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9,946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5.08 06:00
조회
143
추천
5
글자
12쪽

지세트 최후의 날 (2)

DUMMY

전투는 사흘 뒤에 시작되었다.

트렐라드 군대는 코프타 평야에 군영을 펼친 뒤에 보급 마차에서 밀가루와 고기, 숯을 꺼내 지세트 군영에 보내 원기를 충전시켜 주었다. 적에게 죽을 수도 있는 데도 적을 돕는 행동을 주저하지 않았다.

기간트 골렘과 매그넘 골렘이 아공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기병과 보병은 기세등등하게 창이나 방패, 검을 꺼내 돌격태세를 갖춘 장관이었다.


'뻘짓 같지만···.'


놀랍게도 트렐라드 진형에는 궁병이 전혀 없었다. 열사의 의지를 존중한다는 차원에서 활과 화살을 모두 거둬들여 보급 마차에 적재하고, 창을 받았다. 정식 편제가 아니므로 궁병이었던 창병은 후위에 배치해 예비대로 편성된 상태. 전력 비율상 이들이 직접 전투에 참가할 상황은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펠릭스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골렘에 올라탔다. 네리카는 펠릭스의 종자 입장으로 참전한 것이라, 보급부대에 남았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일단은 문외한이었고.

전투가 시작하기 전에 골렘을 조종하는 기사끼리 모여 각자 골렘의 코드를 교환하여 입력해 공동통신을 연결해 채널을 만들었다. 채널장은 당연히 펠릭스.


"부대. 대기!"


펠릭스는 통신관의 퍼즐을 만지작거리며 확성기 음성을 조절했다. 매그넘 골렘은 통신에 연결할 수 없으므로, 기간트 골렘만 펠릭스의 구령에 맞춰 자세를 갖췄다.

지세트 백국의 기간트 골렘 4기, 트렐라드 변경백의 기간트 골렘 10기가 평야에 나란히 섰다. 양측의 거리는 고작 300m.


"나 혼자 가겠다."

- 예?

"모두 기다리도록."


펠릭스는 골렘용 거검(巨劍)을 잡고 홀로 전장 한복판으로 나섰다. 고대 전쟁의 예법이 나왔으므로, 펠릭스도 하나 시험해보고 싶은 게 있었다.

결투!

일기토라고도 부르는 삼국지연의에서 지겹게 나오는 장군끼리의 혈투를 해보고 싶었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이럴 생각이 전혀 안 들었지만, 상대에게 예의를 지킨다며 궁병을 창병으로 만드는 새벽녘의 분주함을 보고 각오를 다졌다.

전장 한가운데로 나서자 지세트 군대에서도 골렘 한 기가 보무도 당당하게 나왔다.


"나는 트렐라드의 펠릭스 란소스다!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자!"

"지세트의 올른 델카피오요. 명예로운 기회를 주어 고맙소이다!"


둘은 채널 없이 확성기로 음성을 공개했다. 두 진영에서는 누구 하나 뛰어나가지 않고 기다렸다.

펠릭스는 검을 잡고, 천천히 옆으로 돌며 빈틈을 노렸다. 올른 델카피오 역시 펠릭스의 발걸음에 맞춰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옆걸음으로 돌기 시작한다.

틈을 노리는 신경전은 펠릭스의 도발로 끝을 맺었다. 기간트 골렘의 거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입힌 것.


'기회는 오직 한번!'


올른 델카피오는 펠릭스의 마나 블레이드를 보자마자 검에 오러를 입히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거검에 오러를 입히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재주가 아니고, 치명적인 일격을 가할 수 있을 때만 잠깐 입히는 것이었다.

펠릭스는 딱히 그런 제약이 없었다는 게 흠이었지만.


'역시 맨몸에 비하면 너무 둔해.'


