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흑산양

[Ego] 마지막 이야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흑산양
작품등록일 :
2021.02.19 05:54
최근연재일 :
2021.12.24 18:00
연재수 :
306 회
조회수 :
14,681
추천수 :
345
글자수 :
1,835,784

작성
21.11.18 18:00
조회
35
추천
1
글자
12쪽

[Ego] 6장 15화

DUMMY

루미아의 전투가 끝날 무렵.

그 무렵에는 리온과 남자의 검은 몇 번이나 마주했다.

두 사람의 검. 한쪽은 용사의 검으로, 『칼라드볼그』. 다른 한쪽은 라셴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싸구려 검이다.


“···후우.”


리온은 거친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앞의 남자를 살폈다.

지닌 검은 싸구려 검. 멀리서 보아도 조잡함이 한눈에 보일 정도로, 적당한 검이다. 그러나 남자는 그런 검을 가지고서 리온의 검을 전부 막아냈다.


‘어떻게···?’


리온의 검은 평범하지 않다. 명도 중에서도 명도라 불리는 검으로, 마왕마저 쓰러뜨린 『칼라드볼그』다.

사용하는 인물인 리온의 실력도 검사 중에서 상당한 실력을 지닌 인물이다.


“오랜만에 움직이는군.”


남자는 뭉친 어깨를 풀 듯 몇 번 관절들을 움직이며, 조용히 리온의 모습을 바라봤다.

리온과 남자.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재판부의 정원이다. 내부에서도 더욱 깊숙한 곳에 있는 마당은 본래 조용하며, 인적이 드문 곳이다.

하물며 지금은 셀리나의 재판과 아리엘 쪽의 침입으로 인해 더욱 관심이 드물어진 곳이다.


“허나, 그 탓에 조경이 망가졌어.”


남자의 시선이 향한 정원은 수많은 검상으로 인해 무너질 대로 무너졌다.

바닥에 아로새겨진 상처만 해도 수십. 주변으로 퍼져나가듯 땅을 찢어발긴 검상은 정원 곳곳에서 엿보인다.


- “리온.”

‘···그래.’


베르의 부름에 리온은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자세는 변하지 않는 중심.


“후우···.”

“다시 오는가?”


리온의 모습에 차분히 검을 들어 보인 남자는 마치 검술을 가르치듯, 리온을 기다렸다.

넘치는 여유. 그 여유를 앞둔 리온은 남자의 틈을 관찰하고, 움직였다.


『칼라드볼그』의 예기를 이용한 베기.


단 한 번 휘둘러진 검은 제 궤도에 남은 모든 것을 베어버리며 움직였다.

하늘도, 대기도, 바람도,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베어버린 검은 리온의 움직임과 함께 멈췄다.

검끝이 바닥에 닿은 순간. 정원에는 또 하나의 검상이 생겼다.

다만.


“무섭도록 날카로운 검일세.”

“···.”


리온이 베어 가르고자 한 남자는 여전하다.

하늘을 찢어발긴 검을 직접 마주했을 남자는 조금의 상처도 없이, 멀쩡하다.

리온은 남자의 모습을 살피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오염된 마력이 늘어났다.’

- “그걸 이용해서 공격을 막고 있는 거려나?”


리온이 관찰하는 것은 베르도 관찰할 수 있다.

남자의 겉에서 배어 나온 오염된 마력. 그 정도가 늘어난 것을 민감하게 알아챈 리온이 오염된 마력과 남자의 행동을 떠올렸다.

베르 또한 오염된 마력이 어떤 작용을 이루었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흠.”


검을 휘두르기만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리온과 베르가 남자를 쓰러뜨리는 방법을 생각하는 사이, 남자 또한 어딘가를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생각에 빠진 순간은 아주 잠깐. 리온과 베르. 남자가 생각하는 사이에도 양측은 서로를 견제하며, 당장이라도 움직일 수 있게 경계하고 있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것은 남자 쪽.


