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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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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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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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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위 나룻배 (3)

DUMMY

아르카다에서 후퇴하는 데에 1달과 텔로드로 귀환하고서 2주가 지났다.

포로로 잡힌 귀족과 병사를 펠릭스가 약탈 없이 후퇴하는 조건으로 돌려받아 수습하는 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국경 지역에서 전쟁 억제력으로 지냈다. 트렐라드 일대의 지배층이 돌려받은 포로를 수습해서 장악력을 회복하는 동안의 휴식이었다.

펠릭스가 자리를 지켜준 덕분에 알카탄이나 키펠이 장악력이 떨어진 트렐라드 인근에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 그 잠깐의 시간을 번 펠릭스에게 통신이 들어왔다.


"오세안으로 와달라고?"

- 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말한들···. 지금 당신에게 그걸 결정할 권한은 없지?"

- 죄송합니다.

"아아, 됐어. 당신을 탓하는 건 아니야. 그래, 언제까지 가면 되나?"

- 가능하시다면 오늘이라도 와 주셨으면 합니다.

"오늘?"


일러도 너무 일렀다. 당장 와 달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고, 예의와 예절을 따지는 귀족의 초대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내부가 아니라 외부적인 요인이 있다고 본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펠릭스의 긍정을 본 마법사는 표정이 밝아져 고개를 꾸벅 숙였다.


"동행 한 명 같이 갈까 하는데, 가능한가?"

- 아! 물론입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아침에 통신했는데 점심에 바로 텔레포트 게이트가 열렸다. 왕도 오세안에서 찾아온 마법사 5명은 마나석이 가득 든 상자를 전달하고, 게이트를 직접 조작하여 펠릭스와 네리카와 함께 어디론가 이동했다.

겨우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이루어진 교환. 번갯불에 콩 굽는 것처럼 짧았다.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안부를 전하거나 묻는 등의 짧은 인사라도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렇게 급하게 움직인 곳은 왕도 오세안이 아니었다. 오슬레아 대왕국 북부, 리디스 공작령의 대도시 카난리아프.


"······."

'이런.'


삼엄한 텔레포트 게이트 주위를 벗어났는데도 여전히 주위는 살벌했다. 기사의 긴장감, 마법사의 과민함까지. 카난리아프에 뭔가 있었다.

그 이유는 텔로드부터 동행한 마법사의 대표가 말해주었다.


"키펠 왕국의 사절단이 이곳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런 자리에 날 부른 이유는?"

"10대 소드마스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막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 거라면 됐어. 강하게 나설 수 없는 상황이니까. 그래, 어디로 가면 되지?"

"이쪽으로 따라와 주십시오."


펠릭스와 네리카가 안내된 곳은 도시 중심부의 저택이었다. 휘황찬란하지는 않으나 수수하지도 않은, 고급스러운 저택이었다. 입구 대문에 오슬레아와 키펠 국기가 나란히 걸려있었기에 분위기는 한층 무거웠다.

정체를 숨기지 않은 기사와 마법사가 도로를 통제하고 있으니 일반인은 감히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발길을 바꿨다.


"경계가 지나쳐. 누가 와 있는 건가?"

"모논다 공작입니다. 키펠 왕국의 두 공작 중 한 명이 이곳에 왔습니다."

"이런."


펠릭스는 판단을 즉각 정정했다. 이곳에서 삼엄하게 경계하는 건 오슬레아 소속이 아니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한 키펠 소속 호위대였다.

키펠 왕국의 국기까지 내걸린 마당에 어떤 대처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 저택은 오슬레아 왕국 내부였지만 동시에 키펠 왕국의 법에도 영향을 받는 중립지대가 된 것이다. 이런 살벌함도 당연한 모습이었다.


'괜히 데려왔나?'


네리카를 힐끗 바라보았지만, 태평한 모습이었다. 위기감을 못 느껴서 그런 건지, 자신의 곁이라서 그런 건지 알 수 없었다.

말에 올라타서 움직이고 있었기에 주위의 시선을 받을 때마다 살기(殺氣)가 피부에 와 닿았다. 마나로 보호되고 있었기에 펠릭스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앞장서는 마법사나 호위하는 마법사 4명은 적잖게 긴장하는 마음이 겉으로 드러났다.

