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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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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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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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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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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지세트 최후의 날 (3)

DUMMY

펠릭스는 육중한 돌려차기와 주먹 지르기 한 방씩, 도웬 시케람은 조종석 하부 마력 엔진 부근에 니킥을 얻어맞았다. 각자 서로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상황.

펠릭스는 조종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데다가 기기 결함에 대처해본 경험도 없었다. 무거운 돌려차기를 얻어맞은 기간트 골렘은 주요 관절부가 삐걱거렸다. 허리 부분에 강한 힘이 가해지면서 무게중심 자체가 뒤틀린 까닭이다.

도웬 시케람은 마스터가 아니기에 마력 엔진 의존이 크다. 골렘을 제대로 움직이려면 엔진 내부에 장착한 마나석의 마나를 펌프로 각 부위에 보내야 한다. 인간으로 따지자면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부위고, 그 부분이 흔들리면 마나 전달에 문제가 생겨 탑승자의 마나 소모가 심해져 골렘 조종에 여러 가지 부담이 생긴다.


'어떻게 상대해야 하지?'


둘은 서로에게 검격을 주고받으며 치명타를 줄 방법을 모색했다. 펠릭스는 기기 결함에 구동부가 헛돌거나 뻑뻑해져 조종이 어려워졌고, 도웬 시케람은 오러로 마나 블레이드를 상대하느라 마력 소모가 큰데 골렘 조종에도 마력을 크게 소모하기 시작하자 오래 버틸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실력에 있었다. 도웬 시케람이 노련함과 연륜으로 파고들라 하면 펠릭스의 무궁무진한 마력과 괴력으로 찍어눌렀다.


'하다못해 일격이라도!'

'집요하긴···!'


기기 이상으로 삐걱거리는 펠릭스의 골렘은 동작이 하나같이 크고 단순해졌고, 그에 비례해 도웬 시케람의 골렘은 조그만 움직임만으로 급소를 노리지만, 점점 그 시도 사이 간격이 벌어졌다.

펠릭스는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절박해졌다. 당장에라도 조종석을 박차고 나가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입혀 상대방 골렘을 해체할 수도 있었지만, 그건 자존심이 허락 안 했다.

노인처럼 움직임이 둔해지는 도웬 시케람을 향해 펠릭스는 큰 움직임을 강요하는 방법으로 방향을 바꿨다. 검격보다는 체술로 균형을 잡도록 난타를 시도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싸울 때처럼 단순무식한 방법이었지만, 지금의 도웬 시케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이런!'


펠릭스가 내지르는 주먹질과 발차기를 피하려면 스텝을 밟거나 허리를 비틀어야 했고, 제때 피하지 못해 공격을 허용하면 넘어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잡느라 온갖 관절부를 이용해야만 했다. 그럴수록 마력 엔진은 굶어 죽은 귀신처럼 마력을 먹어치웠다.

도웬 시케람이 내지르는 날카로운 찌르기가 매서웠지만, 그럴 때마다 몇 걸음씩 물러나면 그만인 펠릭스. 심지어 도웬 시케람의 오러는 외장갑만 무수히 긁었지 내장갑은 건들지도 못했다. 반면 펠릭스의 마나 블레이드는 세 번에 불과했으나 내장갑까지 훑으며 치명상을 줬다.

효율을 신경 쓰느라 움직임을 작게 할 수밖에 없는 도웬 시케람과 효율이 상관없는 펠릭스의 차이였다.


'슬슬 밑천이 드러나시는구만.'


점점 움직임이 둔해지는 게 보였다. 체력을 다 쓴 사람이 억지로 큰 근육만 써서 움직이는 것 같은 동작투성이였다. 지세트의 골렘 나이트 4명이 1시간을 못 버텼는데 도웬 시케람은 홀로 1시간이나 끌었다.

펠릭스는 긴장감을 유지하며 격투술을 줄이고 검술로 전환한다. 악을 쓰며 달려드는 도웬 시케람을 마나 블레이드로 저지.


"대단하십니다, 선배님. 굉장한 분투입니다."

"겉치레 따윌!"


오만하게 굴던 펠릭스가 높임말을 쓰자 빈정거린다고 받아들인 도웬 시케람은 더욱 거세게 달려든다. 무모하게 달려들수록 마나 블레이드에 외장갑이 잘려나갈지라도 돌진했다.

