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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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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66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4.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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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프롤로그

DUMMY

죽음은 그 무엇으로도 보답 받을 수 없는 마지막을 의미한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옛말이 있듯이 죽음이라는 건 끝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생명체에게 있어 죽음이란 그 무엇보다도 잔혹하면서도 단순한 결말이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눈앞에서 절하는 사람 형태의 무언가. 후광인지 천사 고리인지 확답하기 어려운 빛이 머리에 둘러싸여 있어 표정은 보기 어려웠지만, 소리로 듣건대 굉장히 미안해하는 목소리다.

어째서 이런 상황과 마주하게 되었는지 돌이켜보자면, 입대를 앞두고 휴학해서 시간을 어떻게든 알차게 보낸다는 이유로 등산하다가 낙석에 머리가 깨져서 죽었단다. 그런데 그 낙석이 일반적인 낙석이 아니라 다른 세계의 존재가 공간이동을 시도하다가 실패해서 발생한 물리적 오류로 인한 결과물이었다.

본래라면 어떻게든 소생하도록 운을 대가로 지급하는데, 하필 나는 낙석에 머리가 깨진 데다가 등산로 아래로 굴러떨어져 구급 헬기도 접근 못 하는 위치에 방치되어 구조될 확률이 0%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결과가 지금 이 상황.


- 정리해보자면, 당신은 다른 세계의 신적 존재라는 거죠?

"그 신의 상급자입니다."

- 죽음의 대가로 소정의 선물과 함께 다른 세계에 전생시켜준다는 거고?

"옙, 바로 그렇습니다."


본인 세계가 아니라 시간을 되돌리는 건 불가능하므로, 이렇게 당사자에게 빈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지구의 신은 이런 일에 당사자와 합의하라는 말을 했단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가족이 있고, 친구도 있고, 나의 미래도 있는데 대뜸 죽었으니 나름의 책임을 지고 다른 세계에서 생명을 연장시켜준다는 말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초에 신이라는 걸 믿지도 않았고, 이런 일을 겪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소설이나 만화를 접하긴 했지만, 거기에 진지하게 생각하며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신은 초조하게 나를 바라본다. 세계를 넘나드는 영향을 주고받는 건 신끼리 큰 잘못인 듯 최대한 선처를 바라는 어조로 설명했었다. 내가 여기에 응하지 않고 '나 그냥 죽을래요'라고 말하면 그만큼의 신격이 손상된다나 뭐라나. 내가 신도 아닌데 그런 관계에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적어도 당당하게 신이라는 존재에 마주할 자신감은 얻을 수 있었다.


- 선물이라···.

"초월적인 힘이라던가, 평생 호의호식하는 생활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 그런 걸 많이 주문하나 봐요?

"현실에 지친 자들의 평균 주문입니다."

- 교육계도 수난이네요.

"으흑흑."


신으로 각성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본인이 만든 세계의 조정에 익숙하지 않은 신임 신들의 실수를 커버하고 다니는 불쌍한 신이었다. 뒷수습 담당을 달리 표현하자면 욕받이라는 거니까.

실수를 저지른 신이나, 눈앞에서 한낱 영혼에게 굽신거리는 신에게 윽박지르기에는 모양새가 좀 많이 빠졌다. 겨우 1년간 대학생활을 해보았지만, 실수나 죄를 저지르고 '내 책임은 아닌듯함 ㅎ'라고 말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겪어본 까닭이다. 적어도 책임지겠다는 자에게 나쁜 말을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초월적인 능력, 평생 호의호식하는 삶. 둘 다 뭔가 끌리지 않았다. 게임을 할 때는 나름의 경쟁자가 있어야 재미있고, 호의호식하다간 스릴에 취해 위험천만한 일에 도전하게 되어 결과적으로는 단명할 성격이 바로 자신이다. 그러니 당장 떠오른 건 하나.


- 가족에게 제 죽음을 잊을 수 있는 행복을 줄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선택에 따라 불행과 행복이 있는데, 행복으로 조치하겠습니다."

- 어, 이거 기본적으로 해주는 건가요?

"가족이라는 거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언급이 없으면 내버려두는 편입니다."

- 아아.


나는 가족과 좋은 관계였지만, 나쁜 관계였던 친구도 있었다. 그런 애였다면 불행을 요구하기도 했겠지.


