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장손신희님의 서재입니다.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퓨전, 판타지

장손신희
작품등록일 :
2020.04.07 05:55
최근연재일 :
2020.11.06 06:00
연재수 :
73 회
조회수 :
9,929
추천수 :
230
글자수 :
391,305

작성
20.05.14 18:00
조회
110
추천
4
글자
12쪽

펙시스 공략전 (3)

DUMMY

창고지역 곳곳에 불을 지르고 이틀 내내 달려 강변의 작은 어촌에 도착했다.

이곳은 평소에 오론 강에서 물고기나 낚으며 생계를 꾸리는 곳이지만, 가끔 찾아오는 작은 화물선 선원을 상대로 접객업을 벌여 용돈을 챙기는 곳이었다. 그런 작은 마을인지라 20채와 나루터에 가까운 접안시설을 제외하면 보잘것없었다.

먼저 도착한 선발대의 보고로는 뭍에 끌어올려 둔 나룻배 4척이 고작이었다. 능숙한 노잡이로 부릴 수 있는 주민도 진즉에 소거해서 마을엔 아무도 없었다.


"휴식은 없다. 바로 작업 시작해! 기사는 건물을 헐어 방책을 세워라. 마력을 못 쓰는 병사는 방책을 세울 동안 말에게 먹일 풀을 가져와! 빨리 움직여. 어서! 쉬는 건 강을 건넌 다음에 해도 늦지 않아!"

""예!""


펠릭스의 명령과 독촉에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마을 중심부의 건축물을 모두 헐어서 바리케이드를 만들 자재로 만들고, 마법진을 그리기 위한 측량을 시작했다.

지시를 내린 펠릭스가 마을 변두리를 거닐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무는 듬성듬성이었지만 수풀이 너무 울창했다. 가슴까지 올라오는 작은 나무나 키 높은 풀이 사람 매복하기 딱 좋은 은폐물이다. 병사가 여물로 만들 풀을 베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 벨 수 있을지 의문.

한낮인 지금만 해도 안쪽이 잘 안 보이는데 밤은 오죽할까.


"펠릭스님. 앞으로"

"편하게 말하래도."

"···펠릭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일단 강을 건너야지. 3일이면 위치가 들킬 거야. 방어를 굳히려 해도 한계가 있어."


10기나 되는 기간트 골렘을 보유한 이곳을 정면에서 공격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파괴되거나 대파·중파 당한 5기를 제외하더라도 42기에 달하는 매그넘 골렘이 있다. 차라리 정면에서 공격해주면 고마운 전력이었다.

그러나 상대방이 그렇게 멍청할 수는 없다. 지세트에서는 '어차피 멸망 당해서 죽을 텐데, 죽을 땐 죽더라도 여한 없이 싸워보자.'라는 자포자기 겸 최후의 발악이 섞인 전투였다. 순교자가 되어 지세트에서 저항의 상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었기에 지세트는 한결 부드러운 통치를 받을 수 있었다.

알카탄은 정반대였다. 트렐라드 변경백과 그 일대의 공세를 막아낼 국력이 있었다. 공국과 변경백령이 맞수를 겨루는 상황만 놓고 본다면 공국이 나약해 보이지만, 뒷사정까지 본다면 의미가 전혀 달라진다.


'트렐라드와 인근의 여력을 모두 쥐어짠 공격이야. 시간을 오래 끌수록 미래가 피폐해져.'


지세트 백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방향성은 다르지만, 오랫동안 고통받던 트렐라드 일대의 반격이라는 점에선 맥이 같았다.


"네리카. 전쟁에 나선 기분이 어때."


변두리에서 돌아온 펠릭스가 건물을 해체하는 기사를 보며 옆의 네리카에게 말했다. 네리카는 이번 전투에서 펠릭스의 종자 자격으로 참가했다. 따라서 전투에 나서서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고, 멀리서 전장을 지켜본 관찰자였다.