오세안 왕궁에서 대련하던 왕실기사들보다 뛰어난 실력이었기에 나름 예의 갖춘 건데, 상대방이 도발로 받아들여 펠릭스는 찜찜해졌다. 조조가 관우를 탐하던 기분이 이런 느낌일까. 펠릭스는 도웬 시케람을 부하로 삼고 싶었다.


'안 되겠지. 주위에 눈이 많고···.'


애초에 이곳에 모인 병사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묫자리를 찾아온 자들이다. 살려줄 테니까 부하로 들어오라는 말에 반응할 자는 여기에 없다.

펠릭스는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거검을 휘둘렀다.


"편히 쉬십시오."

'생각해보니, 업적을 위해선 인재수집도 중요했었지. 이걸 왜 잊고 있었을까.'


아까운 인재를 떠나 보낸 다음에서야 떠올렸다. 삼국지에서 1:1 결투만 생각했지, 정작 천하통일에 필요한 인재 수집요소를 떠올리진 못했다.

펠릭스는 앞으로 인재를 수집해야겠다고 다짐하며 거검을 회수했다. 백 합이 넘어가는 결투 끝에 도웬 시케람을 쓰러트린 펠릭스의 귀로 환호성이 들렸다. 트렐라드 진영에서도, 지세트 진영에서도.


'아, 진짜. 고대적 전장에서 싸운 것 같은 느낌이야.'


승자에게 환호를, 패자에게도 경의를.

정말 미묘했지만, 펠릭스는 도웬 시케람의 골렘을 취객 부축하듯 어깨에 걸치며 전장 옆으로 비켰다.

그다음에 이어진 건 매그넘 골렘과 일반 병사가 뒤섞인 전투. 펠릭스는 편하게 전장 측면에서 전투를 지켜보았다. 악착같이 달려드는 지세트 병사와 견고하게 여유롭게 후열과 교대하며 피해를 줄였다.

매그넘 골렘의 싸움은 정말 단순했다. 괴력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골렘이었으므로, 그에 걸맞게 망치나 몽둥이 같은 걸 휘둘렀다. 둔기가 움직일 때마다 일반 병사의 머리통이 깨지거나 통째로 으깨지는 장면은 좀비물에서나 볼 수 있는 핏빛투성이였다.


'스크린 너머라서 그런가. 아직은 영화 보는 느낌이네.'


펠릭스는 아직까지 자신이 5명이나 죽였다는 걸 체감하지 못했다. 마나 블레이드를 입은 거검은 사람을 베었다는 감각이 없었다. 철 덩어리인 골렘을 베는 것조차 당근이나 양파를 써는 느낌 이상이 안 느껴졌다.

짐승, 흉악한 범죄자, 상처투성이였던 오크를 죽였을 때보다도 부족했다.


"흐음···."


이유를 고민하며, 펠릭스는 차분하게 골렘 안에서 전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 * * *


"매그넘 골렘 1기 파괴, 1기 대파, 3기 중파, 2기 소파입니다. 병사 28명 사망, 322명 부상입니다."

"예상보다 피해는 적었군."

"란소스 각하께서 사기를 복돋아 주신 덕분이지요."

"놀랐습니다. 도웬 시케람 경을 피해 없이 영면으로 모시다니!"


테알론에서 펠릭스는 주위의 칭송을 한몸에 받았다. 기간트 골렘 결투에 깊은 감명을 받은 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펠릭스는 이번 일로 이 양판소 세계에서 결투가 대중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싸움 실력이 평등한 게 아니라 마법과 마도구, 마력의 양과 질 같은 변수가 너무 많은 탓이다. 펠릭스만 하더라도 소드마스터 상급이었지만, 익스퍼트 최상급인 도웬 시케람의 첫 돌려차기에 기기 결함으로 실력을 100% 발휘할 수 없었다.

다행히 실력 격차가 워낙 큰 덕분에 피해 없이 이길 수 있긴 했다.


"됐다. 어차피 어려운 싸움도 아니었어."


펠릭스는 가볍게 말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세트 최후의 군대를 밀어버린 다음 모든 걸 회수했다. 왕의 인장은 테이체 남작이라는 자가 훔쳐서 어디론가 사라져 없었다.

그걸 제외하면 모든 걸 얻었다. 애초에 고용인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없었다. 왕궁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사작도 없고, 경비병은 전의를 진즉에 잃어버려서 지평선에 트렐라드 군대가 보이자마자 성문을 열었다.

지세트 백국을 장악하는 건 배너렛 나이트가 맡은 일이었다. 점령지역에 병력이 주둔하며 영주와 토호로부터 충성서약을 받아내거나 강탈하면 끝. 그러나 모든 영주와 토호가 외국으로 도망쳐서 싱겁게 끝났다.


