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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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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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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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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1.29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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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Ego] 6장 22화

DUMMY

리온은 흩날리는 먼지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산사태는 이미 한 차례 진정된 상황이다. 산 아래에는 흑암 상단을 둘러싼 이들도 엿보인다.

그 모든 광경을 내려다본 리온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 “갈 거야?”


갑작스러운 베르의 물음에 리온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걸었다.

천천히. 가벼운 발걸음으로 향하는 리온을 막는 이는 없다. 한참 날뛰는 레나드나 루미아와 달리, 리온은 조금의 살기도 흩뿌리지 않는다.

제집을 거닐 듯 차분한 걸음걸이로 향한 리온은 산사태로 드러난 지하 거점을 찾았다.


“후우.”


입구가 아닌 통로.

단단한 건축물로 가로막힌 입구를 바라본 리온은 『칼라드볼그』를 들고, 휘둘렀다.

가로막힌 감촉 하나 없이 휘둘러진 『칼라드볼그』가 칼집을 찾았을 때. 가로막힌 통로는 훤한 길이 되었다.


- “리온, 어떻게 할 거야?”


리온은 지금, 홍매관에 있을 무렵에 비해 지나치게 차분하다. 그에 묘한 불안감을 느낀 베르는 물었다.

카타스트로피는 확실히 처리해야만 한다. 단순한 문제와 사건 사고를 넘어서, 인류를 위협할 수 있는 조직이다.

그렇기에 베르는 카타스트로피를 무너뜨리는 건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베르가 나서서 제안하려 했다.

다만.


- “리온?”


지금의 리온은 지나치게 냉정하다.

조금의 분노조차 흐르지 않는 리온의 분위기는 조용하다.

평화롭다거나, 진심으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니다. 되려 분노를 철저히 담아두는 성격의 리온이다.

베르는 지금 상태의 리온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해하고 있다.


“잠시만, 리온.”

“···베르.”


빛 하나 없는 어두운 통로를 태연히 걸어가던 리온은 길을 막은 베르를 내려다봤다.

통로에는 인공적인 빛이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 체 한참 무언으로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하아.”


리온이 한숨을 내쉬며 자기 얼굴을 쓸어내렸다.


“알았어. 적당히 조절할게.”

“으음···. 좋아. 그 정도로 충분해.”


베르도 리온의 화를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리온이 진심으로 화를 낸다면 그 영향은 쉽게 넘어갈 수 없다.

게다가 지금 리온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예전 전투를 생각하고, 리온이 전력을 다한다면. 리온은 전투의 영향을 버티지 못할지도 모른다.

간단히 의견을 나누고 합의를 마친 두 사람은 다시 어두운 통로를 걷기 시작했다.


“리온, 길은 알고 있어?”

“몰라.”

“···그럼 다른 곳으로 가야 하는 거 아니야?”

“몰라.”


거점에 관한 정보가 없는 두 사람은 하념 없이 통로를 걸었다.

어두운 통로를 걷기를 한참.


“···.”

“커다란 문이네.”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문이다.

통로의 천장까지 높이 솟은 문은 침입자의 출입을 막겠다는 듯, 그 둔중한 형상을 드러냈다.

리온이 말없이 베르를 『칼라드볼그』의 형상으로 되돌리려는 순간.


“어라?”

“···열리네.”


커다란 문이 소리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천천히 열린 문 너머로 흘러나오는 것은 밝은 빛. 그 너머의 광경은 넓은 방이다.

마치, 왕을 알현하기 위한 장소인 듯. 고급스러운 가구와 양탄자가 깔린 방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방에 들어서는 것조차 품격이 필요할 듯한 장소. 그런 장소를 앞둔 리온과 베르는 동시에 최대한 경계하기 시작했다.


“리온.”

“알고 있어.”


방에서 흘러나온 것은 밝은 빛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그리고.


“마왕의 마력···.”

“쯧.”


공기 중에 흐르는 독기의 정도가 심상치 않다.

독기에 반응한 리온은 곧장 자기 몸에 마력을 둘러, 독기의 침입을 차단했다.

