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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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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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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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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펙시스 공략전 (4)

DUMMY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하고 4일째 되는 날부터 방해공작이 시작됐다.

궁기병이 화살을 쏘고 도망치거나, 밤중에 몰래 다가와 불화살을 쏘는 건 차라리 애교였다. 배에 투석기를 올려 마법진에 돌을 던지려고 시도를 할 때는 펠릭스조차 기겁해서 말이 안 나왔다.

투석기가 날린 돌덩이를 마나 블레이드로 쳐내느라 되지도 않은 칼질을 많이 했다. 마법진의 정밀성을 흩트리면 만사형통이라 조그만 돌멩이 하나라도 마법진의 선을 어지럽히면 다시 작업해야 한다.

사람 머리통처럼 큰 돌덩이가 날아오는데, 기간트 골렘을 꺼내 임의로 방벽을 만들어놓고 기사들이 오러를 허공에 뿌리며 망을 만들었다. 인간을 뛰어넘은 자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며 돌멩이를 쳐내는 모습은 여러 가지 의미로 장관이었다.


"어유, 힘들어."

"잠수해서 다가가려고 하면 튀어버리니···."


투석기를 실은 배를 떼어내는 방법은 백병 시도였다. 투석기가 장전하는 틈에 골렘 나이트 하나가 강에 뛰어들었고, 그걸 본 즉시 배가 도주했다. 노잡이 수십 명이 가쁘게 휘젓자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200m를 좁힐 수 없었다. 갑옷을 벗었다면 또 몰랐겠지만 말이다.

강이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면 곧바로 갑옷을 벗어 홀가분한 골렘 나이트가 잠수를 준비했다. 그렇게 이틀.

부양선이 등장했다.


"네미. 잘한다, 그래."


부양선은 까마득한 머리 위에서 무거운 물건을 투하했다. 폭격기가 폭탄 떨구듯 했는데, 폭발하는 물건은 아니었으나 마법진에 손상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6일 동안 작업한 결과물이 날아가자 마법사들은 포효하며 부양선에 온갖 간섭을 걸어 부력을 떨어트리거나 추락시키려 했지만, 통제력을 잃은 부양선은 오론 강 위에 연착륙해선 그대로 강물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 추격을 피하려고 상류로 옮겼기에 하류로 도망치면 잡을 길이 없었다.

그리고 대책회의 시작.


"알카탄이 부양선까지 꺼냈으면 답이 안 나옵니다."

"변경백께선 빌로드 공국을 견제하느라 부양선을 뺄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이상 현실입니다.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강에 나타난 배만 해도 화가 나는데, 부양선까지 등장했으니 무척 곤란했다. 마법진을 그리는 인원 중 일부를 부양선의 반중력 마법진에 마력간섭에 활용하겠다고 하면 마법진을 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 단기간에 끝내야 하는 이 상황에서 그런 전술은 고려할 수 없었다.

펠릭스는 작게 한숨을 쉬며 마법사 대표에게 명령한다.


"텔로드에 연락해라. 부양선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 밖이야."

"예, 란소스 각하."


통신 마법은 그 특성상 장거리 대화를 전제로 하므로 많은 마력이 필요했다. 마법진 또는 골렘 수리에 사용할 마나석을 사용해야 하므로 최대한 쓰지 않으려 했다.

마법사는 즉시 중급 마나석 3개를 정확히 정삼각형의 꼭짓점이 되도록 배치하고, 뼛가루와 수액(樹液)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마나석이 밝게 빛나며 공명하길 잠시. 상대방이 통신을 받아 마법진을 구성하는 나무수액이 한가운데로 떠올라 구체가 되었다.


- 여기는 텔로드. 누구입니까?

"여기는 란소스 군단. 작전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구체는 웅웅 떨면서 물결에 파문이 일듯이 격하게 진동해 소리를 만들었다. 사방으로 퍼지는 소리 덕분에 모두 들을 수 있었지만, 말하는 건 마법을 시전한 당사자만 가능한 야전용 통신 마법이었다.


"란소스 군단은 펙시스 공략 중. 인근에 있습니다. 오론 강 도하를 위해 마법진을 그리던 중 방해 발생. 부양선 등장. 대책 필요합니다."

- 부양선? 확실한가?

"전투도 했습니다. 3쿼터 루드의 아멜라드 군용수송선 규격이었습니다."


3쿼터, 0.75.

루드, 약 1000제곱미터.

