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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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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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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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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진흙탕 위 나룻배 (1)

DUMMY

"펙시스가 함락됐다고?"

"예, 각하."


알카탄 왕궁.

국왕은 네안칼 백작의 도피를 전해 듣고선 인상을 구겼다. 펙시스가 함락됐다면 물류의 일부분이 확실하게 동결됐다. 적어도 오론 강 일대는 사용할 수 없는 공백지가 되는 셈이었으니 심기가 불편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백작의 무능으로 책임을 돌릴 수도 없었다. 펙시스를 함락시킨 게 부양선에 올라탄 소드마스터라면 되려 책임을 돌리는 국왕에게 악평에 쏟아진다. 소드마스터란 그런 존재였다.


"귀족들은 어떻지."

"적지 않게 동요하고 있습니다. 오론 강을 활용하는 도피로가 모두 막힌 탓에···."

"빌어먹을 것들 같으니라고."


국왕이 국왕으로서 군림할 수 있는 까닭은 영주가 위험에 처했을 때 도피처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왕도에 비싼 돈을 들여 저택을 구매하고 유지하는 이유는 신년하례식 말고도 이런 '만에 하나'를 대비하기 위한 계산이 깔려있었다. 그런 만큼이나 '도피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매력이 증발했다. 도주와 활동에 적합해야지 막다른 길이 된다면 누가 왕도로 인정하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오론 강 봉쇄, 사용 불가 상태는 왕권 약화를 뜻했다.


"···자문단은?"

"뾰족한 방법은 없다고···."


시종장은 '말했습니다.'라는 뒷말을 붙일 수 없었다.

알카탄 국왕은 오슬레아 대왕국과의 전면전이 선포된 이후 신경이 지나치게 예민해져 작은 일에도 크게 화를 내곤 했다. 시종장은 자신에게 분노할까 조심스러웠다.

시종장의 유약한 모습을 본 알카탄 국왕은 속에서 욱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지 않았다.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1년에 천 골드 넘게 받아가면서?"

"죄, 죄송합니다. 당장 말씀을 전달하겠습니다."


시종장은 화가 튈까 무서워 말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집무실을 나갔다. 절박하게 뛰듯이 걷는 시종장의 모습은 일견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모습을 보고도 알카탄 국왕은 전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내려 자신의 탁자 위 서신을 바라보았다. 키펠 왕국의 후작으로부터 받은 편지였고, 그 내용은 상당히 암울했다.


'오슬레아가 완충 국가를 세우기로 했다, 라.'


알카탄 남서부와 지세트 백국 영역을 묶어 새로운 왕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적혀있었다. 오슬레아 왕족 방계가 국왕으로 추대되고, 소드마스터 상급이 새로운 국가의 백작이 되어 카팔라 제국에 대비하는 군사력 양성을 도울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키펠 왕국은 배후에 군사집단이 생기는 걸 꺼려했지만, 소드마스터 상급과의 정략결혼으로 키펠 왕국 출신을 용인하겠다는 내용과 키펠 왕국군 소속 기사가 가르침을 받는 것도 승인하는 것으로 여론이 뒤집혔다. 새롭게 등장하는 국가는 오슬레아와 키펠, 두 국가의 영향력 아래에 놓이는 속국이 된다.

당연히 알카탄 공국의 의사 따위는 반영되지 않은 강국의 독단이었다.


'···마게트 왕국을 끌어들여야 하나?'


알카탄 국왕은 깊이 숨겨둔 편지를 떠올렸다. 지금까지는 가만히 놔둔 제안서였지만, 지금처럼 물불 가릴 게 없는 상황에서는 절실했다.

마게트 왕국은 오슬레아-키펠 연합이 부담스러워 동맹을 와해하려고 다방면으로 국력을 쏟았다. 알카탄 역시 마게트 왕국의 이런 제안을 받았었다. 두 국가를 이간질할 수 있는 정보나 계략 말이다. 두 국가에 손님이 많은 알카탄 국왕은 외교용 카드가 꽤 있었다.

다만 문제는 지금처럼 불리한 상황에서 가격이 얼마나 받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키펠은 아무래도 좋아. 오슬레아가 군대를 물리도록 만들기만 하면 된다. 마게트 왕국의 소드마스터가 오슬레아 국경에 접근하기만 하면 돼. 그럼 문제 대부분은 끝나. 하지만 그런 전략을 마게트가 해줄 것이냐가 관건인데.'