경계와 그 이상의 적의를 담은 시선으로 리온은 방을 둘러봤다. 알현실처럼 만들어진 방은 방의 끝.

입구와 마주하는 자리에 커다란 옥좌가 놓여 있다.


“늦지 않았나.”


옥좌에 앉아, 내려보듯 시선을 향한 인물은 이미 익숙한 남자다.

재판부에서 리온과 직접 검을 나눈 인물. 동시에, 리온에게 굴욕과 분노를 전해준 인물.

이름조차 모르는 남자가 옥좌에 앉아 리온과 베르를 반겼다.


“너.”

“대화가 필요한 사이던가?”


리온이 입을 여는 순간, 태연히 돌아온 남자의 발언에 리온은 수긍했다.

눈앞의 남자는 적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인물이다.

이름도, 정체도, 무엇 하나 궁금할 필요 없다.

그에 리온은 베르와 시선을 나누고.


“『칼라드볼그』.”


검을 쥐었다.

청백색으로 옅은 빛을 흩뿌리는 『칼라드볼그』.

용사의 검을 쥔 리온은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 잡념을 지웠다.

오롯이 남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검을 든 리온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


“그게 정답이지.”


한순간에 제 목을 노리는 청백의 칼날.

그 칼끝을 바라본 남자는 태연히 웃음을 짓더니, 한 차례 손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것만으로.


“쯧.”


리온의 검은 허공을 갈랐다.


- “···공간을 비틀었어?”

“마왕이 쓰던 잔재주.”


베르가 놀라자, 리온은 오랜 기억을 떠올렸다.

잊은 기억이 아니다. 잊을 수도 없는, 오랜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마왕과 싸우던 그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 있는 리온은 남자의 행동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으음, 역시 알아차리는가.”


마왕은 일반적인 마법과 상궤를 달리한 능력을 주로 사용했다.

존재 자체가 세상을 좀먹기 위한 존재인 만큼, 그 능력은 주로 다른 생명을 탐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중에서도 공간을 왜곡하는 능력은 온전히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마법으로 사용했다.


“···너. 어떻게 의식을 유지하고 있지?”


리온은 남자의 능력을 보고 더욱 깊은 의문을 떠올렸다.

오염된 마력을 사용하는 정도는 가능하다.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직접 영혼에 관여하려면 오랜 침식을 받아야만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온전히 마왕의 능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 힘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즉.


“마왕의 신체를 받아들이고도 멀쩡하네.”

“멀쩡하진 않네만. 뭐, 다른 이들에 비하면 멀쩡한 축에 속하지.”


마왕은 세상을 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존재다.

정신 구조, 영혼의 행태, 마력. 마왕을 구성하는 것 중 무엇 하나라도 멀쩡한 게 없다.

일반적인 생물이라면 마왕에게 조금만 가까워지더라도 광란할 정도로, 마왕이라는 존재는 세상에서도 이질적인 존재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그 신체의 일부를 받아들이고도 멀쩡하다. 심지어 그 능력마저 일부를 발휘하고 있다.


“소멸시켜야겠어.”

- “···응. 확실히 없애야겠네.”


남자가 어떻게 마왕의 존재에 적응한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리온과 베르는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마왕의 힘. 그 능력을 지닌 존재가 늘어나는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무서운 이들이야.”


남자는 리온과 베르의 살기를 마주하고도 태평히 웃었다.

반면, 리온은 베르와 대화를 나누며 이미 힘을 사용할 각오를 마쳤다.

눈앞의 인물이 어떻게 마왕의 힘을 사용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왕의 힘을 사용한다면, 그에 마땅한 힘.

용사의 힘이 필요하다.


“『칼라드볼그』.”


손에 쥔 검을 의식하며 다시 한번 검을 부른다.

그것만으로도 검은 맥동하며, 리온에게 힘을 전해준다.

일깨워진 힘과 끌어낸 힘. 리온과 『칼라드볼그』의 힘은 하나의 형태로 얽히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하나의 힘이었던 것처럼, 제 모습을 찾아간 두 개의 힘은 이미 하나의 밝은 태양을 연상케 한다.


“오게.”

“···.”


