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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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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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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서임식 (6)

DUMMY

국왕이나 대귀족이 급해진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은 대륙을 통틀어 손에 꼽을 만큼 수가 적었다. 최강대국인 카팔라 제국조차 단 3명에 불과했고, 그 외 국가를 모두 합쳐봐야 5명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오슬레아 대왕국에 없었다는 점이다. 8서클 마법사를 둘이나 보유함으로써 국력이나 국격에서 체면을 차릴 수 있었지만,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존재가 필요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당장 오슬레아 대왕국과 국경이 접한 북방의 국가 중 둘에 소드마스터 상급이 있었다. 마게트 왕국의 카를 슈벤타트와 키펠 왕국의 라니온 볼펜우드가 굉장한 압박이었다. 다행스럽게도 키펠 왕국은 오슬레아 대왕국 방면으로 남진하려 하지 않았고, 국경을 맞댄 마게트 왕국을 노렸다. 마게트 왕국의 옆을 노리는 키펠 왕국의 존재는 성가시다 못해 불안한 요소였으며, 오슬레아 대왕국과 손을 잡고 전쟁을 시작하는 걸 극도로 경계했다.

그래서 란가스 왕국과 손을 잡고 오슬레아 대왕국을 압박했다. 오슬레아 대왕국이 북서부의 혼란을 내버려두며 육지에서 눈을 돌리게 된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가까스로 안정된 국경을 어지럽힐 순 없지.'

'란가스 놈들이 해안선을 흔들고 있으니, 이를 막아내려면 해양국가로서 발돋움하는 게 필수적이다. 남방 개척은 국운이 걸린 일이야.'


오슬레아 대왕국 동쪽의 란가스 왕국은 툭 튀어나온 반도 지형이라 해안선이 영토와 비교하면 극도로 길었다. 해양무역으로 돈을 갈퀴로 쓸어담던 상업국가가 괜히 오슬레아 대왕국과 척을 세워 상행에 방해되는 상황을 자초하겠다는 선택을 앞서 보지 못한 위정자의 실책이었다.

뒤늦게 해군을 양성하며 상인의 등을 떠밀며 상선을 만들도록 하는 요인은 당연히 남방의 상품이었다. 사탕수수! 열대 과일! 향신료! 하나같이 높은 리스크를 이겨내고 한 번 가져오기만 하면 막대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이다.


"허허, 기사에게 명예란 중요한 법."

'트렐라드 방면에 소드마스터 상급이 배치한다 치면 지정학적으로 키펠 왕국의 뒤통수를 건드리게 될 터인데.'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차라리 키펠이나 마게트 방면 국경에 배치하면 할 말은 많았다. 전쟁지원이나 압박감만으로 막대한 신경을 끌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여차하면 키펠의 뒤를 노릴 수 있는 거리의 후방'이 트렐라드 지역이었다. 당연히 키펠 왕국에서 곱게 볼 리가 없었다.

국왕과 대귀족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이번 기회에 알카탄이나 지세트를 정벌하심은?'

'마게트가 그 둘과 손을 잡고 협공을 할 수도 있소. 오슬레아의 해군은 란가스를 상대로 열위요. 지세트의 보잘것없는 해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이오.'

'그러나 뜻을 굽힐 것 같진 않소. 소드마스터 상급을 가벼이 다루다가 다른 국가로 떠나기라도 하면 망신으로 끝나지 않소이다.'


순식간에 오가는 의견들. 오직 눈치와 가벼운 손짓이나 눈짓으로 이루어지는 신호의 극치였다. 이런 분위기는 펠릭스에게도 전해졌지만, 정작 무슨 내용이 왕래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이건 지식 문제가 아니라 당대를 살아가는 자들의 노하우가 응집된 결정체인 탓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펠릭스를 멍청하다 말하지 않고, 입 뻥끗 안 하고 여럿이서 의견을 나누는 고위층이 대단하다 말함이 맞다.

가볍게 술 한 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펠릭스의 처우가 결정되었다.


"란소스 경의 뜻을 어찌 존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은혜를 갚는 것 또한 도리일진저."

"다만 란소스 경의 깊은 뜻을 모르는 자들이 경거망동할 것이 우려스러운바. 적당한 지원이 필요할듯하오."

"옳소. 기사된 도리를 실천하는데 미력하나마 조력하지 않을 수 없지."


이들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서로 몸값을 책정했다. 국왕은 마지막까지 침묵을 유지하다가 요점을 툭 던진다.


"기간트 골렘과 단승 남작위를 하사하겠네. 대(大) 오슬레아를 넘보는 어리석은 자들에게 철퇴를 내리게."