"혹시 선물을 무엇으로 받을지 결심하기 어려우십니까?"

- 네. 현실에 그럭저럭 만족하고 있는 삶이어서.

"크윽."

- 아, 당신을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제 삶의 목표가, 지나치게 소시민적이었다고 말해야겠네요.


소원, 이라고 말해봐야 당장 눈앞의 이득 정도다. 어렸을 때는 장난감, 학생일 때는 성적이나 수도권 대학교, 지금은 무탈한 군 생활이었다. 코앞만 보고 달려온 나에게 일생일대의 소원이란 너무도 멀게 느껴졌다.

나는 뭐를 위해 살아왔지?


"가지고 싶으신 게 없다면, 다시 태어날 세계부터 생각해봅시다. 어떤 세계를 희망하십니까?"

- 저 하나 때문에 창세가 일어나는 것도 좀···.

"아, 그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어차피 교육과정에 창세가 있고, 여러분 같은 경우는 시범을 보일 때 숙련된 신이 만들기에 안정성이 높습니다."

- 창세라는 게 흔한가 보네요?

"적어도 드물진 않습니다. 세계라는 게 기본적으로 확장하는 물질이라, 일정 이상으로 커지면 터집니다. 창세는 폭발이 임박한 세계의 에너지를 떼어다가 다른 세계로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오래된 세계를 생명연장 하는 거죠."


기존의 세계가 붕괴하지 않으려면 결국 새로운 세계가 끊임없이 생긴다는 말에 마음이 편해진다. 이렇게 단순무식한 방법으로 우주가 숨풍숨풍 생기진 않겠지만, 적어도 신이 그렇다고 하니 조금 마음이 놓인다.

내가 살 세계라. 현대 문명의 안락함에 길든 내가 어떤 세계를 선택할까. 21세기 지구, 정확히는 한국처럼 적당히 소란스럽고 적당히 평화로운 곳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익숙할 테니까.


- 적당한, 판타지가 좋겠어요. 적당히 편하고, 적당히 소란스러운···. 그런 세계를 원합니다.

"적당···?"

- 네. 양산형 판타지라는 건데, 지극히 편의에 맞춘 세계관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사는 곳과 비슷한 세계를 바라지만, 그런 복사와 붙여넣기는 시범으로는 적합하지 않을 테니까요.

"으으음···. 아, 이런 세계를···."


신은 복잡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양판소는 결국 편하게 살겠다는, 위기다운 위기 없이 영웅이 날뛰는 그런 세계니까. 편하게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고생하며 살고 싶지는 않은 나의 욕심이었다.


- 능력은 적당히 해주세요.

"능력도···?"

- 무시당하지 않을 정도면 됩니다. 평균만 되면 그다음부터는 제가 어떻게 할 건지 정하게 될 테니까요.


적당히 부탁한다는 주문을 너무 많이 넣었나 싶었지만, 신이니 나의 생각을 읽거나 짐작해서 만들어줄 거라고 믿는다. 몸이 없는 영혼 상태라 현실감이 전혀 안 느껴지는 것도 있고, 당장 눕고 싶었다. 정확히는 잠자고 싶었다. 내가 죽은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신에게 부탁했다. 판타지라는 기본적인 뼈대에, 나에게 맞는 적당한 세계를 부탁했다.


"그, 저희 쪽에서 적당히 만들어보겠습니다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여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 물론입니다. 제가 이 세계에 태어나고자 태어난 거라고 해도, 기억 못 하니까요. 아! 제가 전생했다는 걸 알 수 있게 지금의 기억을 가지고 태어날 수 있을까요?

"가능한 일이지만, 위화감 때문에 추천해 드리진 않습니다. 그러한 경우 당신은 전생자가 아니라 표류자입니다. 다른 세계의 표류자지요."

- 괜···찮습니다. 오히려 제가 어째서 다시 살아났는지에 대한 기억도 있을 테니까요. 삶을 더 열심히 살 수도 있을 거고.

"끙! 전 분명히 경고했습니다."

- 네. 배려 감사합니다.


감사인사를 끝으로 나의 의식은 점점 멀어진다. 땅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정신이 밑바닥으로 주저앉는다.

서서히.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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