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5. 한국 시리즈 (3)
1회 3루타에 이은 투런 홈런으로 먼저 선취점을 챙긴 스타즈.
하지만 4, 5, 6, 7, 8번 타순이 연이어 아웃 당하며 추가 득점 없이 2회 말 공격까지 삼자범퇴로 끝이 났다.
임종휘와 최현우의 타순을 붙여 놓은 게 얼마나 잘 한 결정이었는지 알 수 있는 경기 초반.
-슈우욱-
-팡!-
“볼! 볼넷!”
하지만 3회 말, 선두 타자인 김운일 선배가 볼넷으로 출루하면서 다시 한 번 스타즈에게 기회가 왔다.
“조정하 선수, 번트를 준비합니다.”
“아직 2점차이기 때문에 한 점 더 내고 가겠다는 계산이죠.”
-슈우욱-
-딱!-
“번트 댔고, 투수 잡아서! 아!!! 공을 더듬습니다!!”
“아, 이러면!!”
“뒤늦게 1루에!! 던지지 못합니다!”
“아···”
“아쉬운 장면입니다. 조정하 선수가 번트를 잘 댔고, 1루 주자 2루 진루라는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 했는데 본인까지 살아 버렸네요.”
“투수의 실책이죠, 뭐. 조정하 선수가 발이 빠른 선수는 맞지만, 이런 번트 타구에 저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큰 무대에서 마음이 급했나봅니다.”
그렇게 타석에 들어서는 2번 타자 임종휘.
“무사 1, 2루 찬스에서 임종휘는 가디언스 입장에서는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 다음 타자가 최현우라는 걸 생각 해 보면 더더욱···”
-딱!-
가디언스 입장에서는 다행히도 종휘의 타구는 내야를 벗어나지 못 했다.
하지만 타구가 빗맞으면서 상당히 느린 속도로 3루 파울 라인을 타고 흐른다.
후진 수비를 하고 있던 3루수를 대신해 투수가 재빨리 달려 와 봤지만, 이미 늦었다고 판단 한 포수는 투수에게 공을 잡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잡지 마!! 그대로!!”
파울 라인을 타고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파울이 될 수도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희망을 건 판단.
하지만 타구가 파울 라인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고, 임종휘는 내야 안타로 1루를 밟게 된다.
“이 타구 벗어나지 않으면서 내야 안타가 됩니다.”
“무사 만루네요. 그리고 타석에는···”
“최현웁니다.”
“네, 최현우네요.”
“만~루 홈! 런! 최!! 현!! 우!! 만~루 홈! 런! 최!! 현!! 우!!”
5차전은 다시 스타즈의 홈인 고척돔으로 돌아와 펼쳐지는 덕분에 내 만루 홈런을 기대하는 팬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직전 타석을 떠올리며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밀어서 띄우려고 했던 타구가 넘어 갈 정도면, 대충 쳐도 넘어 갈 것 같은데?’
그래서 이왕 무사 만루의 밥상을 받은 김에 제대로 노려서 쳐 보려고 한다.
노리는 구종은 패스트볼, 코스는 바깥쪽 높은 코스.
‘바깥쪽 높은 코스로 날아오면, 더 볼 것 없이 영웅 스윙 돌리는 거지.’
그 코스의 투구를 있는 힘껏 치는데 성공한다면, 최소 외야 플라이다.
그러면 아무리 못 해도 3루 주자는 홈을 밟을 테니, 1타점을 만들어 내면서 본전은 뽑는 셈.
“후우···”
나는 바깥쪽 패스트볼의 궤적을 머리 속에 미리 그려 둔 후, 공 몇 개를 지켜봤다.
그리고 1-2의 카운트에서 날아오는 바깥쪽 높은 코스의 공.
‘제발 패스트볼이어라!’
내 기도를 누군가 들어 준 것인지, 공은 패스트볼 궤적을 그리며 정직하게 날아왔다.
그리고 배트가 공에 맞는 순간, 나는 직감 할 수 있었다.
‘오늘은 전타석 홈런도 되겠는데?’
한국 시리즈 5차전이 펼쳐지는 오늘.
내게는 야구가 너무 쉬운 날이었다.
“최현우의 만루 홈런!!! 스코어 0 대 6으로 스타즈가 앞서 나갑니다!”
“”“
한국 시리즈 5차전 스타즈 타순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극단적’이다.
절정의 타격감을 선보이는 2번 임종휘와 3번 최현우와는 달리, 4, 5, 6, 7, 8번 타순은 타석에서 스트라이크를 그대로 흘려 보낸 후, 헛스윙 한 번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리고 그 다음 공에 삼진을 당하는 장면이 ‘ctrl+c, ctrl+v’한 것처럼 반복되는데, 아마 0 대 6이라는 스코어가 아니었다면 팬들은 정신병에 걸릴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9번과 1번 타자가 나름 밥값을 해 주는 덕분에 2, 3번 타자의 타격감이 더 빛이 났는데, 그런 상황은 1회와 3회에 이어 5회에도 다시 반복되었다.