호위하는 다섯 명은 긴장하고, 호위받는 두 명은 태평하고. 기묘한 일행이 저택 내부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란소스 각하. 안내하겠습니다."

"동행이 있는데, 괜찮나?"

"제가 결정할 사안이 아닌지라 모르겠습니다. 우선 같이 모시겠습니다. 절 따라와 주십시오."


묘하게 적대적인 발언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른 건 이쪽 세계도 마찬가지. 시녀는 '동행은 해주겠지만, 뒷일은 내 책임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펠릭스는 그 태도에서 키펠 사절단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긴, 내 실력을 의심해서 검증하려고 온 자들이니 이렇게 나올 만 하지.'


키펠 왕국으로선 외통수였다. 진짜 소드마스터 상급이면 지금까지 오슬레아 대왕국에 우위였던 분야가 대등해지는 것이고, 가짜 소드마스터라면 확인도 못 한 너부렁이 때문에 대전략이 파탄 난 셈이니까. 하나하나가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괜히 어깨가 뻐근해진 펠릭스가 어깨를 작게 돌리며 목을 조금씩 움직였다. 트렐라드 변경백과 누나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태도를 잘 정리해야 했다.


"이곳입니다."

"그래."


영주의 집무실처럼 이중문(二重門)으로 구성돼서 두 번이나 문을 열어야 사절단을 마주 볼 수 있었다.


'드워프?'


모논다 공작은 드워프였다. 오슬레아의 귀족 대부분이 휴먼이었던 까닭에 키펠 왕국도 휴먼 위주 종족구성이라고 생각했던 펠릭스는 좀 놀랐다.

트렐라드 변경백이 엘프이긴 했지만, 휴먼과 다른 게 귀 정도였다는 걸 생각하면, 드워프는 키를 제외하면 휴먼과 다른 점이 없다시피 했다.


"반갑습니다, 공작 각하. 펠릭스 란소스 오브 인데브입니다."

"반갑소, 란소스 남작. 듣던 바와 다르게 성숙하시구려."

"제가 좀 빨리 크긴 했지요. 샤메드의 보우하심 아니겠습니까."

"큼."


불편하다는 듯이 헛기침을 흘린 모논다 공작은 맞은편에 앉은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등까지 기른 검은 머리카락과 꽤 미형의 얼굴. 그리고 왜 끌고 왔는지 알 수 없는 전투시녀가 하나.

다른 동행자는 없었으므로 용납할 수 있긴 하지만, 정보가 맞는다면 십중팔구 익스퍼트다.


"그래서···. 제가 소드마스터 상급인지 궁금하시다고요."

"정치인의 말을 쉽게 신뢰하다간 집안 뿌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법."

"하하."


말에 뼈가 있는 수준이 아니라 칼이 들어있었다. 키펠 왕국의 산업계가 송두리째 넘어갈 뻔 했다는 걸 아는 펠릭스였으므로 모논다 공작의 일침을 웃음으로 넘길 수밖에 없었다.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편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뭐로 보여드리면 됩니까? 마나 블레이드? 대련? 논검(論劍)?"

"마나 블레이드를 보여주었으면 하오."

"어렵지 않지."


펠릭스는 그 자리에서 검을 뽑아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었다. 정밀하게 세공한 유리처럼 매끄러운 마력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일렁임이 전혀 없어 난반사가 없었다.

정순한 마나 블레이드를 본 모논다 공작은 얼굴을 굳혔다. 라니온 볼펜우드 백작의 마나 블레이드와 똑같았다. 크기는 오히려 이쪽이 더 컸다. 볼펜우드 백작은 검을 뒤덮은 정도에 불과했지만, 란소스 남작은 가드 면적만큼 넓고 두꺼웠다. 얼핏 보면 몽둥이로 보일 정도로.


"으음···!"

"이 정도면 됐습니까?"

"이 정도?"

"이런 것도 가능은 합니다만."


펠릭스는 마나 블레이드를 자유자재로 바꾸었다. 길이를 5m까지 뽑아내기도 하고, 폭을 3m까지 넓히기도 했다. 반대로 검만 뾰족 튀어나오고 폼멜 부분이나 손잡이 아래쪽에만 마나 블레이드를 맺기도 했다.

