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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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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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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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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1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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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7장 13화

DUMMY

리온 일행과는 달리, 차분히 걸음을 향한 셀리나와 블론드는 지금.


“당신. 정말 길을 알고 있는 건가요?”

“알고말고. 내 도술보다 못한 이 안개에서 길을 잃어버리겠나?”

“···당신이 그러고도 남는 사람이라는 건 알죠.”


안개를 헤매고 있었다.

섬을 둘러싼 안개는 짙다. 섬의 중앙으로 향할수록 짙어진 안개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을 둘러쌓았다.

조금의 두려움도 없이 블론드가 발걸음을 내디디면, 셀리나는 곤란해하면서도 뒤를 따랐다.


“저 건물. 조금 전 본 건물이 아닌가요?”


안개 속을 빙빙 돌던 셀리나는 조금 전 봤던 건물을 가리켰다.

섬에는 건물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다양한 모양의 건축물이 보였다.

셀리나는 그중 하나를 가리켰지만.


“으음, 조금 다르지 않나?”


블론드는 고개를 내저었다.

특징적인 모양을 보고도 고개를 내저은 블론드는 자신감 넘치는 걸음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쉰 셀리나는 천천히 걸음을 걸었다.


“으음? 여기가 아닌가? 허나···.”


블론드가 착각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섬의 구조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단순히 안개뿐만 아니라, 섬 자체가 마법진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도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안개에 블론드는 고개만 계속 기울였다.


“허면, 저 길에서 저쪽이었던 건가?”


또 다른 착각이 하나.


- 스륵.


주변은 이미 전장이라는 점이다.

안개가 흐트러진 것은 일순. 그 소리를 인식하는 것보다 먼저, 움직인 이는 둘.

안개 너머에서 날아드는 단검. 단검의 끝을 셀리나가 인식한 순간.


- 콰직.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블론드가 손으로 단검을 쥐어 부쉈다.

강철보다 강해진 블론드의 손에서 단검이 부서지고, 그 너머의 인물은 이미 모습을 숨겼다.

단검을 부수고 손을 본래대로 되돌린 블론드는 태연히 말했다.


“적이 나오는 걸 보면, 제대로 온 듯하군. 그렇지 않나?”

“···제대로 지켜주세요. 저는 싸우지 못하니까요.”

“당연히. 내 자네에게 손끝 하나라도 못 대게 하겠네.”


셀리나와 블론드. 두 사람의 곁에는 어느새 몰려든 암살자들로 가득하다.

안개 너머에서 인기척을 줄이고, 기습을 노리는 그들은 말 그대로 암살자. 안개에 휘둘린 블론드가 상대하기에 벅차 보였다.

하지만.


“그럼.”


블론드는 즐거운 듯, 웃음을 지었다.

팔을 들어 주변으로 흩트린 블론드의 손끝에서 흩날린 것은 하나.


“나도 이제 좀 놀아볼까?”


매화다.


“거짓과 진실. 그걸 구분해낼 수 있을까. 궁금하구나.”


안개에 녹아내리듯 사라진 매화.

그에 새하얗던 안개가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홍매의 색으로 물든 안개. 그 중심에 선 블론드는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한순간 당황한 암살자들은 빈틈만 보이는 블론드를 향해 단검을 내찔렀다.

다만.


- 후웅.


“어허. 내 말하지 않았나? 거짓과 진실이라고.”


블론드의 모습은 안개로 흩어졌다.

묽은 매화를 흐트러뜨리며 사라진 블론드의 모습. 되려 안개가 더욱 붉게 물든 가운데.

암살자들은 안개 너머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앞을 보기 위해 사용한 마법 도구조차도 블론드의 안개를 뚫어보지는 못한 것이다.

반면, 블론드는 안개 내부의 이들을 속속히 파악하기 시작했다.


“많이도 왔구나.”


암살자의 수를 확인하고, 위치까지 알아차린 블론드는 손을 쥐었다.

별다른 행동도 아닌 사소한 행동.

그저 그뿐이다.


- 콰직.


안개 속에 퍼진 소리는 무언가 일그러지는 소리.

단검이 부서진 소리와 달리, 물주머니가 터진 듯한 소리가 안개 너머에서 울려 퍼졌다.

그건 한 번이 아닌 여럿.

일순간에 동시에 울려 퍼진 소리에 셀리나는 입가를 가렸다.


“이런. 배려하려 했다만.”

