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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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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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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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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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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셔플 & 딜 (1)

DUMMY

유력가 19곳으로부터 171만 골드를 받아낸 펠릭스는 가장 먼저 변경백에게 소식을 전달했다. 아주 간단하게 변경백의 반년 예산을 들고 오자 변경백은 환희했다.

영지의 수익은 현물이 대부분이고, 그나마도 가을이 될 때까지는 모아둔 돈을 깨작깨잘 풀어서 쓸 수밖에 없었는데 펠릭스가 현금을 가져왔으니 아니 기쁠 수 없었다.

펠릭스가 변경백에게 어디가 가장 시급한지 물었고, 변경백은 임금이라고 답했다. 짐작했던 내용이라 펠릭스는 변경백에게 제안했다.


"급여가 밀린 사업체가 몇이나 됩니까?"

- 엄청 많지. 놀대가리 새끼들이 가장 많이 들고 간 게 현금이야. 남겨진 사람들은 그 어떤 돈도 없어. 밀린 봉급이 90만 골드는 돼. 이걸 해결 못하면 백국 전체가 노예로 전락할 거다.

"그 중에서 머리 굴러가는 녀석이 얼마나 됩니까?"

- 뭐야, 수습하려고?


트렐라드 변경백은 귀족이자 영주로서 의문을 표했다. 자유민으로서 시민이 늘어나는 것보다 빈민으로서 노예가 늘어나는 편이 더 이로웠다. 시민은 매달, 분기, 매년 세금을 새 백국에 바치지만 노예로 전락하면 변경백 상인에게 들어오는 까닭이다.

스스로를 판다고 해도 백국에서 노예를 사들일 주체가 있을리 없고, 트렐라드 변경백은 그나마 노예를 대량으로 사들일 자본이 있었다. 영지 복구에 투입하든, 다른 곳에 팔아넘기든, 아무튼 시민으로 유지되는 것보다는 나았다.


"장기적으로 보면 수습하는 편이 좋지요. 삶이 각팍해지면 원망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기 마련 아닙니까."

- 그건 그렇다만, 변경백의 원망을 수습하는 게 나의 책무야.

"모두 수습하는 건 아닙니다. 선별은 해야죠."


트렐라드 변경백이 은근히 꺼려하지 펠릭스는 한 발 물러서며 양보했다. 지세트 백국령의 노예화는 단순한 게 아니었다. 위신과도 연결된 일종의 보상이었다. 도적과 난민에게 시달린 영지민을 달래려면 이런 퍼포먼스는 필수적이었다.

영지 안의 난민은 원정군이 돌아온 즉시 토벌대를 조직해 노예로 만들었다. 이들은 한창 황무지 개척이나 광산에 투입했다. 그리고 비용 문제로 차일피일 미뤄지던 다리나 저수지 공사에 동원하기도 했다. 인명피해가 얼마나 되건 상관없이 밀어넣었다.

그런데도 달래야 한다면 난민으로 전락할 정도의 빈민이 아니라 명백한 중산층 계급의 피를 요구한다는 말이었다.


- 선별작업이 필요한가? 뭐, 필요한 게 있나보지?

"제가 측근으로 써먹을 관리가 필요합니다. 네리카 혼자서는 좀 그래요."

- 그건가. 하긴. 규모가 너무 작은 건 맞구나.


트렐라드 변경백은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펠릭스를 보조하는 인원이 하나밖에 없으니, 인력에 탐을 낼만 했다.

더군다나 지세트 백국이 날아가며 영지를 받을 가능성도 사라졌다. 그러니 굳이 가신단이 필요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인이 원한다면 바람대로 주위를 메꿔야 했다.


- 도시의 명사들에게 의중을 물어보지.

"제가 바라는 건 부하입니다. 명사의 제자들로는 적응이 좀, 어려울 겁니다."

- 부하? 기사단도 아니고···. 뭘 꾸미는 거냐?

"제가 대리인으로 쓸 수 있을 정도로 유능하면서도 제 말에 거역 못하는 부하죠. 근데 제 처지에 이런 충직한 수족을 찾기란 어려워서, 작업을 좀 치려고 합니다."

- 그래서 선택한 게 구원자 행세냐.