시간과 순서가 가장 큰 문제.

알카탄 국왕이 오슬레아-키펠 군사동맹을 파탄 낼 정보를 건넨다고 하더라도, 마게트 왕국이 즉각 대응에 나설 순 없다. 마게트 왕국은 오슬레아-키펠 동맹이 흔들릴 때까지 시간을 들일 것이고, 당장 왕도가 위험한 알카탄은 그 시간 내내 버텨야 했다.

알카탄 왕국이 바라는 건 마게트 왕국의 즉각적인 대응이고, 마게트 왕국은 오슬레아-키펠이라는 두 국가의 양면전쟁을 타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카탄 국왕은 오슬레아와 키펠이 당장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결정타를 날려야 한다.

당연히 그런 외교 카드는 있었다. 오슬레아 왕국의 뒷공작, 키펠 왕국의 작전계획 등. 마게트 왕국이 바라는 정보는 많으나.


'그런 정보의 출처는 뻔하지. 이게 마게트에 넘긴 시점에서 내가 들키는 건 삽시간이야.'


중요한 정보이므로 접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 없다. 따라서 정보를 넘겼다는 게 들키는 건 시간문제다. 오슬레아-마게트 전쟁이 끝난 뒤에도 알카탄의 안전이 보장되려면 키펠 왕국을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문제가 많았다. 알카탄의 존립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후우으으···."


알카탄 국왕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 정도까지 정보를 풀어야 하는가.

확실한 점은 어중간한 정보로는 이도 저도 아닌 진흙탕 교섭이 된다. 어차피 던질 거라면 올인으로 뒷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좀 어지간한 카드는 오슬레아 대왕국이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교섭은 오슬레아가 뒤로 뺄 수 없게 퇴로도 막아야 한다.


'그럼, 보낼 건 정해졌고. 이제 상대방의 대응에 달렸다.'


약 3시간 뒤, 알카탄 국왕은 마게트 왕궁에 직통 통신을 걸었다.


* * * *


사흘 뒤. 오슬레아 왕도 오세안.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을 느꼈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


오슬레아 대왕국의 국왕과 공작 5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남쪽 해안을 개척하는 하즈킨 공작을 제외하고, 사실상 오슬레아 정계의 모든 거물이 모인 셈이었다.

모인 이유는 한 가지. 키펠 왕국에서 날아온 통보 때문이었다.


"통과도 안 된 계획에 불과했는데, 초안이 흘러들어 간 모양이야."

"산업계 잠식이라는 게 그냥 흘러넘길 수 없는 안건이긴 하지."

"쯧."


공작들은 이번 사태를 썩 대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계획에 불과한 일이긴 했지만, 키펠 왕국의 지나친 의존은 산업계 잠식을 시도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던 탓. 따라서 이번 일은 순리에 가까웠다.

물론 이런 감각은 오슬레아에서나 가질 수 있는 일이었고, 알고 보니 집안에 압류 딱지로 가득했다는 걸 깨달은 키펠 왕국은 사정이 달랐다.


"대책은?"

"키펠 왕국에 많은 이권을 약속해야 합니다. 증서로도 남겨야겠지요."

"이번 일은 오슬레아에 의존하여 여러 부분에서 지원을 받으려던 키펠의 죗값입니다. 엄중히 따져 자격을 물어야 합니다."


국왕의 물음에 리디스 공작이 화평을 주장한다.

키펠 왕국과 접한 공작령이라 불안한 분위기가 형성되면 손해가 막심한 까닭이다. 반면 마게트 왕국과 인접한 무바틀 공작은 키펠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화평파와 주전파로 나뉘었고, 결석한 하즈킨 공작을 제외하면 테루아 공작만이 중립을 지켰다. 그 이유는 화평이나 주전이나 둘 다 막대한 소비가 뒤따른다. 될 수 있으면 국왕의 결정에 따르는 편이 여러모로 편하다.


"란소스 남작은 어디에 있지?"

"아르카다 포위 중입니다, 폐하."


펠릭스는 알카탄 왕도를 포위하고 있었다. 펙시스를 함락하고 텔레포트 게이트를 개방하여 오슬레아의 사단을 받아들여 주둔시키고, 부양선으로 이동했다.