"원래 이렇게 싱겁게 끝나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 녀석들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낙관하고 있었던 겁니다."


막사를 나온 펠릭스는 눈앞에서 골렘을 정비하는 마법사를 바라보며 옆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펠릭스가 지휘하는 병력은 겨우 기병 200명.

보급 마차를 비롯해 속도가 느려질 수 있는 요소는 모조리 배제한 결과였다. 알카탄 공국으로 북상할 때 신속히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점령을 목표로 삼지 않고 오직 혼란만 주기 위한 계획.

다만 그 전까지는 완벽하게 준비를 끝마쳐놔야 했다. 다행히 펠릭스의 결투로 기간트 골렘은 피해가 전혀 없고, 그나마 펠릭스의 기체의 관절이 조금 뒤틀린 정도에 불과했다.


"언제 올라갈 것 같나?"

"길어야 20일 정도겠지요."

"이유는?"

"알카탄에서 추수가 끝나면 어떻게든 태도를 정하겠지요. 지세트를 해방하려면 이곳으로, 트렐라드를 넘보겠다면 통신이 올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전쟁준비를 끝마쳐야 할 것이고, 추수한 곡물을 수습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20일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타당하네."


펠릭스 곁에 선 마법사는 트렐라드에서 영지를 운영하는 데에 여러모로 관여한 경험이 있어서 알카탄 공국의 행동이 뻔히 보였다. 원정이라서 추수 시작과 동시에 병력을 보낸 트렐라드 변경백령과 달리 알카탄 공국은 엄연히 수비자였다.

트렐라드 군대가 지세트 침공을 50일도 안 되어서 마쳤다. 가을이 시작될 때 나왔고, 이젠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 그럼 알카탄 공국은 대응을 결정해야만 한다.


'수비를 하든, 트렐라드로 진격하든. 나는 그대로 치고 올라가면 돼. 이쪽으로 내려온다면 배너렛 나이트와 함께 대응하면 되고.'


정말 간단했다. 병력이 둘로 나뉘어 있었으므로, 어느 쪽이 돼도 양면에서 들이닥칠 수 있었다. 지구에서는 병력의 규모와 질이 고만고만하지만, 이곳은 질의 차이가 너무 컸다. 21세기 보병과 11세기 보병 정도로 벌어진다.


'그러니까 인재를 수집하려면 고급 인재를 모아야 해. 특히 마나를 다룰 줄 아는 녀석.'


마나석이 박혀있는데도 마나를 모르는 사람이 못 타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법진은 마력에 반응하기 때문에 마나석의 순수한 마나를 마력으로 가공할 개체가 필요했다.

마나를 다룰 수 없는 자에게 지극히 불리한 세상이었다. 마나석과 마법진만 있으면 현대 문명 부럽지 않은 편의성을 만끽할 수 있지만, 마나를 마력으로 바꿀 수 없으면 아무리 신분이 뛰어나도 차별받는 삶을 산다.


'유비처럼 의리 하나만으로 움직이는 부하는 아니더라도, 조조처럼 명분 하나만 거머쥐면 되겠지. 뭐가 좋을까···.'


펠릭스는 자신의 기간트 골렘을 바라보면서 생각을 해보았다. 그러나 인터넷이 없는 세계라 정보와 식견이 좁아 과연 어디까지를 노려야 하는 건지 정하기 어려웠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대륙통일. 진짜 대륙 전역을 통일하는 게 아니라 삼국지나 칭기즈칸처럼 넓은 영역을 지배하는 것.


'마왕군에게 파괴된 이 세계는 아직도 미개척지가 많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황량하거나 울창한 자연만 펼쳐졌다고 했지. 그럼 거기까지 먹어치우면 되는 게 아닌가?'


카팔라 제국은 반쪽짜리 국가다. 용사 조르지오가 건국했지만, 마왕 하나 때문에 뭉쳐있었으므로 마왕이 사라지자 뿔뿔이 흩어졌다. 초창기 인류의 수호자를 자처했으나 현재는 그저 막강한 대국으로 전락했다.

또 다른 위업으로 마왕 토벌이 생각났지만, 그래 봐야 용사 조르지오의 뒤를 이은 2번째 업적이라면 굳이 노리고 싶진 않았다.


'역시 천하통일인가···.'


드래곤도 있고, 드워프와 엘프, 몬스터도 가득한 이 세상을 하나로 묶는다는 위업.

펠릭스는 일단 그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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