남자의 도발에도 반응하지 않은 리온은 그저, 검을 내밀었다.

『칼라드볼그』의 끝에 맺힌 것은 용사의 힘과 검 자체의 힘. 마왕의 힘에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힘이, 일제히 폭발했다.

한순간에 알현실을 뒤덮은 힘은 그 격류를 퍼트리며 사나운 이빨을 드러냈다.


폭발.

이어진 충격.


유사 태양의 힘이 폭발한 순간.

리온은 검 끝이 흔들린 걸 알아차렸다. 리온의 손이 흔들린 게 아니다. 외부의 충격으로 인한 미약한 흔들림이다.

그 짧은 시간에 충격을 가한 건, 당연하게도.


“콜록.”


남자.

이미 흔적조차 없는 옥좌에서 일어선 남자의 모습은 빈사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다.

하반신은 이미 날아간 상태로, 상반신의 절반도 너덜너덜하다. 살아있는 게 이상할 정도의 상태다.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남자는 웃었다.


“하하.”

“···.”


남자의 태연한 모습에 되려 리온이 의문과 위화감을 떠올린 순간.

옅게 이어져 오던 남자의 숨은 끊어졌다.


“···이걸로 끝인가.”

- “응. ···저 남자의 영혼은 이미 고리로 돌아갔어.”

“그래.”


지나치게 간단히 끝났다.

그런 감상을 미처 지우지 못한 리온은 주변을 둘러봤다.

자신과 베르의 힘으로 완전히 무너진 공간. 기둥과 벽, 천장마저 뚫린 공간은 어느새 햇빛이 들어서고 있다.

완전히 잿더미로 남은 공간을 둘러본 리온은 오염된 마력을 살폈다.


“···?”


리온이 마지막으로 선보인 공격은 모든 마력이 정제되지 않은 마나로 돌리는 기술이다.

즉, 오염된 마력도. 마나로 돌아가야만 한다. 마왕의 마력만큼은 미약한 효과를 보이지만, 리온은 주변 공간에 들어찬 오염된 마력에 의문을 보였다.

그와 동시에 오염된 마력이 한 공간에서 흘러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저건···.”

- “리온?”


베르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의문을 보였다.

리온이 바라본 장소는 오염된 마력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 그 정도가 지나치게 세찬 탓에, 마치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천천히 그 주변으로 다가간 리온은 경계를 놓지 않았다.

그리고.


“상자?”


작은 상자를 발견했다.


- “리온, 조심해.”


작은 상자는 특별한 장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베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파악하고, 리온에게 경고했다.

상자의 크기는 작다. 리온의 양손 정도의 크기의 상자다. 재질은 오래된 나무.

그 이상 특별한 특징을 찾지 못한 리온은 자물쇠를 확인했다.


“···그냥 열리네.”


쉽게 열리는 상자를 확인한 리온은 천천히, 상자를 열었다.

아무런 걸림 없이 넘어간 상자. 그 안에 담긴 것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

- “세상에···.”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을 확인한 리온은 물론, 베르마저 놀랐다.

상자 안에 담긴 것.

그건.


“심장.”


누군가의 심장이다.

심지어 맥동하고 있는 심장은 당장이라도 피를 뿜어낼 듯하지만, 실상은 맥동뿐이다.

다만, 맥동과 함께 오염된 마력이 흐르는 걸 확인한 리온은 『칼라드볼그』를 들었다.

그리고.


“···쯧.”


리온은 혀를 찼다.


-+-


할 일을 끝마친 리온은 거점을 폭파하기로 했다.

완전히. 조금의 흔적도 남기지 않으려 한 리온은 일행에게 마술 도구를 건네줬다.

마술 도구가 울리면 그로부터 10분 동안 최대한 떨어질 것. 또한, 산 아래 있는 일행에게는 산 근처로 누구도 다가오지 못하게 부탁했다.


“베르.”

“응, 괜찮아.”


주변의 상황을 살핀 베르는 인명 피해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리온은 조금 귀찮은 듯한, 어딘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법 도구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 콰앙.


산은.

거점과 카타스트로피는 흔적도 없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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