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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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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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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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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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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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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7장 1화

DUMMY

도술은 마법이나 마술과도 다른 무언가다.

리온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기술. 또 하나의 능력인 도술은 마법과는 전혀 다른 체계를 이루고 있다.

다만,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마법이나 마술과 달리. 제대로 된 정보가 없는 도술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중.


매화(梅花).


블론드가 익힌 도술은 매화(梅花). 그중에서도 홍매(紅梅)의 술이라 붙은 도술이다.

도술을 알려준 스승의 기억마저 희미한 가운데 블론드가 유일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도술이다.

주변이 붉게 물든 모습을 본 블론드는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렇군···.”


주변이 붉게 물든 현상은 마법이 아니다.

전혀 다른 체계의 무언가. 그 무언가를 파악하려던 리온은 블론드의 상황에 집중하기로 했다.


홍매관 숙소 가득히 피어난 꽃은 매화(梅花). 그것도 붉은 매화다.


매화에서 익숙한 기척을 읽어낸 블론드는 감각으로 이미 자신의 도술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잊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떠오른 기억은 많지 않다.


“셀리나. ···늦어서 미안하네.”


블론드는 셀리나의 말을 떠올렸다.

자신이 약속을 어겼다. 그러나 이번에는 약속을 지켰다.

약속의 내용과 자신의 마지막을 떠올린 블론드는 자기 손에 곰방대를 떠올렸다.

지금에서는 자신의 영혼을 담는 그릇. 매화 가지 하나가 그려진 곰방대는 셀리나를 위한 물건이다.


“그대를 위한 선물이네. 지금에서 건네주게 되어 정말 면목 없다만.”


블론드가 아직 살아있을 무렵. 셀리나가 아직 상단의 수습이었을 무렵.

서로를 자세히 모를 때. 도사로서 마음껏 행동하던 블론드는 셀리나를 만났다.

매화나무 아래서 만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극이 되었고, 그 자극이 끌림이 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만, 두 사람의 목적은 전혀 다르다.


도사는 이름을 날리는 대도사가.

수습은 거대한 상회의 상단주가.


서로가 목표로 하는 목적이 달랐기에, 길은 점차 나뉘게 되었다.

그걸 이해한 두 사람은 하나의 약속을 내걸었다.

훗날.


‘약속을 이룬 그날. 매화(梅花) 아래에서 다시 만나자.’


지극히 간단한 약속.

단순한 약조이자 바람.

그리고 시간은 흘러, 수습은 상단주가 되었다.

하지만.


‘도사 놈이 아디르 가문의 보물을 훔쳤다!’


도사가 죄를 저지른 이들의 부를 빼앗아, 널리 퍼뜨릴 때.

그 도사의 이름이 널리 퍼지며, 이윽고 대도사의 명을 받았을 때.

정작 대도사는 모습을 감췄다.


‘오지 않는 봄을 찾는군요.’


약속을 어긴지 수년.

눈을 감은 셀리나는 혼자서 맞이한 여러 차례의 겨울을 떠올리고, 눈을 떴다.

붉은 매화.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

무엇보다.


“···.”

“그, 미안하네.”


눈앞에서 멋쩍은 듯, 미묘히 시선을 내리깐 블론드의 모습이 어쩔 수 없이.


우스워서.


셀리나는 한참이나 웃었다.


“아하하하.”


시원하게 웃음을 내뱉은 셀리나는 그제야 뒤늦게 떠오른 감정을 실감했다.

블론드의 행동에 웃음이 나고, 그가 있다는 사실에 눈물이 나는 상황.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가장 큰 것은.


“너무 늦으셨어요.”


다시 한번 블론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안도감.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애써 무시한 셀리나는 웃음을 지었다.

블론드는 눈물에 잠시 당황했으나, 셀리나의 반응에 마찬가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여기 있네. 이건, 자네만을 위한 선물이야.”


세상에서 단 한 사람만을 위해 만든 곰방대를 보였다.