오세안 왕궁에서 왕실기사를 상대로 대련했을 때를 떠올리자 확실하게 몇 수는 처지는 신속함이었다. 6m에 육박하는 무거운 기간트 골렘이 사람처럼 훅 도약하는 걸 보고 든 생각은 느리다는 감상뿐.

펠릭스는 팔을 위로 돌리며 손목을 회전해 마나 블레이드를 입은 거검의 손잡이를 위로 올려 검신을 아래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죽을 땐 죽더라도 치명적인 일격을 주겠다는 올른 델카피오의 찌르기에 대항하려면 면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었다.

거검의 손잡이를 잡은 왼손 손목을 작용점 삼아 거검 아래쪽 폼멜을 받치던 오른손바닥을 쭉 밀어 거검을 시계 방향으로 회전시켰다.

명치를 찌르려고 날아들던 거검은 펠릭스의 쳐올리기에 막혔고, 올른 델카피오 역시 팔꿈치와 손목을 동시에 돌리며 거검이 튕겨 나가지 않도록 기세를 줄이며 검격을 회수했다.


'이걸 골렘 조종으로 수습해?'


골렘의 악력과 관절 구동부를 적절히 유연하고 강인하게 다룰 줄 알아야 수습할 수 있는 반격이었다. 펠릭스는 상대방에 대한 평가를 다시 썼다.


'비록 경지는 낮지만, 검술과 조종 실력은 진품이다.'

'허허, 소드마스터 정도가 되니 마나 블레이드 정도는 속임수로 쓸 수 있나.'


올른 델카피오는 속으로 감탄했다. 본인의 틈을 보고 달려들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자신의 공포심을 이용한 공격 유도였다.

감탄만 할 수 없는 노릇. 올른 델카피오는 그 즉시 근접해서 검격을 내질렀다. 익스퍼트도, 마스터도 골렘 조종에 미숙한 경우가 많았다. 세세한 마력 컨트롤은 마법사의 것이지, 기사의 것이 아닌 까닭이다.

섬세한 골렘 컨트롤은 얼마나 오랫동안 조종했는가에 결정되기 일수였고, 마나의 은혜와 천부적인 골렘 조종실력이 겸비되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었다.

드물었을 터이다.


"···허허, 이런."

"편히 쉬십시오."


올른 델카피오는 2m가 채 안 되는 근거리에서 검격을 가했다. 오러 입힌 검으로 어떻게든 피해를 주려 했으나, 펠릭스의 조종에는 따라갈 수 없었다. 펠릭스는 왼쪽 다리를 앞으로 쭉 뻗으며 올른 델카피오의 골렘이 스텝을 밟을 수 없게 막았고, 오러 입은 검은 마나 블레이드 입은 검을 밀착해 행동범위를 제한했다.

마력의 밀도와 순도에서 크게 차이 났기에 올른 델카피오의 오러는 20초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했고, 그다음에는 정해진 결말이 올른 델카피오를 맞이하였다.

펠릭스의 마나 블레이드가 조종석을 꿰뚫었고, 올른 델카피오는 왼쪽 귀를 기준으로 수직으로 갈라졌다.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강자를 향한 순수한 감탄이었다.


'개운하지 않아.'


마나 블레이드를 거두고 거검을 뽑아 회수했다. 주인을 잃은 기간트 골렘은 그대로 기우뚱하며 옆으로 쓰러졌다.

차라리 난전을 벌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순간에 벌어진 결과였다. 겨우 2합 만에 끝나니 승리에 만끽하기도 어려웠다.


"다음. 나에게 도전하여 자신을 증명할 자는 없나!"

"조르트 오페세! 마스터의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기간트 골렘 두 기가 전선에 나왔다. 한 기는 거검을 들고, 한 기는 바닥에 거검을 꽂아 맨손으로 전장에 나섰다. 맨손으로 나온 골렘은 바닥에 쓰러진 올른 델카피오를 수습해 진영으로 돌아간다.

