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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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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4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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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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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펙시스 공략전 (6)

DUMMY

도망치면 쫓지 않겠다는 말에 사작들은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마나 블레이드는 오러처럼 눈 부신 빛을 내지 않았다. 오러가 백열전구처럼 눈을 찌르듯 빛을 낸다면, 마나 블레이드는 LED같이 차분한 빛을 흘렸다. 마력의 정순함에 따른 결과였다.

펠릭스는 힘의 격차를 실감하도록 주위에 가득한 사작에게 과시하듯 마나 블레이드를 유지했다. 박살 난 도개교 너머에 기간트 골렘 7기가 나타나자 이들의 긴장감은 절정에 달했다. 만에 하나 소드마스터를 이긴다고 하더라도 기간트 골렘 7기를 이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수비대장은 각오를 다졌다. 네안칼 백작에게 받은 은혜는 여기에서 도망칠 정도로 가볍지 않았다.

이곳에 모인 사작들도 수비대장의 눈치를 살폈다. 수비대장이 탈영하거나 항복하지 않으면 이들도 맞서 싸울 분위기다.


'부하 관리 잘하는 것 같고. 결단력도 있고. 탐나는 놈일세.'


그럴수록 펠릭스는 탐욕이 존재를 과시했다.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세력이 작을 때는 나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비대장은 펠릭스과 부하의 시선을 받고 잠깐 눈을 감으며 생각했다가, 결의를 굳혔다.


"네안칼 백작께선 나의 주군이시다. 배신은 있을 수 없는 일!"

"그것참···. 아쉬운걸."


펠릭스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이 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배신'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유럽식 봉신 계약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실전경험이 부족한 펠릭스였으므로 아직 실전에서 상대방을 봐주면서 제압할 수 없었다. 실력 차이가 아예 천지 차이라면 전투능력을 붕괴하는 식으로 생포할 수 있지만, 오러나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사작은 살려둘 수 없었다.


'금강불괴 같은 방어용 기술이 있으면 좋겠는데.'


오러를 무시하고 달려들 수 없었다. 그나마 철갑옷은 마력을 머금을 수 있어서 그 방법으로 방어력을 높일 수 있지만, 근본적인 방어구가 될 수는 없었다.

검날에 이가 빠지듯 방어구도 갈라지거나 깨졌다. 그나마 검은 마력을 세밀하게 많이 다루는 손과 연결되어 있기라도 하지, 방어구는 신경계와 접점이 작아 약간만 방심해도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할 수도 있었다.


"모두 덤벼라."

"쳐라!"


수비대장의 외침을 신호 삼아 경비대가 달려들었다. 전면에서 다섯, 좌측에서 넷, 우측에서 셋, 후면에서 셋. 그리고 저 너머 마법사 여섯 명의 유도형 마법.

펠릭스는 진지하게 검을 휘둘렀다. 사방에서 달려들면 아무리 펠릭스라고 해도 무사하기 어려웠다. 포위해서 동시에 달려드는 적을 상대하는 방법은 하나. 어느 방향으로든지 달려들어 축차 투입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오른쪽 다리로 땅을 박차고 왼쪽 넷을 향해 달려들었다. 셋 모두 찌르기 자세여서 펠릭스의 반응에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수평으로 휘두른 검에 흉부와 팔이 토막 나 바닥에 쓰러진다. 넷 모두.


'역시 마나 블레이드로 사람을 베는 건 손에 감각이 안 와.'


시체 4구가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마법이 바닥에 꽂혔다. 권총탄이 박힌 것처럼 돌 파편이 튀었다. 기껏해야 새총 정도의 물리력일 거라고 짐작하던 페릭스는 평가를 수정한다.

아무런 대기 동작이나 추진력 없이 화살이 튕겨 나가듯 발사된 마법탄은 보이는 모습과 달리 몹시 위험했다.


"달려들어!"

"어떻게든 붙어라! 한 번이라도 실수를 만들면 우리가 이긴다!"


수비대장의 일갈과 연배 높은 기사의 솔선수범은 펠릭스가 보여준 압도적인 무력을 잊도록 도와주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기사는 펠릭스의 팔다리 하나라도 붙잡으려고 절박하게 칼을 휘둘렀다.

이글거리는 오러가 펠릭스의 갑옷을 수없이 스쳤다. 집중력이 흐트러진 기사들의 오러는 예리하지 않고 둔탁했다. 갑옷은 베인 흔적보다는 망치를 맞은 것처럼 우그러졌다.

