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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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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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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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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펙시스 공략전 (5)

DUMMY

부양선은 이틀 뒤 밤에 나타나 별동대를 오론 강 너머로 도하시켜 주었다.

오슬레아 왕실 문장을 대놓고 보여주고 있어서 정치적인 의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국적, 무소속 선박으로 위장해서 개입하는 게 아니라 왕실이 개입한다고 대놓고 드러낸 이상 이 전쟁은 트렐라드 변경백 개인의 책임으로 끝날 수 없는 전쟁으로 확산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뻔했다.


"알카탄 수도를 함락해야 한다?"

"예, 각하. 알카탄 국왕을 사로잡아주십시오."


부양선 함장은 펠릭스에게 명령서를 전달했다. 트렐라드 변경백의 인장이 찍힌 걸 보면 합의가 된 문서가 분명했다.

알카탄 공국을 무너트리고, 반은 오슬레아가 같고 나머지 반은 키펠 왕국에 할양한다는 내용이었다. 펠릭스가 수도 근처에 진영을 구축해 군을 움직일 수 없게 저지하면 그 사이 오슬레아 군대가 북상하며 국경지대를 하나씩 점령하겠다는 전략이 적혀있었다.

그럴 뿐만 아니라 키펠 왕국의 정규군 일부가 남하하여 국경지대를 약탈해서 생산력을 절단한다고 했다.


'전략적 선택이군···.'


지도에서 지세트가 너무 쉽게 삭제된 것이 이번 작전의 가장 큰 이유였다. 알카탄 공국도 빠르게 처리해서 후방을 도모하자는 의도가 읽히는 배치였다.

키펠 왕국을 주공으로 끌어들이지 않고 약탈만 허가하는 것으로 용돈을 쏠쏠하게 벌 수 있도록 배려해줘서 뒷말을 없앴다. 후방을 어지럽힌 군공으로 영토를 할양할 명분도 만들어줬다.


"당장 움직일 필요는 없지?"

"예? 될 수 있으면 빠른 편이 좋습니다만···."

"펙시스는 함락시키고 가게. 처음 공략하는 건데, 이런 식으로 포기하면 뒷맛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래."


펠릭스의 말에 선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대한 빠르게 수도를 함락시켜 전쟁을 조기 종결하라는 명령이었지만, 소드마스터 상급이 그럴듯한 이유로 진군을 거절하면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선장은 펠릭스의 부드러운 압박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순응한다.


"강하를 준비하겠습니다."

"강하? 아니, 그러진 않아도 돼. 정면에 있기만 해도 정신이 나가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걸."


펠릭스는 가볍게 웃었다. 부양선 선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듯 고개를 살짝 갸웃했지만, 더 질문하진 않았다.

오론 강 너머로 도하 후 하루 휴식하고서 펙시스로 직행했다. 기간트 골렘과 매그넘 골렘을 아공간에서 꺼내 일부러 대놓고 움직였다. 후방에 부양선까지 느긋하게 진군속도에 맞춰 움직이자 나름 규모가 커 보였다. 말을 타고 움직였던 골렘 나이트가 골렘에 올라탄 탓에 말 몇 마리는 등에 아무도 태우지 않고 움직이기도 했지만, 골렘의 크기가 워낙 커 두드러지진 않았다.

기간트 골렘은 일반 구보, 매그넘 골렘은 속보, 기병은 말을 타고 있었기에 느긋하게 따라붙었다. 이처럼 당당한 행군은 펙시스에 빠르게 전해졌다.

부양선 등장. 국왕의 고함. 인근 귀족들의 피난 소식.


"당장 발리스타 재배치해! 마나석을 모두 징발해라! 도주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정보를 확인한 펙시스는 난리가 났다. 부양선으로 강습이 올 수 있고, 그게 없더라도 오론 강을 건넌 것 자체가 문제였다.

펙시스를 건너뛰고 바로 수도로 향할 거리는 예상을 뒤집어엎었다. 네안칼 백작은 소드마스터가 펙시스에 원한이 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다.

그 분주함은 트렐라드 군에게 전부 보였다. 애초에 먼 거리도 아니었으므로 강을 건너고 3일 만에 펙시스 지척에 다다를 수 있었다.


"바로 공격하시겠습니까?"

"행군하느라 피곤할 텐데, 하루 쉬고 시작하지."