“정리해야겠군.”

“···?”


갑작스러운 남자의 발언에 리온이 의문을 보인 것도 잠시. 리온은 곧바로 검을 들었다.

남자에게서 배어 나오던 오염된 마력은 지극히 미량. 바람에 헛도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금.


‘인간이 맞나?’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온 오염된 마력은 그 정도가 아니다.

단 한 순간에 폭발하듯 흘러나온 오염된 마력은 이미 주변의 식물들을 저주하며 썩어들게 했다.


“자네와의 놀음도 재밌었으나, 슬슬 돌아가야 할 무렵이라 말이지.”


상당한 밀도의 오염된 마력을 뿜어내는 남자는 조금도 달라진 것 없이 리온을 마주했다.

손에 들린 검은 싸구려인 조잡한 검. 그런 검을 한 손으로 들어 보인 남자는 리온을 향해 태연히 선언했다.


“다음으로 마지막이네.”

“···그래.”


마지막.

자신을 단 한 번으로 쓰러뜨리겠다는 이야기에 리온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리온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선언했다.


“이쪽도 마지막이야.”

“그런가.”


남자의 선언과 마찬가지인 발언.

리온의 선언에 남자는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이 미처 사라지기도 전에.


- 톡.


두 사람은 하나의 선이 되었다.


-+-


재판부의 내부는 외부와 달리 조용하며 엄숙한 분위기가 유지되었다.

아리엘과 루미아. 리온과 베르가 재판부의 외부로만 다녔기 때문이다. 그 덕에 재판부 내부의 경비는 필요 최저한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재판부에.


“이 몸이 왔단 말이지.”


한 남자가 가벼운 발걸음을 향하고 있다.

남자의 외형은 새하얀 도복. 얼룩 하나 없이 새하얀 남자의 도복은 어딘가 신성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남자의 얼굴에 내걸린 장난 어린 미소가 남자의 분위기를 산산이 부수고 있다.


“내 보아하니, 그 여인이 있는 곳은 저쪽이렷다.”


남자. 블론드가 향하는 곳은 재판부의 내부.

습격자의 습격을 받는 도중에도 조금의 병력도 움직이지 않은 공간.

재판부의 핵심 중추이자, 습격이 이루어지는 지금에도 제 역할을 다하는 곳.


“재판소라.”


재판소라 적힌 나무판을 올려다본 블론드는 입에 묘한 웃음을 지었다.


“내 기억이 바르다면 살아서는 절대 오지 않으려 한 곳인데 말이지···. 죽어서 제 발로 찾아올 줄은 생전의 나도 몰랐겠지.”


가벼운 웃음으로 가라앉으려던 분위기를 날린 블론드는 잠시 문을 바라봤다.

떠올리는 것은 문. 그 너머에 있을 셀리나와 방해하는 인물들. 벽과 문으로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떠올린 블론드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죽은 몸으로 리온의 도움을 받아 일시적이나마 생전의 몸을 되찾은 블론드.

블론드가 되찾은 것은 일시적인 몸뿐이다. 생전의 힘은 무엇 하나 없는 상태. 지금 블론드의 몸에는 조금의 마력도 흐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도 이제 놀아볼까?”


도사의 힘은 영혼에 새겨진 지식.

미력하나 없는 블론드는 제 도복을 널리 흐트러뜨리며, 힘찬 손짓으로 재판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


열어젖힌 문 너머. 그곳에 있는 재판소의 모습은 간소하다.


판결을 위한 재판장. 부정이 없는지 감찰하기 위한 감찰단. 부정을 밝히는 검사. 혹여나 있을 착각을 확인하려는 재감사.

제각각의 인물로 나뉜 네 개의 구역. 그 중앙에 있는 게 심판을 받는 이의 자리다.


“후우···.”


재판소의 중앙에 있는 이는 셀리나.

