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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아이 엠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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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5.12 15:23
최근연재일 :
2021.12.21 18:20
연재수 :
187 회
조회수 :
38,381
추천수 :
506
글자수 :
979,887

작성
21.05.12 18:30
조회
1,298
추천
15
글자
13쪽

Episode 1. World of Reflector (2)

DUMMY

《어서 오세요. 리플렉터의 세계에.》


반투명한 창은 눈앞을 가로막듯 떠 있다. 창에 적혀 있는 글자는 나를 환영하는 문구다.

어둠이 사라진다고 생각한 순간 가장 먼저 발견했다.

뭐, 눈앞에 있으니 못 볼일은 없다.


“···이게 튜토리얼인가?”


조금 당황스러움을 숨기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의식이 어둠에 빠지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선택했던 건 튜토리얼이라는 문구다.

그렇다면 이게 튜토리얼일까. 그럴 가능성은 크다.


“흠···.”


지금까지 나름 가상현실을 즐겨본 기억으로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안내 AI. 혹은 친절한 안내문이 설명해준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눈앞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반투명한 창은 튜토리얼을 안내하는 도구겠지.


‘조금 실망인가. 현실보다 현실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애초에 가상현실이라는 점에서 현실과는 명백히 다르다. 그 사실을 자신에게 들려주듯 되뇌며, 주변을 둘러봤다.


새하얀 공간에는 아무것도 없다.

의식이 아득해질 정도로 새하얀 공간은 오래 있으면 정신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얼룩 하나 없는 건 역시 만들어진 환경이라 그런 걸까.


조금 주변을 둘러본 결과로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공간은 간단한 작업만 하는 장소인 모양이다.


‘짧게 지나가는 공간이라 별로 신경 쓰지 않은 건가?’


말하자면, 캐릭터를 만들 초기 장소다.

휑하니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은 완전히 그런 느낌이다.


- 반짝반짝.


반투명한 창을 무시하고 다른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다만 시선을 돌릴 때마다 반투명한 창은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평범하게 생각한다면 눈앞의 창을 건드리면 다음 작업이 시작된다. 그러니 반투명한 창이 반짝이고 있겠지.

하지만.


“조금 더 구경해도 상관없겠지. 딱히 제한 시간도 보이지 않고.”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

플레이어 대부분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을 빨리 넘어가려고 대충 둘러본다. 눈앞에서 반짝이는 반투명한 창의 존재도 무시하기 힘들다. 너무 반짝이는데, 이거.

물론, 나도 이런 공간에 오래 있고 싶은 건 아니다. 아무것도 없어서 심심할 뿐이다.


그러나.

이 환경은 【World of Reflector】에 존재하는 장소다.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조직. 오버로드가 정말 캐릭터를 만들기만 하는, 의미 없는 장소를 만들었을까.

그렇다면.


여기에도 모종의 장치가 있어도 이상한 이야기는 아니다.


“일단, 게임인 모양이고.”


더욱이, 오버로드는 언제나 【리플렉터】에서 현실을 추구했다.

한순간의 선택이 수많은 갈래로 나뉘는 곳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추구한다면, 이런 공간을 간단하게 넘긴다고 생각할 수 없다.

오히려 무언가 장치를 숨겨두는 게 현실답다고 생각된다. 게다가, 그게 더 흥미진진하다.


그 후로 주변을 둘러보고, 걸어보고, 뛰어보고, 현실에서는 숨이 찰 정도의 움직임으로 공간을 종횡무진 돌아다녔다.

신기하게도 현실의 체력을 넘어서 움직여도 숨이 차지 않았다. 아니, 그뿐만 아니라 체력이 전혀 줄지 않은 느낌이다.


‘이건, 게임인 탓인가? 그렇다면 정신력의 일종일까.’


얼굴 근처에서 계속 반짝이는 반투명한 창을 무시하며 현재 상황에 관한 고찰을 시작했다.

움직이는 것과 체력. 본래의 움직임과 다른 위화감. 그런 사소한 차이를 나름대로 생각하기를 한참.


“흠, 흠.”


분명 아무것도,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생각하는 내 귀에 확실하게 들려온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돌린 시선.

그 시선의 끝에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검은 제복의 남자가 태연한 모습으로 있다.

단지, 머리에는 조금 말려 들어간 뿔이 있다.

게다가.