마치 마법사처럼 능수능란하게 마력을 제어하는 모습이라 모논다 공작은 머릿속에 복잡해졌다. 소드마스터 상급은 맞았다. 확실했다. 이제 다음 문제가 나왔다.


'어쩌지?'


10대 소드마스터라는 희대의 천재가 등장한 것까지는 그렇다고 칠 수 있었다. 여기까지는 굳이 본인이, 모논다 공작이 찾아올 필요가 없었다.

키펠 왕국에서는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존재를 허무맹랑하게 보았다. 오슬레아 대왕국에서 가장 높은 경지에 있던 기사는 소드마스터 중급 단 하나였고, 나이가 70줄을 넘기는 노인이었다. 마게트 전선에서 물러난 지 어느덧 20년이 넘었다.

8서클 대마법사가 둘이나 있고, 기간트 골렘과 부양선 전력이 압도적으로 높아도 마게트 왕국이 어슬렁어슬렁 국경도발을 시도하는 이유였다. 그러므로 소드마스터 상급이 정말 존재한다면 마게트 왕국에 희망은 안 보였다. 그리고 덩달아 터지는 문제.


'키펠 왕국은 어떻게 오슬레아의 영향력에서 살아남지?'


모논다 공작의 걱정거리는 이것이었다. 오슬레아 대왕국의 골렘과 부양선, 키펠 왕국의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요소가 합쳐져야 대등한 동맹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소드마스터 상급?

키펠 왕국은 여러 방면에서 오슬레아 대왕국보다 처졌다. 영토, 인구, 기술 모두 다 오슬레아와 비교해서 한 수 정도가 아니라 두세 수 밀렸다. 마게트 왕국 정도나 영토와 인구 정도만 어떻게 해볼 수 있는 국가였다. 그런 지역 패권국가를 상대로 대등하게 동맹 관계를 내세울 수 있었던 건 오직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요소 단 하나 덕분이었는데.


'이젠 그것조차 아니다. 그럼 어떻게 오슬레아 대왕국에 지원을 받아내지?'


대등한 동맹 관계였다면 공정한 지원이다. 꿀릴 것 없고,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보상에 불과했다. 그러나 불공정한 일방적 지원이라면? 빚이다. 갚아야 할 채권이 된다.

지금까지 받은 지원은 입을 싹 닦는다고 쳐도, 앞으로 받을 지원은 무시할 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이어진 교류를 단번에 끊을 순 없다. 영향력을 줄이려고 해도 수년은 걸릴 테고, 그마저도 오슬레아 대왕국의 방해가 없어야 한다. 그게 가능한가?


"그 정도면 되었소. 확실한 소드마스터 상급이시군."

"음."


펠릭스는 검을 거뒀다. 모논다 공작의 표정이 어두웠지만, 그건 펠릭스가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할 일은 오직 검증 하나였으니까.

게다가 접견실 안에는 셋 외에 아무도 없었다. 과시하려고 해도 효과는 없고, 그런 힘 낭비를 할 바에는 모논다 공작과 노가리 까는 편이 낫다.


"그러고 보니 식사는 하셨는지?"

"늙으니 배가 영 안 좋더군. 아침과 저녁에 죽 정도만 먹소."

"안타깝군요. 급하게 오느라 식사를 거른지라. 다음에 또 만납시다."

"알겠소. 내일 다시 봅시다."

'내일?'


펠릭스가 모논다 공작의 의미심장한 발언에 미간을 미미하게 찡그렸지만, 곧 뒷일을 깨달았다. 모논다 공작이 이거 하나만 하려고 오진 않았을 테고, 본국과 이것저것 논의할 게 많을 것이다. 하루 만에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놀랍긴 하지만, 어떤 내용이 오갈지 기대됐다.

네리카와 함께 밖으로 나오고, 복도에서 대기하던 마법사 다섯 명은 화색했다. 삼엄한 경계라는 이름의 감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니 기쁜 것이다.


"내일 다시 만나게 될 것 같은데, 지낼 장소가 있나?"

"아···, 바로 모시겠습니다."


끝났다고 생각하던 마법사들이 도로 시무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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