갑옷에 마나를 불어넣어 방어력을 높이기는 했지만, 쉽지 않았다.


'피해 없이 싸우긴 힘들겠어.'


펠릭스는 절박하게 팔다리를 움직였다. 다리를, 팔을, 어깨를, 허리를, 목을 노리는 칼질과 마법이 너무 매서웠다.

하나하나는 아무렇지 않았으나 동시에 공격하니 방어를 못 하고 계속 회피만 하느라 제대로 된 공격을 할 수 없었다. 공격을 위해 자세를 잡으면 곧바로 공격이 들어왔다. 준비 동작이나 자세가 필요한데, 그게 불가능했다.

아무리 마나 블레이드라도 휘두르지 못하면 그저 날이 예리한 송곳에 불과하다.


'훈련 잘 받았네, 진짜. 누가 가르친 거지?'


가볍게 싸우는 거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칼 한 번 정도는 허용해야 반격이 가능한 다수와의 싸움. 그나마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갑옷 곳곳에 손상이 생기자 펠릭스는 한층 더 독해지기로 했다.

펠릭스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향해 쇄도하는 검을 왼손으로 낚아챈다.


"어···!?"

"축하한다. 비장의 수를 꺼내게 했으니."


손가락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오러는 펠릭스의 손바닥을 태우지 못했다. 손 전체에 두른 마력을 뚫지 못하고 허무하게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난생처음 겪는 경이로움을 목격한 기사들은 멈칫했고, 펠릭스는 그 틈을 파고들었다. 맨주먹으로 충격에 빠진 기사 여섯을 그대로 날려버렸다. 마나 블레이드에 베이진 않았지만, 트럭에 치인 것처럼 엄청난 충격을 받은 기사들은 벽에 처박혀 일어나지 못한다.


'바닥으로 쓰러지지 않고 아예 벽에 꼬라박은 채로 기절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는 건 또 처음이네.'


비현실적인 광경이었지만, 거기에 시간을 할당하며 감상할 시간은 아니었다. 주위에서 여섯 명이 사라져 견제가 그만큼 가벼워졌고, 비로소 그때야 검을 휘두를 수 있었다.

날아오는 마법탄을 쳐내고 목이나 허리를 절단했다. '재롱잔치는 여기까지다.'라고 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폭발적인 공격이었다.


- 란소스 각하 만세! 승리를 거머쥐십시오!


해자 밖에서 대기하던 기간트 골렘 하나가 흥분을 절제하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도개교가 망가진 이상 골렘을 타고 넘어갈 순 없었다. 펠릭스를 돕고 싶어 안달 난 자들에게는 애석하게도 다리를 잇는 쇠사슬이 끊어졌으므로 수리 없이는 그 누구도 내성에 들어갈 수 없었다.

수비대장은 기사 스무 명이 순식간에 전사하자 마법사 지휘를 부장에게 맡기고 직접 전투에 끼어들었다.


"으아아압!!"

"흡!"


수비대장의 오러는 다른 기사와 비교해서 상당히 무거웠다. 깨달음을 얻지 못해서 답보 상태일 뿐, 상당한 마나를 모은 상태였다.

마나 블레이드를 깨트리거나 흔들 순 없었지만, 완력 자체는 매서워 마나 블레이드와 접촉하고도 기세가 많이 작아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펠릭스는 인상을 찡그렸다.


'도웬 시케람보다는 좀 처지는 걸 봐선 익스퍼트 상급인가?'

'이게 막히다니···!'


수비대장은 도끼로 통나무를 패듯이 온몸의 체중까지 실어서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전력으로 달려 뛰어올라 내리찍었으므로 단순하게 체중만 실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펠릭스는 도웬 시케람 이후로 오래간만에 식은땀을 흘렸다. 수비대장은 회심의 일격이 어렵지 않게 막혀도 절망하지 않고 뒤이어 공격을 가했다. 튕겨 나간 칼을 회전시키며 아래에서 올려치고, 검이 맞닿으면 어깨와 팔을 움직여서 맞닿은 부분을 작용점 삼아 칼끝으로 목을 노렸다.

왕궁에서 왕실기사와 대련할 때나 겪어본 검술이 들어오자 펠릭스는 헛숨을 뱉으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위험했다!'