재판장과 감찰단. 검사와 재감사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의연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재판장과 검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죄목은 위조와 날조된 것들. 그러나 어디선가 가져온 증거를 들먹이며 셀리나를 압박하고 있다.


‘생각보다 견고하네요.’


여태껏 많은 전장을 거쳐온 셀리나라도 확실한 증거 앞에서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 수 없다.

물론, 셀리나 자신이 부정을 저지른 적은 없으니 증거는 위조다. 하지만 위조를 증명할 방법이 없는 셀리나는 예상 이상으로 꼼꼼한 대응에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치닫는 질문과 견제. 그런 공격을 피하고자 돌린 시선은 우연히도 창가에 닿았다.

그렇기에.


“저건···?”


재판소에 있는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렸다.

셀리나의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면면들도 뒤늦게 창가의 변화를 알아차렸다.


“연기?”

“무슨 일이지?”

“경비! 상황은 어떻지?”


셀리나의 재판을 우선하느라 외부의 정보는 일부의 인물을 제외하고는 차단된 상태다.

경비를 담당하는 인물은 재빨리 밖의 상황을 확인하기 시작하고, 대부분이 의문과 경계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반면, 유일하게 셀리나 만큼은 당황하지 않았다.


“···결국, 오시는가요.”


이미 짐작한 듯, 한숨을 내쉰 셀리나는 주변을 둘러보지 않았다.

어느새 주변을 가득 메운 안개에도 셀리나는 그저 제 자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가만히 섰다.

셀리나가 얌전히 기다리는 것과 달리. 재판소의 내부가 완전히 안개에 둘러싸이자, 각 인물이 당황하며 경계하기 시작했다.

특히 경비를 담당하는 이들은 침입자의 소식을 떠올리고 무기를 들었다. 안개 또한 침입자의 공격이라 판단한 것이다.


- 투욱.

- 툭.


다만, 그들의 저항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안개는 살아 움직이듯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기 시작했고, 무기를 든 이들의 주변도 마찬가지.

그들이 완전히 안개에 삼켜진 후에는 인기척이 하나둘 사라졌다.


“경비!”

“이보게! 누구 없나!?”


경비의 모습이 사라지고, 안개 외에 전혀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된 상황.

그야말로 혼란으로 치달은 재판소의 모습에 사람들은 큰 소리를 내며 천천히 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미 경비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제 목숨이 더욱 중요한 이들은 도망치듯 재판소를 나섰다.

달리듯 걷는 혼란한 소리가 가득 찬 후. 순식간에 정적을 되찾은 재판소에 남은 것은 단 한사람.


“후···.”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선 셀리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재판소 모두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도 셀리나는 안개에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째서 여기에 계신 건가요?”


건네는 말은 허공에 흩날려 사라질 뿐인 혼잣말.

안개를 거쳐 나아간 셀리나의 말은 천천히 울려 퍼졌다.

울려 퍼진 혼잣말. 그 물음은 파문을 퍼뜨리듯 안개가 물결치더니, 작은 길이 열렸다.

그리고, 그 길 끝에 선 이는 도사.


“그대의 이야기를 듣고자 왔지.”


괜스레 멋진 자세를 잡은 블론드다.

블론드의 모습을 본 셀리나는 예상대로 들어맞은 사실에 얼굴을 찌푸리고,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을 가득 채운 것은 자유롭게 움직이며, 수면이 일렁이듯 물결치는 안개.


“힘은 그대로인 듯하네요.”

“생전의 내가 이걸 그대에게 보여주었던가?”


블론드의 물음에 셀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보여주셨지요. 그야말로 꿈에서도 볼 정도로 수도 없이 보여주셨답니다.”

“그랬, 던가?”


생전의 기억이 모호한 블론드는 셀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기울였다.

주변을 가득 메운 안개는 블론드의 도술. 그중에서도 블론드가 애용하고, 거짓된 몸으로도 펼칠 수 있을 정도로 영혼에 익숙한 도술이다.