‘저건···. 털, 인가.’


목덜미 부근에 복슬복슬한 털이 나 있다.

명백히 사람이 아닌 모습에 조금 놀랐다. 그래도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진정했다.

내가 당황하고 진정하는 동안 뿔의 남자는 어딘가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의 생김새는 사람이기에 비정상인 모습은 털과 뿔뿐이다. 그게 더더욱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말하자면,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을 따라 하는 위화감. 하지만 그의 태연한 모습은 내가 느끼는 작은 위화감을 날리기 충분했다.


“저기···.”

“아, 실례. 갑작스럽게 나타나서 놀랐어.”

“그런가요.”


눈앞의 존재에 관해 생각하려다 멈췄다. 이 공간에서 그가 어떤 존재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연스러운 반응은 사람으로 보인다. 하지만 캐릭터를 만드는 초기 장소는 다른 플레이어가 올 수 없다.

그렇다면 눈앞의 존재는 AI다.


“제가 나타난 건 다름 아니라, 플레이어분께서 다음 작업을 진행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이에요. 혹시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 나타난 거랍니다.”

“다음 작업···?”


다음 작업이라는 이야기에 무심코 되물었다. 그러나 금방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반투명한 창을 이용한 캐릭터 만들기. 혹은 튜토리얼을 진행하지 않으니 나타났다. 버그 확인 같은 확인일지도 모른다.

그런 것 치고는 AI는 원인을 모르는 모습이다. 관찰하는 건가.


‘그렇게 높은 권한이 없나?’


단순한 프로그램이나 AI라면 버그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처음부터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직접 확인했다. AI가 인공지능이니 대화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그래도 눈앞의 AI는 예상 이상으로 자유분방하다.

너무 인간미가 엿보인다.


“네. 본 게임. 【World of Reflector】를 본격적으로 즐기시기 위해서는 마땅한 캐릭터가 필요하답니다. 그리고 그 캐릭터를 만들기 위한 작업은 플레이어분 앞에 있는 반투명한 창이 알려줄 예정이지요.”

“처음 시작할 때의 튜토리얼은?”


문득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물어봤다.

눈앞의 존재는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나타난 AI. 시스템 관리의 일부를 맡은 존재일 가능성이 크다.

눈앞의 AI가 관리자 AI라면 어느 정도는 플레이어를 도울 수 있다.


“캐릭터를 만드신 후에 튜토리얼이 시작됩니다. 지금은 【World of Reflector】를 즐기시기 위해서라도 캐릭터 만들기를 우선해야겠네요.”

“그래. 고마워.”

“아뇨, 제 역할인걸요.”


생각보다 깔끔한 대답에 놀라면서 눈앞의 존재가 말한 방법대로 반투명한 창을 건드렸다.

이제껏 반짝이며 자신을 주장하던 창은 한 번 건드리자 얌전해졌다. 반짝임이 사라진 반투명한 창은 공중에 마네킹 같은 캐릭터를 투영했다.

조정할 수 있는 건 색과 관련된 종류가 많다. 키나 팔다리의 항목은 보이지 않는다.


“신장을 줄이거나 늘릴 수 없는 건 왜지?”

“괴리감이 생기기 때문이랍니다.”

“흠···.”


캐릭터를 꾸미는 부분을 흥미롭게 확인했다. 다만 아쉽게도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얼굴의 조형을 직접 깎거나, 색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신장에 관련한 부분은 전혀 없다. AI의 이야기로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원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현실에 있는 육체의 정보는 이미 수집했다는 건가.’


특별한 항목이 없어서 조금 실망했다. 동시에 신장 정보를 수집했다는 정보에 놀랐다. 다만, 신장 정보는 비교적 쉽게 알 수 있다. 딱히 중요한 정보는 아니다.

캐릭터를 적당히 꾸민 나의 의식은 금방 캐릭터 설정 창으로 향했다.


“외모는, 평범한 정도가 좋겠지. 눈에 튀는 건 좋아하지 않으니까.”


신장과 마찬가지로 성별도 설정할 수 없다. 현실과 반대 성별을 고르는 게이머는 슬퍼하겠지. 나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용이다.


‘머리 색은 조금 바꾸는 게 재밌으려나.’


머리 색의 항목에서 이런저런 색을 구경했다. 한참 확인한 덕분에 숨겨진 정보도 찾았다. 마지막 색상 아래에 작은 주석이 달려 있었다.


