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연재수 :
306 회
조회수 :
14,695
추천수 :
345
글자수 :
1,835,784

작성
21.02.19 06:05
조회
984
추천
3
글자
12쪽

[Ego] 0장 1화

DUMMY

주위에는 담녹색의 화원이 시야 한가득 펼쳐져 있다.

드문드문 비치는 아침 햇살이, 숲을 가로지르는 그림자를 거두어주는 한때.

멀리서는 숲의 주민들이 지저귀는 평화로운 광경에 한마디를 내뱉는다.


“여긴, 어디야?”


시야를 가득 메운 나무, 나무, 나무. 그리고 띄엄띄엄 핀 꽃들.

자연이 일구어낸 천연의 화원에서 남자는 곤란하다는 듯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반짝거림이 가득한 장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오래된 가죽 망토와 그 아래에서 언뜻 보이는 가죽 갑옷의 존재가 명백한 위화감을 부여하며, 남자가 이 장소에 있는 사실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한참을 둘러보던 남자는 품 안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꽃밭 위로 몸을 뉘었다.


“중요한 건 제대로 확인하라고···.”


시선은 하늘을 향한 채 중얼거리듯 말한 남자는 무언가 만족했는지, 천천히 일어났다.

꽃밭을 뒹군 망토에는 가지각색의 꽃잎이 처음부터 있었던 무늬인 것처럼 망토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확인한 남자는 망토를 한번 휘날리더니, 정면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


처음 보는 숲을 걷기를 한참. 어디를 둘러봐도 시야를 가득 메우는 초록의 벽을 바라보며 남자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길을 잃은 모양이네. 곤란한걸.”


조금의 표정도 보이지 않는 남자의 모습은 말과는 달리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기색이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비슷비슷한 광경에 정말로 길을 잃은 듯 한동안 멀뚱멀뚱 주위를 둘러보더니, 떨어져 있는 나뭇가지를 주웠다.


“음. 이거면 충분해.”


무기질적인, 그러나 어딘가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을 내뱉은 남자는 주워든 나뭇가지를 가지고 햇볕이 내리는 장소로 움직였다.

그리고 발치의 흙을 평평하게 다지더니 그 위에 나뭇가지를 세웠다.


“자, 길은······. 저기다.”


세웠던 나뭇가지는 아주 일순간 하늘을 향해 몸을 뻗었다가 이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끝이 가르치는 방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모두와 여행했을 때는 이렇게 길을 찾았거든. 이번에도 잘 될 거야.”


나뭇가지가 향한 방향을 보이지 않는 누군가를 설득하며, 확신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나아갔다.


-+-


“우아악! 살려줘어!”


근거 하나 없는 방법으로 숲을 나아가는 남자의 귓가에 누군가의 비명이 들려왔다.

주변에는 여전히 울창한 나무들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았다.

비명이 들려온 위치는 남자의 진행 방향에서 오른쪽 대각쯤. 소리의 크기로 거리를 예상하니, 그리 멀지 않은 듯했다.

남자는 비명을 들은 순간, 입가를 작게 올리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봐, 길을 찾았지?”


길을 모른다면 안내할 사람을 구하자. 어느새 그런 방침이 되었는지, 남자는 자신만만한 말투로 길을 찾아줄 사람을 찾았다며 비명이 들려온 방향을 향해 나아갔다.

소리가 들린 곳을 향해 조금. 주위 한가득한 모습의 숲과는 명백하게 다른, 사람이 다니는 길의 모습이 나왔다.

나무와 나무 사이가 넓고 사람의 왕래가 꽤 자주 있었는지, 주변에는 다니기 쉽도록 가지치기까지 되어있는 어느 의미로 정갈한 길이 나온 것이다.

남자는 길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조금 전 들려온 비명의 주인을 찾아 시선을 헤맸다.


“음?”


흙길을 들어서고 비명이 들려왔던 방향을 향해 시선을 돌려봐도 보이는 것은 숲과 길뿐.

어떻게 된 일인 걸까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남자는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려봤다.

비명이 들린 방향이 다른 곳이었을 경우와 비명의 주인이 이미 사건을 해결하고 길을 지났을 경우, 그리고 비명의 주인이 이미 봉변을 당해 사라졌을 가능성.

정보가 지나치게 적은 까닭에 한참을 고민하다가 한가지. 또 다른 가능성이 떠올랐다.


“이건···. 운명이 이끄는 길이 확실해.”


나뭇가지가 알려준 방향으로 나아갔더니 들려온 비명과 찾아낸 길. 그 모든 사건이 운명이라는 추상적인 단어가 해결해주리라 생각한 남자는 그럴듯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스스로 만족했다.

사건은 해결되었으니 길을 따라서 걸어가려는 순간.


“저기요! 살, 살려주세요! 망토 쓰신 분!”