펠릭스는 아까처럼 검 손잡이를 위로, 검신을 아래로 내린 태세로 상대방의 검격을 기다린다.


"먼저 와라."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조르트 오페세는 먼저 나온 올른 델카피오의 최후를 봤기에 전혀 방심하지 않았다.

펠릭스가 마나 블레이드를 먼저 꺼내며 도발을 시도해봤으나, 침착하게 자세를 유지했다. 차라리 짧게 끝내자고 생각한 펠릭스였기에 괜히 시간이 끌리자 짜증이 생겼다.


"한번 막아봐."


복잡한 기교 없이 가볍게 거검을 휘둘렀다. 자세를 바꿔 검도의 준비자세처럼 양손을 허리 앞에 둬서 거검을 대각선으로 세운 상태에서 그대로 머리를 내려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 어떤 어려움 없는 머리치기 세 번이었으나, 조르트 오페세의 거검은 한 번에 오러가 희미해지고, 두 번째에 오러가 사라졌고, 세 번째에 골렘이 수직으로 잘렸다. 머리에서 배까지 양단되었으니, 탑승석의 조종사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

펠릭스가 거검을 거두자 이번에는 뒤로 기우뚱하며 쓰러졌다.


"조르트 오페세는 당당하게 맞서 자신의 기량을 시험했다! 다음 도전자는 누구인가!"


확성기로 외친 펠릭스의 앞에 다시 두 골렘이 다가왔다. 이번에도 한 명은 도전자, 다른 한 명은 아군 골렘을 수습해 돌아갔다.

올른 델카피오는 골렘 조종실력이 뛰어났고, 조르트 오페세는 마나라도 짙어 마나 블레이드를 정면에서 두 번이나 버텼다. 그러나 세 번째 도전자는 펠릭스의 일검에 반응하지 못해 치명상을 허용했고, 네 번째 도전자는 아예 거검에 오러를 맺을 수 없는 견습 단계였다.

지세트 백국의 기간트 골렘 다섯 기가 겨우 1시간도 지나지 않아 모두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단 한 명.


"나는 지세트의 검객, 도웬 시케람이요."

- 오, 도웬 시케람!


지금까지 그 누구도 말하지 않던 펠릭스의 통신관에 아군 골렘 나이트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꽤 유명한 인물인 듯 채널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까지 한마디도 안 하고 소드마스터 상급의 움직임을 지켜보느라 바빴던 이들이 말이다.

지세트 백국의 최강자, 익스퍼트 최상급의 경지에 이른 노검객, 도웬 시케람.


"후배들을 부끄러움 없이 보내주어 고맙소. 나 또한 그대의 자비에 기대리다."

"...얼마든지!"


아군의 호들갑에 드디어 호적수다운 호적수가 등장했다 싶어 펠릭스는 온몸을 일깨웠다. 심장에서 순수한 마나가 흘러나와 마력 엔진의 펌프를 거세게 움직였다.

펠릭스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기간트 골렘의 활력을 불어넣으며 결투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갑옷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일렁임이라니. 마스터의 벽이란 이토록 크단 말인가?'


펠릭스가 호승심을 불태우며 마나를 활용하는 건 사방에서 알 수 있었다. 외장갑 사이사이에서 마력의 잔재가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내연기관에서 적절한 때에 증기를 배출하며 압력을 유지하듯, 마력기관은 과도한 마력을 배출해 회로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펠릭스의 순수한 마나는 그 자체로 회로를 손쉽게 가열시키기 때문에 마력의 잔재는 너무나도 짙었다.

그걸 아는 도웬 시케람과 트렐라드의 골렘 나이트들은 경악했다.


'상대는 어리더라도 마스터. 조종도 반격에 성공할 정도로 능숙하다. 그렇다면 알량한 잔재주는 쓸모가 없으니!'


도웬 시케람은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내쉬어 근육을 이완했다. 심신의 편안함. 그리고 뒤이은 기합.


