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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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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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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진흙탕 위 나룻배 (2)

DUMMY

텔로드.

펠릭스는 트렐라드 변경백, 시종장, 네리카, 합 4명이 포커를 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투 페어."

"아아니, 거기서 킹이 나오네."

"죄송합니다, 스페이드 플러시입니다."

"앗."


마지막 공용카드로 ♠K가 나오자 트렐라드 변경백이 K와 3으로 투 페어를 완성했지만, 시종장이 ♠문양 5장을 완성해 플러시를 터뜨리자 판돈으로 걸린 20골드가 시종장에게 넘어갔다.

변경백은 카드를 테이블 위로 내다 던지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 모습을 본 펠릭스가 경박하게 낄낄 웃으며 카드를 정리했다.


"···재밌긴 한데, 재미 들리면 밤낮이 없어지겠어."

"할 만하죠?"


트렐라드 변경백의 앓는 소리에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포커에 한 번 맛을 잘못 들이면 사람 망가지는 건 순식간이다. 포커뿐만 아니라 판돈이 걸린 도박이라는 건 다 이러했다.

시종장은 여유로웠지만, 딱히 즐겁지는 못했다. 잃은 돈이 300골드인데 20골드를 얻어도 본전 생각이 간절하니 초조함을 지우지 못했다. 네리카는 펠릭스와 지갑을 공유하므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서 시종장보다는 여유로웠다.


'그래도 여기는 도박이라는 게 딱히 흥할 것 같진 않네.'


행운의 신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다가, 행운의 신을 섬기지 않더라도 기본적으로 신실한 사람은 운이 일반인보다 좋아서 평균이라는 개념이 확실히 달랐다. 트렐라드 변경백은 홀몸으로 지내며 꽤 신실하게 지냈다는 평소의 말이 무색하지 않게 꽤 승률이 높았고, 적당히 사리사욕을 챙기던 시종장은 승률이 낮았다.

네리카는 룰과 족보 숙지가 미숙해서 승패 구분이 무의미했으므로, 펠릭스를 기준으로 보면 승률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한 판 더···를 요구하기엔 일몰이군. 슬슬 밥이나 먹지."

"벌써 이런 시간이네요. 정리하죠."


시종장은 식사를 지시하려고 접견실을 나간다. 시종장이 나가고 셋만 남은 방에서 펠릭스는 손으로 카드를 섞으며 변경백에게 질문을 던졌다.


"앞으로 뭐, 어떻게 한답니까?"

"키펠 왕국이 동맹 파기하고···. 이것저것 많이 바뀌고 있지. 전반적으로 물자 배분 놓고 말이 많아."


오슬레아 대왕국은 이래저래 벌려둔 일이 많았다. 당장 남쪽에서 배를 만드느라 바쁘고, 국경에서 대치하는 병력을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그나마 키펠 왕국의 측면 전선 덕분에 군사력이 집중되지 않았는데, 키펠 왕국에 차가운 기류로 흐르면서 마게트 왕국은 전력 집중에 부담이 덜해졌고, 오슬레아 대왕국은 잠재적 전선이 하나 더 생겼다.

더군다나 알카탄 공국이 마게트 왕국에 넘긴 정보 중에 '對마게트 작전계획'도 있었다. 덕분에 오슬레아 군부는 군부대 재배치하고 작전계획을 다시 짜는 등 밥 먹을 시간도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캐낸 건지 모르겠지만, 익스퍼트급 기사와 중위급 마법사 숫자와 명단도 넘어가서 보통 개판이 아니었다.


"당분간···. 네가 고생 좀 하게 될 거다."

"저 때문에 이렇게 됐으니 뭐, 노력은 해야겠죠."

"알아주니 고맙구만. 아무튼 당분간 바빠. 오슬레아에 8서클 대마법사가 둘이나 계시지만, 두 분 다 워메이지는 아니다. 마탑에 상주하시는 분들이거든."

"산업계 종사자였나요."

"그렇지. 키펠 왕국에 자네처럼 소드마스터 상급인 라니온 볼펜우드 경이 있지만, 오슬레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야. 키펠 왕국은 6서클 마도사가 한계거든. 골렘 수리는 가능해도 제작은 불가능해."

"아, 그래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왕도 오세안에서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


"교양 수준으로만 알아서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나 엔진과 펌프를 연결하는 게 고난도라더라고. 변압기라고 하던가?"

"···변압기?"