네리카는 주위를 살핀다. 주위에는 펠릭스를 제외하면 아무도 없었다. 자신의 말을 엿들을 사람이 없자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무서워. 네가 죽을까 봐. 내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워."

"그렇겠지."


가장 흔하지만 솔직한 답변이었다. 일반인의 시선으로 본다면 자신이 전쟁에 참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 이럴 것이다. 비록 전장 한복판이 아니었다고 해도 피비린내와 쇳가루 냄새, 비명과 함성은 전장을 떠나기 전까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것들은 사람을 중독시키는 마력이 있었다. 피에 미치거나, 함성에 돌아버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전투 뒤 약탈품에 매료되거나.


"앞으로 날 따라다니게 된다면, 지금 같은 일을 자주 겪을 거야."

"······."


펠릭스는 자신의 업적 욕심이 수많은 전쟁을 만들 거라는 미래를 알았다. 싸움을 불사하더라도 대업을 이룩할 마음이었으니까.

지금까지 네리카를 곁에 둔 건 자신을 돌봐준 누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뿌린 씨앗을 수습하려는 마음도 없지 않았지만, 수년간 자신의 곁에서 자리를 지켜준 사람에 대한 도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다. 펠릭스의 앞날은 고난과 역경으로 가득하다. 당사자가 그런 불가능을 정면에서 부수려고 할 테니까. 그 길에 네리카를 끌고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내 옆에 있을 수 있겠지. 앞으로는 달라. 지세트를 공격하러 갈 때 내 곁에 있던 건 네리카뿐만이 아니었어. 배너렛 나이트가 있었고, 골렘 나이트가 주위에 있었어. 네가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세우고 나와 같이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없, 습니다."

"그래. 네가 내 곁에 있으려면 내 주위 사람과 비슷해져야 해. 가까이 있어야 할수록 뛰어나야 하고. 이번 전쟁은 내 종자로 따라다닐 수 있겠지. 그다음은 나도 보장할 수 없어."


펠릭스는 네리카에게 비정한 말을 건넸다. 일단 방 밖으로 꺼냈고, 다른 사람을 돕는 것으로 칭찬과 경외를 받는 경험도 줬다. 그다음부터는 네리카의 몫이다. 펠릭스는 네리카의 부모가 아니었으니까 평생 데리고 지낼 순 없었다.

네리카는 펠릭스의 옆에서 가만히 섰다. 뭔가 반응이 오겠거니 싶어서 가만히 선 펠릭스는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고개를 돌려 네리카를 흘겨보았다.


"······."


일반적인 사람은 이런 경험을 겪으면 다양한 반응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다. '어떻게 날 내칠 수 있어!'라던가 '미안해요, 버리지 말아 주세요.'라는 식. 이건 자신감과 자존감이 평범한 사람이 보일 수 있는 반응이었고, 네리카는 달랐다.

슬픔에 겨워 울음을 터뜨리지 않았고, 분노로 몸을 떨지도 않았다. 그저 차분하게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펠릭스가 고개를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고선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 말했다.


"노력할게."


펠릭스는 네리카의 심장에서 느껴지던 자신의 마력이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지금까지 큰 변화 없이 펠릭스가 제공한 마나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지금 느껴지는 마력은 자신의 마력과 크게 달랐다. 네리카만의 마력으로 바뀐 것이다.

가정교사 함셰르가 말했듯, 기사의 마력이란 순수한 마나에 가깝다고 했다. 그렇기에 펠릭스의 마나를 받으면 펠릭스의 마력과 비슷해야 이치에 맞았다. 그런데 네리카의 마력에서 펠릭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유는 하나.


'진짜 익스퍼트가 됐어? 방금 문답 하나만으로? 진짜? 진심?'

"왜 그래?"

"아니, 뭔가 달라진 것 같아서."

"그렇게 보여? 어떻게 달라진 것 같아?"