이 세계의 검술은 대체로 단순무식했다. 검과 검끼리 부딪치는 힘 싸움에 가까웠다. 그 이유는 오러의 존재였다. 어렵고 까다로운 기교를 연습하는 것보다 오러 입힌 검으로 베는 걸 선호했다.

하지만 검술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경지가 엇비슷할 경우 힘 싸움은 1:1 결투가 아닌 이상 오랫동안 싸울 수 없었다. 따라서 경지와 무관하게 기교를 수련하는 부류가 있는데, 익스퍼트 상급이나 최상급 등 경지가 답보된 자들이었다.

이 점을 간과하던 펠릭스는 지금까지 그랬듯 힘으로 밀어붙이려다가 낭패를 봤다.


"보면 볼수록 아깝구나. 내 아래로 들어올 생각 없나?"

"전혀!"

"쯧."


펠릭스는 혀를 찼다. 맨주먹이나 발길질로 제압하기엔 상대방도 만만찮은 실력자였다. 간격을 좁혀 인파이트를 시도하려면 물러나고, 간격을 벌려 발차기를 시도하려면 다가왔다. 센스가 있는 인물이었다.

오직 검만 휘두를 수 있는 정직한 간격이 계속 이어졌다. 수비대장이 나선 시점부터 다른 기사와 마법사는 멀찍이 떨어졌다.


'소드마스터를 상대로 대결이 성립할 거로 생각하다니···.'


대등한 전투가 성립하는 이유는 '펠릭스가 수비대장을 살려서 영입하고 싶어서.'였지 '수비대장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전투를 지속하는 건 좋지 않았다. 외성 바깥에 매그넘 골렘과 기병대, 내성 바깥에 기간트 골렘이 대기하는 상황에서 시간을 오래 끌어서 좋을 건 없다. 유리한 건 오직 펠릭스라는 소드마스터 하나뿐.


"그럼, 좀 제대로 해볼까."

"날 우롱한 건가?"

"전력을 다하지 않은 걸 우롱했다고 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있겠지. 나는 수차례 투항할 기회를 줬다. 그걸 받지 않은 건 네 선택이고."


펠릭스는 온몸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근육과 뼈에 활력이 가득 차오르고, 지금까지 누적된 피로가 눈 녹듯이 사라졌다. 평소에 불어넣던 양보다 곱절은 많은 마나 덕분에 신체능력도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더욱 빨라진 속도로 수비대장의 배에 갑옷이 깨지도록 발뒤꿈치를 내질렀다. 내장이 터져도 이상할 게 없는 충격.


"···!"


너무 갑작스러운 충격이었던 까닭에 수비대장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배를 찬 발길질이 척추까지 끊어버린 탓에 앞으로는 하반신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수비대장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며 펠릭스는 생각을 고쳤다.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가정하자. 생각했던 것보다 충성심이 너무 높아. 아예 내 밑에서 인재진을 만들 교육체계를 만드는 게 낫겠어.'


바닥에 쓰러진 수비대장의 목을 발로 슬며시 밟으며 주위를 보았다. 기사와 마법사는 전의가 완전히 꺾여 펠릭스의 시선을 받자마자 고개를 푹 숙였다.

항전을 부르짖은 건 수비대장 하나뿐이었다. 나머지는 명령을 받고 달려든 일반인에 불과했다. 주위에 쓰러진 기사의 시체도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데 일조했다.


"더 싸우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나와."

"······."

"없나? 그럼 무장을 버려라. 마법사들은 저기 바깥에서 들어올 수 있게 다리 수리하고."


펠릭스의 지시에 기사들은 검을 허리에서 풀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몇몇은 갑옷 어딘가에 숨겨둔 단검도 꺼냈다.

마법사는 조심스럽게 성문으로 다가가 도개교를 내리기 시작했다. 라이트 마법으로 추를 가볍게 하고 반중력 마법으로 들어 올렸다. 도개교를 들어올리던 추가 가벼워지자 도개교의 무게가 더 무거워져 서서히 내려갔다.

골렘 나이트 7명이 내성 안에 기간트 골렘을 꺼낸 것으로 펙시스의 최후가 결정됐다.


"네안칼 백작을 찾아라. 텔레포트 게이트가 가동되기 전에 찾아야 한다."

"예, 각하!"


하지만 펠릭스가 수비대장과의 결투에 지나치게 신경을 쏟은 탓에 백작과 지배층은 모두 왕도로 도주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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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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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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