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9,900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5.05 18:00
조회
154
추천
6
글자
11쪽

정벌 준비 (7)

DUMMY

병량과 병장기가 착실하게 쌓이고, 동원지정을 받은 병사들이 피땀 흘리며 훈련에 열중하는 트렐라드 변경백.

첫 침공선언을 받은 지세트 백국은 현재 난장판이었다. 테이체 남작을 필두로 국내 재산을 모조리 처분하거나 싸들고 카팔라 제국으로 도주한 경우는 차라리 양반이었고, 백국이 망할 거라며 혹세무민을 일삼는 자들도 나타났다.

이런 혼란기에 트렐라드 변경백에서 순조롭게 병력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건 소드마스터 상급의 배치 하나였다.


"요즘은 도적도 뜸해서, 하루가 멀다 하고 토벌을 나섰던 게 믿기질 않습니다."


대련을 나누던 남작이 펠릭스에게 짧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텔로드 영주성의 연병장에서 가볍게 검술 대련을 하고 있었다. 남작은 가문 비전의 검술로 기교를 발휘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펠릭스는 완력과 민첩으로 정면에서 까부수는 교전이었다.

검술을 전혀 모르던 펠릭스였기에, 남작의 대련신청을 받아 서로 실력 향상을 꾀하는 자리였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정말 어지간했나 봅니다."

"예, 그랬지요. 떼로 덤벼들면 다행이었습니다. 토벌대가 온다는 소문만 듣고 와해돼선, 몇 명씩 짝지어 주위 마을에 파고들어 소란을 일으켰지요. 물색해야 하는데 쉽지도 않았습니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터전은 불안정해지고···. 제가 누나를 제치고 남작위를 물려받을 수 있었던 것도 도적을 가장 많이 찾아냈기 때문이었으니까요."


남작은 털털하게 웃었다. 펠릭스는 그 말에 자신의 누나를 떠올렸다. 베로니크, 인데브 남작령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신경 써줬던 사람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요즘이면 자유롭게 한 번 정도 다녀올 수 있었다.


'가족이라. 별 관심을 안 두고 있었네.'


지구에 있던 가족이 떠오르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이곳에서 가족이라고 하는 자들이 냉담했었던 것도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텔로드에서 지내며 왜 인데브 남작이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니, 신경을 아예 껐던 게 지금에서야 켜졌다.

펠릭스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돌렸다.


"다 쉰 것 같으니 다시 하지."

"그럽시다."


펠릭스는 오래간만에 누나를 떠올리게 해준 남작을 아주 정성스럽게 조져주기로 한다.


"검을 배운지 몇 년이라고 했지?"

"올해로 6년입니다."

"많이 늦었는데, 이유는?"

"후계자가 된 다음부터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전까진 누나 독점이었지요."


남작은 도적 토벌에는 큰 공을 세우지 못했지만, 도적 검거에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유도심문과 약간의 선물로 마을을 쥐락펴락하며 도적이 발을 붙이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것 때문에 전략가라고는 할 수 있어도, 검객을 자처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이건 펠릭스를 찾아온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이 마지막 대련이다. 나에게 배워간 게 있으면 오러를 깨우칠 수 있을 것이고, 아니면 재능이 없다는 거겠지."

"···각오는 했습니다."

"그 각오로 있는 힘껏 달려들어 봐."


남작은 날 죽인 철검을 결연한 표정으로 붙잡는다. 마법에 재능이 없으니, 오러라도 깨우쳐야 둘째 출신으로 영지와 가신을 장악할 수 있었다.

그날 남작은 펠릭스에게 잊고 있던 걸 깨닫게 해준 대가로 오러를 선물 받았다.


* * * *


"인데브로 가겠다고?"

"예. 한 번 정도는 만나서, 말을 나눠봐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렐라드 변경백은 펠릭스의 부탁에 곤혹스럽다는 듯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 못 갈 곳을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표정에 드러나니 펠릭스는 궁금해서 물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건 아니다. 다만···."


트렐라드 변경백은 머릿속에서 빠르게 셈을 끝냈다. 인데브 남작보다야, 소드마스터 상급에게 빚을 지워주는 게 훨씬 더 이득이다.


"인데브 남작이 내게 부탁했다. 네가 영지에 오지 않도록 해달라고."

"···어째서?"


펠릭스는 기분이 상해서 반 박자 늦게 대꾸했다. 백치 자식을 종군 하랍시고 텔로드에 보낸 건 영주였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장성하고 뛰어난 실력을 갖췄는데도 오지 말라고 하는 건 좀 이상한 게 아니었다.