"하아아압!!"

'우웃!'


50m는 될 거리를 5초 만에 주파해서 펠릭스에게 달려들었다. 기간트 골렘이 다가오는 걸 정면에서 본 펠릭스가 일순간 기세를 압도당할 정도로 신속했다.

펠릭스는 옆으로 스텝을 밟으며 정면대결을 회피하려 했으나, 도웬 시케람은 오히려 그런 움직임을 노린 듯 달리다가 한쪽 다리를 축으로 그대로 빙글 돌아 펠릭스가 탄 골렘에 돌려차기를 갈겼다.


"컥!"


당연히 어깨 들이받기나 찌르기, 기껏해야 몸통박치기 정도를 대비하던 펠릭스에게 돌려차기란 전혀 생각하지 못한 한 수였다.


'결투에서 발차기가 허용된다고?'

'옳지! 제대로 들어갔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격은 후속타를 허용했다. 돌려차기를 정면에서 얻어맞은 펠릭스의 골렘에 도웬 시케람의 주먹이 명치로 날아들었다. 조종석이 있는 중요 부위였으므로 일격을 때린다고 망가지진 않으나, 강한 충격으로 골을 울리게 하기에는 충분한 후속타였다.

웅- 하는 충격에 펠릭스는 급격한 어지러움이 치밀어올랐다. 마나를 끌어올려 달팽이관을 보호하는 동시에 거검을 잡던 양손을 떼고 왼손으로 도웬 시케람의 오른 팔뚝을 붙잡았다. 검을 쥔 주먹으로 명치를 때렸으므로, 이번 잡기만으로 도웬 시케람의 검격은 봉인됐다.


"인정한다. 골렘 전투는 당신이 한 수 위야."

"허허. 과찬이시오."


붙잡힌 오른팔을 빼내려고 어깨 관절과 팔꿈치 관절을 돌리며 사각을 노렸다. 맨살과 다르게 철로 만들어졌으므로 마찰력이 작은 골렘이기 때문에 가능한 회피. 쇳가루가 튀며 도웬 시케람은 반걸음 물러났다.

펠릭스는 그 걸음을 노리고 발차기를 갈겼다. 서 있는 자세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니킥이다.

텅 소리와 함께 펠릭스가 명치를 맞았듯 도웬 시케람은 복부를 얻어맞았다. 마력 엔진이 있는 부위였다.


'어떻게 중량도 안 실은 체술에서 이런 파괴력이···!'

'덜 들어갔나? 제길, 골렘으로는 허리 이상으로 무릎을 올릴 수 없으니···.'


둘은 각자의 조종석에 일격을 주고받고 나서야 거검에 마력을 두르며 검격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셔플 & 딜 (2) +1 20.07.03 76 4 13쪽
44 셔플 & 딜 (1) 20.06.30 84 3 10쪽
43 진흙탕 위 나룻배 (8) 20.06.28 91 2 11쪽
42 진흙탕 위 나룻배 (7) 20.06.25 88 1 12쪽
41 진흙탕 위 나룻배 (6) 20.06.21 89 2 12쪽
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90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1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29 지세트 최후의 날 (3) 20.05.09 138 3 12쪽
»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4 5 12쪽
27 지세트 최후의 날 (1) +1 20.05.07 153 5 11쪽
26 정벌 준비 (7) +1 20.05.05 155 6 11쪽
25 정벌 준비 (6) 20.05.05 155 4 12쪽
24 정벌 준비 (5) 20.05.04 158 3 11쪽
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3 5 12쪽
21 정벌 준비 (2) +1 20.04.27 190 6 12쪽
20 정벌 준비 (1) 20.04.25 210 7 12쪽
19 기간트 골렘 (2) +2 20.04.25 211 5 13쪽
18 기간트 골렘 (1) 20.04.24 227 6 13쪽
17 서임식 (6) +2 20.04.23 226 7 12쪽
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