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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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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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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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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6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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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6장 21화

DUMMY

방을 가득 메운 것은 안개. 짙은 안개는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자욱하다.

자신의 주변은 물론, 어느새 방 전체를 덮은 안개에 루미아는 기척을 살폈다.

넓은 방에서 풍기는 기척은 하나. 자신의 것뿐이다.


‘아리엘의 기척까지 사라졌어?’


자신의 기척을 숨기는 일은 쉽다.

하지만, 타인의 기척을 숨기는 일은 어렵다. 게다가 아리엘은 남자아이와 적이다. 순순히 안개에 당하지도 않고, 기척을 숨길 이유도 없다.

그렇다는 말은 하나.


‘안개가 방해하는구나.’


아이의 안개는 단순한 눈속임이 아니다.

일종의 마법. 주변의 기척을 속이고, 모습마저 숨기는 능력이다.

그 사실을 깨달은 루미아는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고 검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본 모습은 태연하게 앉은 자세.

그것도, 루미아의 검에 의해 목이 베어진 순간이다.


‘그것도 안개였지.’


단순히 눈속임과 기척 방해가 아니다.

마치, 환각을 보듯 제 모습과 기척을 만들어냈다. 소리마저 속일 수 있는 안개는 루미아의 오감을 쓸모없게 만들었다.

하얀 시야를 앞둔 루미아는 오랜만에 전투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수수께끼이려나?’


루미아에게 전투란, 쉽게 풀리는 일이다.

오랜 시간을 대목으로 살아온 루미아는 이미 인간이었을 적의 기억을 대부분 잃었다. 시간이 지나며 잊은 것도 있지만, 영혼 마법으로 루미아 자신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도 잃었다.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기억으로 남은 게 아니다.


“후우···.”


본능.

그건 이미 영혼에 각인된 하나의 순리.

루미아는 저 자신을 믿고 있다. 지금의 자신을 믿지 않더라도, 오랜 경험과 훈련을 쌓은 과거의 자신을 믿는다.

그렇기에 루미아는 검을 쥐고, 눈을 감았다.


“뭐야···. 포기하는 거야, 늙은이?”


안개 속에서 루미아의 모습을 살핀 남자아이. 아인은 그 모습을 비웃었다.

자신의 털끝 하나도 건들이지 못한 이가 루미아다.

얄상한 검 하나 믿고서 달려든 여인. 루미아가 눈을 감은 모습은 언 듯 전투를 포기한 듯 보이기도 한다.


“재미없네!”


긴장마저 푼 모습으로 검을 늘어뜨린 루미아. 그 모습을 바라본 아인은 흥이 떨어졌다며 불평을 내쏟았다.

결국, 눈앞에 선 인물도 자기 적은 아니었다. 그렇게 결론지은 아인은 단검을 들었다.

아이의 키인 아인에게도 작은 단검.


“잘 가.”


작은 단검의 끝은 뾰족하며, 어딘가 이질적인 빛이 흘렀다. 찌르기에 특화된 단검과 끝에서 흐르는 묘한 액체.

그 단검의 끝을 루미아에게 향한 아인은 안개 속에 섞여 단검을 찔러넣었다.


기척도.

소리도.

살기도 없는 일격.


공기의 흐름마저 없는 일격은 루미아를 향해 빨려 들어가듯, 나아갔다.

빠른 것도 느린 것도 아닌, 자연스러운 일격. 당하는 이조차 알아차릴 수 없는 일격은.


“찾았다.”


루미아가 휘두른 검의 궤도에 들어찼다.


“···!”

“안 놓쳐.”


루미아의 눈앞에는 여전히 짙은 안개뿐이다. 그러나 한 번 눈앞에 들어선 단검은 놓치지 않는다.

한 번, 제 목을 노리고 날아든 단검을 쳐낸 루미아는 곧바로 한 걸음 내디뎠다.

짙은 안개는 모습을 숨기고, 기척을 숨기지만 움직임을 막을 수는 없다.


“쳇!”


공격에 실패한 아인이 무심코 혀를 찬 순간, 어느새 아인의 앞까지 날아든 루미아가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다. 휘두르는 면은 날.

세차게 움직인 검은 멈추지 않는다.


“늙은이가!”

“꼬마야. 나를 상대하기에는 한참 멀었단다?”