펠릭스는 시종일관 느긋하게 대응했다. 겉으로만 보면 전쟁이 아니라 산책이라도 하러 나온 것처럼 태연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이런 분위기 덕분에 주위에서는 위기감으로 인한 긴장감을 겪지 않았다. 국경을 넘는 침공이 처음이었지만, 분위기가 괜찮았던 건 이런 자세 덕분이었다. 이건 트렐라드 변경백이 당부한 태도이기도 했다.

트렐라드 군대가 진영을 차리고 있는 데도 펙시스는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장거리 마법을 날리거나 기습을 시도할 수 있는 거리였는데 밤이 지나도록 움직임이 없었다. 대신 성벽 위에 온갖 잡동사니가 올라갔다.

겨우 하루 만에 성벽 위에 투석기, 발리스타, 솥이 가득 나타났다. 얼마나 분주하게 움직였는지 감도 안 올 정도.


'물자는 풍부하고, 기술자도 많으니까 저런 동원이 가능한 거겠지.'


뚝딱 만들어내는 물건들이 하나같이 비범했다. 평소에 준비해놓지 않으면 대비할 수 없는 규모.

이곳이 물류집적지가 아니었다면 저런 대비책을 즉석에서 만드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모두 준비됐나?"

"예!"

"무기 손질은 끝났겠지?"

"물론입니다!"

"관절부 청소는 마쳤나?"

"작업 마쳤습니다!"

"훌륭해. 간다!"


기간트 골렘이 선두, 매그넘 골렘이 후미에 서서 전진한다.

솥에서 연기가 솟는 걸 보였다. 기간트 골렘은 방수 설계가 되어있어 비가 내리거나 끓는 기름이 쏟아져도 조종석에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매그넘 골렘은 그렇지 않았다. 조종석이라는 방호장치가 없어 탑승자에게 바로 스며들었다. 기간트 골렘은 기름을 맞아도 나중에 관리가 힘들어진다는 걸 제외하면 피해는 없다.

성벽에 가까워지자 펠릭스는 공개통신으로 매그넘 골렘을 대기시켰다. 성벽 밖에는 시가지가 펼쳐져 있었고, 매그넘 골렘들은 대로에 4열 종대로 걷다가 멈춰 서서 골목이나 후방을 경계한다.


"내가 성벽을 돌파하면 뒤따라 들어오도록."


펠릭스는 거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입히고 곧장 성문으로 돌진했다. 2겹으로 된 성벽의 바깥쪽은 평범했다. 맨땅 위에 건설했으므로 별다른 어려움 없이 훌쩍 도약해서 검을 휙 휘두르자 성문이 펑 터져나가며 뚫렸다.

커다란 대문이 맥없이 박살 나자 펙시스 병사는 비명을 지르며 도주했다. 피로와 긴장감이 누적된 상황에서 저항도 못 하고 방어선이 돌파당했으니 최근에 징집한 병사는 공황을 이겨낼 수 없다. 그나마 정기적으로 훈련을 받은 민병 정도만 기간트 골렘을 저지하려고 석궁이나 돌덩이를 던졌지만, 기간트 골렘에겐 모기나 흙먼지에 불과했다.

펠릭스는 저항을 무시하고 내성(內城)으로 달렸다. 펠릭스의 뒤를 따라 난입한 기간트 골렘 9기가 성문을 차례대로 통과했다. 가장 실력이 처지는 2명을 제외하고 7기는 펠릭스를 따라 쭉 달렸다.


"도개교를 올려라! 당장!"


성문 수비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외성 성문은 여닫이 대문이었고, 내성 성문은 해자를 건널 수 있는 도개교(Draw bridge)였다. 다리를 들어 올리고 철제 격자문을 내려 도개교를 방어하는 방식이었다.

튼튼한 만큼이나 무거워서 곧바로 들어 올릴 수 없었다. 펠릭스는 전력질주로 성문을 향해 뛰었다. 해자는 그저 물을 채워둔 게 아니라 오론 강의 강물을 틀어 만들었으므로 흐르는 강인 데다가 폭이 길었다. 도개교가 올라가면 육상으로는 출입할 수 없었다.


"그건 어림없는 짓이지."


펠릭스는 작게 중얼거리며 조종석을 열고 그 자리에서 박차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조종석 자체가 지면에서 3m 정도 위였고, 도개교는 나무로 만들어 애초에 기간트 골렘이 뛰어서 걸을 수 없었다. 평범하게 걷는다면 모를까, 뜀박질하는 철 덩어리 기간트 골렘은 목제 도개교의 하중을 넘어서는 중량이었다.

