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연재수 :
306 회
조회수 :
14,635
추천수 :
345
글자수 :
1,835,784

작성
21.02.19 06:03
조회
2,049
추천
6
글자
9쪽

[Ego] 0화

DUMMY

오늘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광경. 흩날리는 선혈에 울려 퍼지는 비명.


전장을 가득 채웠던 강인한 기사들이 단순한 시체가 되어버린 상황 속에 일어서있는 그림자는 언제나 다섯.

그 다섯 중 하나. 이질적인 분위기와 모습을 한 존재를 넷의 그림자가 정면에서 마주하며, 그중 한 명의 그림자가 가진 청아한 색의 검을 짓쳐 들어 향하는 똑같은 장면.

지금까지 수십, 수백, 수천 번을 보고. 또 보게 된 장면에 무심코 그들 중 하나를 향해 손을 올렸다.


“···닿지 않아.”


그야말로 신기루.

반복되는 영상처럼, 변하기만 하는 장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 그 상황에 가슴 속에서부터 치미는 감정을 억누르고자 손에 힘을 주어 다음을 마주했다.

흐르는 영상과도 같은 상황 속, 그들에게 흐르던 팽팽한 신경전이 한 번. 이질적인 그림자의 휘청거림으로 생긴 틈으로 인해 더욱 고조되는 순간.

동시에 이질적인 그림자를 향해 돌진했다.

돌진하는 네 명은 그야말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짓쳐 들었다.


“안돼!”


그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외쳐버린 말은 흩날리는 선혈에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흩어졌다.


-+-


이질적인 그림자가 한껏 부풀어 악마라는 표현이 어울릴 법한 모습으로 변하고서는 빛과 같은 속도로 돌진하는 기사를 향해 아무렇게나 팔을 휘둘렀다.

힘이 들어가지 않은 단순한 행동으로 인해 일어난 결과는 인과관계를 완전히 무시한 모습이었다.

돌진하던 기사 중 악마의 정면에 있는 거한의 검사가 반으로 갈라졌다. 아니, 악마의 정면에 있는 공간이 갈라졌다.


“뭐···. 뭐야?! 마이어?!”

“마···. 마이어 씨!!”

“진정해! 에릭! 네트! 둘 다 가자!”


순식간에 진형이 무너지며 그림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붉은 검사의 질책으로 마음을 다잡은 푸른 마법사와 하얀 신관은 계속해서 악마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신속.


조금 전 악마의 행동에 비해 훨씬 빠르고 날카로운 공격에 공간이 갈라졌다.


아니, 그 공격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다시 악마가 손을 휘둘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휘두른 손에 의해 조금 전보다 커다란 균열이 생겼다가, 이내 사라졌다.


“푸···학.”

“네···. 네트!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건가?!”


악마가 손을 휘두른 사선에 있었던 하얀 신관이 세로로 갈라지며 또다시 선혈이 흩날렸다.


이제 멀쩡히 서 있는 사람은 겨우 두 명. 두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절대적인 강자를 이기기란 불가능하다. 그렇게 생각한 푸른 마법사는 후퇴라는 도망을 생각하고서 붉은 검사에게 전하려 했으나.


“레···. 네?”

“아직···! 아직! 포기할 수 없어! 우리가 진다면 모두가! 모두가 위험해진다고!!”


혼자서, 겨우 혼자서 악마를 대치한 붉은 검사의 모습에 숨을 무심코 숨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인하다. 정직하다. 확고하다. 무수히 많은 감상이 떠올랐으나, 한순간에 정신을 차린 푸른 마법사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녀를 보좌하리라 각오하고 악마와 마주했다.


여행의 동료였던 신관, 네트의 사망 이후 생긴 찰나의 시간.

그러나, 절대적 강자인 악마에게 그리고 그를 상대하는 두 명에게는 치명적인 시간일 순간이 허무하게 지나갔다.


그 이유는 금세 드러났다. 그는 관심이 없었다.


푸른 마법사와 붉은 검사 모두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힘과 능력으로 악마를 공격하고 있었으나, 악마의 시선은 공허한 공간을 보고 있을 뿐. 아무것도 시야에 두지 않았다. 다시 말해.


“통하지 않는 건가?!”

“에릭! 포기하지 마! 조금의 상처라도 주기 위해 계속 노려!”

경악한 푸른 마법사, 에릭을 타이르며 계속해서 검을 휘두르는 붉은 검사, 레네의 얼굴에도 감추지 못한 동요가 드러났다.


---


“레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내뱉은 말은 닿지 않는다. 바로 앞에서 일어나는 참담한 광경에도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 한 체, 자신의 무력함을 곱씹을 수밖에 없는 상황.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악몽이 어서 빨리 깨기를 바랄 뿐이었다.

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서서히 끝을 향하고 있었다.

정해진 이야기의 끝. 그러나 계속해서 반복될 꿈.


---


레네가 각오를 다진 체 에릭에게 자신의 마지막을 고했다.


“리온. 이걸 쓸 테니 녀석의 주의를 끌어줘.”

“······성검을 쓴다고? 죽을 생각인 거야?”

“어쩔 수 없어! 지금 통할 만한 공격은 그게 유일한걸! 그렇게라도 안 하면 저 악마를, 마왕을 세상에 풀어 놓겠다고?!”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분명···. 그래 분명 다른!---”

“---아니, 더는 방법이 없어···. 미안해 리온.”

“······.”


더 이상의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이해해버린 에릭은 자신의 무력함을 깊이 되새기며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깊이 눌러 억제했다.

하다못해 그녀의, 레네의 기술이 확실하게 통하도록 조금이라도 시선을 끌고자 에릭은 마왕의 정면으로 향했다.