트렐라드 변경백은 펠릭스의 의중을 파악하고 한숨쉬듯 말을 흘렸다.

지세트 백국의 중산층은 현 상태를 인지하고 있었다. 언제 끌려갈지 모르기에 매일 야밤에 성벽을 넘어 타국으로 망명하는 자들이 생겼다. 노예로 전락하기보다 다른 나라에서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낫다고 판단한 부류 중 결단력과 행동력을 겸비한 자들이라 수는 적었지만, 분명 존재했다.

이런 판국에 펠릭스가 돈을 풀어 돈 문제를 해결해주면 충성심이 안 생길 수 없었다. 심지어 명예까지 지켜준 기사였으니, 호감이 싹틀 것이다. 그들 중에 쓸만한 인재를 골라 영입하겠다는 생각을 위정자인 변경백이라고 모를리 없다.


- 원망을 달랠 방법은?

"배부르고 따뜻하게. 지세트의 자원을 싼값에 가져오는 정도입니다."

- 어려울 텐데.

"그걸 위한 현금이죠. 제가 매물로 나온 농지와 숲을 사들이면 될 겁니다."

- 너 말고도 살 사람은 차고 넘쳐. 입찰 받기 힘들 거다.

"그건 제가 국왕과 공작들과 협상해야겠죠. 남쪽에서 1~2년 정도 돌아다닌다고 하면 마지못해 끄덕일 겁니다."

- 너 임마···.


펠릭스의 돌려막기에 변경백은 기가 막히다는듯 말했다. 유일한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입지를 너무 잘 활용했다.

지금이야 말마따라 마지못해 끄덕이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인상을 구기면 좋을 게 없었다.


"각오한 바입니다. 물려받을 게 없으니, 이런 식으로 고생하며 기반을 쌓아야죠."

-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영주들 설득하는데 네 이름 좀 빌리마.


트렐라드 변경백과의 합의는 이것으로 끝. 펠릭스는 겨우 첫 단추를 끼웠다. 변경백이 한사코 반대했다면 추진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펠릭스는 통신담당 마법사에게 다음 연락처로 왕궁에 면담 요청을 넣으라고 말했다. 펠릭스의 용건이 왕궁에 넘어가고, 중요도를 따져 상부에 전달될 것이다.


'그 동안 숙제 좀 봐줘야겠군.'


네리카와 체스터의 숙제를 검사하러 통신실을 떠난 펠릭스는 느긋햇지만, 용건을 확인한 오슬레아 정계는 또다시 발칵 뒤집혔다.


* * * *


오세안의 왕궁. 국왕과 궁정귀족들은 정례회의 시간에 갑론을박을 나눴다.


"누군가가 부추겼을 가능성은?"

"없지. 이렇게 머리를 굴릴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소. 재무관처럼 한평생 돈을 만진 사람의 감각이라면 또 모를까."

"교단의 개입은?"

"그들의 개입은 있을 수 없소. 엄중히 감시하는 건 물론 허튼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대외활동하는 자들마다 감시를 붙여놨으니까. 접촉한 흔적 역시 없소이다."


통신실에서 전달된 내용은 펠릭스가 돈을 굴리겠다는 선포문이나 다름없었다. 영지가 없는 귀족이 나름의 사업체를 보유하여 품위유지에 쓸 돈을 버는 건 놀랍지 않지만, 규모와 액수가 일반적인 귀족이 생각하는 범주에서 아득하게 넘어서서 문제였다.

그들이 가장 먼저 걱정한 부분은 '누군가의 부추김'이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이 팔랑귀일 리는 없지만, 누군가가 곁에 달라붙어 지속적으로 재계에 개입하도록 불어넣는다면 다방면으로 몹시 곤란했다.


"차라리 이쪽에서 감시를 붙이는 건?"

"남작이 퍽이나 좋아하겠구려. 일부러 고독하게 방치하자는 건 당신 의견 아니었소?"

"험. 전략이라는 건 유연해야 하는 거요. 그리고 당신도 찬동했을 텐데?"

"그만들 하시오. 진즉에 깨진 전략에 책임을 묻는 건 보기 좋지 않아. 누구 한 명이 데려가기에는 부담되니 남작이 다가오는 쪽이 받아가기로 한 협의였잖소. 누가 먼저 깬 건 아니니 우리끼리 싸울 일은 아니요."