네리카는 펠릭스에게 물음을 던졌다. 그 말을 듣자마자 펠릭스는 '나 오늘 어때?'라고 묻는 고등학교 시절 여자사람친구의 집요함이 떠올랐지만, 곧 다른 걸 깨닫는다. 네리카가 먼저 질문을 한다고?


"···그걸 내가 알아차릴 수 있게 앞으로 보여줘 봐."

"응."


둘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

네리카는 펠릭스의 곁을 떠나 밖에서 병사가 캐온 잡초를 여물로 만드는 작업을 주도하러 떠났고, 펠릭스는 홀로 남아 강변에 서서 흐르는 물을 바라보았다.


* * * *


펙시스 성, 네안칼 백작은 주위의 논의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창고지역에서 화재가 곳곳으로 번져 막대한 피해가 생기는 걸 성벽 위에서 맨눈으로 보느라 눈에 빨갛게 달아올라 토끼처럼 보였다.

네안칼 백작에겐 가신과 봉신, 조언자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들어올 리가 없었다.


'왜 하필 여기지?'


나흘 전, 알카탄 국왕이 손수 이끈 군대가 트렐라드의 침공군을 박살 냈다는 소식을 전했다. 트렐라드 변경백에게 평화협상을 요구할 예정이며, 많은 포로를 잡았으니 협상에 응할 것이라는 희망찬 대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지세트에서 올라온 별동대가 나타났다. 전쟁을 겪지 않고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국왕의 전언만 믿고 수도로 보낸 가족을 불러들였다가 낭패를 보았다. 텔레포트 게이트를 허겁지겁 다시 가동해서 수도로 보내는 추태는 물론이고, 다시 교역을 가동하라는 지시를 취소하느라 온갖 자잘한 사고가 터졌다.

추태와 사고보다 더 화나는 건 왜 하필 여기냐는 의문 때문이었다.


'왕도보다 더 가까운 요충지도 둘이나 되고, 여기보다 더 번영한 곳도 셋이나 되는데. 왜 여기냐?'


그래서 펠릭스가 골랐다고 백작은 생각하지 못 했다.

수도보다 가까운 군사요새는 방비가 잘 되었으며 수도에 가까운 만큼이나 위험요소가 많았다. 포위당해 고사당할 수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함락을 장담하기 어렵다. 기간트 골렘 10기로는 버거운 곳이다.

더 번영한 상업도시는 알카탄을 과하게 자극할 수 있었기에 논의대상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번창한 만큼이나 넓은 도시를 250명으로 통제할 수 있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따라서 골렘이 적당히 있고, 상업이 아닌 교통의 중심지로서 번영에 비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펙시스가 적당했다.

네안칼 백작으로서는 이러한 결단 사유를 알 수 없었다.


"우군의 기간트 골렘 3기로는 저들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매그넘 골렘도 문제요. 하적(荷積)을 위해 개조된 것들이라 전투에는 부적격해요. 100기가 넘으나 검을 배운 자는 스무 명도 안 됩니다."

"그러길래 진작 마법사 대신 기사로 채워놓자 하지 않았습니까. 화물에 흠집 나면 안 된다고 마법사만 쓸 때 알아봤지."

"뭐라고? 그래서 당신 아들이 익스퍼트 중급이니까 골렘 받아보겠다고 말한다는 걸 누가 모를 줄 아나?"

"뚫린 입이라고 헛소리하기는. 3서클밖에 안 되는 당신네 조카가 스스로 매그넘 골렘을 따낸 줄 알겠어?"


앞에서 소란스럽게 떠드는 자들이 거슬렸다. 평소에는 이런 비방전으로 상대방의 약점을 잘 주워담았다가 나중에 차근차근 교섭 재료로 쓰지만, 지금 이런 협상용 카드는 아무리 많아도 쓸모가 없었다. 가신이나 봉신의 약점을 산더미처럼 안겨준다고 소드마스터 상급이 이끄는 유격대가 돌아가겠는가.