베어 가르는 것은 짙은 연기. 다만, 그 너머에서 흐른 것은 명백한 피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정확히 아인을 베어 가른 루미아는 한 걸음 떨어졌다.

다시 안개 속으로 숨은 아인은 루미아조차 찾을 수 없다. 단순히 숨는 것만으로 본다면, 아인의 실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살기가 없다고 해서, 적의를 못 느끼는 건 아니니까.”


아인이 루미아를 쓰러뜨리려던 순간.

미약하게나마 적의가 흘러나왔다.

그 찰나는 루미아에게 있어 영원과도 같은 시간. 그렇기에, 찰나의 적의를 숨기지 못한 아인의 실책이다.

아인은 엉성한 응급처치로 한쪽 팔을 천으로 묶었다.


“나이를 먹으면 눈치가 늘어난다더니, 얼마나 늙은 거야?”


괜스레 불만과 함께 악담을 내뱉은 아인은 왼팔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루미아의 일격에 상처를 입은 부근은 왼팔. 왼편의 어깨 부근을 베인 아인은 둔한 왼팔의 반응에 혀를 찼다.

오른팔은 남았다. 그러나 한팔을 잃었다. 최소한 지금 전투에서 아인은 왼팔을 사용하지 못한다.


‘진짜, 짜증나···.’


오른팔로 머리를 헝클어뜨린 아인은 통로를 확인했다.

안개는 아인의 마법이다. 타인에게는 짙은 안개가, 아인에게는 훤하게 보인다.

맑은 아인의 시야에 보이는 것은 두 가지 통로다.


‘저쪽은 그대로 있고.’


루미아가 들어온 통로. 그 부근에 서 있는 아리엘은 전투가 시작되고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아인은 의문을 떠올렸으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돌아갈까?’


거점 내부로 향하는 통로는 아무도 없다.

루미아와 아리엘의 모습을 잠시 지켜본 아인은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렸다.


‘딱히 명령도 없었고.’


아인은 카타스트로피에 소속된 인간이다.

다만, 카타트로피 내부에서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다.

평소에도 명령이 아니라면 제 생각대로 움직이는 아인은 루미아를 상대하기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생각을 바꿨다.

명령도 아니다. 상대가 쉬운 것도 아니다.

그러니.


‘······나중에 죽여야지.’


한 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굳이 고생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 아인은 몸을 돌렸다.

완전한 무장도 아닌 상태다. 아인은 안개를 눈속임으로 두고서, 거점 내부로 달리기 시작했다.

넓은 방은 아인이 사라진 후에도 짙은 안개를 유지했다. 그리고, 적을 잃은 루미아는 한동안 검을 들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


검을 놓았다.

아인이 한 가지 눈치채지 못한 사실이 있다.

상처를 입은 왼팔. 그 상처에 생긴 묘한 흔적은 지극히 미약한 마력을 흩뿌리고 있다.

또한, 흩뿌려진 마력의 끝은 옅은 실처럼 이어져.


“도망간 모양이네.”


루미아에게 닿았다.


-+-


지하 거점 중 자신의 무기가 놓인 연무장으로 향한 아인은 한숨을 돌렸다.

주변 인원은 아무도 없다. 아인과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 지금 거점은 텅 비었다.

그 사실은 아인도 알고 있기에, 특별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다.

그저.


“그 늙은이···!”


제 왼팔을 붙잡으며 루미아를 향한 복수심을 불태웠다.

평소 자신의 기분만을 우선하는 아인이다. 가장 자신 있던 마법을 펼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죽이는 게 아인의 취미일 정도로. 아인은 일그러진 인간이다.

그런 아인이 제 영역에서 루미아에게 상처를 입었다.

그 자체로 분노할 일이지만, 루미아를 상대로 손도 못 쓰고 졌다는 사실이 아인을 더욱 분노케 했다.


“큭···.”


화를 내며 팔을 휘두른 아인은 왼팔의 둔통에 얼굴을 찌푸렸다.

그와 동시에.


“···이게 뭐야.”


제 왼팔에서 자라난 작은 새싹을 발견했다.

뒤늦은 발견. 그러나 확실히 자라난 새싹에 놀란 아인은 재빨리 새싹을 뽑았다.

어느새 상처에 뿌리마저 내린 새싹은 아인에게 상당한 통증을 안겨주며, 공중을 날았다.


“제기랄···! 설마, 그 늙은이가···!!”