다만, 셀리나는 곰방대를 사용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뜬금없는 선물에 셀리나는 다시 한번 웃음을 지으려다, 이번에는 참지 못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왜, 왜 이리 늦으신 건가요.”

“선물을 준비하느라 늦었네. 정말, 미안하네.”


헤어진 인연과 다시 마주한 인연.

착각과 오해가 한번 지나간 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리온 일행은 저마다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앞의 광경을 어떻게 넘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어라. 전부 끝났어?”


루미아가 태연히 두 사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갑작스레 깨진 두 사람만의 공간. 더불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일행은 어색한 분위기에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정작 어색한 분위기를 만든 장본인. 루미아는 잠시 두 사람을 바라보고, 한 마디를 더 터뜨렸다.


“그럼 이제 계약할 거야?”

“···계약?”

“응? 블론드. 너 말 안 했어?”

“아, 그. 잠시만 기다리게나.”


블론드는 아직 영혼 마법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

즉, 셀리나는 블론드가 자신과 계약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사실도 모른다.

뒤늦게 블론드의 이야기를 들은 셀리나는 그야말로 단번에 표정이 바뀌더니.


“당신···!”


냉기가 일대를 지배했다.


“이전에도 그러더니, 이번에도 그럴 건가요?”


셀리나의 살기 어린 분노를 온몸으로 맞이한 블론드는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반항을 포기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리온은 한숨을 내쉬며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영혼 마법의 이야기라면 리온이 더욱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온의 개입으로 겨우 진정된 상황에, 셀리나는 리온으로부터 블론드의 상황을 전해 들었다.


“···그럼, 저이는 저와 계약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거군요.”


마지막까지 흐른 냉기에 블론드가 반응하는 것도 잠시.

셀리나는 질렸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언제나, 언제나. 중요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는군요.”

“···부담된다고 생각했네. 그랬기에, 선물만 전하려 했었던 거지.”

“그게 정말 된다고 생각했던 건가요?”

“······지금에서는 정말 미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네.”


블론드의 대답에 고개를 내저은 셀리나는 리온을 바라봤다.

셀리나의 시선은 올곧고도, 어딘가 각오가 섞인 듯한 모습이다.

그 눈에 서린 감정을 읽은 리온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블론드를 바라봤다.


“블론드. 해 줘.”

“···선택권도 쥐고 있었군요.”

“아, 알았네. 지금 하지.”


다소 강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블론드와 셀리나의 계약은 이루어졌다.

도술이 섞인 영혼 마법의 계약. 그 광경을 바라본 리온은 처음으로 자신이 모르는 마법의 일면을 찾았다.

영혼 마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온만을 위한 마법이다. 그렇기에 리온 자신이 영혼 마법에 관해서 모르는 부분은 없다.

없어서는 안 된다.


“···.”

“아름답네요···.”

“예쁘군.”


블론드와 셀리나의 계약이 이어진 순간.

그 찰나는 일반적인 영혼 마법의 형식으로 치러졌다. 그러나 계약이 점차 진행될수록, 마법은 도술에 잠식당하기 시작했다.

마법의 형식은 하나의 잔가지로, 나무로, 넝쿨로 얽힌 그 형색은 마치 피어나는 하나의 숲.


눈앞에서 화려한 꽃으로 가득한 숲이 일었다.


그리고 그 중앙을 장식한 것은 하나의 나무.


“이건···.”

“···그때의.”


두 사람은 주변 광경과 나무를 단번에 알아차렸다.

중앙에 선 나무는 오래전. 두 사람이 약속을 나누던 나무다.

주변 광경도, 나무도. 두 사람의 기억 속으로 들어온 듯 보이는 광경에 블론드와 셀리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마주했다.


“향후, 몇 년이 지나더라도. 나는 그대를 저버리지 않겠네.”

“이미 여럿 저버리셨는걸요?”

“크흠. 그, 그건 말이지. 미래의 이야기일세. 내, 앞으로 그대와 평생을 함께 할 것 아닌가?”

“그 말. 청혼인가요?”

“그! ···.”


기습적인 말.

다만, 블론드는 부정하지 않고.