그러므로 펠릭스는 애초에 도개교를 기간트 골렘을 타고 건널 생각이 없었다.


"···!"


도개교를 들던 성문 수비병은 펠릭스의 체공에 경악했다. 성문 수비대장은 상황을 파악하고 곧바로 검을 뽑아 오러를 입혀 쇠사슬을 베었다. 무거운 추와 연결된 도개교는 훅 움직여 쾅 닫혔다. 큰 충격에 도개교가 파열되어 곳곳에 금이 새겨졌지만, 이것으로 펠릭스는 도개교 안으로 건너는 데 실패한다.


"쯧!"

'결단력 빠른 녀석이 있었어.'


펠릭스는 미리 뽑아둔 검을 휘둘러 도개교를 박살 냈다. 단단한 목재였지만, 충격에 금이 간 데다가 마나 블레이드를 이겨낼 순 없었다.

굉음이 터지며 도개교가 박살 났다. 뒤따라오는 자들을 위해 되도록 건들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 된 이상 내성에 진입할 수 있는 건 펠릭스뿐.


"방패병! 방어대형! 창병! 전투 준비! 궁병! 자유사격! 기사는 후열에서 대기!"

"오, 네가 책임자로구나."


나름 거대한 성의 출입을 관리하는 자다. 어중간한 실력은 아닐 것이고, 펠릭스는 지난번 도웬 시케람의 최후를 떠올렸다. 인재를 수집하고 싶은 욕구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책임자는 병사를 지휘했다. 펠릭스의 마나 블레이드를 봤는데도 주저함 없이 명령을 따라 착실하게 움직였다. 하나하나가 강병이었다.


"무의미하다는 건 잘 알 텐데."


마나를 온몸에 둘러 감각을 예리하게 세운 펠릭스는 전방에서 쏘는 화살들을 움직임 약간만으로 피하며 중얼거렸다. 방패를 든 병사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지휘관의 목소리는 없었다.

펠릭스는 상대방이 반응 없이 공세를 유지하자 안타까웠다. 검술은 연습했지만, 격투술을 실전에 쓰는 건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배워둔 태권도를 여기에서 쓰게 될 줄이야.'


검을 손에 쥔 채로 즉시 몸을 움직여 병사를 걷어찼다. 유도나 권투를 배우진 않아서 손을 움직이는 건 어색했지만, 발차기는 아니었다. 펠릭스는 나름 검은 띠 보유자였다. 중학생 때 따고서 그만둔 2품 나부랭이였지만 말이다.

돌려차기와 옆차기로 방패째로 병사를 넘어트리거나 밀쳤다. 대열이 어지럽히고, 병사와 함께 섞이자 화살도 멈췄다.


'갑옷을 입고 있어서 좀 세게 때려도 죽진 않네.'


내성 성문을 지키는 병사라 그런지 모두 철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바깥 병사처럼 가죽이나 천 재질 갑옷이 아니었다.

나름 묵직한 공격을 찔러넣었다고 생각했는데 몸을 추스르고 다시 달려드는 병사도 좀 있었다.


"···큭, 모두 비켜라! 기사단 공격 개시! 마법사도 보조하라!"


방패병과 창병이 차근차근 펠릭스의 공격에 정리되자 수비대장이 사작을 투입했다.

기사는 오러 입힌 검을 들어 달려들고, 마법사는 궁수를 대신해 유도형 투사체를 만들어 허공에 띄웠다. 성문 안쪽이라 좁은 길이었지만, 그래도 폭이 15m 정도라 한 사람을 둘러싸기엔 충분했다.

그 모습을 본 펠릭스는 어깨를 으쓱하며 뒤로 다섯 발자국 물러나며 말했다.


"시간을 좀 주지. 죽이진 않았다. 데려가."

"···일레나! 병사를 후송해라!"


부장이 병사를 지휘해 바닥에 널브러진 병사를 모두 뒤로 옮겼다. 그리고서 펠릭스는 다시 다섯 걸음 앞으로 나섰다.

당당한 펠릭스의 태도에 사작들은 긴장했다. 긴장하고 있을 때는 흥분으로 덮을 수 있었지만, 병사를 후송하며 주어진 짧은 간격에 힘의 크기를 체감한 까닭이다. 냉정하게 정신을 차리니 상대방이 그 소드마스터라는 게 와 닿았다.


"나의 이름은 펠릭스 란소스 오브 인데브. 마나를 못 다루는 병사는 자비를 베풀어 살려줬지만, 너희는 다르다. 죽을 각오가 된 자들만 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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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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