 변수가 적용해야 지금 같은 야만과 문명 사이 그 어딘가가 오래도록 유지될 수 있었다.

트렐라드 변경백은 펠릭스의 고민을 즐거이 기다렸다. 어디를 공격해야 하는지 심사숙고하는 것이라 여기고 여유를 부린 것이다. 중앙귀족에게 막대한 지원을 뜯어냈고, 골렘도 추가로 받아냈으니 이렇게 여유를 부릴 시간이 있었다. 아니었지만.


"지세트를 먼저 밟죠."

"오호, 왜지?"

"지세트 백국을 점거하면, 알카탄 공국은 전선이 늘어나는 상황이 됩니다. 오슬레아 방면에 집중한 병력을 분산해야 해요. 그때부터 주도권은 우리가 가집니다. 지세트에서 북진하건, 오슬레아에서 서진하건 마음대로라는 거죠."

"하하하! 그럼 알카탄이 오슬레아로 진군할 가능성은?"

"그럼 국가전이죠. 방관하던 주위 대귀족이 병력을 내어야 할 겁니다."


펠릭스의 말에 트렐라드 변경백은 유들유들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쪽이 먼저 선공했잖나? 어째서 대귀족이 도울 거라고 자신하는 거지?"

"각하와 제가 공격한 건 지세트니까요. 알카탄이 공격하는 건 별개의 문제죠. 그렇지 않습니까?"

"하하! 그렇지. 그렇긴 해. 둘은 동맹도 맺지 않았으니까."


펠릭스의 대답에 트렐라드 변경백이 웃었다. 정답이다. 둘은 오슬레아를 상대하며 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게 오래 얘기했는데 동맹 얘기 안 나왔으면 뻔하지.'


알카탄 공국과 지세트 백국은 서로 손을 잡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오슬레아 대왕국의 국경 방면을 약화하는 방법이 같고, 서로 목적이 같아 묵인하고 있는 것뿐이다.

이걸 멍청하다고 말할 순 없었다. 동맹을 맺으려면 명확하게 협상을 거쳐 서로 먹을 부분을 갈라야 했고, 더 먹을 수 있을 때 더 먹을 수 없었다. 이런 주먹구구식 눈치 게임이 성립될 수 있는 건 오슬레아 대왕국이 남쪽에 집중하며 북쪽에 소홀하다는 첩보와 일관성이 신뢰를 얻은 덕분.

하지만 그들의 계략은 소드마스터 상급의 등장으로 깨졌다. 펠릭스가 없었다면 트렐라드 변경백 전체는 아니더라도 하위 영주 몇 명은 국적이 바뀔 수도 있는 위험한 정국이었다.


"말라 죽기 전에 자네가 나타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각하 덕분입니다."

"하하하하. 듣기는 좋군. 그나저나 왕도에서 소란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아, 그거 말씀이십니까."


펠릭스는 왕도 오세안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서임식을 기다리며 있었던 일. 서임식 과정과 연회. 골렘 기동을 연습하며 있었던 일.

두 사람은 온종일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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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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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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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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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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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서임식 (6) +2 20.04.23 226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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