“그렇지. 내 다시 한번 말하겠네.”


셀리나를 향해 진지하게 고했다.


“나는 평생 그대를 저버리지 않겠네. 그대를 위해 힘을 쓰겠네. 그대를 위험에 처하게 하지 않겠네. 그리고,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겠네.”


진지함과 본심이 섞인 블론드의 청혼.

그에 셀리나는 가볍게.


“너무 멋이 없네요.”

“뭐라···!?”


냉정한 평을 들려줬다.

다만, 평가를 뒤이은 한 마디를 전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네요.”


당황한 블론드의 모습과 행복으로 가득한 셀리나의 미소.

두 사람의 영혼 계약이자 결혼식은 화려하게 치러졌다.

주변을 가득 메웠던 꽃잎은 하늘을 향해 치솟고, 중앙에서 자라난 매화는 홍매를 선보이며 바람에 흩어졌다.


“···끝났네.”


갑작스레 이루어진 결혼식과 영혼 계약.

그 모습에 리온은 애매한 반응을 보이며, 마법의 변화를 기록했다.

리온이 블론드와 셀리나. 두 사람에게서 조금 떨어져 마법을 기록하는 사이, 베르가 장난스럽게 다가오더니.


“레네랑 결혼할 때를 대비해서 참고 안 해도 돼?”

“베르.”

“아하하.”


베르의 장난에 리온은 잠시, 자신도 모르게 결혼식을 떠올리려다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레네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온전히 레네를 되살리는 게 무엇보다 우선이다.

지금을 바라본 리온은 향후의 일을 잠시 내려두기로 했다.

그렇게, 마법에 더욱 진지해진 리온에게 이번에는 블론드가 다가왔다.


“이보게. 자네에게 건내야 할 게 있지 않던가?”

“···책?”

“그렇지. 자네 덕분이니, 제대로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네. 참, 무언가 모르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오게나.”


블론드는 어느새 대화를 마쳤는지 셀리나를 따라 상단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리온은 제 손에 들린 책을 바라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분석부터 할까.”


어쩐지 쓸쓸해진 리온은 혼자서 숙소로 들어섰다.


-+-


“확보는 실패, 인가.”


그는 조용히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일에 실패는 없다. 다만, 계획의 수정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기묘한 공간에서 둥근 구체를 바라보던 이는 웃음을 지었다.

첫 번째 계획은 틀어졌다. 하지만 두 번째 계획은 완벽히 이루어졌다.

되려 처음보다 간단하게 일이 흘러가는 상황에 그는 조용히 웃음을 지으며, 다음 차례가 되기를 기다렸다.


“얻을 수 없다면···. 이용하면 된다.”


아무렇게나 앉은 의자에서 그가 떠올리는 것은 오래된 기억.

제 신을 처음으로 목격했을 때의 충격.

그 기억을 되새김질하던 그는 환희에 떨었다.


“곧.”


그가 바라보는 둥근 구체는 대륙의 한 구역을 가리키고 있다.

가리키는 구역은 라셴의 수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탓에 그 이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그는 머릿속에서 확실한 광경을 떠올렸다.


“곧···!”


오래된 기억과 눈앞의 광경.

더불어, 세계를 뒤흔든 여파.

그 모든 것을 차분히 떠올린 그는 웃음을 거두어들였다.


“신이, 부활한다.”


거점이 무너졌다.

조직원이 상당수 죽었다.

실험체도 폐기당했다.

연구의 상당 부분도 무너졌다.

그러나.


“크하, 크하하, 크하하하하!!”


그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정답이라는 듯.

자신이 믿어 의심하지 않는 미래에 심취하여, 더욱 큰 웃음소리를 흘렸다.


-+-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존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왕.


세상을 빼앗기 위해서만 만들어진 존재다.

그렇기에 마왕은 세상에 배척당한다.

반면, 다른 하나는 세상이 받아들였다.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존재.


용사다.


작가의말

 드디어 마지막 장입니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다양한 감정이 들끓네요.

 가능한 최선의 마지막을 준비할 테니. 감상은 완결 이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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