다만, 가볍게 보여주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도술이다.


“제 이야기를 듣고자 하신다지요.”


블론드가 다시 한번 생전의 자신과 셀리나의 관계를 생각하는 사이, 셀리나가 먼저 블론드를 불렀다.


“저는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할 이야기가 없다? 그게 사실인가?”

“예. 저는 당신과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단호한 거절.

눈빛에 깃든 단호한 감정을 읽은 블론드는 곧은 시선을 보내는 셀리나와 눈을 마주했다.


“‘홍매(紅梅)의 약속’. 그 이야기를 듣고자 하여도, 말인가?”


블론드가 약속을 이야기하던 한순간, 셀리나의 눈은 흔들렸다.

그 한순간의 일렁임을 놓치지 않은 블론드는 조용히 눈매를 휘었다.


“···그럼에도,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블론드의 미소.

그 미소를 바라보면서도 거절을 내뱉은 셀리나는 시선을 돌렸다.

반면 블론드는 여전히 셀리나를 바라보며 웃음을 지었다.


“곤란하디곤란한 상황이네. 이야기하고자 왔지만, 그대가 나를 거부하니···. 이를 어찌하리.”


갑작스레 혼잣말을 시작한 블론드의 목소리에는 어딘가 장난기가 섞여 있다.

목소리에 담긴 장난기. 그 감정을 알아챈 셀리나는 몸마저 돌려버렸다.

하지만.


“옳거니.”


블론드는 입꼬리를 더욱 올렸다.

그와 동시에 떠올렸다는 듯 제 손을 마주하며.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붙어 있어야겠어.”

“네···?”


좋은 생각이라는 듯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go] 마지막 이야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매주 월, 화, 수, 목, 금요일 18:00분에 연재됩니다. 21.07.06 31 0 -
306 [Ego] 7장 18화 (完) 21.12.24 85 1 18쪽
305 [Ego] 7장 17화 21.12.23 62 1 12쪽
304 [Ego] 7장 16화 21.12.22 39 1 13쪽
303 [Ego] 7장 15화 21.12.21 31 1 12쪽
302 [Ego] 7장 14화 21.12.20 36 1 12쪽
301 [Ego] 7장 13화 21.12.17 35 1 12쪽
300 [Ego] 7장 12화 21.12.16 42 1 14쪽
299 [Ego] 7장 11화 21.12.15 33 1 12쪽
298 [Ego] 7장 10화 21.12.14 27 1 12쪽
297 [Ego] 7장 9화 21.12.13 34 1 13쪽
296 [Ego] 7장 8화 21.12.10 28 1 12쪽
295 [Ego] 7장 7화 21.12.09 40 1 11쪽
294 [Ego] 7장 6화 21.12.08 31 1 12쪽
293 [Ego] 7장 5화 21.12.07 38 1 12쪽
292 [Ego] 7장 4화 21.12.06 29 1 11쪽
291 [Ego] 7장 3화 21.12.03 27 1 12쪽
290 [Ego] 7장 2화 21.12.02 46 1 12쪽
289 [Ego] 7장 1화 21.12.01 41 1 12쪽
288 [Ego] 6장 23화 21.11.30 48 1 12쪽
287 [Ego] 6장 22화 21.11.29 29 1 12쪽
286 [Ego] 6장 21화 21.11.26 35 1 12쪽
285 [Ego] 6장 20화 21.11.25 29 1 12쪽
284 [Ego] 6장 19화 21.11.24 28 1 12쪽
283 [Ego] 6장 18화 21.11.23 29 1 12쪽
282 [Ego] 6장 17화 21.11.22 30 1 12쪽
281 [Ego] 6장 16화 21.11.19 30 1 12쪽
» [Ego] 6장 15화 21.11.18 36 1 12쪽
279 [Ego] 6장 14화 21.11.17 30 1 12쪽
278 [Ego] 6장 13화 21.11.16 44 1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