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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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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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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기간트 골렘 (2)

DUMMY

펠릭스는 임시로 배정된 왕궁 내 숙소에서 계속 머무를 수 있었다. 골렘을 받은 뒤에도 당분간 왕도에서 머물 수 있도록 배려받았는데, 그 이유는 트렐라드 변경백과의 협상을 위해서였다.

겉으로는 골렘에 익숙해질 때까지 왕궁에서 배우라는 명분이었다. 골렘 기동을 연습하다가 파손되면 왕립마탑에서 수리할 수 있고, 대련에 익숙한 왕실기사가 힘 조절을 하며 감각을 익힐 수 있으니 도움이 된다는 건 진실이다.

기간트 골렘을 매일매일 굴리는 펠릭스는 여러 가지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별궁 말고 다른 곳을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아졌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왕궁에서 일하는 전문가라 무척 유용했다.


"골렘이 3단계로 나뉜다고?"

"그렇습니다, 각하. 기간트 골렘이 표준형입니다만, 전장이라는 게 간단하지만은 않았지요."


3천 년 전, 인류는 광활한 대륙에서 밀리고 밀려 외진 구석까지 쫓겨났다. 휴먼도, 드워프도, 엘프도 마찬가지. 마왕이 지휘하는 마족에는 인류가 어떻게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강적이 존재했고, 높은 성벽이나 두꺼운 바위를 속절없이 무너뜨렸다. 오우거가 대표적인 몬스터였고, 마계에서 기어 올라온 온갖 마물은 10큐빗(≒ 4.5m)을 가뿐히 넘는 거체 때문에 전장에 보이기만 해도 사기를 깎는 절대적 존재였다.

인간이 아무리 커도 5큐빗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고, 고작 1큐빗 조금 넘어가는 장검으로는 치명적인 일격을 줄 수도 없었다. 어떻게든 맞대응을 하기 위해 비슷한 체격을 가진 전력을 만들어내야 했으며, 그 결과가 골렘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골렘을 만드는 게 무척 어려웠습니다. 요즘이라고 쉬운 건 아닙니다만···. 금속자원은 빈약했고, 마나석도 지극히 희소했지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걸 녹였고, 떼어냈습니다. 찬란했던 과거의 유산이 오직 생존만을 위해 사라졌습니다."


위대한 시대를 대표하는 금속 조각상들이 녹아내렸다. 선조의 유산과 증명이 조잡한 철 판떼기로 전락했다.

아침과 저녁을 알리는 종이 사라졌다. 인류는 시간을 잃었다.

긴 다리를 유지하던 마나석을 떼어냈다. 위용스런 석조 다리를 강이 삼켰다.

등대의 영원한 불빛을 위한 마나석을 적출했다. 모든 배가 어둠과 싸웠다.

드워프가 철을 제련하고, 엘프가 마법진을 각인하고, 휴먼이 올라타 마족을 상대로 항쟁했다. 골렘이란 그 자체로 시대를 담아낸 역작이었고, 상징이었다.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잘도 살아남았군. 그런 걸 연구하는 게 하루 이틀 만에 완성되진 않았을 텐데."

"맞습니다. 온 대륙의 드래곤이 마왕과 맞섰지요. 그 덕분에 인류가 후퇴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드래곤이?"

"예, 그렇습니다, 각하. 공기 좋고 맑은 곳에 대뜸 레어를 지었다며 주위에 통보하고 영역을 구축하는 재수 없는 족속으로 여겼지만···. 세상이 불탈 위기에 누구보다도 앞장섰습니다."

"그러고도 못 이겼나 보네? 나선 드래곤이 몇이나 되었길래?"

"마계와 직결된 탓에 힘을 무한정 끌어올릴 수 있었다고 합니다. 드래곤이라고 하더라도, 한 세계의 지배자를 상대로는 시간 버는 게 한계였다고 합니다."


왕립마탑의 노파, 펠릭스의 계약을 중개해준 엘프 노인은 골렘이 수리되는 동안 펠릭스의 옆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해주었다. 골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도 같았다. 지구로 따지자면 산업혁명 같은 큰 분기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마계와 직결된 지역, 그곳에서 나타난 마왕, 마계에서 올라온 몬스터. 속수무책으로 밀리는 인류. 그걸 상대하기 위해 탄생한 골렘.


"오우거 같은 대형 몬스터를 상대하였으나, 골렘이 매번 우위를 차지하며 전장에서 쓰러지자 마왕군은 전략을 바꾸었습니다. 주력으로 활용하지 않고 선택과 집중을 하여 방어선을 찔렀습니다."


인류연합군은 방어선을 모두 지켜야만 했고, 공격하는 마왕군은 대형 몬스터를 본격적으로 통제했다. 소대에 분대 지원화기라고 기관총을 배치하는 식으로 대형 몬스터를 운용했다가 된통 당하고 다른 방식으로 선회했다는 이야기였다.