"폐하의 은덕이 성처럼 굳건하니 곁에서 모시는 자신이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이건 뭐 신파극도 아니고.'


펠릭스에겐 아무리 봐도 웃음 참기 99레벨로만 보였다. 고풍스러운 어투나 화법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심리적 거리감이 기본으로 깔렸고, 펠릭스에게 틈을 주지 않고 주거니 받거니 그들끼리 결정을 내리니 직접적 거리감이 있었다.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면 어리바리하다가 주도권을 잃고 그들의 뜻대로 좌우됐을 것이다. 그런 몰입감과 당연함이 있다 보니 오히려 끼어들기도 귀찮았다.


'왕이나 공작 정도 되는 위치에 있으니, 이러는 게 맞긴 하지.'


펠릭스가 그 상의 과정을 볼 수 있었던 건 소드마스타 상급이라는 격이 있는 덕분이다.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배려를 해주었다고 봐야 했다.

공작끼리 상의를 하며 선택지를 좁히면 국왕이 적절한 수를 뽑았다. 과장하며 말하듯 불편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광경에서 짐작할 수 있듯 매번 이런 식으로 논의하는 건 아니었다. 혼자 다루기 어려운 소드마스터 상급의 처우를 놓고 합의하는 편이 뒤탈이 없는 탓이다. 혼자 쑥덕거리며 끌어안는 것보다 여럿이서 무탈하게 처리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결과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므로 이런 사교장에서 정략혼이나 추천인 관련 주제가 한 마디도 안 나왔다. 누구 한쪽에 기울 수도 있는 조언자에 대한 언급도 마찬가지다. 결과적으로 국왕은 골렘과 당대 한정 작위를 하사하고, 대귀족들은 돈을 지원했다.


"만나 뵈어 영광입니다, 란소스 경. 저는 아웰른의 제이드입니다. 괜찮으시다면 가르침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반갑습니다, 란소스 경. 헤이즐의 다비슨이라고 합니다. 경의 무예를 견식 하고 싶습니다. 초대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란소스 경."


그러나 신파극이 더 나았다는 걸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방에서 다가오는 기사들의 가르침 요청이 쇄도한 까닭이다. 소드마스터 대부분이 각 파벌에 얽매여 쉽게 가르침을 바랄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펠릭스는 아주 간단히 접할 수 있는 무소속이라 혈기 넘치는 젊은 기사 무리가 성큼 다가갈 수 있었다. 주위에서 눈치를 주지도 않았다. 한 명이 과감히 다가간 걸 신호 삼아 주위에서 몰려들었다.

펠릭스로선 우연히 시험에서 100점을 받았더니, 다음 시험 때 전교 상위권 애들이 무엇이 문제로 나올 건지 의논하러 다가온 상황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으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기분 말이다.


"제이드 경이라고 했나?"

"옛!"

"오러는 만들 줄 아나?"

"그···, 그것은···."


아웰른의 제이드는 멋쩍은 표정으로 움츠렸다. 주위에서는 오러도 깨우치지 못했으면서 소드마스터를 귀찮게 했다는 걸 비웃는 분위기가 흘렀다. 그 무리에서 오러를 깨우치지 못한 자는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펠릭스는 골렘과 막대한 후원을 약속받았으므로 기분이 썩 좋았다. 오러를 모르는 것으로 탓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검을 배운지 몇 년 되었지?"

"올해로 12년이 되었습니다."

"마나는 느꼈나?"

"부끄럽게도 배움이 부족하여 인연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런가."


펠릭스는 손을 뻗어 제이드의 손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신체접촉에 주위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처음으로 나서고자 한 그대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 기회를 한 번 주지."

"예, 옛···?"


후욱.

두 사람의 주위로 공간이 일렁였다. 펠릭스는 손바닥을 통해서 '아웨른의 제이드'라고 자칭한 청년에게 마나를 불어넣어 보았다.


'네리카는 아예 검을 배운 적 없는 생짜 초보였지. 그럼 검을 배운 자에겐 과연 어떨까?'

"허어···억···!"


펠릭스는 제이드의 손 신경계에 마나를 실었다. 말초신경계를 따라 중추신경계로, 뇌와 심장으로 거침없이 돌진했다. 펠릭스의 마나는 제이드의 신경계를 돌면서 변화했다. 중추신경계를 거닐면서 마나가 한데 묶여 마력으로 바뀐 것이다.

'펠릭스의 마나'는 '제이드의 신경계'라는 그릇에 담겨 '제이드의 마력'이 되었다.


'이런 법칙으로 바뀌는 거구나.'