“···아니요. 제가 오려 한 길이니, 제가 감내해야 하는 일이랍니다.”

“대단하구먼.”


소리의 정체를 쉽게 예상한 셀리나는 입가를 다문 채,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를 떠올렸다.

그런 셀리나의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블론드는 다시 팔을 휘둘렀다.


“그럼 정리하도록 하지.”


붉게 물든 안개는 천천히, 매화가 떨어지듯 바닥을 향해 스며들었다.

그런 가운데. 도술에 위화감을 느낀 블론드는 몇 번 고개를 기울였다.


“왜 그러나요?”

“아, 그렇구먼. ···이야기하는 편이 좋겠어.”


몇 번 손을 쥐었다 핀 블론드는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평소 가벼운 블론드가 진지한 모습을 보이자. 셀리나 또한 심상치 않은 일로 이해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 힘이 온전하진 않은 모양일세.”

“···네? 그게 무슨.”


블론드 자신의 힘이 온전하지 않다.

도술을 다루는 블론드의 힘은 마법이나 마술과 달리, 추상적인 힘이다.

그렇기에 블론드도 자세한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다. 다만, 추측하기로는 죽었다는 충격이 가장 크리라고 예상했다.


“이 몸으로 사용하는 건 본래 힘의 3할 정도가 한계로군.”

“그럼···. 돌아가야 하나요?”

“아니, 아닐세. 방법은 있어.”


블론드 자기 몸은 영혼 계약으로 만든 인공의 몸이다. 그런 탓에 도술이 안정되지 않았다.

반면, 영혼 계약 덕분에 블론드와 셀리나는 깊이 이어져 있다.

영혼 단위에서.


“자네가 도술을 사용하면 되네.”

“···무슨 이야기를 하시는지. 저는 도술을 사용할 수 없답니다. 알고 있지 않나요?”

“그래, 그래. 자네에게 도술의 재능은 없었지.”


오래전, 자신이 셀리나에게 도술을 가리키던 추억을 꺼낸 블론드는 어깨를 으쓱였다.


“허나, 내 힘은 이제 자네의 것이 아니던가?”

“아.”


뒤늦게 영혼 계약과 이어진 통로를 이해한 셀리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은 도술을 배우지 않았다. 힘만 있다고 사용할 수 있는가. 그런 걱정이 든 것이다.

하물며, 전투를 앞둔 상황이다.


“걱정말게.”


셀리나의 불안을 훤히 내다본 블론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확신했다.


“자네는 재능이 없을 뿐. 그 센스는 충분하니.”

“그런가요?”

“그렇지! 대도사인 내가 확신하는 것이니 믿게나.”

“···더 믿기 힘들어졌는걸요.”

“무슨!”


농담을 건네며 불안을 조금 삭힌 셀리나는 방법을 들었다.

방법은 하나.


“나를 부르게.”

“당신을?”

“내 자아의 이름이 아닌, 지금의 ‘나’를 부르게.”


시선을 안개 너머로 돌린 블론드는 셀리나에게 방법을 알렸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는 블론드와 달리, 셀리나는 입 열기를 고민했다.

그러나.


“셀리나, 자네는 할 수 있네.”


블론드의 말.

흔들림 없는 진지한 목소리에 셀리나는 자연스레 말했다.


“『몰타』.”


소리가 공기 중에 울려퍼지는 것보다 먼저, 영혼으로 이어진 통로를 울렸다.

블론드의 몸이 연기와 함께 흩어졌다. 그리고 흩어진 연기는 셀리나의 손위에서 하나의 모양을 이뤘다.

그 모양은 곰방대.

동시에.


- 카가가각.


셀리나의 측면에서 날아온 단검이 갑작스레 생긴 금속에 깎여나갔다.


- “···늦지 않았군. 역시, 해내었군!”


블론드가 태연히 공격을 막아내고 기뻐하는 사이.

셀리나는 자신이 공격받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얼굴을 찌푸렸다.


“당신.”

- “으, 으음?”


싸늘한 목소리.

차가운 부름에 블론드는 곰방대 상태이면서도 몸을 떨었다.


“중요한 설명을 빼먹는 버릇. 고쳐야 한다고 했었죠?”

- “그!”

“그런데. 지금 이게 무슨 일이죠?”

- “아, 안 늦지 않았나!”

“그게 문제인가요?”

- “···미안하네.”