골렘이라고만 불렸던 기간트 골렘의 하위호환이 생긴 건 이 시점이었다. 대형 몬스터로만 구성된 마왕군을 대응하기 위해서 기간트 골렘도 전면에 배치할 수 없었고, 오크나 놀 같은 마왕군 일반병에게 인류연합군은 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웠다.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골렘을 탈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기사가 전선에서 빠진 데다가 고위 마법사는 골렘 보조와 수리를 위해 빠지니 강한 전력이 사라진 까닭이다.

그래서 강 대 강 전투를 벗어나 알보병끼리의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작은 골렘이 만들어졌다.


"저것이 매그넘 골렘입니다."

"작네. 7큐빗 정도 되나?"

"조금 더 작습니다. 6큐빗보다 조금 크지요."


매그넘 골렘은 14큐빗(≒ 6.3m)에 육박하는 기간트 골렘과 달리 6큐빗(≒ 2.7m)에 불과해서 골렘보다는 차라리 파워아머에 가까웠다. 노파가 손을 들어 수신호를 보내니 매그넘 골렘을 정비하던 마법사가 탑승실을 개방했다. 기간트 골렘과 달리 매그넘 골렘은 후방부가 열렸는데, 엉덩이 부분과 등 부분이 개방됐다. 바지를 입듯이 다리를 쑤셔 넣고, 팔까지 낑겨 넣는 불편한 구조였다.

풀 플레이트 아머와 큰 차이점이 없는 것 같지만, 마나로 스캔해보니 마법진이 빼곡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마나석이 많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근력증가만 불어넣는 거니까요. 기간트 골렘이 기동하기 어려운 협소한 공간이나 지저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군. 기사 역할을 저게 수행한다는 거구나."

"예. 중무장하고 중병기를 휘두르는 주력이 되었지요. 민첩성이 떨어지는 탓에 대형 몬스터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오크나 스켈레톤 따위에는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지요."


인류연합군이 영토 대부분을 수복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던 시기였다. 기간트 골렘을 대형 몬스터 전담으로, 매그넘 골렘을 주력군으로 운용하며 마왕군을 밀어붙였다.

그러나 마왕군이 멍청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마왕은 마계와 직결된 지역을 떠나지 않았으나, 가만히 허송세월하지는 않았었다. 마왕은 본인이 쓰러트린 드래곤의 시체를 활용할 방법을 연구하고 있었다.


"본 드래곤이라?"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최악의 몬스터지요. 본 드래곤을 묘사한 당대의 글은 형용할 수 없는 공포를 목격한 것처럼 처절합니다.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라고 서술한 게 대표적 문구지요. 매그넘 골렘이고, 기간트 골렘이고. 그동안 밀어붙인 게 환상처럼 허물어졌습니다."

"하. 그래서?"


조곤조곤 얘기하는 노파의 이야기에는 마치 마력이 담긴 듯 청자를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펠릭스는 노파의 말에 집중했다.


"타이탄 골렘. 드래곤이 자신의 심장과 육체를 제공하고, 무수한 정령이 스스로 삶을 바쳐 한낱 마력 덩어리로 승화했습니다. 타이탄 골렘 제작에 열중하다가 목숨을 잃은 작업자가 생길 정도로···, 인류 최후의 골렘이었습니다. 위대한 주신 샤메드께서 직접 축성할 정도로 모든 기대를 담았지요."

"그걸로 마왕을 쓰러트린 건가?"

"아니오, 각하. 타이탄 골렘은 본 드래곤을 쓰러트리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마왕에게 다가갈수록 마계의 기운이 강했고, 드래곤 마력과 주신 샤메드의 신성력이 작아졌습니다. 거대한 타이탄 골렘은 홀로 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해졌지요."


이야기의 끝은 마왕이 어떻게 쓰러졌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타이탄 골렘이 본 드래곤을 억누르는 사이 기간트 골렘이 길을 열고, 매그넘 골렘이 사방에서 압박했다. 방위가 얇아진 틈을 비집고 부양선 함대가 마왕성에 최고속력으로 들이받으며 용사를 최후의 전장으로 인도했다.

휴먼, 엘프, 드워프, 드래곤까지 총력을 기울여 마왕을 추방했다. 비로소 장장 천 년 동안 이어진 암흑기가 막을 내린 것이다.


"흐음,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겠네."

"오래 걸렸지요. 오래 걸렸고 말고요. 내부에 쌓인 불만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습니다."

"···그게 누구지?"

"마계로 돌아가지 못한 마족, 마물. 마왕 아래에서 노역한 종족들. 그들이 탄압 대상이 되었습니다, 각하."