제이드의 심장에 마력 덩어리가 무사히 안착하자 손을 떼었다. 제이드는 감당할 수 없는 탈력감에 두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강제로 오러를 깨우친 대가로 공허함과 허무함이 자리 잡은 것이다. 이걸 이겨낼 정신력이 있다면 오러를 깨우칠 것이고, 아니라면 그것뿐인 사람이 되리라.

주위에서는 펠릭스를 놀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러를 깨우친 자들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에 가까운 눈빛이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아웰른의 제이드에게 마력이 느껴졌다.


"어, 어떻게···."

"등을 약간 밀어준 거다. 깨우침이 충분하다면 오러를 받아들였겠지. 그리고···."

"···!"


펠릭스는 두 번째로 다가온 인물을 바라보았다. 헤이즐의 다비슨.


"자네도, 마찬가지인가?"

"옛! 그렇습니다!"

"몇 년 되었지?"

"11년입니다. 란소스 경."


펠릭스가 손을 내밀자 이번에는 다비슨이 양손을 내밀어 맞잡았다. 주위에서는 웅성거림이 커졌다. 소드마스터 상급은 익스퍼트 기사를 양산할 수 있는가?

주위의 소란을 무시하며 펠릭스는 재차 마나를 움직여보았다. 이번에도 사방에 순수한 마나의 파동으로 인한 풍압이 은은하게 퍼졌다. 커튼이 수줍게 살랑거리며 춤출 수 있을 정도의 미미한 바람이 그레이트 홀에 퍼져나갔다.


'이번에는 이렇게 해보자.'


제이드와 달리 다비슨에겐 마나의 흐름을 강력히 통제했다. 중추신경계에 마나가 닿지 않도록 완급조절을 하며 거리를 두었다.

예상대로 이번에는 마력이 일절 형성되지 않았다. 말초신경계에 막대한 마나가 흐르는 데도 마력으로 거듭나지 못한 것이다.


'역시!'


기대에 찬 다비슨의 표정을 직시한 펠릭스는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는 재능이 없군."

"···!"


맥이 탁 풀려 주저앉은 제이드와 달리 다비슨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주저앉지도 않았고, 탈력감도 없었다. 그저 펠릭스의 손을 양손으로 쥐어 잡은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 상태에서 떨어진 펠릭스의 짧은 말은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었다.


"공부를 더 하시게. 그러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지."


양손에 힘이 들어가며 절실해지자, 펠릭스는 손을 탁 뿌리쳤다. 주위에서는 희비가 교차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한 명은 도움을 받아 오러를 깨우쳤고, 다른 하나는 도움을 받고도 오러를 놓쳤다. 그 차이는 매우 컸다.

어느 귀족이 재빨리 손짓해 제이드를 회수하라고 지시했다. 시종들이 황급히 달려와 자세가 무너진 채로 움직이지 못하는 제이드를 수습해 데려나갔다. 다비슨은 굳어버렸고, 모든 귀족의 눈 밖으로 쫓겨났다.


"란소스 경."

"피곤하군. 거기. 와인 좀 주겠나?"


지나가는 시종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와인이 담긴 잔을 나르던 시종은 주위 귀족의 시선이 집중되자 훅 얼었으나, 왕궁에서 닳고 닳은 노련한 시종인지 곧 부드럽게 발걸음을 옮기며 펠릭스에게 다가가 허리 숙여 쟁반을 내밀었다.

잔을 든 펠릭스는 가볍게 위로 들어 보였다. 이 화제는 이걸로 끝이었다. 소드마스터 상급이라는 벽을 체감한 익스퍼트 기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물러났고, 오러를 깨우치지 못한 하급 기사는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 걸 자책하며 물러났다.


"······."


아주 간단한 실력행사였다. 하급 기사를 단번에 오러를 깨우치게 하여 익스퍼트 기사로 끌어올린 펠릭스는 중앙정계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는 자연재해와도 같았다.

익스퍼트 기사란 마법사와 함께 정치력의 평가요소 중 하나다. 거느린 기사의 질과 양은 세력의 척도인 것이다. 익스퍼트 기사가 밭에서 나오는 게 아니고, 각자 육성·영입을 장려하는 만큼 규모가 커졌다. 그걸 단기간에 뒤집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


'귀찮게 굴 생각은 하지 말라고.'


펠릭스는 왈츠의 선율 위에서 몸을 맞추는 선남선녀를 구경하며 와인을 홀짝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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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90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2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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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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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4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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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벌 준비 (4) 20.05.03 165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3 5 12쪽
21 정벌 준비 (2) +1 20.04.27 190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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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기간트 골렘 (1) 20.04.24 227 6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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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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