정면에 서 있어도 여전히 어디를 보는지 알 수 없는 마왕에게 다양한 마법을 쏟아부었다.

폭발, 빙결, 폭풍 등 다양한 속성의 마법에도 상처 하나 없는 경이로운 육체. 그러나 그녀를 위해서 마력이 떨어질 때까지 공격을 계속했다.


용사로 선택받은 자만이 사용할 수 있는 청백색의 수려한 검, 『칼라드볼그』.

공격의 준비로 정신 집중하는 그녀를 시야 한구석으로 확인하며, 다양한 마법을 쏟아붓는 에릭.

세간에서 마법의 대가인 현자로 불리는 만큼, 그의 마법은 평범한 마법사가 이해할 수조차 없는 광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왕에게는 단 하나의 생채기조차 생기지 않았다.


“···{부분 전개 – 닉스}.”


레네의 청백색의 검이 푸른빛을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점차 밝아지는 신성한 분위기의 푸른 빛과 대비되는 기묘한 금속성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 띵.

--- 철컥.


금속성의 소리가 크게 한번 울리며 멈췄다.

기술의 준비가 끝난 상태를 알리는 금속성의 소리를 들은 에릭은 마왕을 향해 달려가 붙잡았다.


“에릭?!”

“나와 함께 베어버려! 확실하게 이기기 위해서!”


움직이지 않는 마왕을 붙잡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헛되이 죽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런 생각은 한순간에 사라졌다.


마왕이 움직였다.


기묘한 각도로 목을 움직인 마왕은 후방에 있는 레네를 본 직후, 팔을 늘어뜨려 조금 전처럼 휘두르기 위해 늘어뜨린 팔을 올리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에릭은 필사적으로 팔을 붙잡아 막으며 레네에게 외쳤다.


“힘이 강해! 오래 못 버티니까! 빨리!”


그 외침에 정신을 차린 레네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에릭.”


마지막이라는 순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평탄하고도 차분한 어조에 에릭은 자신도 모르게 상황을 잊고, 레네를 보았다.


“---.”

“나도.”


레네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지금의 상황을 떠올린 에릭은 마찬가지로 자조적인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레네는 검을 내리쳤다.

아직 거리는 떨어져 있었으나 그녀의 기술은 거리 따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리친 검의 끝으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고, 주변은 한순간에 순백색으로 물들어갔다. 울려 퍼지는 맑은소리, 그리고---


--- 푹.


명백하게 이질적인 소리.

자신도 모르게 떠버린 눈에는.


“레네!!!”


썩은 나뭇가지 같은 마왕의 팔에 꿰뚫린 레네의 축 처진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레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악질적인 악몽은 그녀, 레네의 마지막을 기점으로 서서히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


몽롱했던 의식이 선명해진 순간. 침대의 끝에 걸쳐 앉아, 시선을 이끌리듯 한 곳으로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것은 낡은 나무상자와 그 옆에 버려지듯 팽개쳐있는 손질 되지 않은 오래된 검.

조금 전 보았던 광경에 혼란해진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여행의 첫 시작일이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인 빌어먹을 악몽 때문에 시작부터 무너진다면 되겠는가.


“···.”


그렇다고 하지만 악몽이었으나 악몽은 아닌 그 꿈.

10년 전 사건을 떠올리게 하는 그 꿈을 꾸었다.

후회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짐을 준비하기 위해 천천히 방을 나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go] 마지막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 월, 화, 수, 목, 금요일 18:00분에 연재됩니다. 21.07.06 30 0 -
306 [Ego] 7장 18화 (完) 21.12.24 85 1 18쪽
305 [Ego] 7장 17화 21.12.23 62 1 12쪽
304 [Ego] 7장 16화 21.12.22 39 1 13쪽
303 [Ego] 7장 15화 21.12.21 30 1 12쪽
302 [Ego] 7장 14화 21.12.20 36 1 12쪽
301 [Ego] 7장 13화 21.12.17 34 1 12쪽
300 [Ego] 7장 12화 21.12.16 42 1 14쪽
299 [Ego] 7장 11화 21.12.15 32 1 12쪽
298 [Ego] 7장 10화 21.12.14 27 1 12쪽
297 [Ego] 7장 9화 21.12.13 33 1 13쪽
296 [Ego] 7장 8화 21.12.10 28 1 12쪽
295 [Ego] 7장 7화 21.12.09 40 1 11쪽
294 [Ego] 7장 6화 21.12.08 30 1 12쪽
293 [Ego] 7장 5화 21.12.07 38 1 12쪽
292 [Ego] 7장 4화 21.12.06 29 1 11쪽
291 [Ego] 7장 3화 21.12.03 27 1 12쪽
290 [Ego] 7장 2화 21.12.02 45 1 12쪽
289 [Ego] 7장 1화 21.12.01 40 1 12쪽
288 [Ego] 6장 23화 21.11.30 48 1 12쪽
287 [Ego] 6장 22화 21.11.29 28 1 12쪽
286 [Ego] 6장 21화 21.11.26 34 1 12쪽
285 [Ego] 6장 20화 21.11.25 29 1 12쪽
284 [Ego] 6장 19화 21.11.24 28 1 12쪽
283 [Ego] 6장 18화 21.11.23 28 1 12쪽
282 [Ego] 6장 17화 21.11.22 29 1 12쪽
281 [Ego] 6장 16화 21.11.19 30 1 12쪽
280 [Ego] 6장 15화 21.11.18 35 1 12쪽
279 [Ego] 6장 14화 21.11.17 29 1 12쪽
278 [Ego] 6장 13화 21.11.16 43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