몬스터로 구분하는 건 물론이고, 지성이 있더라도 인류 미만으로 몰아갔다. 공개적으로 탄압하였고, 동족의 죽음과 언데드로 전락한 꼴을 본 드래곤도 묵인으로 방관했다. 주신 샤메드는 큰 힘을 사용하였음을 알리며 긴 휴식에 들어갔다. '인류'를 막을 자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인류의 폭주는 수인족, 리자드맨, 트롤 같은 종족 단위의 대학살과 탄압으로 이어졌다. 오늘날에는 소수 종족으로 전락하였고, 변경에서나 볼 수 있는 희소한 취급으로 동물원에 갇혀 구경거리로 취급된다고 하였다.


'파시즘에 휘말린 광기의 시대를 보는 것 같군. 아니, 틀린 말도 아닌가?'


선민주의에 휘말려도 딱히 이상할 게 없었다. 모든 걸 바치며 마왕을 몰아낸 종족들이다. 그것뿐이었다면 과한 짓이었겠지만, 마왕 이전 시대의 유산을 모조리 갈아버리며 만든 게 군수품이라는 점이 치명적이었다.

마왕을 무찔렀다는 자긍심. 마왕을 무찌르는 데 이바지했다는 자부심. 마왕을 무찌른 힘.

그걸 가진 인류가 마왕 아래에서 노역했거나 평화롭게 지낸 세계의 배신자 무리를 보는 시각이 어땠을지는 뻔했다. 광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으면 순한 맛이리라.


"오슬레아에 타이탄 골렘이 있나?"

"하나 있기는 하지만, 기동 가능한 건 없습니다, 각하. 움직일 수 있는 건 드래곤이 전부 회수하였고, 파손돼서 회생 불가능한 타이탄 골렘만이 연구용으로 남아있습니다."

"내가 볼 수는 없겠군."

"황송합니다. 왕립마탑 고위 관계자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인지라."


펠릭스는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드래곤의 심장, 뼈, 비늘로 만들고 수많은 정령이 마력으로 불살라 가동한 초유의 골렘이었으니까. 지구로 따지면 ICBM 정도 위치일 테니 어지간한 고위 공무원이라도 접근할 수 없는 게 맞았다.

노파는 고개 숙여 죄송하다고 표현했다. 소드마스터 상급이 강하게 요구하면 막을 수 없었다. 8서클 마법사가 나서지 않는 이상 무리하게 저지할 수 없는 처지였다. 골렘 제조공방의 책임자급인 노파가 굽신거릴 정도로 오슬레아 왕국에 있어 소드마스터 상급은 반드시 붙잡아둬야 할 귀빈이었다.


"어쩔 수 없지."


걱정이 무색하게도 펠릭스는 간단히 수긍한다. 국가기밀에 접근하는 대가를 잘 아는 까닭이었다.

골렘이 이 세계에 존재하는 타당성과 개연성을 비롯해 세계관 설정을 많이 알아낸 덕분에 기분이 좋은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부양선도 골렘과 마찬가진가?"

"유사하지만 약간 다릅니다, 각하. 마왕에게 밀린 이후로 드래곤은 인류에게 하늘을 허락했습니다. 구름 위로 올라가는 건 여전히 금지됐지만, 구름 아래로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요."

"구름이라···."


마왕을 쓰러트리는 대업에 함께한 드래곤의 규제 완화는 놀라운 일이지만, 동시에 납득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우주는 판타지에서 쉽게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므로, 이 정도는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부양선의 존재 때문에 감을 잡을 수 없었던 선을 이번에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구름 아래, 인류에게 허락된 활동영역이자 판타지 세계관의 한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구름 아래라는 규칙이 있다는 얘기 아닌가.


"무슨 원리로 배를 하늘에 띄운 거지?"

"물 위에 배가 떠 있을 수 있는 건 부력 덕분이지요. 부양선은 선체 하부에 반중력 마법진을 각인하여 인공적인 부력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새처럼 비행하는 것보다는, 배처럼 부양하며 이동합니다. 하늘을 난다는 걸 제외하면 배와 특별한 차이점이 없지요."

"골렘을 만드는 것보다 부양선으로 전쟁하는 게 더 유리하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카팔라 제국 주도로 맺은 라카투르 부양선 군축조약에 서명한 국가 중 하나인지라, 부양선 보유는 200에이커로 한정됐습니다."

"···에이커?"

"1펄롱(≒ 201m)에 1체인(≒ 20m)을 곱한 면적입니다. 이 공방 바닥의 두 배 정도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양판소라면서 왜 미터법 안 쓰는 건데···.'


펠릭스는 타이탄 골렘을 안 보여주는 것보다 야드파운드법을 쓰는 것에 더 화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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