-따악!-
“우중간에 뚝 떨어지는 타구! 1루 주자 3루까지, 타자 주자 2루로! 2루에서 세잎!!”
“1루 주자의 리드가 조금만 더 길었으면 홈까지 들어 갈 수도 있었겠지만, 스타즈는 그렇게 하지 않네요.”
“이미 6점을 리드 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죠. 거기에다 다시 또 최현우잖습니까? 아마 기대 하는 게 있을 겁니다.”
-따아악!!-
“아~! 이번에도 넘어가는 타구! 쓰리~런 홈런!! 스코어 0 대 9!!”
“이야~ 한 경기에서 2점 홈런, 만루 홈런, 3점 홈런을 전부 때려 내면서 9타점을 책임 지네요.”
“이거 솔로 홈런만 하나 더 추가되면 그거 아닙니까?”
“그렇죠. ‘그거’죠.”
“그러고 보니 임종휘 선수도···”
“···어?”
“”“
스타즈 타선은 스코어가 0 대 9가 된 이후에도 여전했다.
2, 3번에 있는 종휘와 내가 팀 득점을 캐리하고, 아웃 카운트는 4번부터 8번까지의 타순이 캐리하는 흐름.
5회 말 3점 홈런 이후에도 4, 5, 6번 타자들은 아웃되었고, 6회 말에도 7, 8, 9번 타자들은 여전했다.
심지어 7회 말 선두 타자로 나선 정하 선배까지 아웃 되는 바람에 종휘는 3타석 3타수 3안타 0타점 상황에서도 주자 없이 타석에 나섰다.
“종휘야, 미안하다.”
“선배님이 왜요. 선배님 두 번이나 출루 하셨잖아요.”
“한 번은 상대 에러지.”
“그래도요.”
조정하는 오늘 번트 시도 때 상대 투수의 에러로 출루 한 걸 제외하면 볼넷 한 번이 출루의 전부였다.
물론 두 번 모두 내 홈런으로 홈을 밟으면서 2득점을 책임지긴 했는데, 종휘랑 내가 너무 잘 치다보니 1번 타자 자리에서 제대로 된 안타 하나도 없는 상황이 꽤나 미안했던 모양이다.
“현우야, 너한테도 미안.”
“됐어요. 내일 잘 치면 되죠. 그리고 어차피 이기면 장땡 아니에요?”
“그렇긴 하지?”
7회 말 1사 상황에서 0 대 9의 스코어는 우리 스타즈의 승리 확률이 아주 높다는 걸 알려준다.
게다가 스타즈에는 지금까지 7이닝 무실점을 기록 한 태한이 형이 8회 등판을 준비하고 있고, 리그 최강이라는 필승조도 여전히 건재한 상황.
오늘 경기를 질 가능성이 1%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따아악!!-
“오!!! 오!!!”
“갔냐?!!! 갔다!!!!!”
크흠··· 흠.
오늘 경기를 질 가능성이 0.1%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오와아아아아아!!!!!”
“자전거다, 자전거!!!”
게다가 종휘는 방금 전 솔로 홈런으로 한국 시리즈에서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는 진귀한 광경까지 만들어 냈다.
동료 선수들이나 경기장을 찾은 관중 분들은 종휘의 사이클링 히트를 축하 하면서도 내 움직임에 눈을 떼지 못 했는데, 그건 아무래도 백투백 홈런과 함께 또다른 대기록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야, 현우.”
그런데 내가 타석에 들어서니, 가디언스 포수인 전상현 선배가 말을 걸어온다.
“네?”
“우리가 잘 먹고 잘 사는 게 다 팬들 덕인 거 알지?”
“···네. 알죠?”
“잘 해라.”
“네?”
“앞에 봐.”
전상현 선배는 알 수 없는 말을 하더니, 이내 투수에게 사인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사인을 내기 시작했기에, 더 이상 묻지 못 하고 앞을 볼 수 밖에 없었고.
‘뭔 소리야?’
하지만 투수의 손 끝에서 나오는 초구를 본 순간, 전상현 선배의 말을 100% 이해 할 수 있었다.
-슈우욱-
‘바깥쪽 높은 코스 패스트볼? 이거···’
팬이 없으면 프로 스포츠는 존재 할 수 없다.
우릴 보기 위해 돈을 써 주는 팬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받고 공놀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프로라는 명함을 달고 있는 야구 선수가 가장 먼저 생각 해야 할 건?
‘팬들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고싶은가.’
평소의 팬들은 자기가 응원하는 팀이 승리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소 철저한 몸 관리를 하며 더 야구를 잘 할 수 있게 노력하고, 더 나아가 이기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렇다면 이미 승패가 정해진 경기에서, 한 나라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가 대기록을 앞두고 있을 때 해야 할 일은?