상처의 원인을 떠올린 아인은 다시 한번 루미아에게 욕지거리를 내뱉었고.


“안녕, 꼬마야.”


연무장의 유일한 통로.

입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날아든 검은 쾌검.


위력을 생각지 않고, 속도를 우선한 검.

아인이 검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목젖의 가죽을 베어 가른 찰나.

하지만.


“···!”


아인 또한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 찰나에 마법을 펼친 아인은 루미아의 검을 환각과 함께 피했다.

다시 한번 안개를 벤 루미아는 익숙하다는 듯 검을 몇 번 털어냈다.


“오랜만이야?”

“하.”


루미아의 장난기 어린 웃음에 얼굴을 찌푸린 아인은 제 몸에 무장을 확인했다.

아인이 치료실보다 먼저 찾은 곳이 연무장이다. 자신의 평소 무기와 무장이 전부 연무장에 있기에, 아인은 복수를 위해 먼저 찾았다.

지금 이 자리에 선 아인은 조금 전과 달리 완전한 무장을 마친 상황이다.


“기고만장해하지 말라고, 늙은이.”

“자꾸 늙은이, 늙은이.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말고 다른 말도 해 보는 건 어때?”


아인이 마술 도구를 던져 전장을 준비하는 사이. 루미아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기다렸다.

순식간에 연무장을 덮은 안개와 곳곳에 내던져진 마술 도구. 그 모든 것들이 아인을 위한 장치다.

완전히 상대의 영역으로 들어선 루미아는 태연히 검을 들고, 웃었다.


“선배로서 한 수 가르쳐 줘야겠어. 응.”

“쯧.”


루미아의 태도에 혀를 찬 아인은 곧바로 마법의 위력을 올렸다.

아인이 사용하는 마법은 여러 마법을 하나로 합친 마법이다. 단순히 위력을 늘린다고 마법이 강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안개는 짙어진다. 짙어진 안개로 인해 더욱 기척은 혼란을 겪으며, 시야도 일그러진다.

환각과 환청. 심지어 환통 마저 느끼게 만드는 아인의 영역은 상당한 수준의 마법이다.


‘전력으로 죽인다.’


루미아를 향한 복수심을 최대로 끌어올린 아인은 전력으로 상대하기로 했다.

아인의 진심을 깨달은 루미아는 자연스레 웃으며, 검을 어깨에 걸쳤다.


오만하고도 호탕한 자세.


상대하는 아인에게는 그저 도발일 뿐이다.


“죽어!”


목소리를 올리며 달려든 아인은 마술 도구를 조작하며, 루미아의 심장을 노렸다.

날아간 마술 도구는 제각각 마술을 담은 무기다. 그마저도 아인의 영역에 뒤엉켜, 실체와 비 실체가 섞인 공격.

처음 겪는 이는 분명 자신이 어떤 공격에 죽었는지도 알 수 없는 공격이다.

다만.


“고수를 상대로 같은 공격은 두 번 이상 하는 게 아니야.”


루미아는 이미 겪었다.

마술 도구를 늘리더라도, 마력을 더 소모하더라도. 이론이 같으면 같은 공격이다.

루미아는 단번에 공격의 본질을 깨달았다. 그에 대처는 간단.


- 콰앙.


발길질 한 번으로 지반을 뒤엎은 루미아는 검을 휘두르지도 않았다.

그저 그뿐으로, 아인의 공격 대부분이 나가떨어졌다.


“제기랄!”


아인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할 미세한 공포가 스며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루미아는 멈추지 않았다. 여전히 아인은 움직이고 있고, 전투 중이다.


“으음···. 검술은 아니지만, 나도 조금 힘을 써볼까?”


상당한 속도로 날아오는 아인을 바라보며, 루미아는 느긋이.

아주 천천히 검을 바닥에 찔러넣었다.

아인이 쥔 단검이 루미아의 앞까지. 그야말로 가슴께까지 다가오길 기다린 루미아는 단 한 번.

한 마디를 중얼거렸다.


“피어라.”


그리고 두 사람의 승부는 그것으로 끝났다.

루미아가 찔러넣은 균열에서. 연무장의 벽에서. 천장에서.

주변 사방에서 피어난 꽃과 줄기가 주변을 뒤엎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자라난 식물들은 아인의 단검이 미처 루미아의 살결. 실오라기 하나 가르기도 전에.


“끝!”


아인을 붙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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