유의미하거나 생산적인 대안을 내놓지 않고 상대방의 잘못으로 몰아가려는 상업귀족의 한심한 모습에 한숨도 안 나왔다.

네안칼 백작은 팔걸이를 손등으로 툭툭 두들겼다. 영주의 홀에 모인 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백작의 말에 집중한다. 그들도 뾰족한 수가 안 보여 답답하던 차였다.


"수비를 굳힌다. 수성용 장비를 최대한 서둘러, 알겠나?"

"가, 각하! 그러면 성벽 바깥 공방과 민가가···!"

"뭐 어쩌자고? 기간트 골렘 3기로 10기를 상대할 수 있겠나? 마법을 영창 하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매그넘 골렘들이라도 배치할까?"


네안칼 백작의 질타에 봉신이 입을 꾹 다물었다. 딱히 특별한 것 없이 교역중심지로서 가공무역이 그나마 밥줄인 펙시스에서 거액이 필요한 기간트 골렘을 다수 보유하는 건 낭비였다. 몬스터가 날뛰는 곳이 아니고, 도적도 없었다. 밀수꾼과 도둑만 조심하면 되는 평온한 도시였다.

기간트 골렘이 많아질수록 봉신이 설 자리가 좁아져서 골렘 확보를 꾸준히 반대한 봉신 파벌은 이곳에서 아무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백작과 혈연으로 이어진 가신 파벌이 그나마 어깨와 목을 세울 수 있을 따름이다.


"궁기병을 준비해라. 트렐라드 변경백 놈이 협상에 나설 때까지 최대한 지연해! 왕궁에 부양선 지원 요청하고!"

"예, 각하!"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흔한 양판소 세계에 전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5 셔플 & 딜 (2) +1 20.07.03 76 4 13쪽
44 셔플 & 딜 (1) 20.06.30 83 3 10쪽
43 진흙탕 위 나룻배 (8) 20.06.28 91 2 11쪽
42 진흙탕 위 나룻배 (7) 20.06.25 88 1 12쪽
41 진흙탕 위 나룻배 (6) 20.06.21 89 2 12쪽
40 진흙탕 위 나룻배 (5) 20.06.16 90 2 12쪽
39 진흙탕 위 나룻배 (4) 20.06.01 89 3 11쪽
38 진흙탕 위 나룻배 (3) +1 20.05.30 95 2 11쪽
37 진흙탕 위 나룻배 (2) +1 20.05.28 97 3 12쪽
36 진흙탕 위 나룻배 (1) 20.05.26 101 3 11쪽
35 펙시스 공략전 (6) 20.05.23 102 1 12쪽
34 펙시스 공략전 (5) 20.05.19 101 2 11쪽
33 펙시스 공략전 (4) 20.05.18 107 3 12쪽
» 펙시스 공략전 (3) 20.05.14 111 4 12쪽
31 펙시스 공략전 (2) 20.05.12 108 2 12쪽
30 펙시스 공략전 (1) +1 20.05.11 131 3 11쪽
29 지세트 최후의 날 (3) 20.05.09 138 3 12쪽
28 지세트 최후의 날 (2) 20.05.08 143 5 12쪽
27 지세트 최후의 날 (1) +1 20.05.07 153 5 11쪽
26 정벌 준비 (7) +1 20.05.05 155 6 11쪽
25 정벌 준비 (6) 20.05.05 154 4 12쪽
24 정벌 준비 (5) 20.05.04 158 3 11쪽
23 정벌 준비 (4) 20.05.03 164 6 11쪽
22 정벌 준비 (3) +1 20.04.29 182 5 12쪽
21 정벌 준비 (2) +1 20.04.27 190 6 12쪽
20 정벌 준비 (1) 20.04.25 209 7 12쪽
19 기간트 골렘 (2) +2 20.04.25 210 5 13쪽
18 기간트 골렘 (1) 20.04.24 227 6 13쪽
17 서임식 (6) +2 20.04.23 226 7 12쪽
16 서임식 (5) 20.04.22 224 7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