대략 750제곱미터 면적의 반중력 마법진을 사용하는 부양선이라는 설명에 텔로드 방면 통신에서 분주한 소리가 들렸다. 야전용 통신마법과 달리 수정구를 마법진에 연결하면 마법 시전자의 소리만이 아니라 주위의 소리도 전달할 수 있었다.

잡음이 약간 흘러나오고, 잠시 뒤.


- 확인. 변경백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일몰 시각에 다시 통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였다.


'아, 핸드폰 마렵다.'


야전 통신을 본 펠릭스가 떠올린 가장 절실한 물건은 핸드폰이었다. 간단하게 번호만 입력하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

그리고 이 세계에는 소수점이 없어 대략적인 크기를 구분하지 못했다. 아라비아 숫자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또한 시간도 문제였다. 농경이 시작과 끝인 세계라 시간 개념은 낮과 밤이 끝이었다.

전기와 전구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밤을 세세하게 나눌 필요가 없고, 교통이 발달하기 전에는 낮도 구분할 필요가 없다.


'이것도 내 업적으로 노려봐야지.'


시계라는 건 문명화를 증명하는 일종의 증표와도 같았다. 서구권의 일상을 종탑이 지배했고, 일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걸 인력이 아니라 자동으로 만든 걸 인류의 대업으로 여긴 까닭이다.

한때 유럽에서 시계탑을 미친 듯이 만든 데에는 이런 이유도 있었다. 신의 창조물인 태양의 움직임이 아니라 인간의 기준으로 시간을 만든다는 건 지극히 인본주의적인 움직임이었다.


'가만···. 인본주의?'


문득 떠오른 단어가 마음에 걸리자 펠릭스는 턱을 괴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여긴 중세 판타지 세계잖아?'


어째서 중세가 중세인가. 신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양판소에서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판타지라는 장르에 빠지지 않는 요소가 바로 신적 존재다. D&D의 클레릭, 반지의 제왕에서도 간달프가 신의 존재를 입증하는 관련인이다.

고전 판타지의 배경이 중세이므로, 중세의 헤게모니가 신과 종교에 있는 까닭에 세계관 형성에 있어 신을 빼놓을 수 없다.


'어라. 대륙 통일 같은 것보다 이게 더 쩌는 업적인데?'


잘 생각해보니 이것이 훨씬 더 대단한 업적이었다. 불가능한 일을 세우는 게 아니라 시대를 가르는 거인이 될 수 있는 기준점이 될 수 있었다. 헤게모니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펠릭스는 가슴이 벅찼다.

칭기즈칸이나 나폴레옹 같은 세계의 변화를 강요한 시대의 기준점.


'좋아. 인간의 시대를 열자. 이걸 이번 삶에서 목표로 삼아야겠어.'


펠릭스는 결심을 굳혔다. 중세 판타지 세계관에서 중세 혹은 판타지라는 뼈대를 없애자고 다짐한 것이다.

쉬운 일은 아니다. 마왕을 격퇴한 시간대를 기준으로 삼더라도 3000년 넘게 유지된 사상이다. 마나라고 하는 알기 쉽고 명백한 증거가 있는 이상 신 그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신을 죽인다면 모를까.


'하지만 신을 죽여봐야 새로운 신이 나올 뿐이지. 주교가 말한 게 사실이라면, 주신 샤메드가 아닌 다른 신은 죽여봐야 금방 다시 태어날 거야. 신앙심이 유지되는 한 그걸 받는 신은 불멸이니까.'


신이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문제다. 그리고 이 세계를 창조한 신이 샤메드라면, 샤메드를 죽일 수도 없었다. 우주를 창조하는 신이 샤메드라면, 펠릭스에게 있어 샤메드는 2번째 삶을 선물한 은인이나 다름없다. 은인을 죽이면서까지 업적을 세우고 싶지는 않았다.

따라서 신앙 그 자체를 없애는 방향으로 과정을 정해야 한다.


'원론적으로 파고들어 보자. 왜 신이 필요하지?'


어째서 신을 신앙하는가. 왜 하필 신이 필요한가.


'아, 나는 신학과 아닌데. 책 좀 더 읽을걸.'


동네에 있던 교회는 목사가 아니라 먹사였고, 그나마 절 정도만 있었다. 그런데 불교는 지금 고민에 적합하지 않았다. 독실한 불교 신자도 아니었고.

펠릭스는 혼자 고민해봤지만, 답이 안 나오자 앞날이 캄캄했다. 어떤 헤게모니와 사상으로 대중에게 신의 그림자를 거둘 수 있는가?