"탑승자의 마력과 마나석을 동기화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아무튼 그 부품을 만들려면 7서클 비기너 두 명이나 마스터 한 명이 필요하다고 하네. 그런데 마법사가 공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만은 없으니 생산시간은 한정되어 있지. 그런데 오슬레아는 7서클도 아닌 8서클이 두 분이나 계시는 거야."

'엔진도 그렇고. 구조가 좀 자동차 비슷한 느낌인데.'


동력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맥락은 같다. 다만 펠릭스가 내세울 수 있는 기계가 자동차 정도라 비유하기 어려웠다.

설명은 길었지만, 키펠 왕국이 오슬레아 대왕국을 상대로 강하게 나설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기간트 골렘을 유지하고 보수하는 정도라면 모를까, 구매하려면 오슬레아의 입김을 피할 수 없었다. 기간트 골렘이 그런데 부양선이라고 오죽할까.

키펠 왕국은 어쨌건 오슬레아 대왕국을 완전히 배신할 수 없었다. 그리고 마게트 왕국 역시 키펠 왕국을 완전히 아군으로 끌어들일 만한 매력이 부족했다. 자체적으로 기간트 골렘을 제작할 수 있으나, 숫자가 여유롭지 않아 자국에 먼저 보급하는 것이 한계. 키펠 왕국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없다. 기껏해야 란가스 왕국에 판매하는 게 고작인데, 어떻게 왕국급 국가를 거느릴 수 있을까. 없다.

그래서 오슬레아 국왕과 공작들은 사태를 낙관적으로 보았다.


"제 신변에 관한 이야기는 없었습니까?"

"슬쩍 흘린 말이지만, 마게트 국경 근처에서 지내야 할 것 같아."

"몇 달 동안?"

"길면 길수록 좋아하겠지. 내 짐작이다만, 최소한 키펠 왕국이 우호적으로 바뀔 때까진 있어야 할 거야."


트렐라드 변경백은 무거운 표정으로 단언했다. 펠릭스의 개인적인 바람과 복수심으로 상황이 여기까지 왔다. 그럼 수습도 펠릭스가 나서서 해야지, 아니면 오슬레아에서 살 수 없다.

펠릭스가 입맛을 다시는 사이 옆에서 가만히 있던 네리카가 펠릭스의 소매를 끌어 눈길을 유도한다.


"왜?"

"간다면 같이 가도 돼?"

"같이 가는 거 됩니까?"


펠릭스는 즉답하지 않고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물었다. 이런 경우를 겪어본 적이 없어서 물어보았는데, 트렐라드 변경백은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한다.


"익스퍼트를 종자로 부리는 경우는 드물거든. 아예 없진 않지만, 제자거나 자식이거나. 둘 중 하나지. 오러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보조병으로 굴리는 건 낭비고 사치야."

"아예 없진 않네요."

"그거야 당연하지. 제자건 자식이건 경험을 물려준다는 게 요점이야. 종자를 부리는 네 입장은 상관없어. 익스퍼트나 되었는데 종자로 부림 받는 사람의 처지가 관건이지. 주위에서 뭐라고 보겠나?"

"아."

"이해했나? 앞서 말한 두 부류는 변명거리나 명분이 있다. 피가 이어진 자식이면 '집안 어르신이니까.'라는 변명이 가능해. '스승님이셔.'라는 말도 되지. 그런데 생판 관계없는데 종자로 있다? 주위에서 술 안줏거리로 씹을 거다."


트렐라드 변경백의 말은 펠릭스의 안이한 생각을 정면에서 부쉈다.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건 네리카의 속사정을 아는 데다가 트렐라드 변경백이 군소리가 나오지 않게 두둔해준 덕분이었다. 따라서 트렐라드 변경백령 밖으로 나가면 이상하다는 시선을 받아야 한다.

펠릭스는 두 손으로 현란하게 카드를 섞던 걸 멈추고 팩에 집어넣었다. 장난스럽게 주고받을 말이 아니었다.


"좋은 방법 있습니까?"

"모험가라면 모를까, 군인 신분으로 친분을 과시하는 건 좀 그렇지. 주위 시선을 감수하고 지내던가, 소드마스터 상급인 자네가 악명을 뒤집어쓰던가."

"전 신경 쓰지 않아요."

"그건 너만 그런 거지. 계속 익스퍼트 하급이라면 모를까, 앞으로도 그 상태로 지낼 거냐? 주위에서 펠릭스를 인색하게 본다."

"읏···."


트렐라드 변경백이 단언하자 네리카는 침음을 흘리며 목을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보며 트렐라드 변경백은 피식 웃었다.

펠릭스는 머리를 굴렸고, 나오는 결론은 하나.