"후계자가 네게 집착을 한다고 하더구나. 오는 건 상관없지만, 네가 떠날 때 같이 떠날 게 뻔하니까 아예 안 오게 해달라고 사정을 했지."

"······."


베로니크의 행적을 떠올리자 골이 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베로니크는 자신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단순하게 누나라는 입장 하나만 놓고 보기엔 지나칠 정도로 거리가 가까웠다.

네리카의 접근에 무덤덤할 수 있었던 것도 이때의 경험 덕분이었다.


"···뭐, 그렇다 칩시다."

"그래, 그렇다 치자고."


트렐라드 변경백이나 펠릭스나, 둘 다 찜찜해도 넘기기로 합의한다. 굳이 지금 찾아가서 전쟁에 곤란한 일이라도 생기면 펠릭스 혼자만 고생하고 끝이 아니다.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트렐라드 변경백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요즘 바쁜 것 같던데, 손대중은 하는 거겠지?"

"예, 정말 어지간히도 찾아오더군요."

"소문이 퍼졌으니까. 하필 왕도에서 거하게 사고를 치셨어."


하늘처럼 우러러보는 마스터, 그중에서도 상급의 경지에 이른 펠릭스에게 감히 접근하고자 하는 기사는 없었다. 수준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질투할 생각도 못 하는 시골 기사가 대단히 많았다.

그런 태도가 바뀐 건 수도 오세안에서 흘러들어온 소문 하나 때문이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의 펠릭스는 자질이 있는 자를 익스퍼트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이야깃거리가 텔로드에 닿은 것이다.


"네리카도 자네가 도와준 거겠지."

"자질이 있었으니까 가능했던 겁니다. 아무리 도와도 재능이나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적당한 거짓말을 섞어 말했다. 펠릭스는 마음만 먹으면 그 누구라도 오러를 배울 수 있게 만들 수 있었으니까. 그렇게 해주기 싫을 뿐이다.

트렐라드 변경백은 고개를 작게 끄덕여 긍정했다. 기사의 자식이었으므로 오러를 깨우쳐도 크게 이상할 건 없었다. 그것이 설령 소드마스터 상급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깨우친 건 깨우친 것이다.


"그나저나 잘 지내는 것 같긴 하더군. 어떻게 한 건가?"

"그 애는 어려운 환경에 있었잖습니까. 마음을 놓을 상대가 없으니, 그런 역할이 되도록 노력한 겁니다."

"흠."


그리고 이 지경이 되자 펠릭스도 의문스러웠던 걸 꺼내기로 한다. 텔로드에서 지내는 기사의 숫자만 백이 넘었다. 대부분 하급 기사고, 오러를 쓸 수 있는 상급 기사는 서른 명에 불과하다지만, 그걸 생각하더라도 지나치게 세심한 배려였다.

아무런 배경도 없고, 홀로 남은 아이에게 지나치게 관심을 기울였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믿을만한 사람에게 맡겨서 알아서 잘 키우라고 했지, 시녀로 거두어 의식주를 모두 책임져주진 않았을 것이다. 그게 궁금했다.


"변경백님 정도나 되시는 분께서 한낱 기사의 딸에게 관심이 깊으시군요."

"···그러고 보니, 자네는 모르겠군. 어디까지 아나?"

"전혀 모릅니다. 외부인이었잖습니까."


트렐라드 변경백은 작게 웃었다.


"네리카의 아비. 파엘은 전장에서 내 아들을 구하다가 죽었네."

"아···. 아아."


셀튼 이드쿨라가 말한 내용을 떠올렸다. 고블린을 토벌하다가 오크가 측면에서 나타나는 탓에 지휘관을 지키려다가 죽었다는 것만 알았다. 그런데 그 지휘관이 변경백의 자식이라면 이런 관심을 받는 것도 이해할 순 있었다.

펠릭스는 잘 생각해보니, 트렐라드에서 변경백의 후계자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랬군요."

"뭐, 오래전 얘기지. 그때 이후로 좀 많이 조급해진 것도 사실이고."


트렐라드 변경백은 낮게 웃었다. 주위에서 서슴지 않게 떠드는 본인의 평가는 잘 알고 있었다. 부정할 생각도 없을 뿐이다.


"자네는 자식 계획 잘 세워두게. 괜히 권력 분산되는 게 싫어서 부인 가문 멸족시켜 버리지 말고."

"오, 예전에는 화끈하셨군요."

"지금도 화끈하거든?"