남자의 머리 위에서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목소리가 들린 방향을 향해 자연스레 시선을 올리니 수상쩍은 차림의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

누가 보아도 수상쩍은 차림인, 가발이 명백한 갈색의 머리와 광대가 쓸법한 이상한 모양의 안경. 좌우 색이 반전된 흰색과 검은색의 청년.

남자는 올린 시선을 그대로 흘려넘기며 하늘을 향하더니 한차례 눈을 감았다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잠시만요오!!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구요!”


남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는 모습을 본 청년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수상쩍음을 부정했다.

길가에 있는 나무를 올라탄 기묘한 복장의 청년, 누가 보아도 수상하다며 거리를 두었을 광경이지만 남자는 청년의 말을 듣고 걸음을 멈췄다.

무뚝뚝하면서도 자신의 말을 들어주었다 생각한 청년이 이때라는 마냥 남자에게 자신을 구해달라 부탁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청년의 부탁을 들으면서도 어째서 그가 도움을 요청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청년은 단순히 높이가 조금 높을 뿐인 나무에 올라타 있을 뿐, 별다른 문제가 없었고. 조금 설명을 더 하자면 그 나무 아래에는 나무에 앞발을 기댄 자그마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고 있을 뿐이었다.

그 때문에 남자는 떠나려던 자리 그대로 멈춰 서서 청년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무런 반응 없이 자신을 보기만 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착각을 한 것인지 청년은 울먹이는 기세로 흥정을 시작하려 했다.


“저, 저를 구해주시면! 마을로 갔을 때 마수 회피 약을 드릴게요! 게다가! 돈! 보수까지 있어요! 그러니까···. 살려주세요오···.”


기묘한 모양의 안경에서 푸른 결정이 흘러넘칠 때쯤, 남자가 입을 열었다.


“······무엇에게서?”

“네?”


남자는 청년의 모습에서 대체 어떻게 구해달라는 것인지 진지한 얼굴로 물어보았고, 청년은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얼빠진 목소리를 내었다.

얼빠진 목소리와 넋이 나간 얼굴에서 영혼이 돌아온 순간,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나무 아래를 가르쳤다.

작디작은 귀여운 강아지를.

듣자 하니 청년은 개와 강아지를 심히도 무서워해 강아지를 피하려다 나무를 올라타게 되었다고 한다.

청년의 한심하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설명을 들은 남자는 그제야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른손을 올렸다. 청년은 도움의 손길을 보았다는 마냥 얼굴에 희색이 만연했으나, 남자의 이어진 행동 하나에 희색이 만연한 얼굴이 창백해졌다.

얼굴이 창백해진 청년에게, 남자는 결정타를 날렸다.


“Good Luck.”


눈앞으로 올린 오른손의 검지를 치켜세우며 진심을 담은 한마디에, 청년은 이제껏 들어본 적 없는 목청으로 구원을 요청했다.


-+-


“······일단은 감사합니다.”

“뭘, 감사까지.”

“그러게요···.”


겨우겨우 마수의 손길에서 벗어난 청년이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남자를 째려봤다. 그러나 기묘한 안경에 가려져서 남자는 알아채지 못했다.

조금 전까지 나무에 발을 올려 청년을 노리던 강아지는 어느샌가 사라진 상태였고, 그 덕분에 청년은 다행히도 나무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마수는 어디로 간 건가요?”

“마수?”


청년은 마수의, 강아지의 행방을 물었고 남자는 마수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되물었다.


“나무 아래에 있던 생물이요오······.”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것이 어지간히 부끄러운 듯 점차 기어가는 목소리로 에둘러서 말했으나, 남자는 그런 청년의 마음을 깨부수듯 단적인 사실만 말했다.


“그 생물을 말하는 건가? 그건 마수가 아닌, 동물이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어디로 갔는지는 아시나요?”


둘러서 말한 사실을 무시한 남자의 태도에 먼 곳을 보는 눈을 하며 무언가를 포기한 청년은 다시 한번 물었다.

청년의 물음에 남자는 눈을 감고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했다.

남자의 태도에 무언가 잘못된 게 있는 걸까, 자신의 행동과 말을 되돌아보며 혹시나 하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마수가, 강아지가 아직 근처에 있을 가능성을.

눈을 감은 남자와 무언가 겁내는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청년 사이에 기묘한 적막감이 생겼다.

기묘한 적막감을 이기지 못했는지 청년이 조심스러운 눈치로 남자에게 물었다. 결국, 어떻게 된 것이냐고.

남자는 그제야 눈을 뜨고 그 시선을 한쪽으로 향했다. 길이 아닌, 풀숲으로.


“설마···. 아직···?”

“아니, 네 고함으로 도망갔어.”

“그러면 왜 고민하신 건가요···”


부풀어 올랐던 긴장감과 불안감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 청년은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아무래도 청년은 그 강아지를 상당히 두려워하는 듯했다.