"정식으로 서임식을 받고 제가 데리고 다니는 건?"

"아서라. 어지간해야 서로 친구라고 생각하지. 너희처럼 실력 격차가 너무 크면 대등한 관계라고 안 봐. 결혼 생각할 거 아니면 자제하는 게 좋을 거다."

"결혼···이라. 그러면 됩니까?"

"추천은 안 해. 지금의 넌 살아있는 정치적 상징물이거든. 섣부르게 애인이라고 선포하면 주위에서 쟤를 노리고 온갖 암투와 계략을 걸 거야. 거래라면 차라리 다행일 거다. 목숨과 직결되기도 할 걸."

"으음. 그 정도입니까?"

"안 들키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지. 흠, 비유가 좀 그런가? 아무튼! 첩이라면 몰라도 처라면 기회를 노리는 녀석들이 좀 많을 거다. 부인을 잃고 슬픔에 빠진 실력자와의 로맨스, 그림 좋지?"

"아, 그건 좀."


펠릭스가 질색하자 트렐라드 변경백이 유쾌하게 웃었다. 아직 정치 경험이 없는 펠릭스에게 정계의 음습함을 알려준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웃음으로 덮어보려고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말하는 트렐라드 변경백의 말은 하나하나가 무거웠다. 권력을 나누지 않으려고 부인 가문을 없앤 사람이었기에 더욱 비정한 내용이라도 신뢰감으로 넘쳤다.


"지금까지는 분위기가 있어서 발언을 삼갔지만, 어떤 배우자를 정할지 생각해두는 게 좋을 거다. 가정교사에게 배우긴 했지?"

"예. 4가지가 있다고 배웠죠."


이 세계는 일부다처와 일처다부가 가능했다. 계급과 신분이 마력이라는 신의 축복으로 확고하게 증명할 수 있는 세계관이라 혼인관계가 지저분했다.

그러므로 크게 4가지. 혈통, 정략, 명분, 애정으로 나뉜다.

혈통은 마력을 가진 사람끼리 혼인하는 경우. 기사와 기사, 마법사와 마법사 등 마력에 친숙한 핏줄을 만들기 위함이다. 대체로 하급 귀족이나 신흥 귀족 가문에서 이루어진다. 실력을 중시하고, 그 능력 하나만으로 귀족이라는 계급을 유지했다.

정략은 말 그대로 정치적 이유로 혼인하는 경우다. 귀족끼리 결혼하는 게 아니라 상인, 기술자 등 마력과 관계없는 실력자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대다수는 금전이 급해서 상인과 결혼하고, 간혹 뛰어난 기술자나 학자를 결혼으로 끌어들여 가문의 비전을 만들거나 강화한다. 다만 이런 부류는 가문 직계가 아니라 방계로 끌어들이므로 가신(家臣)으로 취급한다.

명분은 정략과 비슷하지만, 귀족만의 결혼에 한정한다. 파벌끼리 화해하거나 외국 귀족과 결혼하거나, 가문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게 목적. 하급 귀족이 아니라 대귀족이 이런 식으로 영지를 넓히거나 파벌을 강화한다. 더군다나 이런 부류는 목적이 순수하지 않으므로 암투가 넘쳐나 역으로 당해 몰락하는 사례 또한 넘쳤다.

애정은 가장 희소하다. 혈통도, 정략도, 명분도 다 날려버리고 오직 사랑 하나만 보고 결혼하는 귀족은 지극히 적었다. 주위의 반대를 모두 반박하거나 무시하고 강행해야 가능하므로, 사실상 이런 인물은 가주로 추대되기 전에 '교체'당한다.


"능력이 있으면 첩을 몇 명이나 둬도 주위에서 입방아 찧진 않아. 키펠의 볼펜우드는 24명이고, 마게트의 슈벤타트는 19명이나 되니까. 그리고 너 정도 되면 첩 자리도 정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

"으음···."

"잘 생각해봐라. 우리가 있을 귀족 사교계에선 사람이 좋아서 다가오는 사람은 없어.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거지. 그러니까, 하나하나 배경이 있는 첩을 많이 거느릴수록 총애를 받아 통제할 애도 필요해."

'아니, 왜 자꾸 등을 떠밀어. 나보고 얘 데려가라고?'


펠릭스는 트렐라드 변경백의 은근한 시선에 속이 매스꺼웠다. 속뜻을 파악한 네리카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고개를 푹 숙였고.

전선에 네리카를 데려가도 되는지 물어봤다가 인생에 네리카를 데려가라는 메시지를 받은 펠릭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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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8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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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0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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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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