「본 【World of Reflector】의 주민들 머리 색은 다양합니다. 자유롭게 꾸미세요!」


딱히 숨겨진 정보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주석 덕분에 거리낄 이유가 없어졌다. 주민들의 머리 색이 다양하다면 자유롭게 정해도 눈에 띄지는 않는다. 오히려 검은 머리가 눈에 띌지도 모른다.

선택한 머리 색이 마네킹에 반영되는 걸 즐기면서 다양한 색을 확인했다.


“으음.”


빨강. 파랑. 노랑. 초록.

색을 조정하는 것으로 머리 색이 눈앞에서 휙휙 바뀌는 모습은 어딘가 비현실적이다. 가상현실이니 당연한 이야기인가.

나름 이것저것 건드린 결과로 하얀색을 선택했다.


“캐릭터의 종족은 하나밖에 없나?”

“플레이어가 즐길 수 있는 캐릭터는 인간 종족입니다.”

“그런가.”


머리 색을 정하고 종족 항목에 관해 AI에게 물었더니 예상한 대답이 돌아왔다.

눈앞의 창에서 건드릴 수 있는 항목은 개인에 관한 것. 그것도 외견에 관한 것뿐이다.

종족이나 능력치에 관련된 항목이 없다. 게임 안에서 확인하거나, 어쩌면 확인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이 【World of Reflector】는 현실을 추구하는 모양이니까.

이미 나에게는 게임이라는 인상이 짙어졌다.


“캐릭터의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 사용하실 이름을 정해주세요.”

“이름, 인가.”


캐릭터 설정을 끝낸 순간을 노린 듯 AI가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반투명한 창이 자신의 할 일이라는 듯 반짝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주장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대화가 가능한 AI 쪽이 편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이름을 정하는 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란 말이지···.’


이름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래도 이름은 자신이 불리는 방식이다. 조금 다르게 말하자면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이다.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은 지금까지 여러 번 경험했다. 그리고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이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이름이 어울리려나.’


AI의 질문을 듣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면 만족하는가. 이름은 자신을 나타내는 일이다. 나 자신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그 점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하고 싶은 걸까?


‘단순히 즐기기 위해서 게임을 시작했나? 처음에는 호기심. 지금은, 마찬가지로 호기심이지만···.’


게임을 시작한 계기를 떠올리고, 행동 방침을 떠올리고, 지금 상황을 확인했다.

그렇게 하나의 답을 찾았다.


“슬로우(Slow). 이름은 슬로우로 하지.”


【World of Reflector】를 시작한 계기는 호기심이다. 호기심을 위해서 일하고, 수소문하고, 움직였다.

그러니 이번에는 충분한 휴식을 가지자는 느낌으로 정했다.


“알겠습니다. 이름, 확인 완료. 이곳에서 필요한 작업은 전부 끝났습니다. 시작 지역을 선택해주세요.”

“적당히 부탁하지.”

“···괜찮으신가요?”


【World of Reflector】의 정보가 없다. 지금은 어떤 선택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온다. 그런 생각으로 AI의 말에 곧장 대답했다.

AI는 여전히 AI 답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상관없어.”


어떤 장소에서 시작해도 느긋이 즐길 예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AI는 마지막 확인을 끝으로 나를 시작 지역으로 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준비를 간단하게 끝낸 인공지능이 문을 만들었다. 저 너머에 있는 시작 지역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전에, 조금 전부터 궁금했던 걸 물어보도록 할까.


“인공지능.”

“네?”


질문이 궁금하다거나, 대답이 듣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저 반응이 궁금하다.


“넌, 살아있나?”


갑작스러운 물음에 생각하는 모습을 보이던 AI는 질문의 내용을 듣고, 어딘가 즐거워 보이는 웃음을 지었다.

질문에 대응하는 루틴이 없나. 아쉽지만 반응을 확인했으니 용무는 끝났다.


“실례.”


문을 향해 걸어가자 시야가 점차 하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야가 완전히 물들기 직전. 귓가에 스치듯이 AI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리플렉터】의 세계. 또 하나의 세계인 【World of Reflector】입니다. 부디, 즐겨주시길.”


AI의 대답에 떠오른 감상은 하나.


‘···어딘가의 광고 문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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