당연히 그 기록을 완성하는 일이다.
-따아악!-
물론 상대하는 입장에서 ‘허용의 팀’이 되는 건 기분 엿 같은 일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홈런을 헌납하는 것 또한 가디언스를 응원하는 팬들에게는 못 할 짓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가디언스 팬들조차 해외 진출을 앞두고 있는 스타 플레이어의 대기록이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다면?
‘’가디언스 팬들도 바라고 있기 때문에 그랬다.’라고 변명 할 수 있는 거지.’
나는 전상현 선배의 그 말들이, 조금 다른 방식의 팬 서비스를 위한 거라고 변명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솔직히 나는 무슨 소린지 알아 듣지도 못 했잖아?’
솔직히 날아오는 공이 바깥쪽 패스트볼이라는 걸 파악하기 전까지는 전상현 선배가 무슨 말을 했는지 파악하지도 못 했다.
내가 홈런을 칠 수 있었던 이유는 전상현 선배가 알려줘서가 아니라, 내가 바깥쪽 높은 공이 날아온다는 걸 알아채고 배트를 휘둘렀기 때문이다.
가디언스 배터리가 홈런 허용 한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잘 쳤다는 뜻이다.
“야구가 너무 쉽다!”
“”“
한국 시리즈 5차전은 스타즈의 승리로 끝이 났다.
시리즈 스코어 3 대 2로 스타즈가 다시 앞서 나가기 시작했고, 스타즈의 통합 우승까지 남은 건 한 번의 승리 뿐.
반면에 상대인 가디언스 입장에서는 이제 단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할 수 없기에 당연하게도 총력전을 선언했다.
그렇게 시작된 한국 시리즈 6차전.
양 팀 모두 결사의 각오로 경기에 나섰으나, 스타즈와 달리 가디언스 선수들은 의욕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 못 하는 모습을 보이며 연달아 실책이 나왔다.
준 플레이오프 5경기와 플레이오프 4경기에 이어 한국 시리즈 6차전까지, 매 경기 체력 소모가 심한 포스트 시즌에서만 총 15경기를 치렀으니 이제 체력이 바닥 날 때도 된 것.
그 탓에 5차전까지 치열하게 승부를 펼쳤던 가디언스는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라운드에는 체력이 바닥난 탓에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가디언스 선수들만 남아 있었다.
“이거 어째 우리가 악역이 되는 느낌 아니냐···?”
스코어 2 대 9로 앞서고 있는 9회 초, 한국 시리즈를 마무리 짓기 위해 마운드에 올라 온 태한이 형은 몇몇 선수들이 벌써부터 눈물을 보이고 있는 가디언스 덕아웃을 보며 말 했다.
“그래도 이긴 건 이긴 거죠. 정규 시즌 우승 이러려고 하는 거지.”
“그렇긴 하지···”
여기까지 어떻게든 이기려고 아득바득 발버둥 쳐가며 올라 온 가디언스 선수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정규 시즌에 1위를 하기 위해 아득바득 발버둥 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이러려고 정규 시즌에 1위를 한 것이고, 가디언스는 그걸 실패해서 지금 악으로 깡으로 버티고 있는 거다.
“우승 하러 가요. 메이저리그 같이 가자면서요.”
“그래. 당연하지.”
“”“
“이 공이 들어오면서 스트라이크 아웃!!! 이렇게 스타즈 팬 분들의 오랜 기다림이 끝이 납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누구도 외치지 못 한 한 마디! SH 스타즈 우승!! SH 스타즈 통합 우승!!! 반짝이는 별이 태양보다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운 밤입니다!”
“”“
21년만에 만들어 낸 SH 스타즈의 우승은 내 삶에 참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가장 첫 번째로는···
“흐어어엉. 자기야아···”
시즌 시작 전, 방출된 상태로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던 내가 한국 시리즈 MVP가 된 것이 제일 크게 와닿는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서정이는 한국 시리즈 MVP는 꿈도 못 꿨었다며, 야구를 계속 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 했단다.
그런 남편이 별의 별 기록을 다 갈아 치우며 결국에 한국 시리즈 MVP까지 따 왔으니, 감격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두 번째 변화는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어필이 더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우리 구단주님과 한 약속을 지켜 냈으니, 이제 나는 정말로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 할 수 있는 신분이 되었다.
원래도 거의 기정사실이긴 했는데, 진짜 우승 했으니 이제 진짜로 할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 변화는 내게도 에이전트가 생겼다는 거다.
사실 그 전에도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었는데, 태한이 형이 통합 우승 하고 나면 메이저리그 진출을 대비해서 좋은 사람 소개시켜 준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최현우라고 합니다.”
“네, 반갑습니다. CAA 스포츠의 네즈 발레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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