공격받는 상황이다. 셀리나가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곧장 자신이 단검에 찔릴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블론드는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자신을 부르라고 했다.

이 모든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셀리나는 한숨을 내쉬고.


“지금 오신 적. 당신에겐 미안하지만, 화풀이에 어울려 주셔야겠어요.”

- “으음, 적이지만 동정하게 되는구먼.”

“당신도 나중에 혼나야 하니까요.”

- “이런···.”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에도 날아온 단검은 블론드의 도술로 전부 막아냈다.

처음에는 긴박한 상황이었기에, 둔탁한 금속으로 막았다. 그러나 지금은 온전한 모습을 이룬 철의 기사가 셀리나를 지키고 있다.

손에 쥔 『몰타』를 바라본 셀리나는 천천히. 영혼 계약의 통로 너머에서 흘러들어오는 정보를 받아들였다.


“이런 거군요.”

- “음. 한 번 해보겠나?”


셀리나는 오래전이라고는 하나, 도술을 배웠다.

당시에 배운 지식과 영혼 통로를 통해 받아들인 정보를 확인한 셀리나는 천천히.

『몰타』를 흔들었다.


- 툭.


『몰타』의 끝. 통에서 흘러나온 잔재는 바닥에 스며들었다.

셀리나를 지키는 기사와 다른 도술. 스며든 붉은 잔재는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냈다.

싹이 피어나듯 일어난 줄기.


“이런 것도 되는군요.”


줄기는 순식간에 주변의 양분을 빨아들였다.

섬 전체에 널리 퍼진 마력. 기묘할 정도로 밀도 높은 마력을 빨아들인 줄기는 순식간에 자라났다.

이미 가지와 잎마저 피워낸 나무의 모습은 여전히도, 매화.


- 카앙.


철의 기사가 단검과 갖은 공격을 막아내는 사이, 셀리나는 도술의 끝을 보였다.

흩날리는 매화는 마치 붉은 눈이 내리듯 주변 안개에 천천히 섞여 들어갔다.

블론드의 도술과 다른 점은 둘.


- “역시, 자네의 센스는 나 이상이야.”


안개를 물들였을 뿐인 블론드의 안개와 달리, 셀리나의 매화는 안개와 섞여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안개에 퍼진 마력을 빨아들인 매화는 더욱더 거세게, 아름답게 그 날개를 펼쳤다.

붉은 눈과 짙은 안개.


- “확실한 처리까지. 음, 멋있어.”


안개에 섞인 붉은 눈은 안개 너머에 있는 이들에게 달라붙었다.

달라붙은 매화는 그대로, 굳는다. 흩날리는 매화만 해도 수천. 수만이 넘는 가운데, 안개로 가려진 시야에서 매화를 구분하기란 어렵다.

순식간에 매화 덩어리가 된 이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제 자리에 멈췄다.

그런 매화 덩어리를 향해 셀리나는 한 번.


- 퉁.


『몰타』를 공중에 두드렸다.

직후.


- 사라락.


매화 덩어리는 마음껏 움직이던 조금전 광경이 거짓이라는 듯.

살랑이는 바람에 흩날려, 바다 너머로 그 모습을 감췄다.

동시에 덩어리 안에 숨어 있는 이들의 모습마저 사라졌다.


“끝났네요.”

- “아쉬운가?”

“으음.”


처음으로 휘두른 도술이다.

적의 정체가 극악무도한 이들이라는 건, 그들에게 풍기는 죽음의 기척으로 알 수 있다.

그러니 그들을 처리한 건 셀리나도, 블론드도 아무렇지 않다.

그저 셀리나는.


“네.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처음으로 휘두른 도술에 홀린 듯 보였다.

생각한 그대로, 자신의 상상을 현실에 불러내는 힘.

블론드의 도술은 그중에서도 셀리나의 마음에 들어맞았다.


- “아하하. 역시 그리 말할 줄 알았네.”

“···전투에 미친 건 아니랍니다.”

- “걱정 말게. 나 역시 처음 도술을 배웠을 때는 비슷했으니.”

“그렇군요···.”


셀리나와 블론드는 조용한 주변을 둘러봤다.


“그럼, 가볼까요?”

- “좋지.”


이미 주변의 적은 처리했다.

안개 너머를 향하기 위해, 작은 매화 가지를 든 셀리나는 가지가 흔들리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모습을 바라본 블론드는 문득.


- “···정말 나보다 강해지는 게 아니던가?”


전혀 엉뚱한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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