겨우 200명으로 왕도를 포위하는 건 불가능하므로 급하게 준비한 병사 천 명을 대동하고 움직였다. 부양선으로 합류할 병력을 합치면 1만 명에 가깝다. 그 정도 규모면 아르카다는 충분히 함락할 수 있다.


"아이벨라급 화물선에 어떻게든 천삼백 명을 싣느라 무장이 가볍습니다. 본대가 도착하기 전에는 제대로 된 공략은 불가능합니다."

"후퇴할 거면 빠르게 해야한다는 거군."


1차로 아르카다에 도착한 선발대는 여러모로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노예 수송선처럼 병사를 밀집시켰다. 무장도 가볍고, 말은 몇 마리 싣지도 못했다. 공간압축 아공간 가방을 활용했다지만, 식량이나 장비 모두 넉넉하게 챙길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지금 아르카다를 포위한 군대는 '한번 제대로 싸우면 뒤가 없는 군대'였다. 무장도 온전히 챙기지 못한 군대가 공구를 챙겼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리케이드를 만들 못과 망치, 톱과 밧줄 따위도 최소한만 챙겼을 군대가 공성전 준비를 할 수 있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란 대답만 나온다.

그러므로 후발대는 1만 명과 막대한 물자를 실은 부양선단이다. 아직 하늘에 있으므로 회군하면 별문제 없지만, 현지에 도착해서 물자를 풀면 수습하기 힘들다.


"알카탄을 함락해도 문제고, 방치해도 문젭니다. 이런 짓을 저지른 소몰트 왕의 간계를 그냥 넘어가선 안 됩니다, 만. 알카탄을 굴복시켜 키펠의 심기를 더 흔드는 것도 문젭니다."

"키펠과 접하는 국경이 너무 길어지면 곤란해. 어떻게 생각하나, 테루아 공작?"

"으음···."


지금까지 말을 아끼며 있는 듯 없는 듯 침묵하던 테루아 공작을 지목했다. 란가스 왕국과 인접한 사델라 공작의 발언이었다.

사델라 공작은 주전선이 아니라 부전선에 있는 만큼 마게트-란가스 전선에서 중요도가 떨어져 다소 소외당하던 지역이었다. 키펠 왕국이 잠재적 적국이 되면 소외되다 못해 홀대받을 지역이라, 이번 사안에 지극히 예민했다.


"소드마스터의 뜻에 달렸다고 보네. 그리고 이 정도면, 우리는 해줄 만큼 해줬다고 봐야겠지."


테루아 공작은 이번 전쟁의 결정권을 펠릭스에게 넘겼다. 전쟁의 시작을 펠릭스가 열었으니 마무리도 펠릭스에게 맡겨야 한다는 취지였다.

국왕과 네 공작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부정하지 않았다. 대전략을 전면수정하는 한이 있더라도 펠릭스를 끌어안으려 한 결과가 지금 직면한 상황이었다. 그러므로 소드마스터의 태도를 알아야 다음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이곳에 모인 여섯 명은 키펠 왕국을 잃더라도 펠릭스를 얻으면 된다는 반응이었다. 10대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존재는 어지간한 중대사도 감수할 가치가 충분히 차고 넘쳤다.


"볼펜우드의 반응은, 어떻지?"

"이번 일에 관한 발언을 자제하거나 회피하는 탓에 알기 어렵습니다. 아마 중립적일 것 같습니다."

"적어도 당장 전쟁이 터지진 않겠군···."


마법사는 끼리끼리 뭉쳐서 연구에 집중하지만, 기사는 병사와 밀접하게 육체수련에 열중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숙련된 병사는 기사의 눈치나 분위기를 쉽게 알아차렸다. 골렘이 있더라도 전쟁의 주력은 여전히 병사이므로 훈련이나 정훈교육 등으로 분위기가 달라지면 전쟁이 임박했다는 뜻이다.

다행스럽게도 키펠 왕국은 오슬레아 대왕국과 싸울 생각은 없었다. 적어도 당장은.


"내일 점심에 다시 모이도록 하지. 테루아 공작, 그대가 란소스 남작의 의중을 알아 와 주시오."

"예, 폐하. 반드시 알아오겠습니다."


테루아 공작은 국왕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펠릭스 하나 덕분에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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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2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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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정벌 준비 (5) 20.05.04 158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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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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