"그럼, 어찌들 생각하시는지?"


펠릭스의 짐작은 정확했다. 유일한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신분은 지나치게 무거웠다. 누구 한 명이 들고 있으면 없던 견제가 생길 정도.

그래서 이번 선포문은 차라리 기꺼웠다. 소드마스터 상급이 독자적인 정치파벌을 만들겠다는 암시였으므로 차라리 반갑기도 했다. 단독이면 꺼려져도 파벌장이라면 거래 상대로서 주고 받는 관계가 되는 까닭이다.

문제는 '브레인'이 누구냐는 점.


"텔로드의 학자들은 아니오. 그들은 대부분 늙었고, 누군가의 가정교사로 활동하고 있소. 도시를 떠날 만한 자는 없소이다."

"트렐라드 인근의 현자들 또한 가능성이 없습니다. 도적떼가 들끓던 10년 동안 대부분 피신했거든요."

"식자층에서 영입했을 확률은?"

"카난리아프에서 소문을 모아보니, 그런 일은 없었소이다. 다만 도시 곳곳을 관광하듯 배회하긴 했다는구려."


궁정귀족들은 대화를 나눌 수록 미궁에서 헤매는 느낌이었다. 좁히고 좁혀서 나오는 결론은 펠릭스 본인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풀이.

국왕을 비롯한 귀족들은 이 가능성에 부정적이었다. 현실부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절대적인 무력을 가진 자가 뛰어난 지성까지 겸비하길 바라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 논의는 접어두고, 다르게 봅시다. 받아들일 겁니까?"

"해야지. 누구 텃밭도 아니고. 국외 지역이니 반발하는 자도 없을 거요."

"반대는 없는 것 같군."


궁정귀족들의 재잘거림이 끝나고, 국왕이 결단을 내렸다. 지세트 백국을 비롯한 오슬레아 북서부는 펠릭스의 이권지역이라고 못을 박았다.

정오가 조금 넘어갈 무렵에 끝났고, 다음은 일곱 공작에게 펠릭스의 전언을 전달했다. 테루아 공작을 제외하면 모두 찬성했다. 지세트 백국을 꼭두각시로 만드려고 계획을 세웠던 테루아 공작만 유일하게 답하지 않았다.


* * * *


이튿날, 국왕과 여섯 공작의 인증을 받으며 순조롭게 진행됐다. 펠릭스는 기존의 독점거래권을 적극 활용하여 권리를 주장했고, 경매에서 양보를 받아냈다.

트렐라드 내에 수하가 많은 테루아 공작의 양보는 받아내지 못 했으나, 이 부분은 펠릭스도 짐작하던 내용이므로 부드럽게 받아들였다.

중요한 건 국왕과 공작 절반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는 점. 왕실과 공작가의 재력을 제외한 민간 자본이 난입할 가능성은 남아있지만, 거기까지 바라는 건 과욕이다.


'파이 자체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알카탄과 테루아 공작이 60% 정도는 가져갈 거고, 나는 많아야 20% 정도···. 쿼터 정도면 남는 장사지. 적당하기도 하고.'


추종자가 없는 펠릭스였기에 단번에 사업체 다수를 획득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관리해줄 사람이 없으니 적당히 관리하는 편이 좋았다. 경영을 경험해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더군다나 많아야 20%라고는 하지만, 10%만 되어도 충분히 독자적인 순환 구조를 창출할 수 있었다. 0.1% 미만으로 내려가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개미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럼 이걸 받고, 무엇을 해드릴까요."

- 남쪽 섬에서 개척을 방해하는 야만족을 토벌해주게.

"좋습니다."


거래가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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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진흙탕 위 나룻배 (7) 20.06.25 8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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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90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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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1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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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29 지세트 최후의 날 (3) 20.05.09 138 3 12쪽
28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3 5 12쪽
27 지세트 최후의 날 (1) +1 20.05.07 153 5 11쪽
26 정벌 준비 (7) +1 20.05.05 155 6 11쪽
25 정벌 준비 (6) 20.05.05 155 4 12쪽
24 정벌 준비 (5) 20.05.04 158 3 11쪽
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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