두 사람은 그렇게 하하 웃은 뒤, 지세트 진격로를 놓고 논의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 * * *


여름, 지세트 백국은 수뇌부 절반이 날아간 상태였다. 유학파로 대표되는 문관집단의 수장과 중견급 인사들이 외국으로 도주한 까닭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자는 기사와 마법사 등 군관들이었다.


"여러분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희망은 없습니다."

"으음."


막사의 가운데에서 지세트 백국의 유일한 5서클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골렘 전력은 명백한 열위. 기사 전력도, 마법사 전력도 오슬레아 대왕국의 일개 변경백 하나보다 못합니다. 나라가 멀쩡했다면 기병대라도 편성해서 후방을 노려볼 수 있었을 텐데···. 아시다시피 기병을 운용할 돈도, 편성할 돈도 없습니다."

"군마를 모조리 끌고 카팔라로 갔으니."


기사 한 명이 원수의 간을 씹듯이 중얼거렸다. 나라의 대들보를 가져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세트 백국에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심지어 보급품조차 넉넉하게 확보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 못했다.

국왕의 유해는 트렐라드로 이송되었고, 국내 산업시설이 마비됐다. 큰손이 모두 국가를 떠났으니 누가 마음 놓고 장사를 할 수 있겠는가.


"항복문서는?"

"거절입니다. 힘으로 점령하겠답니다."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있어. 우리 손으로 경매 중인 건물을 불태울 수도 없잖아."

"성 밖 농가도 아니고, 성 안쪽 공장이 불타면 분위기 참 좋겠구먼. 헛소리 말고 대책이나 세우세."

"마족과 싸울 때처럼 유격전이라도 하겠나? 골렘 조종사를 저격으로 맞추기만 해도 승산은 보일 텐데."

"그들이 숲으로 들어온다면 시도라도 할 수 있겠지, 젠장. 평지밖에 없는데 뭘 어쩌라고?"


군사적 식견이 있는 자들이라 논의는 불만표출로 이어졌다. 지세트 백국에 숲이 없는 건 아니지만, 매우 협소했다. 활엽수 숲이라 수림이 빼곡하지도 않았고, 지연을 시도할 구릉지도 없다. 가장 중요한 건 두 지역 사이에 평야로 프리패스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땅한 전략적 자연지형이 없다면 2차로 요새나 방어선 같은 인공적 건축물이 필요한데 그런 것도 없었다. 애초에 성벽을 세울 돈도 없었다. 아니, 예산을 할당 안 해줬다.


"뭐, 정 답이 없으면 당당히 싸우다가 죽으세. 그럼 후회는 없지 않겠나."

"그러는 게 낫겠군. 일단 결혼도 못 한 찐따는 빠지고."

"뭐? 봉양할 부모가 있는 년부터 빠지시지?"

"난 자식이 셋이라 걔들이 모실 수 있거든. 다리만으로 12층 신전을 지을 놈아."


상황이 지나치게 악화하자 남은 이들은 담백하게 웃으며 죽을 사람을 정했다. 자식 있고, 부모가 죽은 이들이 첫 번째. 두 가지 중 하나라도 있으면 우선순위에서 밀려났다.

지세트 백국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고 증명할 자들의 수. 천삼백.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셔플 & 딜 (2) +1 20.07.03 75 4 13쪽
44 셔플 & 딜 (1) 20.06.30 83 3 10쪽
43 진흙탕 위 나룻배 (8) 20.06.28 91 2 11쪽
42 진흙탕 위 나룻배 (7) 20.06.25 87 1 12쪽
41 진흙탕 위 나룻배 (6) 20.06.21 88 2 12쪽
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89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8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4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6 3 12쪽
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1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1 1 12쪽
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6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0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7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29 지세트 최후의 날 (3) 20.05.09 137 3 12쪽
28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3 5 12쪽
27 지세트 최후의 날 (1) +1 20.05.07 153 5 11쪽
» 정벌 준비 (7) +1 20.05.05 155 6 11쪽
25 정벌 준비 (6) 20.05.05 154 4 12쪽
24 정벌 준비 (5) 20.05.04 157 3 11쪽
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2 5 12쪽
21 정벌 준비 (2) +1 20.04.27 189 6 12쪽
20 정벌 준비 (1) 20.04.25 209 7 12쪽
19 기간트 골렘 (2) +2 20.04.25 210 5 13쪽
18 기간트 골렘 (1) 20.04.24 226 6 13쪽
17 서임식 (6) +2 20.04.23 226 7 12쪽
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