남자와 청년의 무의미한 대화 후, 청년은 마음을 다잡고 자기소개를 했다. 청년의 이름은 타란티노. 듣자 하니 동쪽 관문을 넘어 마을로 가려다가 운 없게도 야생의 강아지를 만났다고 한다.

청년, 타란티노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남자의 차례가 되었다. 남자는 한순간 숨을 삼키더니, 담담한 기색으로 이름을 밝혔다.


“나는, 리온이라고 불러.”

“네에···. 그럼 리온 씨라고···?”

“음.”


처음 방문하는 나라에서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새로 다닐뻔한 타란티노는 리온 덕분에 쓸쓸하지 않겠다며 다소 기뻐했다.

그 기쁨을 표현하듯 계속해서 말을 자아내는 타란티노의 앞에서, 리온은 진지한 얼굴로 타란티노가 지금껏 지나온 여행의 고생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페니아 제국》에서 《힐튼》으로 관문을 지날 때 경비가 삼엄해서 자칫하면 테러범으로 의심될 뻔했다거나, 대륙 건너편인 《라셴 공화국》의 시세가 엉망이라서 상인 일이 망했다거나, 대륙을 횡단할 때 짐이 바다에 전부 매장되었다거나, 최근에는 관문 앞에 자그마한 마을에서 사기를 당해 소지금이 위험하다는 그야말로 실패와 불행의 연속인 이야기였다.

한참을 불평하듯 쏟아내던 이야기가 점점 줄어들고 겨우 끝나자, 숲이 조용해졌다.


“수고가 많네.”

“으윽···. 성의 없는 말이지만 어쩐지 듣기 좋다고 생각되는 제가 싫네요!”


수상한 차림새의 상인인 타란티노는 리온의 태도에 익숙해졌는지, 능청스럽게 말을 넘기며 동행을 요청했다.

지금 있는 숲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시덴〉이라는 마을이라 한다. 그러나 〈시덴〉은 지나치게 작은 마을이기 때문에 외부인이 편하게 지낼만한 마을은 아니라며 그 위쪽에 있는 〈라그랫 마을〉까지 동행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리온은 현재 상황과 동행의 이익을 타산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눈앞의 수상쩍은 상인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숲을 방황했을지도 모른다. 《힐튼》에는 여러 차례 방문한 경험이 있지만, 대부분 왕성이 있는 《아그리차》와 항구 도시인 〈트리에드〉를 주로 다녔기에 다른 지역에 관해서는 처음 방문하는 장소가 되리라.

게다가 상인인 타란티노가 있으면 상인의 정보망으로 정보를 얻기 쉽겠다고 예상한 리온은 고개를 끄덕여 타란티노의 부탁을 받아들였다.

시종일관 무표정인 리온과 누가 봐도 수상한 차림의 타란티노라는 특이한 동행이 생겼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go] 마지막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 월, 화, 수, 목, 금요일 18:00분에 연재됩니다. 21.07.06 31 0 -
306 [Ego] 7장 18화 (完) 21.12.24 86 1 18쪽
305 [Ego] 7장 17화 21.12.23 63 1 12쪽
304 [Ego] 7장 16화 21.12.22 40 1 13쪽
303 [Ego] 7장 15화 21.12.21 31 1 12쪽
302 [Ego] 7장 14화 21.12.20 37 1 12쪽
301 [Ego] 7장 13화 21.12.17 35 1 12쪽
300 [Ego] 7장 12화 21.12.16 43 1 14쪽
299 [Ego] 7장 11화 21.12.15 33 1 12쪽
298 [Ego] 7장 10화 21.12.14 27 1 12쪽
297 [Ego] 7장 9화 21.12.13 34 1 13쪽
296 [Ego] 7장 8화 21.12.10 28 1 12쪽
295 [Ego] 7장 7화 21.12.09 41 1 11쪽
294 [Ego] 7장 6화 21.12.08 31 1 12쪽
293 [Ego] 7장 5화 21.12.07 38 1 12쪽
292 [Ego] 7장 4화 21.12.06 29 1 11쪽
291 [Ego] 7장 3화 21.12.03 27 1 12쪽
290 [Ego] 7장 2화 21.12.02 46 1 12쪽
289 [Ego] 7장 1화 21.12.01 41 1 12쪽
288 [Ego] 6장 23화 21.11.30 49 1 12쪽
287 [Ego] 6장 22화 21.11.29 29 1 12쪽
286 [Ego] 6장 21화 21.11.26 35 1 12쪽
285 [Ego] 6장 20화 21.11.25 29 1 12쪽
284 [Ego] 6장 19화 21.11.24 29 1 12쪽
283 [Ego] 6장 18화 21.11.23 29 1 12쪽
282 [Ego] 6장 17화 21.11.22 30 1 12쪽
281 [Ego] 6장 16화 21.11.19 31 1 12쪽
280 [Ego] 6장 15화 21.11.18 36 1 12쪽
279 [Ego] 6장 14화 21.11.17 30 1 12쪽
278 [Ego] 6장 13화 21.11.16 4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