'···이건 이쪽 전문가를 찾아내서 이론 여러 개를 합치는 게 낫겠다.'


중세에서 기독교가 몰락하게 된, 정확히는 기독교에 맞서는 사상이 생긴 원인은 타락이었다. 신실함의 결여, 절실함의 부재. 권력욕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신교라는 대적수가 등장했다.

그러나 이 세계관에선 타락한 종교라는 게 나올 수 없었다. 기껏 해봐야 소소한, 사람으로서 기본적인 욕구 정도가 '거인 니요와'의 흔적으로 여겨졌다. 그럼 종교를 끌어내릴 방법이 없으니, 종교에 대적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야 한다.

과연 가능한가?


"어렵군."

"트렐라드에는 부양선이 없으니···."


골렘 나이트의 중얼거림에 펠릭스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이런, 아직 회의 중이었지.'


펠릭스가 심각한 표정으로 숙고하자 다른 사람들은 고민이 끝날 때까지 잠자코 기다려주고 있었다. 사적인 미래로 다른 사람들 불편하게 긴장시킨 것 같자 펠릭스는 무안해져서 가볍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군영에 모인 골렘 나이트와 마법사들은 펠릭스의 멋쩍은 웃음을 다르게 받아들였다. 소드마스터 상급이 진지하게 생각할 요소가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안전을 생각해주시다니···.'


소드마스터 상급은 성을 홀로 함락시키는 저력을 보유한다. 정정당당한 승부를 버리고 효율적으로 싸운다면 펙시스는커녕 군사요새까지 함락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고 안전한 수를 생각하는 이유는 본인을 제외한 다른 자들의 안전 외에 없었다. 부양선이 아무리 많아도 허허벌판이 아닌 이상 소드마스터를 죽일 순 없으니까. 성문에 돌격해서 마나 블레이드를 먹인 검격으로 구멍을 내고 들어가 기간트 골렘을 소환해 탑승하면 그대로 공성전은 끝이었다.


"이만 해산. 조금 이르지만, 저녁 식사라도 준비하지. 후퇴할 수도 있으니 든든하게 먹어두자고."

"예!"

'으악, 내 고막이야. 왜 소릴 질러?'


펠릭스는 우렁차게 대답하는 군영 안 사람들 덕분에 귀가 먹먹해졌다. 펠릭스가 먼저 밖으로 나갔고, 밖에서 대기하던 네리카가 슬쩍 다가왔다.


"텔로드에서 어떻게 한데?"

"아직 몰라. 각하께서 출타 중이시라 밤에나 들을 수 있어."

"그렇구나."


네리카는 펠릭스를 도와 갑옷 벗는 걸 도왔다. 마법진은 훼손됐고, 펙시스가 정면에서 싸울 생각이 없으면 추가 공격은 있을 수 없다. 마법사들이 손을 놓게 되었으니 마력 탐지는 더욱 넓고 세밀해져 부양선이 다가오면 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리고 지금의 펠릭스에게 중요한 건 전쟁 따위가 아니라 신의 시대를 끝낼 수단과 방법이었다.


"텔로드에 부양선은 없으니까. 오슬레아의 유력자가 지원하지 않으면 부양선 견제는 불가능해. 아마 후퇴하게 되지 싶어."

"그렇게 간단히?"

"안타깝지만. 이미 지세트라는 성과도 있고, 알카탄을 무리해서 노릴 순 없지. 분노 때문에 눈이 가려지긴 했지만, 트렐라드 변경백령보다 체급이 더 커. 그 점을 무시할 수 없지."


펠릭스는 후발부대의 정체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트렐라드 변경백이 이번 전쟁을 성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치력을 쏟아부었는지도 알았다.

지세트와 알카탄에게 복수를 하지 않으면 지배자로서의 권위와 정당성이 증발하기 때문에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피해가 누적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후발부대는 트렐라드 변경백령 외에도 복수를 원하는 인근 지역의 지배자 계층이 과반수였다. 그들을 모두 잃어버리면 패가망신. 가뜩이나 모든 정치력을 쏟아 성사한 전쟁이었다.

네리카는 펠릭스의 설명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저 분노에 눈이 멀어 군대를 일으킨 줄 알고 있었던 까닭.


"만약 부양선이 나타나서 전쟁이 계속된다면?"

"만에 하나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뭔가 큰 변화가 생겼다는 뜻이겠지."


그날 저녁, 텔로드 통신관은 부양선이 지원될 거라는 전언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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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2 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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